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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별의 눈물>과 밑바닥 저항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별의 눈물>과 밑바닥 저항

OneTiger 2018. 5. 6. 11:05

소설 <별의 눈물>은 꽤나 비극적입니다. <별의 눈물>은 여러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자연 과학적인 고증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이 소설은 외계인들을 계급 구조에 비유하고, 어떻게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SF 작가들은 외계인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이방인으로 그립니다. 다른 세상에서 왔기 때문에 외계인은 이방인이고, 작가는 외계인을 비주류적인 계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회 속에는 여러 계층들이 존재하고, 주류적인 계층은 비주류적인 계층을 쉽게 무시하거나 외면합니다.


주류 계층에게 비주류 계층은 정말 외계인입니다. 주류 계층은 비주류 계층이 이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주류 계층은 주류 세상에 끼어들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장애인, 성 소수자, 빈민, 노예 등은 쉽게 대중적인 담론이 되지 못합니다. 장애인들은 외롭게 투쟁합니다. 성 소수자들은 자연의 섭리를 어긴다고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이건 진짜 웃긴 망상입니다. 자연의 섭리가 뭘까요? 자연이 뭡니까?) 학교나 병원을 가지 못하는 빈민들이 많으나, 이른바 중산층 시민들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심지어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외계인 이야기는 그런 비주류 계층을 외계인에 투영합니다. 다른 장르 소설들보다 외계인 이야기는 훨씬 강렬하게 비주류 계층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왔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외계인이기 때문에, 외계인 이야기는 얼마나 비주류 계층이 이질적인 존재가 되는지 그릴 수 있어요. 사실 19세기에 본격적인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여러 철학자들은 외계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아니, 어쩌면 <프랑켄슈타인>조차 그런 이야기를 연장하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메리 셸리는 외계인 대신 인조인간을 집어넣었으나, 전반적인 시각은 비슷할지 모르죠.


게다가 여전히 숱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외계인을 이용해 온갖 관념들을 풀어놓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세상에는 별별 외계인들이 존재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은 자연 과학적인 고증보다 별난 관념들을 더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외계인은 성 소수자가 되고, 노예가 되고, 공산주의자가 되고, 환경 운동가가 되고, 아메리카 부족민이 됩니다. 외계인이 인간에게 이질적인 것처럼 성 소수자나 공산주의자나 아메리카 부족민은 주류 계층에게 낯설 겁니다. 이는 아주 효과적인 비유 방법이고, 아마 앞으로도 SF 작가들은 이런 방법을 놓치지 않겠죠.



이런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억압이나 착취, 수탈, 오염을 비판하고, 좀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작가가 노골적으로 평등을 외치지 않아도, <별의 눈물> 같은 소설을 읽는다면, 독자는 평등을 고민할 겁니다. 하지만 평등이 뭘까요? 무엇이 평등일까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살아가는 모습? 흔히 사람들은 이런 절대적인 평준화가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등은 평준화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르고, 자연 생태계에서 생명체들 역시 다양하게 살아갑니다. 호랑이와 생쥐는 서로 다르고, 고래 상어와 세콰이어는 서로 다르고, 아메바와 광대 버섯은 서로 다릅니다. 이 세상은 수많은 다양한 생명체들로 이루어졌습니다. 평등이라는 깃발 아래 그것들이 똑같아져야 할까요? 우리가 생물 다양성을 없애고, 개성을 없애고, 모두 똑같이 살아야 할까요? 만약 인간과 닭이 똑같아진다면, 동물 권리 문제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공장 축산은 사라지고, 아무도 고통을 받지 않겠죠. 하지만 그게 윤리적으로 옳을까요? 아니, 윤리 이전에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할까요?



어쩌면 <블러드 뮤직>처럼 모든 지구 생명체가 하나로 합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누가 아나요. 언젠가 그런 세상이 찾아올지 몰라요. 하지만 그게 언제일까요? 아무도 그걸 모릅니다. 언젠가 절대적인 평등이 나타날지 모르나, 아무도 그게 언제인지 모릅니다. 평등은 그런 막연한 상상이 아닙니다. 저는 평등이 밑바닥 계급을 주목하는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은 평준화가 아닙니다. 저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태생적으로 사람들은 서로 다르고, 현대 사회는 그걸 완전히 통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 계층들이 생기고,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층이 계급이 될 때, 강자는 약자를 착취할 수 있습니다. 약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강자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통합이나 평준화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저항과 독립과 해방입니다. 밑바닥 계급이 강자에게 저항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사회를 평등하다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밑바닥 사람들은 강자에게 저항하고 인간으로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모두 똑같은 세상보다 밑바닥 사람들이 저항하는 세상을 바랍니다. (모두 똑같은 세상은 매력적인 설정이나, 그저 설정에 불과해요.)



밑바닥 저항을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줘야 할 겁니다. 완전한 기본 소득 같은 방법은 그런 힘이 될 수 있겠죠.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힘이고, 밑바닥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훨씬 쉽게 저항할 수 있겠죠. 저는 <별의 눈물>을 읽는 독자들이 밑바닥 저항과 완전한 기본 소득을 고민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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