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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우주에서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간들 본문

SF & 판타지/유토피아

우주에서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간들

OneTiger 2017. 8. 13. 20:00

우주는 꽤나 넓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지적 존재들이 서로 만나지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외계인을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외계인들 역시 다른 외계인들을 만나지 못하겠죠. 이 우주에 수많은 지적 종족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를 겁니다. 어쩌면 저기 어딘가 머나먼 행성에서 어떤 지적 종족이 "외계인은 존재할까?"라고 자문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외계인을 그리는 것처럼 그들도 외계인과의 만남을 바랄지 모르죠. 그런 종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지 모르죠.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참 쓸쓸하고 아쉬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반 예프레모프는 '위대한 원'이라는 설정을 고안했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웜홀 항해나 차원 관문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지적 종족들이 우주를 넘어 교류하는 경우는 없을 듯합니다. 흔한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는 수많은 종족들이 서로 교류하지만, 그런 사건은 벌어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저 인간들끼리 수성이나 화성이나 목성이나 다른 위성에서 살아갈지 몰라요.

 

 

하지만 우주가 그토록 넓다면, 누군가는 우주에서 살아가겠다고 작심할지 모릅니다. 우주의 엄청난 공간을 고려한다면, 인류가 반드시 행성에서만 살아갈 이유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끝이 없는 우주를 둘러보고 싶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우주야말로 압제를 피해 독립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주는 너무 넓기 때문에 아무리 막강한 독재자라고 해도 그 공간을 독차지하지 못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는 종종 은하계 황제가 등장하지만, 그 황제라고 해도 무한한 우주 공간을 모두 점유하지 못합니다.

 

이 우주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공간이 존재할 겁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독립과 자유와 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소설 <해저 2만리>에서 네모 선장은 압제를 피하고 평등하게 살기 위해 바닷속으로 도망쳤습니다. 만약 쥘 베른이 <해저 2만리>를 21세기에 썼다면, 노틸러스는 저 깊고 깊은 바닷속을 돌아다닐 겁니다. 왜냐하면 표층수면은 강대국들의 감시를 받기 때문이죠. 네모 선장은 평등을 위해 심해를 돌아다니고, 지상의 억압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죠.

 

 

바다가 억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우주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기 머나먼 우주 공간에서 살아간다면, 행성의 억압과 압제를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압제를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대륙으로 떠돌았으나, 결국 그들은 압제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지상은 한계가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정말 억압을 피하고 싶다면, 문명 사회를 전복하거나 저기 깊은 바닷속으로 도망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주는 바다보다 훨씬 넓고, 따라서 훨씬 독립을 유지하기 알맞은 공간입니다.

 

문제는 우주에서 살아가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만약 어떤 무정부주의적인 세력이 심해에서 살아가기 원한다면, 그들은 잠수함 속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해저 도시를 짓는 것은 너무 거창하고 규모가 큰 사업이기 때문에 그들은 잠수함으로 만족해야 할 겁니다. 잠수함은 상당히 불편하지만 꽤나 현실적이고 쉬운 해결책입니다. 잠수함 내부에서 생활하는 SF 소설들도 많죠. 하지만 기계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요.

 

 

만약 사람들이 맨몸으로 심해나 우주에서 살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은 압제나 억압을 완전히 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기계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뭔가에 매달릴 이유가 없겠죠. 사람들이 우주선이나 잠수함 내부에서 생활한다면, 공간이 부족할지 모릅니다. 물자가 부족할지 모르죠. 하지만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맨몸으로 살 수 있다면, 우주 공간 자체를 물자로 활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훨씬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몇몇 SF 소설들은 우주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존 발리의 <노래하라, 춤추라> 같은 소설이 그렇죠. 존 스칼지의 <유령 여단>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이런 개조 인간은 너무 과도한 상상력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유전자 조작 기술은 계속 발달하는 중이죠. 그렇다면 머나먼 미래에 이런 개조 인간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독립을 유지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죠. 어쩌면 이 까마득하게 넓은 우주에 그런 인간들이 점점이 흩어지고, 인간은 사회적이고 예속적인 존재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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