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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거대 괴수 논의라는 토대가 없는 상황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거대 괴수 논의라는 토대가 없는 상황

OneTiger 2018. 11. 4. 17:56

[국내에서 거대 괴수 영화들은 제대로 개봉한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토대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국내에서 거대 괴수 팬들은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정식 개봉한다고 기대한 적이 있습니다. 토호는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마지막 고지라 영화라고 발표했어요. 솔직히 거대 괴수 팬들은 그걸 믿지 않았을 겁니다. 거대 괴수 팬들은 토호가 또 다시 꼼수를 부린다고 여겼고 언젠가 고지라 영화가 다시 나올 거라고 짐작했죠. 그런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2014년 <고지라>가 개봉한 이후, 연이어 <신고지라>와 <고지라: 괴수 행성>이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콩: 해골섬>에서 고지라는 (아주 간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고지라: 괴수왕>은 2019년 개봉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런 영화들을 바라보는 동안, 거대 괴수 팬들은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고개들을 끄덕일지 모릅니다. 뭐, <고지라: 괴수왕>이 실패하거나 다른 고지라 영화들이 실패한다면, <고지라> 시리즈는 다시 심해로 잠수할지 모릅니다. 고지라와 킹콩은 아예 대면하지 못할지 모르고, 또 다시 깊은 해저 속에서 고지라는 잠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당분간 고지라는 다시 심해에서 수면으로 신나게 부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대 괴수 팬들에게 이런 현상은 정말 신나는 일상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 호화로운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모스라를 볼 수 있다니.



하지만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개봉했을 때, 이건 마지막 <고지라> 시리즈였어요. 거대 괴수 팬들은 토호를 별로 믿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지인들과 토호가 뻥을 친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파이널 워즈>는 마지막 <고지라> 시리즈였고, 거대 괴수 팬들은 당분간 고지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국내 배급사가 <고지라: 파이널 워즈>를 정식 수입하고 와이드 릴리즈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잠시 이런 소문은 화제가 되었죠.


국내 거대 괴수 팬들은 마침내 <고지라> 시리즈가 정식 개봉한다고 기뻐했습니다. 비록 <파이널 워즈>가 마지막 영화라고 해도, 국내 거대 괴수 팬들은 대미로서 <고지라> 시리즈가 정식 개봉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결국 <고지라: 파이널 워즈>는 정식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랬다고 기억합니다. 그때 개인적으로 저는 지인들과 함께 <파이널 워즈>가 개봉하는 극장들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잘못 기억하거나 제대로 찾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만약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정식 개봉했다면, 그건 반가운 소식이겠죠. 하지만 IMDB 개봉 국가에는 남한이 없어요. 설사 이게 개봉했다고 해도, 한 가지 아쉬움은 남습니다. 수많은 <고지라> 시리즈 중에서 왜 오직 몇몇 영화만 정식 개봉해야 하나요?



사실 <고지라> 시리즈는 30개를 넘습니다. 각종 만화들과 애니메이션들과 비디오 게임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거대 괴수 팬들은 숱한 <고지라> 시리즈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고지라: 더 시리즈> 같은 애니메이션은 특수한 사례이나, <고지라: 더 시리즈>는 꽤나 독특한 거대 괴수들을 늘어놓았죠. 누군가는 미국 거대 괴수가 느끼한 버터 냄새를 풍긴다고 비판할지 모르나, <고지라: 더 시리즈>는 상당히 멋진 거대 괴수들을 선보였습니다. 오히려 거대 괴수 팬들은 <갓질라>보다 <고지라: 더 시리즈>를 선호했죠. 하지만 아무리 <고지라: 더 시리즈>가 멋진 괴수들을 선보였다고 해도, 이건 외전에 가깝습니다. 이건 일본 <고지라> 시리즈에 속하지 않았죠. <고지라: 더 시리즈>는 일본 <고지라> 시리즈와 가까운 친척이겠으나, 정식 가계도에 속하지 않을 겁니다.


정식 가계도에 속하는 일본 <고지라> 시리즈는 국내로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어요. <신 고지라>가 개봉하기 전까지, <고지라 2000>, <고지라 대 메가기라스>, <GMK> 같은 영화들은 정식 개봉했으나, 별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죠. 이 시기에 <스타 워즈> 프리퀄 소식들을 접하기는 쉬웠으나, <고지라> 시리즈 소식들을 접하기는 다소 어려웠습니다. (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은 그렇습니다.) 게다가 일본 고지라가 인기를 누리기 때문에 <고지라 2000>이 정식 개봉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아니겠죠. <갓질라>가 국내 정식 개봉했기 때문에 <고지라 2000>은 그런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만약 <갓질라>가 국내 개봉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고지라 2000>이 명작이라고 해도, 이건 절대 국내 개봉하지 못했을 겁니다. 국내 배급사들은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겠죠.



비단 <고지라> 시리즈만 아니라 <모스라> 시리즈와 <가메라> 시리즈 역시 국내 개봉하지 못했습니다. 특별 개봉 영화들은 있으나, 와이드 릴리즈 영화들은 거의 없죠. <고지라 2000>과 달리, <모스라> 리버스 시리즈와 <가메라> 헤이세이 시리즈는 호평을 받았음에도, 양쪽 모두 국내 개봉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와이드 릴리즈한 영화들이 있음에도, 저는 그것들을 찾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IMDB 개봉 국가들에는 (특별 개봉들 이외에) 남한이 나오지 않습니다. <갓질라>는 정식 일본 시리즈가 아니고 아주 고지라를 개무시했음에도, <갓질라>는 가장 유명한 국내 정식 개봉 고지라였습니다. 2014년 <고지라>가 개봉하기 전까지, 숱한 남한 사람들은 일본 고지라가 아니라 헐리우드 고질라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겁니다.


게다가 일본 <고지라> 시리즈가 계속 슈트 액션을 고집했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은 <고지라> 시리즈가 유치하다고 조롱했죠.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숱한 조롱들을 들었습니다. 어떤 <고지라> 게임들 공략 동영상에서 AVGN이 불평한 것처럼, 이건 절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닐 겁니다. 거대 괴수 팬들은 이런 경험들을 몇 번 거쳤을 겁니다. 남한 문화는 거대 괴수 팬들에게 별로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퍼시픽 림>이 개봉했을 때, <퍼시픽 림> 소설 판본은 정식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고지라> 소설 판본은 번역되지 않았죠. 이건 주관적인 사례가 아닐 겁니다. 남한 문화가 거대 로봇을 좋게 봐준다고 해도, 남한 문화는 거대 괴수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고지라>는 가뭄에 단비 같았습니다. SF 소설이 유치하다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자주 국내 SF 독자들은 어슐라 르 귄과 로저 젤라즈니를 언급합니다. 어슐라 르 귄의 섬세한 필력과 로저 젤라즈니의 비장미 넘치는 필력이 주류 문학과 대등하거나 주류 문학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건 도둑이 제발 저리는 꼴일지 모르나, 국내 SF 독자들에게 어슐라 르 귄과 로저 젤라즈니는 든든한 방어막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슐라 르 귄 소설들과 로저 젤라즈니 소설들은 번역 판본들이 많죠.


하지만 거대 괴수 팬들에게는 이런 든든한 방어막이 없었습니다. 일본 <고지라> 시리즈와 <모스라> 시리즈와 <가메라> 시리즈는 슈트 액션이나 모형 액션이고, 남한 사람들은 이것들이 유치하다고 조롱했습니다. 사실 가메라와 레기온이 싸우는 광경은 정말 웅장하나, 슈트 액션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가메라와 레기온은 그저 어설픈 액션 연출에 불과했죠. 그래서 국내 거대 괴수 팬들에게는 든든한 방어막이 없었습니다. 뭐, 국내 거대 괴수 팬들은 그런 방어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2014년 <고지라>는 방어막이 될 수 있었죠. 그리고 마침내 2014년 <고지라>는 웅장하고 우아하고 묵직한 연출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한 관객들은 2014년 <고지라>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있을 테고, 누구나 <고지라>를 비판할 수 있겠죠. 문제는 고지라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2014년 <고지라>를 비판했다는 사실입니다. 2014년 <고지라>는 단순한 거대 괴수 영화가 아닙니다. 이건 <갓질라>가 저지른 씻지 못할 흑역사를 지우는 동시에 <파이널 워즈> 이후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는 동시에 숱한 <고지라> 시리즈를 집대성하는 분기점입니다. 따라서 정말 2014년 <고지라>를 까고 싶다면, 남한 관객들은 그런 상황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비판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깊이 있는 비판은 없었습니다.


비판은 나쁘지 않습니다. 비판은 필요합니다. 깊고 낮은 다양한 호평들과 비판들이 공존한다면, 그건 바람직한 현상일 겁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비판들, 건실한 비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들 그저 연출이 지루하거나 밋밋하거나 심심하다고 이야기했을 뿐이죠. 거대 괴수 팬들 역시 그런 단점들을 지적했어요. 하지만 거대 괴수 팬들은 오직 그것만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거대 괴수 팬들은 고지라를 집대성하는 영화로서 2014년 <고지라>를 바라봤어요. 좋은 비판은 그런 것이겠죠. 이런 좋은 비판들은 적었고 일차원적인 비난들은 많았습니다. 2014년 <고지라>를 관람하기 위해, 관객들이 <고지라> 시리즈를 섭렵해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충실한 지식들이 없는 상황에서 남한 관객들은 너무 2014년 <고지라>를 공격했습니다.



남한 문화는 2014년 <고지라> 같은 영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숱한 <고지라> 시리즈와 <모스라> 시리즈와 <가메라> 시리즈는 국내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남한 문화는 거대 괴수 이야기를 제대로 접한 적이 없습니다. 국내 괴수 영화들은 머나먼 이야기가 되었죠. <불가사리>는 그저 신기한 북한 영화에 불과하고, 2000년대에 제대로 된 국내 괴수 영화는 없었어요. <용가리>는 뭐…. 당연히 2014년 <고지라>는 지루했고 밋밋했고 심심했을 겁니다. 게다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퍼시픽 림>이 난리법석을 부렸기 때문에 남한 관객들은 <고지라>가 훨씬 심심하다고 여겼겠죠. 2014년 <고지라>가 개봉했을 때, 너도 나도 <고지라>를 비난했으나,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고지라> 시리즈와 <모스라> 시리즈와 <가메라> 시리즈를 섭렵했을까요?


남한 관객들은 거대 괴수 이야기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남한 관객들은 그저 비싼 블록버스터 영화를 비난했을 뿐입니다. 2014년 <고지라>가 거대 괴수 영화임에도, 남한 관객들은 거대 괴수를 제외하고 그저 블록버스터 영화를 거론했을 뿐입니다. 거대 괴수라는 관점에서 남한 관객들은 2014년 <고지라>를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남한 관객들이 그런 것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일차원적인 비난들이 늘어난다면, 그건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심지어 아직 몬스터버스 시리즈 이외에 남한 관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대 괴수 영화들은 없습니다. 거대 괴수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면, 사람들은 소설들을 읽고 게임들을 플레이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당한 소설들이나 게임들은 부족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거대 괴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죠.



이건 2014년 <고지라>를 향한 모든 비판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2014년 <고지라>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어야 했으나, 그런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관객들이 그걸 비판한다면, 2014년 <고지라>는 그걸 겸손히 받아들여야 하겠죠. 하지만 숱한 <고지라> 시리즈와 <모스라> 시리즈와 <가메라> 시리즈가 개봉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직 2014년 <고지라>만 개봉한 상황에서, 거대 괴수들을 떠들 수 있는 충분한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일차원적인 비난들이 늘어난다면, 그건 꽤나 안타까운 현상일 겁니다. 남한 관객들이 <고지라> 시리즈와 <모스라> 시리즈와 <가메라> 시리즈를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2014년 <고지라>가 욕을 들어먹는다면, 그건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죠. 현실은 아주 제한적이고,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남한 관객들은 2014년 <고지라>를 바라봤습니다.


문제는 그것이죠. 현실이 제한적이라는 사실. 토대가 풍성하다면, 풍성한 토대 위에서 다양한 담론들은 열매들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오직 특정한 한 가지 의견만을 고집하겠죠. 이건 비단 거대 괴수 이야기에만 해당하지 않으나, 남한 현실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거대 괴수를 이야기하기 전에 거대 괴수를 이야기할 수 있는 토대 그 자체는 너무 제한적입니다. 2014년 <고지라>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고 해도, 5톤짜리 트럭으로 욕설들이 쏟아진다고 해도,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빈약한 토대 위에서 <고지라>가 욕을 들어먹는다면, 그건 꽤나 문제일 겁니다. 앞으로 몬스터버스가 인기를 끈다면, 이런 상황이 바뀔까요? <고지라: 괴수왕>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면, 남한 문화 역시 좀 더 바뀔지 모릅니다. 어쩌면 <고지라: 괴수왕>은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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