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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태양이 없는 땅>의 기후 변화와 막스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태양이 없는 땅>의 기후 변화와 막스

OneTiger 2018. 7. 4. 19:17

예전에 소설 <태양이 없는 땅>을 이야기했을 때, 저는 '막스'를 언급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소녀는 어떤 폐허가 된 도서관에 들어갑니다. 도서관 속에서 소녀는 세계를 바꾼 위인들 명단을 둘러봅니다. 갈릴레오, 뉴튼, 아인슈타인, 플레밍, 버질, 플라톤, 셰익스피어, 밀튼, 단테, 바이런, 번스, 톨스토이, 루소, 막스. 소녀는 왜 세계를 바꾼 위인들이 남자들인지 궁금해합니다. 게다가 소녀는 의식하지 못했으나, 위인들은 서구(유럽과 미국) 백인 지식인들이었죠. 목록에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나 아시아 사람들이 없습니다.


비단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구 지식인들을 떠듭니다. 서구 문명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구 지식인들에게 배웁니다. (이 블로그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 블로그는 서구 학자들을 말하고, 서구 SF 소설들을 말합니다.) 이는 서구 지식인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서구 지식에 몰두한다면, 자칫 우리는 다른 문명들을 차별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유럽 중심주의에 빠질지 모르고, 비서구적인 지식을 비웃을지 모르죠. 북아메리카 부족 사회가 야만인이 되는 것처럼.



소녀가 훑어본 위인들 중 이런 유럽 중심주의에 저항하는 위인은 '막스'일 겁니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저는 이게 막스 베버인지 칼 맑스인지 헛갈렸습니다. 사실 유럽 학자 막스는 대부분 막스 베버를 가리키죠. (그리고 막스 베버는 다른 문명들을 무시하는 아주 유럽 중심적인 학자입니다.) 막스를 맑스라고 오해한다는 농담이 있으나, 막스와 맑스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태양이 없는 땅> 영어 원서에는 'Marx'라고 나옵니다. 네, 칼 맑스죠. 왜 소설 번역자가 맑스를 막스라고 썼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한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반공 국가이기 때문에? 맑스가 불온한 빨갱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는 단순한 실수나 오타인지 모릅니다. 설마 소설 번역자는 카를 마르크스 같은 유명한 철학자를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남한에서 막스, 맑스,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사소한 소동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카를 마르크스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독일 발음은 칼 맑스에 가깝죠. 칼 막스는 너무 투박한 것 같고요. 남한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서로 다르게 마르크스나 맑스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이렇게 갈리는 이유는 남한 학자들이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입했기 때문일 겁니다.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저는 이게 일어 번역이 남긴 잔재라고 생각해요.



19세기 유럽 철학자로서 카를 마르크스는 식민지 침략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마르크스는 여러 식민지들을 거론했고, 이게 계급 사회에서 비롯하는 착취라고 지적했죠. 이는 마르크스가 19세기 유럽 백인 남자 지식인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르크스 역시 19세기 유럽에 속했고, 종종 인종 차별적인 발언들을 적었습니다. 후대의 블라디미르 레닌 같은 양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레닌은 유럽(서구적인 근대화)을 추종했고, 아시아적인 것을 봉건적이고 반근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르난디드 라살레를 격정적으로 욕했을 때, 마르크스는 라살레가 검둥이 유대인이라고 욕했습니다.


아무리 계급 투쟁과 노동 해방과 자유로운 인간을 외치는 철학자 역시 검둥이 유대인이라고 욕할 수 있죠. 하지만 마르크스가 그렇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었다고 해도, 마르크스 철학 자체는 제국주의를 탁월하게 비판했습니다. 게다가 이는 그저 비판에 머물지 않았고, 식민지 해방 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위대한 이유들 중 하나는 식민지 해방 투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일 겁니다. 극단적이고 불리한 조건 때문에 그런 해방 투쟁은 잔혹한 독재로 이어졌으나, 그렇다고 해도 해방 투쟁 그 자체는 가치를 잃지 않겠죠.



게다가 <태양이 없는 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위인 역시 마르크스(와 엥겔스)일 겁니다. <태양이 없는 땅>이 환경 아포칼립스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기후 변화는 해수면을 높였고, 숱한 대륙들은 물에 잠겼습니다. 사람들은 첨단 공중 도시를 만들었으나, 공중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비참한 일생을 살아갑니다. 바다가 계속 섬들을 삼키기 때문에 섬 사람들은 공중 도시에 들어가기 원하죠. 공중 도시는 그런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고요. 네, 이는 기후 난민과 이주민 문제를 아주 강력하게 비유할 수 있겠군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기후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으나,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지구를 황폐화시킬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자본주의적 농업이 온갖 산업 폐기물들을 쏟아냈기 때문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체계가 개선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할 거라고 지적했습니다.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선구적인 환경 운동가라고 평가하더군요. 저는 그게 과대 평가라고 생각하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분명히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환경 오염을 분석했습니다. 그건 탁월한 분석이고,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를 부르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에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 마르크스가 라살레를 검둥이 유대인이라고 욕한 상황은 다소 자조적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유대계 출신입니다. 원래 성씨는 마르크스가 아니었죠. 게다가 평소 지인들은 마르크스를 무어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어인은 흑인을 뜻하고요. 따라서 검둥이 유대인은 카를 마르크스 본인을 가리키는 욕설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사실을 알았음에도 마르크스가 라살레를 검둥이 유대인이라고 욕했는지 이상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마르크스는 그런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뱉지 말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에게 사회학을 배울 수 있으나, 마르크스의 개인적인 인품을 멀리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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