SF 생태주의
<노변의 피크닉>과 비일상적인 적막한 감성 본문
얼마 전에 <노변의 피크닉> 완역본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노변의 피크닉>은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감독한 영화를 비롯해 여러 매체들에게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한국에서 이걸 읽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저는 한글로 이 소설을 읽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마침내 이 작품이 나오는군요. 출판사 역시 30년만에 선보이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이라고 홍보합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분명히 좋은 작품이나, 저는 <노변의 피크닉>의 이야기 구조가 훨씬 더 마음에 들어요.
아마 이 소설이 선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기이한 구역 설정일 겁니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기이한 구역 '존'은 문명 내부에 자리잡은 고립된 지역입니다. 기이한 구역은 여러 진귀한 물품들을 품었으나, 아무나 함부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각종 이상 현상들이 나타나고 괴물들이 설치기 때문입니다. 군대와 경찰 역시 이상 구역 안에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해요. 그래서 특별한 스토커들만 목숨을 걸고 그 안으로 들어가죠. 누군가는 진귀한 물품을 얻고 이상 현상을 피하고 무사히 현실 세계로 돌아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괴물들과 싸우고 목숨을 잃을지 몰라요.
이런 소설을 비경 탐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노변의 피크닉>은 분명히 일반적인 비경 탐험과 달라 보입니다. 흔한 비경 탐험 소설들에서 탐사대는 밀림이나 동굴이나 극지나 고대 유적을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기이한 구역 '존'은 밀림이나 동굴이나 고대 유적과 다르죠. 이 기이한 구역은 문명 내부에 존재하고, 아무도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모릅니다. 외계인들(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존재)이 다녀갔으나, 왜 그들이 거기에 왔는지 아무도 몰라요. <노변의 피크닉>은 탐사대가 열대 밀림에서 공룡을 관찰하거나 동굴 속에서 지구 내부로 들어가거나 고대 유적 속에서 사라진 역사를 음미하는 소설들과 다릅니다.
<노변의 피크닉>에서 탐사나 탐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기이한 구역들을 비롯해 온갖 괴상한 일들이 줄줄이 벌어진다는 상황이 훨씬 중요하죠. <세상이 10억 년>을 고려한다면, <노변의 피크닉>에서 탐험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할 겁니다. 주인공 스토커는 기이한 구역 속을 돌아다니고, 뭔가 이상한 현상이나 괴물을 목격하나, 이는 일반적인 비경 탐험과 다르죠. 심지어 주인공 스토커는 자신이 괴물을 봤는지 확신조차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기이한 구역도 비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명 내부에 존재하는 비경이죠. 비경이 SF 소설이나 다른 장르 소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거기가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탐사대는 문명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때때로 탐사대는 밀림과 동굴과 유적에서 적막과 외로움을 느낄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황 덕분에 탐사대는 기이하고 비일상적인 감성에 젖을지 모릅니다. (비일상적인 요소에서 비롯하는 관념의 변화는 SF 소설의 핵심적인 가치일 겁니다.)
<노변의 피크닉> 역시 그런 감성을 풍길 수 있어요. 울창한 열대 밀림을 방황하는 공룡 탐사대와 깊은 지하를 돌아다니는 동굴 탐사대와 유물들을 훑어보는 고대 유적 탐사대와 기이한 구역 속을 헤매는 스토커들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돌아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이한 구역은 문명 내부에 존재하나, 강력한 군대조차 함부로 거기에 진입하지 못하죠. (그래서 스토커들이 들락거리죠.) 따라서 스토커들은 공룡 탐사대와 동굴 탐사대와 유적 탐사대와 비슷한 감성을 공유합니다. 문명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감성. 뭔가 현대적인 것이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감성. 현대 문명적인 것에 안주하지 못한다는 감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 감성은 공통점입니다.
저는 <노변의 피크닉>이 비경 탐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멸의 땅> 같은 소설은 분명히 비경 탐험이죠. 그리고 이 소설은 <노변의 피크닉>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고요. 솔직히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이 초현실적인 공간을 방황하는 내용이죠. <노변의 피크닉>과 <크리스털 세계>와 <미사고의 숲>을 적절히 혼합한다면, <소멸의 땅>이 딱 튀어나올 겁니다. 그리고 <소멸의 땅>이 비경 탐험 소설이라면, <노변의 피크닉> 역시 그런 특성을 부분적으로 포함했을 겁니다.
물론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탐험 소설을 쓸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노변의 피크닉>에서 정말 중요한 주제는 인간이 거대한 우주를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변입니다. <스토커> 같은 비디오 게임은 그런 사변을 쏙 빼놓고 폐허 속에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괴물들과 싸우는 내용을 묘사하나,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는 그게 아니죠. 스트루가트키 형제에게 탐험이라는 요소는 별로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두 작가가 뭐라고 의도했든, 이 소설은 초현실적인 공간을 탐험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결국 그런 내용은 <소멸의 땅> 같은 책을 낳았고요. 그래서 저는 <노변의 피크닉>에서 비경 탐험 같은 감성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