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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잃어버린 제국>과 유토피아를 탐험하는 여정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잃어버린 제국>과 유토피아를 탐험하는 여정

OneTiger 2018. 3. 31. 20:20

[이런 애니메이션은 해저 도시를 찾아가는 비경 탐험이고 동시에 유토피아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은 해저 도시를 찾아가는 비경 탐험입니다. 주인공은 아틀란티스와 기계에 해박한 고고학자이자 기술자입니다. 이런 비경 탐험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주인공은 아틀란티스가 진짜 존재한다고 주장하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주장을 믿지 않아요. 주인공은 천덕꾸러기 신세죠. 하지만 우연히 누군가가 주인공에게 어마어마한 기회를 주고, 주인공은 해저로 내려갈 기회를 얻습니다.


<잃어버린 제국>은 비경 탐험이자 스팀펑크 판타지이고, 곳곳에서 스팀펑크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유럽 사람들이 만든 기계들만 아니라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만든 기계 역시 환상적인 디자인을 자랑하죠. 심해로 내려가는 거대한 잠수함, 여러 작은 잠수정들, 해저를 지키는 무시무시한 레비아탄, 물고기 같은 개인용 비행 차량들, 기타 등등. 비록 <잃어버린 제국>은 혹평을 받았고, 혹평을 받을 애니메이션이 맞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너무 전형적이게 개성적이고, 사건 진행 역시 진부한 수준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거대한 잠수함이나 해저 레비아탄이나 잠수정들 같은 스팀펑크 판타지 디자인들은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유럽 탐사대는 여러 고생들을 거치고, 마침내 해저 도시 아틀란티스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아틀란티스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합니다. 비록 몰락하는 중이었으나, 아틀란티스에는 환상과 아름다움, 기품이 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어디에도 빈곤이나 계급 차별이나 환경 오염은 보이지 않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서 <잃어버린 제국>은 자본주의의 폭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대 배경은 19세기 유럽이고, 당연히 19세기 유럽은 억압적인 자본주의 체계였습니다. (나중에 이런 억압은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죠.)


반면, 아틀란티스에서 모두 잘 먹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유럽에서 태어났음에도 주인공 고고학자는 유럽보다 아틀란티스에게 마음이 기우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인공에게 아틀란티스는 이상적인 사회, 자신이 머물기 원하는 세상이었을지 모릅니다. 사실 SF 세상에서 이런 내용은 드물지 않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머나먼 오지로 떠나고, 어딘가에서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마주합니다. 오래 전부터 이런 내용은 유토피아 문학을 장식했고,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 역시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진은 유토피아 장르를 만들 마음이 없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진은 모험 이야기를 원했고, 그래서 해저 비경 탐험을 집어넣었을 뿐입니다. <잃어버린 제국>이 몇몇 유토피아 소설과 비슷하게 보이거나 아틀란티스가 아름다고 평화롭게 보인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상 사회는 부차적인 요소일 겁니다. 진짜 중요한 요소는 유럽 탐사대가 여기저기 신나게 싸돌아다니는 과정이겠죠. <잃어버린 제국>은 어떻게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자세히 파악하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유럽 사람들과 많이 다른지 말하지 않아요.


주인공 고고학자는 사회 구조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습니다. 빨리 고고학적인 증거를 찾고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잃어버린 제국>은 형식적으로 분명히 유토피아 소설을 따라갑니다. 만약 애니메이션 제작진이 원했다면, <잃어버린 지평선>과 샹그릴라처럼 아틀란티스를 이용해 유토피아 장르를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디즈니는 그런 장르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못하겠죠. 이런 유토피아 장르는 자본주의 체계를 비판해야 하나, 디즈니는 자본주의에 충성하는 집단이에요. 설사 디즈니가 유토피아 장르를 만든다고 해도, 그런 유토피아는 꽤나 형이상학적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제국>처럼 비경 탐험과 유토피아가 서로 만날 수 있다는 특징입니다.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나 조난단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처럼 유토피아 소설은 분명히 비경 탐험을 포함합니다. 왜 라파엘 히슬로다이우스가 선장이겠어요. 현실 속에 이상 사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 주인공은 머나먼 세계로 떠나야 합니다. 비단 토마스 모어나 조나단 스위프트만 아니라 여러 철학자들은 비경 탐험과 유토피아를 결합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외계 행성으로 건너가고, 거기에서 이상 사회를 만납니다. 그런 소설들은 많습니다.


사회 구조를 살피느라 바쁘기 때문에 그런 소설들은 비경 탐험을 강조하지 않으나, 창작가가 좀 더 분량을 늘린다면, 유토피아 장르는 비경 탐험 장르와 멋지게 어울릴 수 있겠죠. 유토피아 장르가 반드시 비경 탐험과 어울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SF 세상에서 이는 유구한 전통이고, 저는 유토피아 장르가 그저 사회 구조만 살피느라 바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구조만 살피느라 바쁜 소설들은 SF 장르가 자랑하는 공간적인 이동, 탐험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해요. 저는 유토피아 장르가 그저 사회 구조만 살피는 이야기를 넘어섰으면 좋겠습니다.



※ 추가: <잃어버린 제국>의 주인공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 출신입니다. 본문에서 주인공이 유럽 출신이라고 말했으나, 서구 문명이라는 단어를 유럽이라는 단어로 잘못 썼군요. 하지만 유럽과 미국은 똑같이 서구적인 근대 문명이고, 게다가 탐사 대원들 중 유럽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본문을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잘못 생각하신 분이 계신다면, 사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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