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테러 프롬 더 딥>의 이질적인 해저 풍경 본문
[게임 <테러 프롬 더 딥>은 외계인 침략 이야기보다 해양 공포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비디오 게임 <엑스컴: 테러 프롬 더 딥>은 1993년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의 속편입니다. <엑스컴> 시리즈는 지구 방위대 엑스컴이 침략 외계인들을 물리치는 내용이죠. 순서 기반(턴 방식) 전략 게임으로서 <엑스컴>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후대에 아주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략 게임 역사에서 <엑스컴>은 커다란 획을 그었습니다. 이건 과언이나 과대평가가 아닐 겁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엑스컴>의 정신적 계승작을 꿈꿉니다. <엑스컴>을 구상한 줄리안 골롭 역시 그렇죠. 하지만 여러 <엑스컴> 시리즈와 정신적 계승작들 중에서 <테러 프롬 더 딥>은 좀 더 특별합니다.
표지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테러 프롬 더 딥>은 해저 외계인들을 묘사합니다. 일반적인 외계인들은 우주에서 날아오나, <테러 프롬 더 딥>에서 외계인들은 심해에서 올라옵니다. 사실 아주 오래 전에 외계인들은 바다에 빠졌고, 해저에서 그들은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저를 장악할 수 있었고 지구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엑스컴 기지는 온갖 잠수함들과 잠수 장비들과 잠수 로봇들을 제작하고 해저 외계인들과 싸워야 합니다. 당연히 수중전은 기본적인 전투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수중전은 지상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테러 프롬 더 딥>이 수중전을 묘사한다고 해도, 그건 그저 배경 묘사에 불과합니다. 수중전과 지상전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심해에서 엑스컴 대원들이 해저 외계인들과 싸운다고 해도, 수중이라는 환경에는 특별한 장점이나 단점이 없죠. 몇몇 단점이 있다고 해도, 수중 전투 방식은 지상 전투 방식과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똑같은 규칙에 기반합니다. 하지만 전투 방식이 똑같다고 해도, 수중 전투가 선사하는 분위기는 꽤나 환상적입니다. <테러 프롬 더 딥>은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에서 생생하게 깨어난 것 같습니다. 이 게임 속에서 수중 전투는 <다곤>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나 <크툴루의 부름>, <사나스에 찾아온 운명>, <신전> 같은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을 한껏 변주한 것 같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해저 외계인들이 드러내는 이질적이고 기괴한 모습들과 음울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심해 분위기를 실컷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게임 제작자들은 해저 외계인들이 선보일 수 있는 온갖 기괴한 디자인들을 멋지게 묘사했고, <테러 프롬 더 딥>은 <인스머스의 그림자> 같은 소설을 시각적으로 되살렸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순서 기반 전략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해저 외계인이나 해양 공포 소설을 좋아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테러 프롬 더 딥>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엑스컴> 시리즈나 정신적 계승작들은 이런 음울하고 기괴한 해저 분위기에 관심이 없죠.
다른 <엑스컴> 시리즈와 정신적 계승작들은 몽환적이고 암울한 배경 음악, 사방에 널린 해초들과 해저 지형들, 기이한 해저 유적들, 부글거리는 물방울들, 해저 외계인들과 해저 괴수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직 <테러 프롬 더 딥>만 이런 것들을 선사합니다. 해양 공포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건 꽤나 아쉬운 상황입니다. <엑스컴>이 보여준 기지 운영과 순서 기반 전략은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테러 프롬 더 딥>이 보여준 이질적인 해저 외계 풍경은 별로 감흥을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바다는 또 다른 우주이고, 해저는 우주보다 훨씬 이질적인 환경이 될 수 있으나, 게임 제작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뭐, 게임 제작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설정이 아니라 게임 규칙이겠죠.
그렇다고 해도 <테러 프롬 더 딥>이 선사한 분위기는 독특합니다. 비단 <엑스컴> 시리즈와 정신적 후계작들만 아니라, 수많은 SF 전략 게임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런 우중충하고 기괴한 해저 풍경을 다시 찾지 못할 겁니다. 여기에 필적하는 유명한 전략 게임은… 없을 겁니다. 저는 그런 게임이 없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SF 전략 게임들 중에서 유일하게 <테러 프롬 더 딥>은 환상적이고 암울하고 몽환적인 심해 풍경을 묘사합니다. <인스머스의 그림자>나 <크툴루의 부름>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기 원하세요? <테러 프롬 더 딥>을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테러 프롬 더 딥>이 선사하는 분위기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외계인과 많이 다릅니다. 외계인들은 우주에서 왔고, 따라서 그들은 해저와 상관이 없습니다. 호화로운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3류 쌈마이 영화까지, 침략 외계인들은 우주 분위기를 풍겨야 합니다. 심해 분위기가 아니라. <어비스> 같은 영화는 없지 않으나, 우주 분위기는 해저 분위기보다 압도적으로 많겠죠. 사실 해저는 외계인보다 바다 괴수에게 훨씬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깊고 깊은 바닷속에 레비아탄이나 크라켄이나 온갖 바다 괴수들이 산다고 상상하죠. 외계인이 아니라. 아무리 우주와 바다가 비슷하다고 해도, 우주와 바다는 다르고, 그래서 <엑스컴> 시리즈와 정신적 후계작들은 해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인간들에게 바닷속은 친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닷속보다 우주를 훨씬 쉽게 상상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태양과 달과 은하수가 멀다고 해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신성이나 혜성을 목격했고 우주를 꿈꿀 수 있었어요. 인류가 해저에 내려가기 전에 이미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으로 다른 천체들을 관찰했죠. 교회 권력은 그런 천문학자들을 박해하거나 처형했어요.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다른 천체들을 관찰했음에도, 인류는 해저 열수공 생태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해저 외계인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테러 프롬 더 딥>에는 할루시노이드나 자퀴드 같은 바다 괴수 유닛들이 있습니다. 자퀴는 거대 앵무조개죠. 크기는 4칸을 차지하고, 단단한 껍데기 덕분에 자퀴드는 높은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이건 정말 바다 괴수에요. 이런 앵무조개 괴수가 엑스컴 대원들을 공격하는 장면은 언뜻 <해저 2만리>와 비슷합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역시 노틸러스가 고대의 거대 오징어와 싸우는 장면을 보여줬죠. 네, 자퀴드는 오징어입니다. 앵무조개라는 이름과 달리, 이건 조개가 아니에요. 흔히 사람들은 앵무조개가 조개라고 착각하나,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촉수들이죠. 앵무조개는 오징어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고 이색적인 껍데기가 시선을 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게 조개 종류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오직 두 눈으로만 세상을 파악한다면, 사람들은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오직 두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과학과 철학은 필요하지 않겠죠. 어쨌든 자퀴드 같은 유닛은 외계 유닛보다 바다 괴수에 가까운 느낌을 풍깁니다. 그래서 다른 <엑스컴> 시리즈와 정신적 후계작들은 바다로 내려가지 않는지 모릅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볼까요. 사실 해저 열수공은 화성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지구에는 해저 열수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닷속으로 내려간다면, 우리는 해저 열수공을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화성은 외계 행성입니다. 화성을 걷고 싶다면, 우리는 지구를 벗어나고 우주로 날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해저 열수공를 알지 못했고 동시에 화성 운하를 상상했죠. 사람들은 가까운 것을 알지 못했고 머나먼 것을 상상했습니다. 왜? 바다가 우리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화성이 멀다고 해도, 우리는 밤하늘을 볼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화성에 운하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빛을 가리고, 우리는 바닷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19세기 유럽이 해저를 꿈꾸기 전까지, 인류는 바다 밑바닥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죠. 어쩌면 바다는 우주보다 훨씬 신비로울지 모릅니다. 21세기 초반 현재까지, 바다는 우주보다 훨씬 신비로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다는 친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엑스컴> 정신작 후계작들은 해저 외계인들에게 상관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흠, 하지만 이런 관점(바다는 우주보다 신비롭다)에서 바다 괴수는 외계인들보다 훨씬 신비로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바다를 묘사하는 <테러 프롬 더 딥>은 다른 침략 외계인 설정들보다 훨씬 신비로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