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시스의 복수>의 보가와 휠 바이크 본문
영화 <시스의 복수>에서 그리버스 장군을 조사하기 위해 오비완 케노비는 우타파우 행성으로 날아갑니다. 오비완 케노비는 그리버스 장군과 광검 대결을 벌이고 그리버스를 열세로 밀어넣죠. 이 부분에서 광검 대결 연출은 다소 가볍고 장난스럽습니다. <시스의 복수>에서 주연 악당임에도 그리버스 장군은 별로 무게 중심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리버스 장군은 2D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가 보여준 묵직함과 위협을 날려버리고 가벼운 악당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리버스 장군은 주연 악당보다 소악당 같습니다. 장군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죠.
그리버스 장군이 망토를 벗었을 때, 뼈다귀 같은 신체는 위엄을 빼았습니다. 어떤 관객들은 이런 뼈다귀 같은 신체를 좋아할지 모르나, 이런 신체는 상대를 압도하는 위엄과 거리가 멀어요. 어쩌면 조지 루카스는 그리버스 장군을 소악당으로 사용하기 원했을지 모릅니다. 2D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와 달리, 조지 루카스는 그리버스 장군을 띄워주고 싶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에서 최종 보스는 그리버스 장군이고, 최종 보스는 무시무시해야 합니다. <시스의 복수>는 다릅니다. <시스의 복수>에서 흑막과 최종 보스는 은하 제국 황제와 다스 베이더입니다.
만약 그리버스 장군이 너무 인상적으로 위엄을 떨친다면, 그런 위엄은 은하 제국 황제와 다스 베이더를 밀어낼 겁니다. 은하 제국 황제와 다스 베이더는 영화 후반부를 완전히 장악해야 했어요. 위엄이 넘치는 그리버스 장군이 계속 살아있다면, 제국 황제와 다스 베이더는 그렇지 못했겠죠. 그래서 그리버스 장군은 꼴사납게 쓰러졌을지 모릅니다. 제국 황제가 흑막을 드러내고 다스 베이더가 타락할 때까지, 그리버스 장군은 그저 시간을 끄는 역할에 불과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클론 워즈>와 달리, <시스의 복수>는 그리버스 장군을 가볍게 다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볍기 때문에 그리버스 장군은 몇몇 날렵한 액션을 펼쳤습니다. 다스 베이더를 비롯해 다스 몰이나 두쿠 백작은 절대 그런 날렵한 액션을 펼치지 못할 겁니다. 다스 몰과 두쿠 백장은 위엄과 체면을 지켜야 하고, 그리버스 장군과 달리, 다스 몰과 두쿠 백장은 '약삭빠르게' 도망치지 못하겠죠. 우타파우 행성에서 오비완과 그리버스가 싸우는 동안, 클론 부대는 우타파우를 기습하고 클론 부대와 드로이드 부대는 서로 싸웁니다. 그 덕분에 그리버스는 도망치기 위한 시간을 벌었고 개인용 휠 바이크에 탑승합니다. 이름과 달리, 휠 바이크에는 네 다리들이 있습니다. 지형이 험난할 때, 휠 바이크는 네 다리들을 이용하나, 이름처럼 평지에서 휠 바이크는 커다란 바퀴로 신나게 달리죠.
오비완은 휠 바이크를 쫓아가야 했습니다. 무엇으로? 그건 Varactyl입니다. Varactyl은 수리 얼굴과 도마뱀 신체와 게코 발바닥이 있는 거대한 도마뱀 같은 동물입니다. 오비완이 탑승한 Varactyl은 보가(Boga)라고 불려요. 보가에 올라탄 이후, 오비완은 그리버스를 쫓습니다. 아무리 휠 바이크가 신나게 질주한다고 해도, 보가 역시 느리지 않습니다. 이상한 울음소리(워러러러러럭~~)와 함께 보가는 뛰어내리고 미끄러지고 달리고 휠 바이크를 추격합니다. 이 장면은 그저 짧은 액션 장면에 불과하나, 어떤 관객들은 상징이나 비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버스 장군은 기계입니다. 그리버스는 완전한 기계가 아니나, 겉모습은 기계죠. 알맹이가 생명체라고 해도, 겉모습은 기계입니다. 오비완이 가슴 덮개를 뜯어내기 전까지, 고유한 기침 소리 이외에 그리버스는 생명체라는 특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죠. 반면, 오비완은 생명체, 인간입니다. 오비완은 아무 기계 장치를 덧대지 않았습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달리, 심지어 오비완에게는 의수조차 없죠. <시스의 복수>는 오비완에게 기계 장치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버스 장군처럼, 휠 바이크는 기계입니다. 네 다리들로 뛰어다니는 모습은 야생 동물 같으나, 휠 바이크는 기계입니다. 기계 같은 그리버스와 기계 휠 바이크는 서로 잘 어울리죠.
반면, 오비완 케노비가 인간인 것처럼, 보가는 동물입니다. 보가는 생명체입니다. 휠 바이크와 달리, 보가에게는 바퀴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퀴가 달린 야생 동물을 상상하지 않죠. 지구 생태계에 그런 동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타 워즈> 시리즈는 방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여기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쩌면 바퀴가 달린 동물 역시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보가는 그런 동물이 아닙니다. 보가는 수리 머리가 있는 거대한 녹색 도마뱀이고, 도마뱀처럼 보가는 뒤뚱거리며 빠르게 휠 바이크를 뒤쫓습니다.
따라서 이건 동물과 기계, 생명체와 기계가 서로 대결하는 장면이죠. 기계는 부정적이고, 생명체는 긍정적입니다. 우리 인간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생명체와 기계 중에서 생명체가 훨씬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겁니다. 물론 어떤 창작물들은 생명체보다 기계에게 손을 들어줍니다. <그리드맨> 같은 창작물은 기계 로봇이 생명체 괴수를 두들겨패는 구도를 보여줍니다. 거대 로봇이 거대 괴수를 두들겨팬다는 대결 구도는 드물지 않죠. 하지만 인간이 거대 로봇을 조종하기 때문에 거대 로봇은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자체로서 거대 로봇은 박수를 받지 못하겠죠. 사람들은 자신들을 거대 로봇에게 투영하기 원하겠죠.
사실 SF 세상에서 생명체와 기계가 싸운다는 대결 구도는 드물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유형들이 있고, 인간과 로봇의 싸움은 가장 흔한 유형일 겁니다. 마블 코믹스에서 아이언맨 헐크버스터와 헐크가 싸울 때, 이건 기계와 생명체의 대결이 될 수 있습니다. 소설 <베헤모스>에서 바다 촉수 괴수 베헤모스와 집게들이 달린 순양 전함 괴벤이 뒤엉킬 때, 이것 역시 생명체와 기계의 싸움이 될 수 있어요. 영화 <에일리언 2>에서 여왕 에일리언과 파워 로더를 조종하는 리플리가 대치할 때, 영화 <퍼시픽 림>에서 나이프 헤드가 집시 데인저를 야성적으로 물어뜯을 때, 게임 <워해머 40K>에서 베인 블레이드가 카니펙스와 대치할 때, 모두 생명체와 기계의 싸움을 과장하거나 상징하거나 확장할 수 있을 겁니다.
뭐, 어떤 SF 팬들은 (한때 꽤나 화제가 되었던) 로보캅과 터미네이터의 싸움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로보캅과 터미네이터는 비슷한 것 같으나, 사실 로보캅(겉은 기계이고 알맹이는 생체)과 터미네이터(겉은 생체이고 알맹이는 기계)는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이런 사례들처럼, SF 세상에서 대조적인 생명체와 기계는 드물지 않은 소재이고 화제입니다. 영화 <트루 라이즈>가 말과 모터 사이클의 경주를 보여주는 것처럼, SF 이외에 다른 장르들 역시 생명체와 기계의 싸움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세상에는 온갖 괴수들과 개조 생명체들과 로봇들과 첨단 장비들이 있고, 그것들은 생명체와 기계라는 구도를 이렇게 저렇게 대조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결에서는 생명체가 긍정적이고, 어떤 대결에서는 기계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인간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체가 긍정적이라고 해석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보가는 긍정적이고, 휠 바이크는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조지 루카스가 그걸 의도했을까요? 조지 루카스가 기계를 부정하고 유기체 동물을 긍정하기 원했을까요? 전편 <클론의 습격>에서 드로이드 생산 공장을 방문했을 때 이렇게 C-3PO는 외칩니다. "세상에, 기계가 기계를 만들다니!" 언뜻 이런 대사는 기계 문명을 부정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스 베이더는 가장 비중이 커다란 악당이고 동시에 기계 인간이죠. 심지어 기계이기 때문에 다스 베이더는 포스 번개를 뿌리지 못하죠. 다스 베이더를 고려한다면, 관객들은 <스타 워즈> 시리즈가 기계들을 부정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스타 워즈> 시리즈는 기계들에게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R2-D2와 C-3PO는 <스타 워즈>를 대표하는 드로이드입니다. 어쩌면 루크 스카이워커보다 R2-D2는 훨씬 유명할지 모릅니다. 게다가 <스타 워즈> 시리즈는 생명 현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생태계 변화, 새로운 생물종, 생물 다양성은 중요한 소재가 아니죠. <스타 워즈> 시리즈는 온갖 희한한 생명체들을 보여주나, 그건 그저 신기한 배경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요. 양쪽이 똑같이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도, <듄>과 달리, <스타 워즈>는 구태여 생태계 변화를 강조하지 않죠.
따라서 보가가 휠 바이크를 쫓는 장면은 그저 우연에 불과할 겁니다. 조지 루카스는 이 장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지 모르죠. 하지만 커다란 동물이 휠 바이크를 뒤쫓는 장면은 보기에 즐겁습니다. 이런 스페이스 오페라 이외에 무엇이 기계를 추격하는 희한한 동물을 보여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