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도롱뇽과의 전쟁>은 도롱뇽을 비유하는가 본문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들은 숱한 외계 종족들을 선보입니다. 어떤 외계 종족들은 우화에 가깝고, 어떤 외계 종족들은 색깔이 다른 인간에 불과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들은 머나먼 행성에서 무슨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아요. 개성적인 외계 종족이 소설에 생동감을 더하기 때문에 그저 여러 종족들을 창작할 뿐이죠. 사이언스 판타지의 외계 종족이 모두 고리타분한 상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 수작 소설들은 정말 독특하고 기발한 종족들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소 전형적인 종족들 역시 존재합니다. 양서류 종족은 어떨까요.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우둘투둘한 모습 덕분에 두꺼비 종족은 다소 위협적인 종족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구리 종족은 별로 위협이 되지 못하겠죠. 도롱뇽 종족 역시 그럴 겁니다. 사실 도롱뇽 종족은 별로 유명한 설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개구리나 두꺼비가 양서류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도롱뇽은 파충류가 아니기 때문에 (비슷하게 생긴) 도마뱀 종족에게 밀리고요. 도마뱀 종족은 서사 판타지나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죠. 반면, 도롱뇽 종족의 인기는 바닥을 길 겁니다.
그래서 카렐 차페크는 <도롱뇽과의 전쟁>을 썼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왜 카렐 차페크가 도롱뇽 종족을 골랐는지 궁금했습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은 두 문명이 만나고 충돌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두 문명이 만나는 과정은 역사학자들에게 숱한 논쟁들과 다르지 않죠. 여러 문명들이 싸우고 교류하고 잡아먹는 동안 인류 역사가 꾸준히 흘렀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명들은 사이좋게 지냈고, 어떤 문명들은 서로 싸웠습니다. 심지어 강대한 문명은 작고 약한 문명들을 송두리째 파괴했습니다.
문제는 현대 문명이 그런 파괴들 위에 서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대가 현대로 넘어가기 전에 유럽 강대국들은 다른 식민지 대륙들을 끔찍하게 파괴했습니다. 아무도 그걸 부정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고, 식민지 대륙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궁핍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불황이나 경제 공황이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불황 따위는 대단한 사건 근처에조차 가지 못합니다. 그건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말썽에 불과합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은 현대 문명이 잔인한 학살들 위에 서있다는 사실입니다.
SF 소설들은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SF 소설은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는 과정을 쉽게 그릴 수 있죠. 두 문명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구태여 SF 소설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주류 문학이나 역사 소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작가가 비인간 종족을 이용한다면, 두 문명이 충돌하는 과정을 더욱 부각할 수 있겠죠. 인간들과 도롱뇽 종족이 서로 싸운다면, 그 장면은 백인이 흑인을 채찍질하는 장면보다 훨씬 이질적이거나 자극적일 겁니다.
그래서 많은 SF 작가들은 비유적으로 외계 종족을 설정하곤 합니다. 어슐라 르 귄이나 옥타비아 버틀러나 팁트리 주니어는 그런 외계 종족을 이용해 정말 놀라운 이야기들을 펼칩니다. (특히 옥타비아 버틀러는 천재적인 솜씨를 발휘합니다.) 이런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저는 SF 소설이 전달할 수 있는 비유적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아마 근대 철학자들 역시 외계인들을 이야기했겠죠. 그래서 아마 카렐 차페크 역시 도롱뇽 종족을 이야기했겠죠. <도롱뇽과의 전쟁>에서 인류는 도롱뇽 종족을 만납니다. 그들은 도롱뇽처럼 생겼으나, 인간처럼 똑똑한 지성적인 생명체입니다.
소설 속에서 도롱뇽들은 손으로 사물을 움켜쥐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롱뇽들은 건물을 짓고, 여러 장비들을 이용해 다양한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말할 수 있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조직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도롱뇽들은 멍청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인류와 만난 이후, 그들은 인류 문화를 빠르게 체험했고,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인간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이 로봇을 노동자로 이야기한 것처럼 도롱뇽들과 처음 만난 인간은 도롱뇽들을 노동자로 부려먹습니다.
도롱뇽들은 진주를 쉽게 딸 수 있었고, 그래서 진주 채취 노동자가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들은 더 많은 도롱뇽들을 부려먹고, 도롱뇽들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산업 노동자들이 됩니다. 인간들이 워낙 여러 분야들에서 도롱뇽들을 부려먹기 때문에 도룡뇽들 없이 인류 문명이 이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든든한 노동자들은 문명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수구 꼴통 언론들은 이른바 귀족 노조를 욕합니다. 정규직 노동 조합들이 파업할 때, 수구 꼴통들은 귀족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고 이야기하죠. 관점을 거꾸로 뒤집는다면, 그렇게 귀족 노조는 평소에 나라를 먹여살리는 산업 역군이라는 뜻입니다. (솔직히 귀족 노조라는 표현은 꽤나 웃기죠.)
수구 꼴통들은 원하지 않았겠으나, 그들은 저도 모르게 귀족 노조가 얼마나 중요한 인력인지 주장했습니다. 귀족 노조라는 비하적인 명칭과 달리 진짜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여러 어려움들에 부딪힙니다. 도롱뇽 종족도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언제나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을 통제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대 스파르타부터 현대의 각종 노동 조합들까지,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그들의 노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 주장이 옳습니다. 그 주장이 훨씬 민주적입니다.
왜 소수 자본가가 다수 노동자들을 부려먹어야 합니까?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자본가는 자신이 자본을 가졌다고 우기나, 어떻게 그 자본가는 자본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둘째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현대 문명은 끔찍한 학살들과 파괴들 위에 서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본가들은 자본을 차지할 수 있었어요. 자본가들은 폭력적으로 생산 수단을 빼앗았고,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을 통제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롱뇽들 역시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 조합들이 봉기하는 것처럼 도롱뇽들 역시 봉기합니다. 하지만 인간들, 자본가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 문명은 불화로 이어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불화는 전쟁으로 터질지 모르죠. 하지만 제목과 달리 <도롱뇽과의 전쟁>은 전쟁을 본격적으로 부각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어떻게 인류가 도롱뇽들을 착취하는지 보여줍니다. 아니, 인류가 도롱뇽들을 착취한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겠군요. 일부 자본가들만 도롱뇽들을 부려먹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배 계급에 해당하는 일부 인간들이 도롱뇽 종족을 부려먹는다는 표현이 옳을 겁니다. 카렐 차페크는 자본가들이 도롱뇽 종족을 수탈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안 각종 에피소드들을 나열합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은 일반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틈이 날 때마다 작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끼워넣고, 전반적으로 꽤나 산만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카렐 차페크는 그저 우화에 그치지 않았고, 도롱뇽 종족에 관한 논문이나 신문 기사를 집어넣었어요. 그래서 장르적인 상상력 역시 살아있습니다. 비록 작가는 자세한 설정을 밑바탕에 깔지 않았고, 이 소설은 양서류 종족을 엄중하고 과학적으로 살필 마음이 없으나, 논문이나 신문 기사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저는 이 책이 풍자나 우화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도롱뇽과의 전쟁>은 사이언스 픽션다운 재미를 선사해요.
하지만 왜 하필 양서류 종족, 도롱뇽 종족일까요. 흠, 차이나 미에빌은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서 보디야노이라는 양서류 종족이 노동 파업에 돌입하는 장면을 이야기했습니다. 인간 자본가들이 양서류 노동자들을 착취했기 때문에 양서류 노동자들은 노동 파업에 돌입합니다. 시장은 군대를 들이붓고, 군대는 파업 노동자들을 무참하게 짓밟습니다. 하지만 만약 파업 노동자들이 양서류 종족이 아니었다면? 만약 검치 호랑이 같은 종족이나 거대한 공룡 같은 종족이 노동 파업에 돌입했다면?
가령, 나오미 노빅은 소설 <테레메르> 시리즈에서 거대한 드래곤들이 인간들을 위해 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테메레르는 인간들의 지배, 국가의 지배를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거대한 드래곤들이 봉기한다면, 그건 단순한 소요가 아니라 무자비한 전쟁으로 이어질지 몰라요. 드래곤 하나는 전열함들을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드래곤들이 봉기한다면, 강력한 유럽 국가조차 귀중한 함대를 잃을지 모릅니다. 관습적으로 드래곤들은 인류를 위해 일하나, 만약 드래곤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인류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겁니다. 하지만 도롱뇽은 드래곤과 다르죠.
강대한 드래곤과 달리 우둔한 도롱뇽들은 별로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도롱뇽 종족은 풍자나 해학에 가깝습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이 도롱뇽이라는 인기 없는 종족을 선택한 이유는 풍자나 해학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소수 자본가들은 다수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유럽 강대국들은 다른 대륙 식민지들을 학살하고, 세상은 미쳐 돌아갑니다. 애국심이라는 명분을 위해 인민들은 국가 지도자들에게 목숨을 내놓고 다른 약자들을 짓밟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카렐 차페크가 2차 세계 대전을 예감했다고 주장하더군요.
<도롱뇽과의 전쟁>은 1937년에 등장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은 1940년에 터졌죠. 카렐 차페크가 촉감이 날카롭다면, 몇 년 이후 전쟁이 터질 거라는 사실을 예감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은 전쟁을 막고 싶어하지 않았죠. 자본주의 국가들은 전쟁을 막고 노동자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식민지들을 해방하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전쟁을 원했죠. 카렐 차페크는 그런 미친 꼴을 풍자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드래곤 같은 강대한 종족은 미쳐버린 세상을 풍자하지 못해요. 드래곤은 너무 멋집니다. 드래곤은 우상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도롱뇽을 골랐겠죠.
양서류 종족이 위협적이고 강대한 종족이 된 적이 있을까요? 비단 SF 소설만 아니라 여러 판타지들이나 동화들이나 비디오 게임들 속에서? 개구리 왕자는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래서 개구리겠죠. 서사 판타지들이나 검마 판타지들에서 도마뱀 종족들은 강력한 적수가 됩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나 <워해머>는 도마뱀 종족이 매우 강력하다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양서류 종족은 별로 힘이 없군요. <도롱뇽과의 전쟁>이 양서류 종족을 이야기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현실 속의 노동자들 역시 양서류 종족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저는 노동자들이 강력한 드래곤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노동자들은 아직 양서류 종족에 머물지 몰라요. 하지만 도롱뇽 종족 역시 인간 자본가들에게 반기를 들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인류를 위협하고, 인류는 도롱뇽과의 전쟁을 치르러야 합니다. 현실 속의 노동자들 역시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이 2차 세계 대전을 예감한 것처럼 누군가는 3차 세계 대전을 예감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걸 막고 싶다면, 도롱뇽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저는 노동자들이 먼저 반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카렐 차페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