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신비의 섬>과 당연하지 않은 시장 경제 본문
[이런 개척 사회에는 시장 경제가 없고 계획 경제가 있어요. 시장 경제는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쥘 베른은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해저 2만리>, <지구 속 여행>, <지구에서 달까지>, <80일 간의 세계 일주>, <기구 타고 5주> 같은 소설들은 모두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이야기들입니다. 어떤 소설은 일상적인 여행을 넘어 심해와 지저와 우주로 뻗었고, SF 소설이 되었죠. 쥘 베른은 낯선 곳에서 표류하고 생존하는 이야기 역시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15소년 표류기>나 <신비의 섬> 같은 소설들을 썼을 겁니다.
<15소년 표류기>에 비해 <신비의 섬>은 별로 유명하지 않죠. 게다가 <신비의 섬>은 너무 낭만적입니다. 생존자들은 절대 서로 반목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연대합니다. 천재 지도자가 모든 것을 파악하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커다란 장애를 겪지 않습니다. 생존자들은 논리와 과학, 이성, 단결된 노동으로 똘똘 뭉쳤어요.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하고, 다른 생존자들은 그 방향을 향해 지치지 않고 노를 젓습니다. (가끔 외부의 도움을 받으나) 덕분에 그들은 무인도에서 작은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쥘 베른은 이 소설에 진보와 이성과 논리를 향하는 긍정적인 기운을 잔뜩 불어넣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에 시장 경제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생존자들은 무인도에서 각자 맡은 역할들을 수행하나, 아무도 시장을 만들지 않습니다. 작은 문명을 이끄는 척척 박사님 역시 시장을 만들지 않아요.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장 경제가 아주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대부분 학교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시장 경제가 필수적이고 당연하다고 가르치죠. 기초적인 교과서부터 학술적인 논문까지, 수많은 경제학 전문가들은 사회적인 분업이 반드시 시장 경제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논리가 맞는다면, <신비의 섬>에서 생존자들은 시장 경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문명에서 시장 경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존자들은 무엇을 만들지 계획을 세우고, 각자 역할들을 나누고, 때때로 함께 힘을 합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생존자들은 시장을 만들거나 거기에서 상품들을 교환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를 비롯해 아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쥘 베른은 무인도에서 작은 문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리나, 시장 경제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는 일반적인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는 설명과 달라요.
그렇게 시장 경제가 중요하다면, 왜 쥘 베른은 시장 경제를 묘사하지 않았을까요. 왜 생존자들은 시장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무인도 문명이 너무 작고 원시적이기 때문에? 어쩌면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시장 경제는 오직 현대 문명처럼 크고 복잡한 사회와 어울릴지 모르죠. 하지만 현대 문명에서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사례들은 많습니다. 그렇게 시장 경제가 중요하다면, 왜 대기업들은 자꾸 재벌 그룹을 만들거나 다른 회사들과 합병하거나 계열사들을 만들려고 할까요?
시장 경제가 정말 중요하다면, 재벌들은 대기업들을 쪼개고 시장 속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재벌들은 자꾸 그룹을 만들고 다른 기업을 합병하고 계열사들을 만들어요. 사실 독점 판매는 모든 자본가의 꿈이고, 그래서 아예 정부는 독점 판매가 불법이라고 처벌하죠. 정말 시장 경제가 중요할까요. 하지만 왜 자본가들은 합병이나 계열사들이나 독점 판매를 좋아할까요. 경제학 교과서들은 시장 경제가 필수적이고 합리적이고 중요하다고 말하나, 시장 경제를 떠받치는 대기업들은 다양한 판매자들이나 구매자들 따위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계열사나 독점을 바라죠.
게다가 대기업 그룹이나 계열사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경제학 교과서들은 문제들이 많습니다. 경제학 교과서들이 왜 시장 경제가 문명에 등장하는지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시장이 합리적이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뿐이고, 왜 시장 경제가 등장하는지 이야기하지 않아요. 시장이 등장하는 과정을 대충 넘어가죠. 이는 상당히 이상한 설명입니다. 생태학 서적들은 어떻게 자연 생태계가 등장하는지 설명합니다. 심지어 시간을 35억 년이나 38억 년 전으로 거슬러가고, 최초의 원시 생명체부터 설명하죠.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들 시장 경제가 중요하다고 말할 뿐이고, 시간을 거슬러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최초의 시장 경제가 탄생했을까요? 왜 <신비의 섬>은 최초의 시장 경제가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왜 쥘 베른은 단결된 노동만 보여주고, 시장 경제를 무시했을까요? 그 이유는 사실 시장 경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 경제는 후천적인 구조이고, 특히, 경제학 교과서들이 열심히 떠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아주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구조입니다. 그래서 쥘 베른은 시장 경제를 묘사하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장과 시장 경제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장과 시장 경제는 다릅니다. 만약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만나기 원한다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등장할 겁니다. 상품들의 가치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화폐 역시 자연스럽게 등장하겠죠. 하지만 시장이 등장한다고 해도 모든 사회가 반드시 시장 경제로 향하지 않습니다. 오직 시장에서 상품을 팔기 위해 모든 생산자가 상품을 생산할 때, 사회 구조가 시장 경제로 바뀌겠죠. 여기에서 (소수) 자본가들과 (다수) 임금 노동자들이 관계를 맺는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될 테고요.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시장이 등장한 이후에도 시장 경제는 금방 사회 구조를 장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본격적인 자본주의 체계가 등장하기 전까지, 소규모 생산과 자급자족과 봉건적인 농업은 시장과 공존했어요. 따라서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시장과 시장 경제는 서로 달라요. 똑같지 않죠. 소규모 생산자들은 시장에 팔기 위해 물건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용자에게 의뢰를 받았죠. 자급자족하는 생산자들이나 봉건적인 농업 생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급자족 생산자들이나 봉건적인 농업 생산자들 역시 시장에 팔기 위해 물건을 만들지 않았어요. 그들은 시장에서 여러 물건들을 교환했으나, 시장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 체계에서 오직 시장에 팔기 위해 대부분 생산자들은 물건을 만듭니다. 자급자족이나 소규모 생산 역시 존재하나, 자본주의 체계에서 정말 핵심적인 생산은 상품 생산입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대부분 생산자들은 재화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품을 생산합니다. 재화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이 많다고 해도, 재화 생산자들은 상품 생산자들에 비해 지배력이 크지 않습니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수많은 재화들은 상품들이 되고, 그래서 생산은 필요와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병들어도, 그들이 상품을 구입할 능력이 없다면, 그들은 식량이나 약을 얻지 못합니다. 아무리 야생 동식물들이 사라져도, 야생 동식물들은 상품을 구입할 능력이 없고, 그래서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을 만들고 구매하는 행위이고, (그럴 능력이 없는) 약자들이나 야생 동식물들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그래서 처참한 양극화와 막대한 환경 오염은 자본주의 체계에서 비롯하는 결과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반드시 그런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구조적인 결과이고, 아무리 자본가들이 착해진다고 해도, 문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비의 섬>은 시장 경제 없이 문명이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무인도 문명은 아주 작고 원시적인 문명이나, 인류 문명과 시장 경제가 서로 연관이 없다고 이야기해요. 비단 <신비의 섬>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은 시장 경제가 인류 문명과 별로 연관이 없다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제럴드 앨런 코헨은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온 캠핑장이라면>에서 캠핑장을 인류 문명에 비유했겠죠. 그래서 <붉은 화성> 같은 소설은 시장 경제 없이 화성 주거지가 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겠죠. <신비의 섬> 같은 작고 원시적인 문명만 아니라 <캠핑장>이나 <붉은 화성> 같은 사회 과학책이나 하드 SF 소설 역시 인류 문명이 시장 경제와 연관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책들은 좌파적인 책들이죠.
다른 창작물들은 어떨까요. <플래닛베이스>나 <림월드> 같은 (좌파와 아무 상관이 없는) SF 비디오 게임들은? 이런 게임들은 사람들이 낯선 외계 행성에서 주거지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저는 <플래닛베이스>나 <림월드>를 플레이한 적이 없고, 그래서 이 게임들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플레이 동영상들을 몇 번 봤습니다. 시장은 등장하고 시장 거래 역시 존재하나, 시장 경제는 등장하지 않더군요. 어쩌면 나중에 시장 경제가 등장할지 모르나, 적어도 초기에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플래닛베이스>나 <림월드>가 그저 단순한 비디오 게임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고작 그런 비디오 게임 따위가 인류 문명을 설명하는 비유가 되지 못한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시장 경제가 후천적이고 비효율적인 체계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수많은 게임들은 시장 경제를 멀리하고, 계획 경제를 선호하죠. <림월드>처럼 문명을 쌓아올리는 게임은 더욱 그렇고요. 만약 <림월드>가 빈약하고 얄팍한 비유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진지하고 깊이가 있는 소설들을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외계 행성에서 문명을 이룩하는 소설들은 많아요.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좌파적이지 않다고 해도, 작가는 시장 경제를 묘사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얼마든지 계획을 세울 수 있어요. 구태여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상품들을 만들고, 그 상품들로 다시 이윤을 축적하고, 서로 죽일 듯이 경쟁하느라 숱한 자원들을 소모하고, 과잉 생산을 감당하지 못하고, 거품을 터뜨리고 공황을 터뜨리고…. 얼마나 이게 많은 낭비입니까. 아마 어떤 사람은 시장에서 이윤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어요. 아니면 수요와 공급 곡선을 이야기하거나. 저는 그런 이유들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긍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경제 이외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들로 보상을 받거나 업무 동기를 찾을 수 있어요. 수요와 공급 곡선은 과잉 생산과 신용 불량과 엄청난 거품을 막지 못하고요. 여기에서 이런 것들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글이 너무 길어지겠죠. 언젠가 이런 것들을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윤 창출이나 수요와 공급 곡선을 고려한다고 해도, 시장 경제는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신비의 섬>이나 <캠핑장>, <붉은 화성>, <플래닛베이스>, <림월드> 같은 창작물들은 인류 문명과 시장 경제가 별로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생존자들이나 개척자들은 사회적인 분업을 계획했고, 단결된 노동 위에서 작은 문명을 세웠습니다. 따라서 시장 경제가 자연스럽고 필수적으로 등장했다는 설명은 사기이고 거짓말입니다. 세계적인 SF 작가부터 SF 비디오 게임까지, 그게 거짓말이라고 반증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계가 자리를 잡는 동안 시장 경제는 뒤늦게 등장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경제학 교과서들은 이것 역시 빼먹었으나) 자본주의 체계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등장했어요. 식민지 학살과 울타리 치기와 흑인 노예들과 살인적인 노동 환경들은 자본주의 체계를 뒷받침했죠. 시장 경제는 뒤늦게 폭력적으로 등장했어요. 따라서 경제학 교과서들은 사기입니다. 뭐, 놀라운 사실은 아닙니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사기꾼들이기 때문에 경제학 교과서들 역시 사기가 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세대들은 그런 세뇌와 사기를 주입받습니다. 환장할 노릇이죠. 어쩌면 누군가는 이게 음모론이라고 말할지 모르겠군요. 허허, 음모론…. 하지만 시장 경제는 필수적이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아요. 그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숱한 지식인들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권력의 나팔수이기 때문에? 아니면 그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든, 숱한 지식인들은 그저 사기꾼들에 불과합니다. 예전에 저는 어떤 대학 교수가 경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강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교수는 마라톤을 예시로 들었고, 경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1등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좀 황당하더군요. 마라톤 선수가 1등했다고 가정하죠. 그래서? 그래서 1등 선수가 뭔가 가치를 만들었나요? 무슨 가치가 생겼죠?
1등이라는 추상적인 관념 이외에 어떤 가치가 생겼나요? 1등 선수는 아무 가치도 만들지 못했어요. 뭐, 선수들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은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겁니다. 스포츠는 구경거리죠. 하지만 경쟁 구조가 없는 구경거리들도 많습니다. 흠, 많은 사람들은 야한 동영상을 구경하죠. 섹스가 경쟁인가요? 여자와 남자가 침대 위에서 하악하악거리면, 그게 경쟁인가요? 다시 묻죠. 1등이라는 관념이 무슨 가치를 만들었습니까? 그건 아무 가치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경쟁은 그 자체로 아무 가치도 만들지 못합니다.
만약 여러 세력들이 경쟁한다면, 그런 경쟁은 생산을 촉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경쟁은 생산을 촉진할 뿐이고, 스스로 가치를 생산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계의 경쟁은 수많은 부작용들을 양산합니다. 기후 변화 역시 자본주의의 부작용이죠. 결국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노동입니다. 경쟁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입니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 조합이나 노동자 평의회는 인류 문명을 제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겁니다.
무엇이 되었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계는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동 조합이 경영에 참가한다면, 이른바 수구 꼴통들은 두 눈을 까뒤집고 난리를 부릴 겁니다. 온건한 보수 우파들이나 심지어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노동 조합보다 대기업을 더 중요하게 여겨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을 통제하기 시작한다면, 자본주의가 퇴색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들은 그걸 바라지 않고,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기득권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저는 인류가 계획 경제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장 경제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대부분 생산자들이 (재화가 아니라) 상품을 생산한다고 해도, 그 생산자들이 소규모 생산자들이라면, 시장 경제는 폭력으로 흐르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그런 시장 경제가 나중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죠.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소규모 생산자들은 대기업들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고요. 대기업들은 기득권이 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숱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당연하게 나타났다고 주절거리죠.
그래서 <신비의 섬>은 중요해요. 이 책은 낭만적인 소설일지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낭만적인 소설이죠. 게다가 쥘 베른은 유토피아 소설을 썼으나, <신비의 섬>은 숱한 제약들이 있는 유토피아 소설입니다. 유럽 상류층 백인 남자의 전망에 갇힌 유토피아에 불과하죠. 하지만 저는 쥘 베른이 우리에게 소중한 장면들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쥘 베른이 그걸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신비의 섬>은 중요한 교훈을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