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방랑자>, 장엄한 우주 진출과 미래 문명 본문
[아, 이런 영상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인류가 함께 우주에 진출할 수 있다면, 그건 훨씬 감동적이겠죠.]
Erik Wernquist가 제작한 <방랑자 Wanderers>는 우주 탐사를 이야기하는 짧은 영상입니다. 길이는 대략 4분 정도이고, 내용은 단순합니다. 대부분 SF 우주 탐사물처럼 <방랑자>는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는 과정을 장엄하고 감동적으로 그립니다. 이 영상은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야기하는 방랑, 탐험, 여정, 개척을 곁들이고, 시청자는 장엄한 영상과 (칼 세이건이 들려주는) 아득한 이야기와 함께 우주로 나갑니다. 오랜 동안 인류는 지구에 머물렀고, 지구는 인류에게 안락한 쉼터를 제공했습니다. 지구가 살기 힘든 곳이라고 해도, 태양계 안에서 지구만큼 안락한 곳은 없습니다.
아직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머나먼 별들을 바라본다고 해도, 우리는 지구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지구에 머물러야 할까요. 우리는 지구를 영원히 떠나지 못하는 운명일까요. 여러 과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기후 변화와 핵 폐기물을 피해 우리가 부랴부랴 지구를 떠날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런 요란한 개척은 부끄럽고 꼴 사나운 방법이겠죠. 하지만 무엇이 이유가 되든, 우리는 지구를 떠나고 다른 행성들이나 위성들, 그 너머를 개척할 수 있을 겁니다.
<방랑자>가 흥미로운 이유는 영상이 시청자를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거대하고 장엄합니다. 태양계 외부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태양계 내부 역시 거대하고 장엄하죠. 한낱 인간에게 태양계라는 세계는 너무 큽니다. 우리는 감히 그런 규모를 머릿속에 담지 못합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받아들일 뿐이죠. <방랑자>는 그런 거대하고 장엄한 우주를 한껏 펼치고, 시청자를 막막하고 광대한 우주 공간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고화질 영상과 놀라운 시각 효과, 미래적인 디자인, 연극적인 편집에서 시청자는 쉽게 시선을 돌리지 못할 겁니다.
우주선이 거대한 행성 궤도를 맴돌 때, 창문이 열리고 거대한 행성 표면이 보일 때, 궤도 승강기가 기나긴 궤도를 올라갈 때, 우주인들이 특수한 복장들을 입고 자유롭게 날아다닐 때…. 시청자들은 감탄을 내뱉고 화면 속으로 빠져들 겁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음악은 놀라운 시각 효과와 미래적인 디자인과 호흡을 착착 맞춥니다. 칼 세이건의 해설, 미래적이고 멋진 디자인, 몽환적인 음악. 이 세 가지들은 조화를 이루고, 시청자를 화성과 소행성 지대와 우주선으로 데려갑니다. 어떻게 이런 장엄한 탐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쉽게도 이런 영상에는 관념이나 사상이 없습니다. 이런 영상들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방랑자>는 그저 장엄한 우주 풍경들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저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궤도 승강기로, 화성으로, 소행성 지대로, 태양계 너머로 나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할까요.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첨단 우주 정거장이나 지구환을 바라볼 때, 어떻게 사람들의 관념이 바뀔까요. <방랑자> 같은 영상은 그런 것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영상에는 장엄한 풍경들이 많으나,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대화하는지 시청자는 알지 못합니다.
<방랑자> 같은 영화만 아니라 테이블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황혼의 제국>이나 <스페이스 엠파이어즈>는 거대한 우주 제국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들은 우주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느끼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테이블 게임과 비디오 게임 모두 유닛 수치와 우주선 성능과 행성 상황을 묘사할 뿐이고, 사람들의 관념이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SF 소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SF 소설을 읽는 동안, 좀 더 강렬하게 시각적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방랑자> 같은 영상은 좋은 동행이 되겠죠.
이와 함께 저는 한 가지가 더 안타깝습니다. <방랑자>는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지구에서 모든 인류가 <방랑자>에게 감동할 수 있을까요. 우주 탐사? 화성 개척? 궤도 승강장? 저는 그런 것들에 감탄할 수 있으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장 먹고 사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질병에 걸리고, 기생충에 시달리고, 썩은 물을 마시고, 진흙을 퍼먹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주 탐사나 궤도 승강장에 감탄할 수 있겠어요? 게다가 <방랑자>는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다고 말합니다.
인류? <방랑자>가 말하는 인류는 누구인가요? 질병에 걸리고, 기생충에 시달리고, 썩은 물을 마시고, 진흙을 퍼먹는 사람들 역시 인류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쉽게 우주 개척을 받아들이고 감동할 수 있을까요. 인간들은 똑같은 인류가 아닙니다. 인류 사회는 아주 억압적이고 수직적인 계급 구조이고, 기득권들은 밑바닥 사람들을 착취하고 수탈하고 학살합니다. 인류가 감동적으로 우주에 진출하고 싶다면, 먼저 인류는 착취와 수탈과 학살을 없애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없애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같은 광신에서 벗어나야 할 겁니다. 어떻게 대기업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함께 우주로 나갈 수 있겠어요. 지금도 대기업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대기업들을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해도 된다고 말해요.
우주 진출이 다르겠어요. 우주 진출이 환경 오염이나 침략 전쟁과 다르겠어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주 진출은 그저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또 다른 정복과 침략에 그칠 뿐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