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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아무르 호랑이 산군은 괴수가 될 수 있는가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아무르 호랑이 산군은 괴수가 될 수 있는가

OneTiger 2019. 1. 7. 23:01

[아무르 호랑이 산군은 문자 그대로 포스가 가득한 영물입니다. 이런 영물이 괴수가 될 수 있을까요?]



영화 <대호>는 일제 식민지 조선과 조선 포수들과 아무르 호랑이를 이야기합니다. 조선에서 일본 제국 군대는 온갖 야생 동물들을 사냥합니다. 이른바 '지리산 산군' 역시 사냥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문제는 산군이 아주 영특하고 민첩하고 강력한 호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산군을 잡기 위해 일본 군대는 조선 포수들을 고용하나, 조선 포수들 역시 산군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일본 군대는 여러 병사들과 몰이꾼들을 지리산에 보냈으나, 그들을 물어뜯은 이후 산군은 유유히 사라집니다.


산군 사냥 작전을 지휘하는 포수 대장은 왕년에 이름을 날린 늙은 포수 만덕을 찾아갑니다. 만덕이 추적을 맡는다면, 조선 포수들은 산군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만덕은 요청을 거절하나, 포수 대장과 일본 군대는 쉽게 산군과 만덕을 포기하지 않아요. 이렇게 <대호>는 일제 식민지 속에서 어떻게 사냥꾼들과 야생 동물이 쫓고 쫓기는 관계를 이루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자연과 문명을 바라보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야생 동물, 게다가 커다란 아무르 호랑이를 이용해 생명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대호>에는 어느 정도 주술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현실주의적인 측면과 주술적인 측면을 서로 결합합니다.



한편으로 거대한 호랑이 산군이 일본 제국 병사들과 몰이꾼들과 사냥꾼들을 물어뜯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대호>가 괴수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사실 <씨네 21>의 어떤 기사는 <대호>가 '한국형 괴수물'이라고 평가했죠. 이런 평가가 옳을까요? 영화 <대호>가 괴수물이 될 수 있을까요? 괴수물은 괴수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괴수는 기이하고 거대한 야생 동물을 가리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영화 <킹콩>이 괴수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이런 생각에는 이견들이 별로 없을 겁니다. <킹콩>에는 킹콩과 스테고사우루스를 비롯해 숱한 거대 야생 동물들이 나옵니다.


야생 동물들은 사람들을 습격하고, 사람들은 야생 동물들과 싸웁니다. <킹콩>에는 이런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비록 킹콩이 아주 늦게 나온다고 해도, 극장을 떠날 때, 관객들은 이런 내용들을 기억했을 겁니다. 게다가 괴수 이야기에서 거대 야생 동물은 매우 특별한 위상을 차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거대 야생 동물(괴수)을 일반적인 야생 동물과 다르다고 간주합니다. 해골섬 원주민들이 킹콩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괴수물에서 거대 괴수들은 특별한 지위를 차지해야 합니다. 괴수는 신이 되거나 악마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지위가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라고 해도, 이런 지위는 중요하죠.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세계>에는 온갖 공룡들이 나오고, 몇몇 공룡과 선사 시대 파충류는 인간들을 공격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영화 <킹콩>과 소설 <잃어버린 세계>는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거대 (선사) 동물들이 사람들을 습격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킹콩>에는 신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킹콩에게 제물을 바치고, 킹콩은 신성한 지위로 올라갑니다. <잃어버린 세계>에는 그런 신성이 없죠. 소설 주인공 챌린저 교수는 냉철한 자연 철학자이고 절대 야생 동물을 신비스럽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쥬라기 공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나 스테고사우루스에게 신성한 지위나 불경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앨런 그랜트와 앨리 새틀러과 아이언 말콤과 다른 등장인물들은 철저하게 자연 과학적인 시선으로 공룡들을 바라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스티브 앨튼이 쓴 소설 <메그>는 <쥬라기 공원>과 다르겠죠. 소설 <메그>는 '쥬라기 상어'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웠으나, <메그>는 소설 <쥬라기 공원>과 다릅니다. <메그>는 계속 메갈로돈이 가장 흉악한 살육 기계이고 악마라고 포장합니다. <쥬라기 공원>은 공룡의 관점을 묘사하지 않으나, <메그>는 메갈로돈의 관점을 묘사합니다. 소설 속에 메갈로돈의 관점이 나오기 때문에 메갈로돈은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메갈로돈은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일반적인 야생 동물이 아니라 괴수가 됩니다.



따라서 거대 동물이 나타났을 때, 거대 동물이 신성한 지위를 얻는다면, 거대 동물은 괴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킹콩과 메갈로돈은 괴수가 될 수 있고, <잃어버린 세계>와 <쥬라기 공원>에서 육식공룡들은 괴수가 되지 못하겠죠. 이건 괴수물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게다가 어떤 독자들은 <쥬라기 공원>에서 벨로시랩터가 특별한 위상을 얻었다고 평가할지 모릅니다. <쥬라기 공원>은 벨로시랩터가 아주 특별한 생물종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그래서 독자들은 벨로시랩터가 괴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신성한지 서로 다르게 생각하겠죠.


어떤 독자들은 벨로시랩터가 캐릭터가 아니라고 간주할지 모르나, 어떤 독자들은 벨로시랩터가 캐릭터가 될 수 있다고 간주하겠죠. 하지만 메갈로돈의 관점을 묘사하는 <메그>와 달리, <쥬라기 공원>은 육식공룡의 관점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쥬라기 공원>은 소설이고, 전지적 작가 시점이고, 얼마든지 육식공룡의 관점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얼마든지 육식공룡의 관점을 묘사할 수 있음에도, <쥬라기 공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보다 <메그>의 메갈로돈은 훨씬 괴수에 가까울 겁니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세계>와 <킹콩>과 <쥬라기 공원>과 <메그>가 모두 SF 장르에 들어간다고 지적할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세계>와 <킹콩>과 <쥬라기 공원>과 <메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야생 동물들을 묘사합니다. (비조류) 공룡과 메갈로돈은 멸종했습니다. 뭐, 지구 어딘가에는 여전히 스테고사우루스가 활보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생물학자들은 (비조류) 공룡이 사라졌다고 주장합니다. 킹콩은 아예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킹콩은 순수한 상상력입니다. 현실에 고릴라들이 있고, 창작가들이 고릴라들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스테고사우루스보다) 킹콩은 순수한 상상력에 가깝습니다.


괴수를 이야기하기 위해 창작물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까요? 현실적인 괴수들은 괴수가 되지 못할까요? 누군가는 그렇다고 말할 테고, 누군가는 아니라고 반대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많은 괴수들은 일상을 뛰어넘습니다. 심지어 어떤 괴수들은 아예 초자연적입니다. 우주 구축함을 습격하는 우주 드래곤(!)은 절대 일상적인 괴수가 아니겠죠. 괴수가 일상을 뛰어넘을 때, 괴수는 훨씬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훨씬 많은 경탄들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공룡이 실존했다고 해도, 인간은 살아있는 (비조류) 공룡을 만나지 못하고, 따라서 코끼리보다 스테고사우루스는 훨씬 놀라운 괴수가 될 수 있겠죠.



이런 관점들에서 <대호>는 괴수물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속의 아무르 호랑이 산군은 거대한 야생 동물입니다. 일반적인 아무르 호랑이보다 지리산 산군은 훨씬 육중합니다. 그 장엄한 근육질 줄무늬 육체는 문자 그대로 포스를 좔좔 풍깁니다. 산군은 신성합니다. 아무도 이걸 부정하지 못하겠죠. 아무 이유 없이 산군이 임금이라고 불리겠습니까. (어떤 관객들은 이런 주술적인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영화가 전래 동화 느낌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무르 호랑이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괴수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산군이 특별한 동물, 영물이라고 강조합니다. 산군은 정말 영물입니다.


게다가 <대호>는 산군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대호>는 인간의 시각 없이 어떻게 산군이 생활하는지 보여줍니다. 인간들이 관찰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호>는 얼마든지 산군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산군은 SF 장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산군이 영물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이 없습니다. 산군은 개조 동물이나 돌연변이나 외계 생명체가 아닙니다. 산군은 민간 신앙과 주술적인 분위기에서 비롯했습니다. 산군이 정말 괴수인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정답을 내세우지 못하겠죠. 하지만 산군에게는 이런 특징들이 있습니다.



비록 산군이 괴수가 아니라고 해도, 관객들은 여러 괴수들과 산군을 함께 비교할 수 있겠죠. 그렇게 비교하는 동안 관객들은 산군을 훨씬 자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일반적인 괴수물들보다 <대호>는 아주 느리고 묵직합니다. <대호>가 너무 느리고 묵직하기 때문에 심지어 관객들은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호랑이가 병사들을 습격하는 장면은 그저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자연과 생명을 말하기 위해 <대호>는 일부러 느리고 묵직한 연출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에서 자연과 생명을 말하는 주체들은 아빠들입니다. <대호>는 엄마 호랑이를 비롯해 엄마들을 후딱 치워버리고 아빠들을 강조하죠.


이 영화에서 엄마들은 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오래 전부터 에코 페미니즘이 자연과 생명과 여성을 숱하게 강조했음에도, <대호>는 그런 목소리들을 별로 반영하지 못합니다. 제국주의가 자연 환경을 파괴했을 때, 그건 자본주의 폭력이었고 동시에 가부장적인 폭력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이 산업 자본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제국주의를 내세웠고, 식민지들을 수탈했음에도, <대호>는 가부장적인 폭력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이건 꽤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호>는 자연 생태계를 싸구려 액션 싸움박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이 괴수, 야생, 생명을 살펴보기 원한다면, <대호>는 좋은 선택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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