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캐릭터 만들기>의 엔트들과 생태 사회주의 본문
[영화 <두 개의 탑>에 나오는 엔트들. 이런 엔트들이 정말 자연 친화적일까요? 자연이 뭘까요?]
이름처럼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소설이나 영화 등장인물을 만드는 내용입니다. 이 서적은 어떻게 작가들이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만들 수 있는지 조언합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인물은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나타날 때, 독자와 관객이 등장인물에게 공감할 때, 그런 등장인물이 행복을 찾거나 위기에 부딪힐 때, 독자와 관객은 함께 환호성을 지르거나 안타까워합니다. 소설은 배경과 사건을 중시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수많은 독자들을 소설로 끌어당기는 수단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등장인물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특히, SF 소설처럼 인류 문명과 자연 환경과 우주를 돌아보는 소설은 등장인물 하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죠. 그렇다고 해도 SF 소설에서조차 등장인물은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사실 아무리 SF 소설이 거대한 사회 구조와 자연 환경과 외계 우주를 떠든다고 해도, 독자는 그런 세계 속으로 들어갈 매개체를 원합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그런 매개체이자 안내자가 될 수 있고, 사회 구조와 자연 환경과 우주 속으로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겠죠. 세계는 등장인물보다 중요할지 모르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독자는 등장인물을 만나야 해요.
창작 가이드 서적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어떻게 등장인물이 매력을 찾을 수 있는지 설명해요. 종종 이런 창작 서적은 심리학 서적에 수렴합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만들고 싶다면, 작가는 성격 유형들을 정해야 합니다. 이 등장인물이 지성적인가, 육체파인가? 이 등장인물이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이 등장인물이 수줍어하나, 교태를 부리나? 이 등장인물이 점진적인가, 급진적인가? 이런 물음들은 다소 흑백 논리일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딱딱한 흑백 논리 상자가 아니고, 이런 물음들은 너무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등장인물을 만들지 몰라요. 하지만 이런 것들을 고민할 수 있을 때, 작가는 어떻게 자신이 등장인물에게 접근할 수 있을지 파악하겠죠.
그래서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심리학 서적과 비슷합니다. 이 책은 여러 성격 유형들을 나열하고 작가가 성격들을 종합하는 과정을 제시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작가는 엄청나게 많은 성격들을 고를 수 있고, 여기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작가가 등장인물을 쉽게 만들지 못한다면, 이런 창작 가이드 서적은 커다란 도움이 되겠죠. 문제는 이런 창작 가이드 서적이 너무 개인적인 심리에 치중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순수한 개인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회 구조는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요.
여기에 두 사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조건 개인을 강조하고 사회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첫째 사회에는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 많겠죠.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그들은 그게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할 겁니다. "왜 사람들이 가난해질까?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지." 둘째 사회에는 사회주의적인 사람들이 많겠죠. 이건 이 사람들이 좌파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원래 사회주의는 무조건 좌파가 아니었죠.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사상은 사회주의가 될 수 있어요. 후자 사회에서 사람들은 "왜 사람들이 가난해질까? 자꾸 부자들이 부를 독점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할 겁니다.
첫째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노예처럼 비정규 노동자들이 일한다고 해도,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되겠죠. 둘째 사회에서 사람들은 부자들이 사회적인 부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인 복지를 받을 수 있겠고,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죠. 이렇게 사회 구조는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그래서 미국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백인은 급진적인 복지에 반대할 테고, 북아메리카 부족 문화를 계승하는 인디언은 숙의 민주주의에 찬성하겠죠. 하지만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개인적인 부분을 아주 크게 강조해요.
이 책에는 '자연주의적인 성격' 항목이 있습니다. 이 항목에는 자연주의적인 성격이 드러내는 여러 사고 방식들과 긍정적인 측면들과 부정적인 측면들이 있죠.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자연주의적인 성격이 자연 치료법을 좋아하고, 유기농 과일을 좋아하고, 도시 외곽과 야외를 좋아하고, 노을이나 파도나 바람 소리를 좋아한다고 설명합니다. 자연주의적인 성격은 자연의 순리를 중시하고, 대지모신과 생명체들을 존중하고, 활동적이고 영감적이고, 채식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적인 성격은 도시적인 생활을 부정하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산업계와 정부에 반대하고, 적극적인 파수꾼이 될 수 있습니다.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 부족, <반지 전쟁>에 나오는 엔트들,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포카혼타스, <시간의 수레바퀴>에 나오는 페린 에이바라는 좋은 사례들입니다.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이런 것들이 자연주의적 성격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단점, 아주 커다란 단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저 영성적이고 심층적인 생태주의를 언급할 뿐입니다. 하지만 생태 철학에는 영성이나 심층 이외에 다양한 철학들이 있고, 어떤 것들은 아주 논리적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이런 드루이드 설정은 드물지 않습니다. 이게 자연 보호를 상징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할 때, 그 사회는 자연 환경을 수탈할 겁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은 자연 환경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자연 보호는 그저 오레가노 차를 끓이거나 마음의 소리를 듣거나 도시 외곽으로 이사하거나 유기농 토마토를 먹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연 보호는 평등한 사회 구조입니다. 평등한 사회 구조를 이룩하고 싶다면, 사람들은 수탈에 저항해야 하고 밑바닥 계급을 응원해야 합니다. 에코 페미니즘이나 생태 사회주의는 이런 노선으로 나갑니다.
심지어 밑바닥 계급을 응원하기 위해 생태 사회주의는 아주 극단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이미 사회 구조가 아주 수직적이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이기 때문에 생태 사회주의는 극단적인 저항을 요구합니다. 겉보기에 미국은 꽤나 부유하고 자유롭습니다. 반면,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가난하고 불결하죠. 하지만 국제 정세 속에서 누가 피해자일까요? 누가 가해자일까요? 당연히 서구 백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끔찍하게 수탈했고 열대 우림을 파괴했습니다. 따라서 생태 사회주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들이 가난하고 불결하다고 해도, 생태 사회주의는 약자, 수탈을 당한 피해자, 밑바닥 계급을 지지해야 해요.
게다가 자연이 뭘까요? 자연이 무조건 영적이고 신적인 어떤 위상인가요? 자연이 무조건 그윽하고 포근하고 안락하고 모성적인 대상인가요? 그건 망상입니다. 자연에는 파괴적이고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측면들이 있습니다. 기생충들이 득실거린다면, 나비 부족이나 엔트들 역시 그걸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인류에게 유리한 자연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건 인간들이 수많은 야생 동물들을 잡아죽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자연 환경을 개발하고, 동시에 거대한 야생 보호 구역들을 지정해야 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평등하게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하겠죠.
하지만 <반지 전쟁>은 절대 이런 상황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왕족들과 하층민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반지 전쟁>은 그걸 지적하지 않아요. <반지 전쟁>은 아주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 방식을 드러냅니다.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피상적인 사고 방식을 자연 친화적이라고 오해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게 자본주의 권력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등하게 자연 환경을 관리해야 한다면, 우리는 '공공의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공의 토지, 공공의 태양, 공공의 바다, 공공의 지식, 공공의 노동, 사회적인 부, 기타 등등. 하지만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공공성을 거부하죠.
이건 자본주의가 무조건 순수하게 개인적인 소유를 주장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아주 순수한 세상이 있겠어요? 이 세상에 아주 순수한 사회 구조나 경제 현상이나 문화 예술이 있겠어요? 그건 그렇지 않겠죠. 자본주의 사회 역시 공공성, 공공의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경제 공황이 사회를 뒤흔들 때, 대기업들은 공적 자금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공적 자금은 공공의 것이죠. 대기업들 역시 공공의 것을 인정해요. 만약 국가가 군대나 경찰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대기업들은 제대로 영엽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사실 군대와 경찰이 지키기 때문에 오히려 대기업들은 마음대로 영업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사회주의적인 요소입니다. 사회는 마을, 부족, 종교 집단, 도시, 국가, 기타 여러 공동체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국가를 중시하는 사고 방식은 사회주의적입니다. 흔히 이런 것은 국가 사회주의로 흘러가죠. 사회주의는 무조건 좌파가 아닙니다. 평등을 추구하는 좌파와 사회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주의가 만날 때, 둘은 단짝이 되고 붉은 깃발을 흔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근대적인 진보 이후, 특히 경제 현상에서 자본주의는 개인적인 소유를 크게 강조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개인적인 소유에 치우칩니다.
개인적인 소유에 치우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공공의 것'에 반대합니다. 사람들이 함께 해안을 공유한다면, 영리 기업은 거기에 핵 발전소를 짓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토지를 공유한다면, 영리 기업은 거기에 석탄 발전소를 짓지 못하겠죠. 사람들이 함께 산맥을 공유한다면, 영리 기업은 거기에 케이블카를 짓지 못할 겁니다. 흔히 우리는 인간이 탐욕스럽다고 생각하나, 이 세상에는 제로 성장을 추구하거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조건 오레가노 차와 야외 지역과 유기농 토마토와 붉은 노을을 좋아할까요? 그건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그저 자연 환경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들은 그저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환경 운동가들보다 훨씬 자연 환경을 잘 보호할 수 있습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피상적으로 산업 개발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산업 개발을 추진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표면적인 현상에 반대할 뿐이고, 그래서 환경 운동가들은 절대 자연 환경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평등한 사회 구조는 사람들이 함께 자연 환경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래서 정말 자연 환경을 보호할 수 있어요. 진짜 자연 보호는, 진짜 녹색은 환경 운동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 구조입니다.
[진짜 녹색은 나뭇잎 장식 따위가 아닙니다. 평등한 사회 구조는 진짜 녹색일 겁니다.]
물론 환경 운동가들은 많이 고생합니다. 그들은 용역 깡패들에게 두들겨맞고, 감옥에 끌려가고, 몇 시간 동안 거리를 행진하고, 막대한 보석금을 물고, 고소를 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습니다. 이른바 제3세계에서 환경 운동은 자살 행위가 될지 모릅니다. 이런 환경 운동가들 덕분에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자연 생태계를 침범하지 못합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신비로운 생물 다양성과 웅장한 진화 역사를 감동적으로 설명하고, 그런 설명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거나 독려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반지 전쟁>에 나오는 우드 엘프들이나 엔트들은 감동적입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 나오는 드루이드들이나 레인저들 역시 감동적입니다. 드루이드가 자연과 교감하고, 덩굴을 소환하고, 거대한 곰으로 변하고, 곤충 떼를 부리는 모습은 무척 신기하죠. <네버윈터 나이츠>처럼 드루이드가 나오는 게임에서 우리는 생태 철학을 배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자연 과학자들이 우주와 지구와 생명 현상과 진화 역사를 말하는 장면은 장엄한 감동으로서 다가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나 공룡 소설은 흥미를 키울 수 있고, 생태 시뮬레이션 비디오 게임을 통해 사람들은 가상의 자연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행위는 소중합니다.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가 너무 거대하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세계화는 전세계를 장악하고 극지와 심해에조차 마수를 뻗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본주의 세계화는 외계 행성과 인류라는 생물종에 마수를 뻗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화는 엄청난 인명들을 학살했습니다. 여기에 맞서기 위해 좌파들은 아주 극단적인 폭력으로 무장해야 했습니다. 파리 코뮌이나 아옌데 정부처럼, 극단적인 폭력으로 무장하지 않은 좌파들은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좌파들은 평등을 미루고 먼저 극단적인 폭력으로 무장합니다. 이렇게 자본주의 세계화는 아주 어마어마하고 무자비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자본주의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이게 세계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환경 운동들은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왜곡된 현실을 주입하고, 좀비들처럼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숭배하고 맹신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자신들이 인류임에도, 수탈을 당한 피해자들이 인류임에도, 환경 운동가들은 자본주의를 숭배하고 인류가 잘못했다고 열심히 떠듭니다. 심지어 세계적인 과학자들조차 그런 헛소리들을 아주 신나게 지껄입니다. 이건 X랄 맞은 망상입니다. 굶주려 죽는 깡마른 아이들이 환경을 오염시킨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까?
환경 운동가들은 고생합니다. 자연 과학자들은 감동적으로 설교합니다. 우드 엘프들, 드루이드들, 엔트들. 네, 다들 좋죠. (개인적으로 저는 드루이드 설정을 꽤나 좋아합니다.) 마음의 소리와 도시 외곽과 붉은 노을과 유기농 토마토 역시 좋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아주 수직적이고 억압적입니다. 이런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고 싶다면, 사람들은 사회 구조를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서 미친 짓거리는 정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환경 운동가들은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 역시 피상적인 행위가 자연주의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책은 자연주의적인 행동들 35가지를 제시합니다. 정원을 가꾸고, 자급자족하고, 재활용하고, 영적인 생명체들을 느끼고, 야외 활동에 참가하고, 유전자 조작 식품에 반대하고, 자연 치유법을 따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조류를 관찰하고, 네 계절들을 알아차리고, 기타 등등. 여기에는 '밑바닥 계급을 지지한다'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엔트들을 이야기하겠죠. 엔트들이 밑바닥 계급 따위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적을 공부한다면, 작가들은 피상적인 환경 운동이나 생태 철학을 묘사하겠죠. 그건 또 다시 독자들을 세뇌할 테고요.
2014년 <고지라>에 나오는 세리자와 박사가 자연 친화적일까요? 세리자와 박사는 유기농 토마토나 붉은 노을이나 네 계절들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세리자와 박사는 그런 것들과 깊은 인연을 맺지 않았어요. 하지만 세리자와 박사는 '자연의 힘'을 강조하고 인류가 자연을 함부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네, 세리자와 박사는 자연 친화적입니다. 적어도 우드 엘프들이나 드루이드들이나 엔트들보다 세리자와 박사는 훨씬 자연 친화적일 겁니다. 세리자와 박사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리자와 박사 역시 자본주의(를 비롯해 수직적인 계급 구조)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세리자와 박사는 공공의 것과 밑바닥 사람들과 극단적인 저항을 언급하지 않아요. 2014년 <고지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이고,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는 그런 것들을 말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장르 세상에는 좋은 소설들이 많습니다. <에코토피아 뉴스>나 <붉은 별: 어떤 유토피아>부터 마가렛 앳우드의 <홍수>나 킴 로빈슨의 <오로라>처럼, 장르 세상에는 평등과 자연을 이야기하는 좋은 소설들이 많아요. 이런 소설들 역시 많은 한계들을 드러내나, 그렇다고 해도 이런 소설들은 좀 더 근본적인 깊이로 내려갈 수 있죠.
[현실에는 대지모신이 없죠. 우리는 대지모신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와 공유를 추구해야 할 겁니다.]
소설 <빼앗긴 자들>에 나오는 타크베르는 정말 자연 친화적인 모델입니다. 타크베르는 생태학자이고, 먹이 그물망과 생물 다양성을 사랑하고, 평등과 밑바닥 사람들을 인식하죠. 자연 친화적인 등장인물은 이런 타크베르입니다. 만약 어떤 작가가 자연 친화적인 등장인물을 그리고 싶다면, 타크베르는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크베르보다 우드 엘프나 엔트나 나비 부족이나 포카혼타스가 자연 친화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 좋아요. 나비 부족이나 포카혼타스는 아메리카 부족민들이죠. 아메리카 부족민들은 사회주의적이고 토지 공유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에는 사회주의나 토지 공유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아메리카 부족민들이 자연 친화적임에도,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이것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 부족민들이 정말 순수하고 이상적인 자연을 지키나요? 그들은 인간들입니다. 그들 역시 이것저것 다 해먹었습니다. 결국 인간들은 이것저것 다 해먹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주의적인 토지 공유는 자본주의적인 개인 소유보다 훨씬 낫습니다. 핵심은 그겁니다. 하지만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그걸 언급하지 않아요. 이 책이 사회 구조에 절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건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이 무조건 사회 구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연 친화적인 등장인물을 만들기 위해 모든 작가가 무조건 에코 페미니즘이나 생태 사회주의를 알아야 할까요? 그건 아니겠죠.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중요합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 작가가 피상적인 자연 환경을 묘사한다고 해도, 그건 창작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런 창작의 자유는 자본주의가 퍼뜨리는 세뇌에 일조할 수 있습니다.
이런 피상적인 자연 환경과 생태 철학을 읽은 이후, 독자들은 그걸 받아들이고, 열심히 자본주의에 헌신하겠죠. 그들은 개인적인 소유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절대 '공공의 것'을 주장하지 않겠죠. 독자들은 '인류가 평등하게 자연 생태계를 관리하는 사회'를 절대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을 겁니다. 대기업들이 온실 가스를 뿜는다고 해도, 아프리카 흑인 아이들이 굶어죽는다고 해도, 독자들은 인류가 나쁘고 지구가 죽어간다고 외치겠죠. 물론 이런 문화 예술의 영향력은 별로 크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드 엘프들이나 엔트들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지 몰라요. 하지만 만약 이런 문화 예술이 그런 세뇌에 일조한다면, 그건 참으로 끔찍한 현상일 겁니다. 그렇게 끔찍하고 오염된 미래에서 우리 후손들은 살아야 할 겁니다.
이런 현상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평등을 주장하는 자연 친화적인 문화 예술을 이해해야 할 겁니다. 동시에 우리가 에코 페미니즘이나 생태 사회주의를 파악한다면, 설사 우리가 피상적인 문화 예술을 본다고 해도,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거를 수 있겠죠. 독자들은 그런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그건 평등하고 친환경적인 세상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