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아틀란티스는 그저 색깔만 다른 서구 문명 본문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은 세 장르를 뒤섞었습니다. <잃어버린 제국>은 스팀펑크이고 비경 탐험이고 유토피아입니다. 코난 도일이 쓴 <마라코트 심해>처럼 기본적으로 <잃어버린 제국>은 서구 탐사대가 미지의 문명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은 미지의 문명을 연구하는 지식인이고,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해 막대한 후원을 받습니다. 미국과 유럽으로 이루어진 탐사대는 어마어마한 잠수함을 타고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갑니다. 이런 비경 탐험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요? 비경 탐험에서 무엇이 가장 돋보일까요?
저는 문명이 미치지 않는 적막함과 광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경 탐험은 일상적인 소음을 제거하고 대신 압도적인 환경이 전달할 수 있는 침묵을 채워야 할 겁니다. 설사 소음이 들어찬다고 해도, 그건 일상적인 소음이 아닐 겁니다. <잃어버린 제국>은 심해로 내려가는 비경 탐험입니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이 광대한 심해를 제대로 조명할까요? 저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잠수함과 달리, <잃어버린 제국>에서 심해 여정은 별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제국>은 언뜻 비경 탐험 장르처럼 보이나, 사실 탐험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구 탐사대는 후딱 이상한 동굴로 들어가고, 몇몇 위기 상황을 거친 이후, 마침내 아틀란티스 사람들과 만납니다. 여기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심해 여정은 그저 본격적인 이야기를 위한 막간극에 불과합니다. 어마어마한 잠수함은 멋진 스팀펑크 설정처럼 보이나, 위압적인 외모와 달리 별로 실속이 없습니다. 이 잠수함은 정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현대 과학 기술조차 이런 잠수함을 제대로 만들지 못할 겁니다.
만약 <잃어버린 제국>이 본격적인 비경 탐험이나 스팀펑크였다면, <해저 2만리>에서 노틸러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잠수함은 놀라운 활약을 펼쳤겠죠. 하지만 빨리 아틀란티스 사람들을 보여주기 위해 <잃어버린 제국>은 멋진 스팀펑크 잠수함을 쉽게 내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로망이 가득한 스팀펑크 설정에 꽤나 무심한 것 같아요. 스팀펑크는 비경 탐험 장르를 유토피아 장르로 연결하는 징검다리 같습니다.
결국 <잃어버린 제국>이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아틀란티스 제국입니다. 주인공 학자는 꿈에 그렸던 이상적인 낙원을 만나고, 눈물을 흘립니다. 주인공 학자에게 아틀란티스 제국은 아름다운 이상향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잃어버린 제국>은 유토피아 장르입니다. 비경 탐험이나 스팀펑크 판타지는 유토피아 장르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에 가깝습니다. 심해 여정과 멋진 잠수함 역시 나름대로 독특한 색깔을 뽐내나, 정말 중요한 것은 아틀란티스 제국이죠. 고전적인 유토피아 소설들에서 이런 외계 문명은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고전적인 유토피아 소설들에서 소설 주인공은 지하나 외계 행성이나 외딴 섬이나 머나먼 대륙으로 떠나고, 거기에서 외계 문명을 만납니다. 외계 문명은 서구 문명보다 훨씬 평등하고 친절하고 따스하고 진실되고 진보적입니다. 그래서 외계 문명은 폭력적이고 비열한 서구 문명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죠. <잃어버린 제국>이 그런 전철을 따라갈까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아틀란티스 제국은 분명히 아름다운 이상향이나,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거울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틀란티스는 서구 문명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제국>에서 아틀란티스 문명은 그저 서구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향입니다. 여기에 비서구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비록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하얀 머리카락과 희한한 옷차림과 괴악한 먹거리와 기하학적인 건축을 보여준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과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서 유럽 침략자들이 북아메리카 부족민들을 만났을 때, 유럽 침략자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부족민들은 국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표자(부족장)가 피지배 계급을 억압하지 못하게 그들은 권력을 제한했습니다. 부족장은 부족 구성원들과 일일이 합의해야 했고, 그래서 숙의 민주주의가 존재했습니다.
유럽 침략자들은 부족민들에게 계급이 없다고 빈정거렸습니다. 유럽 침략자들은 아랫것이 감히 대표자에게 맞선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부족민들은 토지를 공유했습니다. 개인적인 농지들이 존재했으나, 개인은 토지를 함부로 처분하지 못했습니다. 토지는 부족 소유였습니다. 나중에 미국 사람들은 부족민들이 악질 빨갱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역시 생산 수단의 사회적인 공유를 주장하기 때문이죠. 사실 공산주의가 공유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런 자치 공동체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족 사회와 공산주의와 자치 공동체는 어느 정도 상통합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제국>은 이런 유토피아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틀란티스 제국은 그저 색깔이 다른 유럽 문명에 불과합니다. 사실 <포카혼타스>와 <모아나>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들 역시 토지 공유나 숙의 민주주의 같은 부분을 제대로 부각하지 않아요. <포카혼타스>와 <모아나>는 그저 부족민들이 자연 친화적이라고 보여줄 뿐이죠. 저는 디즈니 같은 거대 자본 회사가 토지 공유 같은 사상을 쉽게 주장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포카혼타스>와 <잃어버린 제국>과 <모아나>가 서구 문명 같은 비서구 문명을 보여주는지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포카혼타스>와 <모아나>가 보여주는 자연 친화적인 측면은 나름대로 감동적입니다.)
※ 이것과 비슷하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겠죠. 우리가 한국 사람일까요? 남한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왜? 남한에서 태어났고, 동아시아 몽골로이드 유전 형질을 드러내고, 쌀밥과 김치와 불고기를 먹고, 한글을 쓰고, 대한민국을 외치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은 서구적인 근대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받았죠. 만약 서구적인 근대화가 사라진다면, 우리를 이루는 정체성은 꽤나 줄어들 겁니다. 흠, 우리가 정말 한국 사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