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세상의 북미 원주민들과 외계인들 본문
SF 세상에서 북미 원주민들은 선량하고 자연 친화적인 역할들을 도맡습니다. <에코토피아 비긴스>에는 가상의 녹색당(생존자당)이 북미 원주민들과 연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대놓고 북미 원주민들을 비유하지 않으나, 독자는 그런 맥락을 읽을 수 있죠. 프랭크 쉐칭이 쓴 <변종>은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소설이고, 그레이 울프 같은 북미 원주민 계열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비단 북미 원주민들만 아니라 원주민이라는 속성은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강조할 수 있죠.
종종 이는 훨씬 더 머나먼 상상력으로 발전합니다. 애니메이션 <우주 보안관 장고>에서 북미 원주민 계열의 우주 보안관은 야생 동물의 신비로운 힘을 사용합니다. 각종 첨단 기술보다 그런 신비한 주술이 훨씬 강력하죠.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 원주민들은 북미 원주민들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들은 대지모신을 숭배하고, 정말 다른 동물들과 정신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심지어 지성적인 행성을 자각할 수 있어요. 스토리텔링 게임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에서는 자연을 수호하는 늑대인간들이 북미 원주민 문화들(작명이나 토템, 부족 단위 등등)을 모방합니다.
SF 창작물들은 북미 원주민들이 드러내는 주술이나 사고 방식을 초능력이나 기이한 외계 문명으로 바꿀 수 있어요. 숱한 SF 창작물들은 뭔가 독특한 외계인을 그리기 원합니다. 하지만 독특한 외계인을 직접 창작하기는 어렵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현실에 존재하는 뭔가를 비틀거나 뻥튀기하는 방법입니다. 이른바 문명인의 시각에서 북미 원주민 문화는 꽤나 신비롭고 기이하고, SF 작가는 북미 원주민들을 비틀거나 뻥튀기할 수 있습니다. 비단 SF 창작물만 아니라 중세 판타지나 도시 판타지 역시 그럴 수 있겠죠. <트와일라잇> 같은 소설은 좋은 사례일 겁니다.
저는 <트와일라잇>이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를 어느 정도 모방했다고 생각합니다. 양쪽에서 똑같이 늑대인간들이 북미 원주민 문화를 따르고 흡혈귀들과 싸우기 때문입니다. <세상 숲>, <우주 보안관 장고>, <아바타>,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 그리고 여기에서 언급하지 못하는 숱한 창작물들은 북미 원주민을 열심히 외계인이나 다른 존재로 그립니다. 당연히 이런 창작물 속에서 정상적인 인간은 백인들입니다. 북미 원주민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으로 그리는 방법은 정치적으로 옳을까요.
저는 <아바타> 같은 영화가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고 지적할 마음이 없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대기업보다 나비들에게 손을 들어줬고, 저는 그런 태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카메론이 북미 원주민들을 외계인으로 바꿔도 그건 창작의 자유일 겁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현실입니다. 북미 원주민들을 외계인으로 그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사회적인 약자이기 때문이죠.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미 원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일까요. 북미 원주민들은 북미와 유럽 강대국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받았을까요. 비단 북미만 아니라 다른 대륙의 원주민들 역시 제대로 보상을 받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주민들은 대기업들에게 계속 시달립니다. 먹고 살기 위해 원주민들은 대기업들에게 굴종해야 합니다. 북미나 유럽의 진보 지식인들은 백인 기득권들이 원주민들에게 땅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나요? 글쎄요, 저는 별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습니다. 버락 오바마처럼 온건하다고 알려진 사람이 북미 원주민들에게 땅을 돌려줬나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이른바 문명인들은 그들을 비웃습니다. 그들이 국가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북미 원주민들은 국가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족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피에르 클라스트르 같은 학자는 이런 특징에 주목했어요. 그래서 저는 부족 연합을 훨씬 현대적인 파리 코뮌이나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국 인민 공사로 연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소비에트들(자치적인 공동체들)의 연합이 국가를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클라스트르처럼 레닌 역시 국가에 대항하기 원했어요. 하지만 볼셰비키는 아주 중앙 집중적인 국가를 만들었죠.
문제는 이겁니다. 만약 볼셰비키가 정말 소비에트들의 연합을 이룩했다면, 소비에트 연방은 제대로 버틸 수 있었을까요? 유럽과 북미 강대국들이 부족 연합을 짓밟은 것처럼 자본주의 기득권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짓밟았을지 모릅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거기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겠죠. 중앙 집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중앙 정부에게 충성하지 않고, 느슨한 조직을 이루었기 때문에. 아니, 1차 대전과 적백 내전이 사회주의 혁명을 짓밟았을 때, 소비에트들의 꿈은 이미 날아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아요. 아무도 학살을 당한 북미 원주민들에게 상관하지 않고, 아무도 짓밟힌 소비에트들을 상관하지 않죠.
소비에트 연방을 비판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볼셰비키가 중앙 집권적이기 때문에 비판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권위적인 공동체를 이룬 북미 원주민들은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다들 거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볼셰비키가 정말 비권위적인 소비에트 연방을 이룩했다면, 그들 역시 처참하게 흩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SF 작가들은 (북미 원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권위적인 소비에트들을 신비로운 외계인으로 만들었겠죠. 그렇게 소비에트들은 그저 외계인으로서 존재할 뿐이었겠죠. 다들 국가에 충성하고, 다들 애국심을 빨아주고, 다들 강력한 중앙 정부를 좋아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