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남자는 우주선, 여자는 우주 정거장 본문
흔히 사람들은 남자가 배, 여자가 항구라고 비유합니다. 남자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여자는 제자리에 머뭅니다. 이런 비유는 사이언스 픽션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제프리 랜디스가 쓴 <도라도에서>는 우주 항해 이야기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여자이고, 우주 정거장에서 살아갑니다. 주인공의 남편은 우주선 선원이고, 우주선을 타고 다른 곳으로 꾸준히 떠납니다. 그래서 소설 주인공과 주인공의 남편은 계속 함께 살지 못하고, 남편은 또 다른 살림을 차립니다.
이런 풍경은 그저 <도라도에서>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SF 작가들은 우주 항해를 그렸고, 그때마다 남자는 우주선을 타고 멀리 떠납니다. 여자는 행성이나 우주 정거장에서 남자를 기다리죠. 여자가 우주로 떠나고 남자가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풍경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겁니다. 서사 판타지 역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소년은 마을 밖으로 모험을 떠나고, 소녀는 마을에서 소년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소년이 대륙의 위기를 해결하고 모험을 마쳤을 때, 소년은 마을로 돌아오고 소녀를 만납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결혼에 골인하죠. 소설 <반지 전쟁>에서 아라곤과 샘 와이즈는 이런 전형입니다.
전통적으로 항해나 모험 같은 과업은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유럽인이라고 해도 여자들은 함부로 탐험을 나서지 못했죠. 역사적으로 여자 탐험가들도 많았고 험지에서 일하는 여자들도 많았으나, 그런 여자들은 상대적일 뿐이었습니다. 남자들은 항해나 모험 같은 과업을 차지했죠. 그래서 SF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역시 여자가 우주 정거장이나 마을에서 조용히 기다린다고 묘사하고요. 하지만 이건 좀 웃긴 묘사입니다.
왜 인류가 우주를 마음대로 누비고 웜홀을 통과하는 시대에서 여자가 남자를 기다려야 할까요. 우주선이 웜홀을 통과하고 우주를 항해하는 시대라면, 여자들도 얼마든지 항해에 나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우주 시대에서 여자는 그저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봐야 할까요. 서사 판타지는 구시대적인 관습을 복고하는 장르입니다. 그래서 서사 판타지는 왕이나 귀족을 계속 미화하죠. (민주 시민이라는 사람들이 귀족을 미화하는 모습은 꽤나 모순적입니다. 민주 시민이 뭡니까?)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은 다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를 바라보고, 구시대적인 관념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마 판타지처럼 사이언스 픽션 역시 여자가 남자를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소설 <테러 호의 악몽>에는 여자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자 주연 인물은 그저 원주민 여자뿐이고, 유럽인 주연은 모두 남자입니다. 이는 19세기 풍경이죠. <도라도에서> 같은 SF 소설들은 19세기 풍경을 답습합니다. <도라도에서>가 가부장 제도를 긍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프리 랜디스는 그저 상투적인 항구 풍경을 그리고 싶었을 뿐인지 모르죠. 문제는 이런 상투성들이 너무 많아질 때, 그게 억압적인 상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차별이 상식으로 바뀔 수 있죠. 비단 <도라도에서>만 아니라 그런 소설들은 숱할 겁니다. SF 작가들은 인류 문명과 지구를 벗어나고 우주와 외계 문명을 바라보려고 애쓰나, 고작 성 차별조차 제대로 타파하지 못합니다. 우주와 외계 문명을 바라보고 싶다면, 우선 SF 작가들은 인류 문명과 지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주를 너무 열심히 쳐다보기 때문에 문명 내부를 둘러볼 시간이 없는지 모르죠. 만약 SF 소설이 그런 경향을 띤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속 빈 강정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외계 문명만 열심히 디다보면 뭐하겠습니까. 같은 인간들을 돌아볼 수 없다면, 왜 외계 문명을 상상하겠습니까. 외계 문명을 찾기 위해 SF 작가들이 정말 우주로 떠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상상 과학은 상상일 뿐입니다. 상상 과학은 외계인을 찾는 수단이 아니라 주류적인 관념을 뒤집는 논리적인 장치입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그런 장치를 이용해 여전히 주류적인 관념을 이야기해요.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SF 작가들이 나쁘다고 탓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자본주의나 가부장 구조가 종교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대부분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 구조가 옳고 당연한 거라고 배웁니다. "일부 남자들만 거대 생산 수단들을 독차지한다." 누가 이렇게 비판할까요? 학교 선생님들? 주류 언론들? 학부모들? 자칭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들? 글쎄요, 자칭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들은 (비정규직 여자들이 굶어죽든 말든) 그저 민주당과 자본주의를 열렬히 숭배할 뿐이죠. 일부 좌파들 이외에 누구도 여자들이 생산 수단을 차지하지 못하는 구조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SF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F 작가들 역시 자본주의가 옳고 가부장 구조가 옳다고 배웁니다. SF 작가들 역시 일부 남자들만 생산 수단들을 독차지하는 상황을 비판하지 않아요. 신도는 종교를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SF 작가들 역시 자본주의와 가부장 구조가 얽힌 관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가 우주 정거장에서 기다린다고 쓰겠죠. 하지만 저는 SF 작가들이 그런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해 상상 과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구태여 상상 과학을 이용할 필요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