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중앙 권력을 향한 필립 딕의 비판과 한계 본문
몇몇 단편 소설에서, 아니, 여러 소설들에서 필립 딕은 강력한 중앙 권력을 비판합니다. 필립 딕은 거대 국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필립 딕은 거대한 권력이 개인을 짓누르고 그런 개인이 방황하는 모습들을 자주 그립니다. 사실 여러 소설들에서 그런 내용은 주류를 이룹니다. 어떤 작가가 필립 딕보다 이런 압력과 이런 방황을 절실하게 그렸을까요? 이는 필립 딕이 유일무이하게 그런 내용을 이야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필립 딕 이외에 여러 작가들은 그런 내용을 썼고, 어떤 작가들은 필립 딕보다 훨씬 절실할지 모릅니다. 필립 딕은 사이버펑크를 대변하는 작가이나, 이미 필립 딕 이전에 숱한 작가들은 사이버펑크를 실험했죠.
하지만 필립 딕은 약을 빤 것 같은 소설들을 썼고, 그것 덕분에 많은 평론가들과 동료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아니, 필립 딕은 정말 약을 빨았죠. 가끔 예술가들은 광기에 빠지고, 그런 광기를 이용해 창작물을 만듭니다. 필립 딕은 그런 사례일 겁니다. 필립 딕은 정말 환각을 소설에 집어넣었죠. 필립 딕은 그런 필력을 이용해 거대 권력이 개인을 압박하고 개인이 방황하는 내용을 펼쳤습니다.
저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필립 딕이 길이길이 빛나는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필립 딕이 선보이는 그 산만한 필력은…. 따라가기 힘듭니다. 솔직히 저는 필립 딕 소설들을 쉽게 읽지 못하겠습니다. 솔직히 필립 딕의 장편 소설들은 너무 산만하고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단편 소설들은 좋습니다. 단편 소설들은 아주 좋습니다. 천하의 필립 딕이 산만한 필력을 펼친다고 해도, 단편 소설은 짧습니다. 그래서 단편 소설은 산만한 필력에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편 소설은 길죠. 그래서 장편 소설에서 산만한 필력은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쭉쭉 뻗습니다.
이는 필립 딕이 엉터리 작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필립 딕의 장편 소설들을 쉽게 소화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쩌면 제 취향에 필립 딕의 장편 소설들이 맞지 않거나, 저에게 필립 딕의 장편 소설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할지 모르죠. 하지만 단편 소설들은 정말 독특하고 기발합니다. 어떻게 필립 딕이 이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기발한 것처럼 필립 딕의 소설들은 암울합니다. 거대 권력이 개인을 짓누를 때, 개인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필립 딕은 냉전 시대를 살아갔습니다. 필립 딕은 냉전 시대가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여러 소설들은 그런 분위기를 강렬하게 풍깁니다.
냉전 시대를 살아간 작가로서 필립 딕은 자본주의를 강렬하게 비판합니다. 여러 소설들은 노골적으로 자본주의를 조롱하고 풍자합니다. 동시에 필립 딕은 소비에트 연방과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합니다. 필립 딕 소설들에서 카를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와 이오시프 스탈린은 아돌프 히틀러나 파쇼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 사회주의가 아주 억압적인 독재였기 때문에 필립 딕은 현실 사회주의를 강렬하게 비판했을 겁니다. 하지만 필립 딕은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놓쳤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언제나 현실 사회주의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결과입니다.
서구적인 근대화는 식민지 수탈에서 비롯했습니다. 유럽 강대국들은 동남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를 침략했고 수탈했습니다. 유럽 침략자들은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고, 덕분에 막대한 부를 챙겼습니다. 그래서 유럽 강대국들은 르네상스와 근대 국가와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를 발달시킬 수 있어요. 반면, 현실 사회주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현실 사회주의는 고립되었습니다. 유럽 강대국들이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을 때, 현실 사회주의는 침략을 받았습니다. 현실 사회주의는 1차 및 2차 대전의 피해자입니다.
현실 사회주의가 먼저 제3세계 식민지들을 수탈했나요? 아닙니다. 현실 사회주의가 먼저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나요? 그건 웃기는 헛소리죠. 현실 사회주의가 먼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나요? 그건 말도 안 되는 망상입니다. 오히려 현실 사회주의는 식민지 독립 투쟁을 지원했습니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가 억압적인 독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식민지 수탈을 통해 막대한 부를 끌어모았고, 현실 사회주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게 계속 밀렸습니다.
그런 현실 사회주의가 존재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혁명을 두려워했고, 유럽이나 미국이나 동아시아 노동 운동들 역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현실 사회주의가 아주 억압적이라고 해도, 현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비록 상대가 안 되었기 때문에 결국 무너졌으나, 현실 사회주의 덕분에 자본주의는 마음껏 깽판을 치지 못했어요. 저는 현실 사회주의가 아주 강렬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똑같이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현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가 비해 약했기 때문입니다.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현실 사회주의는 파생적입니다. 반면, 자본주의는 근본적이죠. 단순무식하게 계산기를 두들긴다고 해도, 우리는 자본주의가 현실 사회주의보다 훨씬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본주의보다 현실 사회주의를 훨씬 비난하죠. 필립 딕 역시 그런 기미를 보입니다. 그건 필립 딕이라는 개인의 잘못이 아닐 겁니다. 필립 딕이 쓴 수많은 소설들처럼, 필립 딕 역시 거대 권력을 뛰어넘지 못하는 개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