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우주 보안관 장고>와 부족민을 바라보는 시선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우주 보안관 장고>와 부족민을 바라보는 시선

OneTiger 2018. 4. 17. 20:06

여러 측면들에서 <우주 보안관 장고>는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입니다. 기본적으로 <우주 보안관 장고>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어떤 외계 행성이 있고, 귀중한 광석이 있고, 악당과 폭력배들이 있습니다. 서부극을 모방하는 숱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처럼 <우주 보안관 장고>는 우주 서부극을 꾸밉니다. 우주 서부극에는 악당과 폭력배를 처치하고 주민들을 보호하는 보안관이 있어야 합니다. 재미있는 특징은 <우주 보안관 장고>에서 북아메리카 부족민이 우주 보안관을 맡는다는 사실입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장고(브레이브스타)는 겉모습과 알맹이 모두 북아메리카 부족민이고, 신비한 동물 정령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장고는 곰과 늑대와 쿠거와 매의 정령을 소환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어요. 장고는 매의 눈으로 멀리 볼 수 있고, 늑대의 귀로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곰의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들 수 있고, 쿠거의 속도로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동물 영혼을 소환할 때, 장고는 두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웁니다. 황금색 동물 정령이 등장하고, 장고는 빠르게 달리거나 멀리 보거나 무거운 물체를 들거나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죠.



스페이스 오페라 보안관으로서 장고는 그저 신비한 동물 정령만 소환하지 않습니다. 장고는 사이보그 말이나 에너지 무기 권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장고를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은 동물 영혼 능력이고, 장고가 동물 영혼들과 교감하는 과정 역시 중요합니다. 보안관이기 때문에 장고는 어느 정도 백인처럼 차려입었으나, 장고의 다른 동족들과 주술사 스승은 완전히 우주 북아메리카 부족민입니다. 우주선 역시 북아메리카 부족민 토템처럼 보이고, 솔직히 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단한 디자인 같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떠돌 때, 장고는 동물 정령들과 접촉했고, 나중에 동물 정령들을 소환할 수 있었죠. 이런 설정은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판타지에 가깝게 보입니다. <우주 보안관 장고>는 북아메리카 부족민이 등장하는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를 결합한 것 같아요. <포카혼타스> 같은 판타지는 좋은 비교 사례가 될 수 있겠죠. 디즈니 비디오 게임 <포카혼타스>에는 제목처럼 포카혼타스라는 북아메리카 부족민이 등장합니다. 포카혼타스 역시 동물 정령들을 소환할 수 있어요. 포카혼타스는 늑대처럼 은밀하게 이동할 수 있고, 수달처럼 헤엄칠 수 있고, 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있죠.



장고는 스페이스 오페라에 등장하고, 포카혼타스는 사이언스 픽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장고와 포카혼타스는 똑같이 동물 정령들을 소환하고,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장르는 서로 다르나, 장고와 포카혼타스에게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죠. 아마 이는 미국의 대중적인 창작물이 생각하는 북아메리카 부족민을 반영하는 결과일지 모릅니다. 미국 백인들은 북아메리카 부족민이 뭔가 자연 친화적이고 야생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비단 <우주 보안관 장고>나 <포카혼타스> 같은 것들만 아니라 <에코토피아 비긴스> 같은 진지한 유토피아 소설 역시 그렇게 북아메리카 부족민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장고나 포카혼타스가 진짜 북아메리카 부족민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우주 보안관 장고>나 <포카혼타스>는 북아메리카 부족민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스페이스 오페라나 판타지를 이용해 그들의 진정한 측면을 가리거나 왜곡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는 <우주 보안관 장고> 같은 애니메이션에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런 애니메이션이 우리가 소수 부족민들이나 야생 동물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많은 (이른바) 문명인들은 이런 소수 부족민들을 쉽게 잊습니다. 분명히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감에도, (이른바) 문명인들은 그들을 잊거나 그들이 야만인이라고 말합니다. 부족민들 역시 문명을 이룩했음에도, 우리는 그걸 문명이라고 취급하지 않아요. 그건 야만입니다. 그게 서구적인 근대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나 조지 워싱턴 같은 서구적인 문명인이 부족민들을 학살해도,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 부족민들은 비서구적인 야만인들이고, 야만은 문명에게 정복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오시프 스탈린 같은 사람을 학살자라고 비난하나,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나 조지 워싱턴을 학살자라고 비판하지 않아요.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용감한 탐험가이고, 조지 워싱턴은 현명한 지도자이죠. 설사 이오시프 스탈린과 조지 워싱턴을 똑같이 비판한다고 해도, 이오시프 스탈린이 훨씬 잔인한 악마가 됩니다. 왜? 조지 워싱턴이 위대한 미국을 세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지 워싱턴이 악마가 되는 순간, 미국이 존재할 명분은 사라지고, 국가 이데올로기는 산산조각 깨질 겁니다. 그래서 미국과 대립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악마가 될 수 있어도, 미국을 세운 조지 워싱턴은 악마가 되지 않습니다. 좌파와 우파를 함께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왜곡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죠.



<우주 보안관 장고> 같은 애니메이션이 이런 현실 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우주 보안관 장고>는 그저 스페이스 오페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피상적이라고 해도) 이런 애니메이션은 소수 부족민과 야생 동물들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거기에 아무 가치가 없지 않겠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