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듄>의 프레멘 전사와 <디앤디>의 레인저 본문
[수많은 레인저들은 숲을 숭배합니다. 하지만 숲은 자연 환경의 전부가 아니죠.]
소설 <듄>에서 프레멘은 아주 매력적인 전사들로 등장합니다. 레토 공작은 이들을 사다우카에 맞서는 병력으로 이용하기 원했죠. 사다우카는 제국 황제가 거느리는 정예 병사들이나, 프레멘 전사들은 그런 사다우카에 맞설 만큼 출중했습니다. 하지만 사다우카가 정규 병사에 가깝다면, 프레멘 전사들은 게릴라 병사에 가깝습니다. 사실 소설 속에서 아트레이드 가문 역시 게릴라 전투 운운했죠. 사막 행성 아라키스에서 이기기 위해 레토 아트레이드는 게릴라 전술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만큼 아라키스 행성이 혹독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라키스는 일반적인 행성들과 다릅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황토색 모래들과 암벽들만 시야에 들어옵니다. 병사들은 이런 황량한 환경에서 제대로 생존하지 못합니다. 민간인들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모래 사막에서 거대한 모래벌레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모래 사막을 건너지 못합니다. 기갑 부대 역시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모래벌레는 어마어마한 함선들도 집어삼킬 수 있습니다. 기갑 부대가 모래 사막을 건넌다면, 아까운 병력들과 장비들은 모래벌레의 뱃속으로 들어가겠죠.
하지만 프레멘들은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합니다. 그들은 시에치라는 은신처들을 만들고, 시에치는 훌륭한 대피소이자 주거지입니다. 프레멘들은 사막에서 생존하는 방법들을 매우 잘 알고, 무엇보다 모래벌레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프레멘 아이들 역시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프레멘 전사들은 모래벌레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를 수 있어요. 게다가 프레멘들이 사막을 걸을 때, 모래벌레는 이들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프레멘들이 특정한 보폭으로 걷기 때문이죠. 덕분에 프레멘 전사들은 사막에서 신출귀몰하게 나타나고, 적대 세력을 습격할 수 있어요. 저는 이런 특성들이 검마 판타지의 레인저와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환경을 이해하고, 자연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전사. 자연 환경을 이용해 능숙하게 게릴라 전투를 펼치는 전사. 그건 레인저를 규정하는 특징들이죠. 만약 누군가가 프레멘을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 집어넣는다면, 레인저 클래스로 꾸며야 할 겁니다. 저는 프레멘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저런 레인저 같은 특성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프레멘들이 보다 평범한 전사들이었다면, 그저 총을 잘 쏘거나 검을 잘 휘두르는 전사들이었다면, 매력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전사들은 흔합니다. 그저 잘 싸우는 전사들은 많고 많습니다. 하지만 프레멘들은 그저 잘 싸우지 않습니다. 자연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죠.
하지만 프레멘들이 <디앤디>의 레인저와 비슷하다고 해도 양쪽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프레멘 전사와 레인저는 똑같이 자연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게릴라 전투를 펼치고,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환경을 대하는 태도는 서로 다릅니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레인저는 자연 신앙을 경외합니다. 드루이드처럼 레인저는 자연 신앙(포가튼 렐름의 마이리키나 루루에 같은 자연 신앙)을 섬깁니다. 그래서 레인저는 신성한 주문을 외울 수 있고, 덩굴을 휘감거나 동물을 소환하거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레인저는 숲을 보호하고 싶어하고, 숲에서 어떤 애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발더스 게이트>나 <네버윈터 나이츠> 같은 비디오 게임들은 자연을 아끼고자 하는 레인저들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레인저들은 정말 드루이드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숲을 밀어내고 야생 동물들을 사냥할 때, 레인저들은 분노합니다. 덕분에 레인저들은 숲의 요정이나 정령과 친숙하죠. 하지만 프레멘 전사는 레인저와 다릅니다. 프레멘은 자연 환경을 이해하나, 애정을 품지 않습니다. 그저 사막을 자신들이 이용할 환경이라고 생각하죠.
프레멘들도 창조자를 섬깁니다. 샤이-훌루드 신앙이 있어요. 하지만 샤이-훌루드 신앙은 자연을 경외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레인저들과 달리 프레멘 전사들은 자연 환경을 아끼지 않아요. 똑같이 자연 환경을 이용해 게릴라 전투를 펼친다고 해도 레인저와 프레멘은 서로 다르죠. 물론 프레멘 전사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레인저와 프레멘 전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활약하기 때문입니다. 레인저는 숲 속에서 활약합니다. 그리고 숲은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합니다. 인간은 숲에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 프레멘 전사는 황량한 사막에서 활약합니다. 사막 역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나, 사막은 생존하기에 훨씬 가혹한 환경입니다. 어떤 프레멘들은 사막을 사랑할지 모르나, 사막을 사랑한다고 해도 사막이 황량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사막이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사막에서 살기는 만만하지 않겠죠. 여기에서 한 가지 물음을 끌어낼 수 있을 듯합니다. 과연 자연을 사랑한다는 문구는 무슨 뜻일까요. 레인저가 숲이 아니라 사막에서 활약한다면, 숲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막을 사랑할까요. 왜 게임 제작진들을 레인저를 수많은 자연 환경들 중 하필 숲에 집어넣었을까요. 자연을 사랑한다는 흔한 문구를 말하고 싶다면, 이런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