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스파이더맨 2>는 빈곤을 들여다볼 수 없는가 본문
영화 <스파이더맨 2>가 개봉했을 때, 여러 관객들은 빈곤에 공감했습니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가난합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터 파커는 정신없이 비정규직들을 맡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피터 파커가 가난한 서민이라고 강조합니다. 피터 파커는 힘들게 피자들을 배달해야 하고, 파랑 빨강 쫄쫄이를 몰래 빨아야 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빈약한 꽃송이를 선물해야 하고, 초라한 셋방에서 살아야 하고, 신문 회사 간부에게 구박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스파이더맨이 절대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그래서 관객들은 좀 더 친근하게 스파이더맨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배트맨, 브루스 웨인이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같은 초인 영웅보다 스파이더맨은 훨씬 서민적이죠. 누군가는 슈퍼맨, 클라크 켄트 역시 서민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어리버리한 클라크 켄트는 언뜻 서민적으로 보이나, 클라크 켄트와 피터 파커는 서로 다르죠. 클라크 켄트는 인간이 아닙니다. 진짜 이름은 칼엘이죠. (만화가들마다 다르게 해석하나) 어리버리한 모습은 진짜 정체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한 서민은 피터 파커의 진짜 정체성입니다.
가난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돕는 스파이더맨에게 관객들은 감정을 이입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스파이더맨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한 가지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왜 피터 파커가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피터 파커가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요? 왜 피터 파커가 힘들게 피자들을 배달해야 하고, 초라한 방에서 살아야 하고, 제대로 꽃송이를 선물하지 못할까요? 왜 친구 해리 오스본이 잘 먹고 잘 사는데도, 피터 파커가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피터 파커가 뭔가 죽을 죄를 졌나요? 한때 피터 파커는 강도를 그냥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강도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피터는 강도를 그냥 보내줬어요. 그 덕분에 피터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문구를 잊지 못하죠.
왜 그 강도가 돈을 훔쳐야 했을까요? 그 강도가 악마인가요? 그 강도가 태생적인 악마이고 살인자이고 범죄자이고 미치광이인가요? 만약 그 강도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면, 강도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숱한 범죄들은 이른바 생계형 범죄들입니다. 피터 파커처럼 그 강도는 가난에 시달리는 서민인지 모릅니다. 가난에 시달렸기 때문에 강도는 범죄의 유혹에 빠졌을지 모르죠. 하지만 피터 파커는 그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피터는 그저 열심히 가난을 극복하느라 애쓸 뿐입니다.
하지만 가난은 인위적인 결과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살아가는 현대 문명에서 생산력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중세 시대나 근대 시대와 달리, 20세기 문명은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합니다. 왜 20세기 문명이, 게다가 최강대국 미국이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함에도, 피터 파커가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부를 차지하고 그걸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기업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줄이고 임금을 낮추기 원합니다. 당연히 일자리들은 줄어들고 서민들의 지갑은 가벼워집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주기적으로 경제 공황을 터뜨립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공황을 터뜨릴 때마다, 국가 정부는 막대한 구제 금융을 퍼붓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완전한 시장 경제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국가 정부가 대기업들을 뒷받침하는 경제입니다. 평소에 대기업들은 작은 정부와 시장 경쟁을 나불거립니다. 하지만 경제 공황이 터질 때, 대기업들은 국가가 대기업들을 살려야 한다고 징징거립니다. 그래서 국가는 막대한 구제 금융을 퍼붓죠. 호황에는 자본주의, 불황에는 공산주의. 왜 이런 농담이 있겠어요.
막대한 돈이 시장에 풀린다면, 재화를 구매하기 위한 비용은 올라갑니다. 그래서 물가는 상승합니다. 인플레이션 현상은 이런 경제 공황과 구제 금융과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임금을 낮추기 원하고, 그래서 서민들의 지갑이 가벼워짐에도, 물가는 계속 올라가죠. 서민들은 더욱 살기 힘들다고 느끼죠. 이렇게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갑니다. 설사 이런 경제학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못한다고 해도, 관객들은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왜 서민들이 대기업들에게 매달려야 할까요? 왜 서민들이 대기업들에게 복종하고 충성하고 두 손을 벌려야 할까요? 20세기 문명이 봉건 시대인가요? 20세기 시민들이 귀족들을 모셔야 하나요?
왜 소작농이 귀족을 모시는 것처럼, 민주 시민들이 대기업들을 떠받들어야 하죠? 왜 대기업들이 그렇게 막대한 자산을 소유했을까요? 타노스가 대기업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줬나요? 우리의 친근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절대 이걸 묻지 않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재벌(그린 고블린)과 싸우거나 재벌(아이언맨)과 협력하나, 왜 대기업들이 나타났고 왜 그들이 막대한 자금을 차지하는지 절대 묻지 않아요. 만화가들과 영화 감독들 역시 그걸 모르기 때문이죠.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배트맨은 세계 최고의 탐정이고 엄청난 재벌입니다. 아이언맨 역시 엄청난 천재이고 엄청난 재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천재이고 재벌이라고 해도, 그들은 절대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아요. 만화가들 역시 뭐가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배 계급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천재입니다.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지배 계급에게 굽신거리는 천재죠. 네, 정말 대단한 천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