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신비스러운 생체 발광에서 비일상적인 상상으로 본문
[생체 발광은 신비스럽고 기이하고 아름답습니다. 이건 비일상적인 상상력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종종 애니메이션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심해를 보여줍니다. 비단 해안과 표층 수면만 아니라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도 옥토넛 대원들은 활약합니다. 평소에 옥토넛 대원들이 바다에 나갈 때, 그들은 헬멧과 산소통을 챙깁니다. 그들은 다른 특별한 복장을 챙기지 않습니다. 반면, 옥토넛 대원들이 심해로 내려갈 때, 그들은 두꺼운 심해 잠수복을 입습니다.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옥토넛 대원들은 심해 잠수복을 입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심해 잠수복이 튼튼하다고 해도, 심해는 위험하고 이질적입니다. 심해에서 방향을 구분하기는 꽤나 힘들고, 사방이 캄캄하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기 좋습니다.
작은 심해 상어가 나오는 어떤 에피소드에서 콰지와 페이소는 길을 잃습니다. 게다가 사방에서 심해 생명체들이 빛들을 뿜었기 때문에, 방향을 구분하기는 훨씬 어려웠습니다. 콰지와 페이소는 심해가 우주 같다고 느낍니다. 드넓고 깊고 컴컴한 심해에서 아주 작은 생명체들이 빛들을 반짝거린다면, 이런 장면은 정말 우주 같을 겁니다. 심해에는 비단 이런 작고 작은 발광 생명체들만 아니라 아주 길다란 관해파리 역시 삽니다. 관해파리 역시 빛을 뿜습니다. 길다란 관해파리가 하늘거리고 반짝거리며 어두운 물살을 가를 때, 이런 장면은 꽤나 환상적입니다.
애니메이션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아이들을 위한 과학 학습 애니메이션입니다. 하지만 작고 작은 심해 생명체들과 관해파리는 정말 신비로운 장면들을 연출합니다. 심지어 거창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조차 이런 장면들을 쉽게 보여주지 못해요.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얼마나 발광 생명체들이 아름다운지 강조합니다. 비록 그림체가 귀엽고 아기자기하다고 해도, 심해 에피소드들은 어느 정도 감동적입니다. 아무리 거창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시각 효과들을 때려붓는다고 해도, 거창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이런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쉽게 모방하지 못할 거에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신비스러운 아름다움보다 폭력과 살인에 치중합니다. 폭력과 살인 없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존재하지 못해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고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합니다. 영화 주인공 역시 누군가를 죽여야 합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살인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 폭력과 살인은 그걸 밀어냅니다. 신비스러운 아름다움보다 폭력과 살인은 훨씬 중요합니다.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가 폭력과 살인보다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한다면, 사람들은 이런 영화가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할 겁니다.
반면, 폭력과 살인 없이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사건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탐험과 연구와 구조가 주된 소재이기 때문에, 폭력과 살인 없이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해양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어요. <바다 탐험대 옥토넛>이 심해 발광 생명체들을 우아하게 보여준다고 해도, 폭력과 살인은 이걸 밀어내지 않습니다. 이건 <옥토넛>에 폭력과 살인이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먹이 그물망은 끊임없는 폭력입니다. 바다에는 커다란 포식동물들이 있습니다. 백상아리가 페이소를 잡아먹기 원한다면, 여기에는 폭력이 있을 겁니다.
바다 악어가 옥토넛 대원들을 노려본다면, 이것 역시 폭력이 될 수 있어요. 아마존 강에서 아나콘다는 옥토넛 대원들을 습격합니다. 심해에서 관해파리 역시 옥토넛 대원들을 잡아먹기 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폭력과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보여주는 폭력은 다릅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해양 포식동물들은 폭력을 휘두릅니다. 백상아리가 페이소를 쫓아간다고 해도, 이건 그저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다고 해도, 여기에는 왜곡이나 세뇌나 편견이나 얄팍한 시선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시각 효과들을 때려붓는다고 해도, 폭력과 살인은 쉽게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밀어냅니다. 사실 블록버스터 영화들에는 온갖 번쩍거리는 것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자체로서 이것들은 미학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들은 싸우고 부수고 죽여야 합니다.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신비스러운 심해 장면을 중시할 수 있어요. 대시와 페이소와 콰지는 싸우고 부수고 죽이지 않습니다. 콰지는 꽤나 열심히 오도방정을 떠나, 오도방정 콰지 역시 싸움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은 지구에 얼마나 신비스러운 생명체들이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작고 작은 발광 생명체들은 정말 바다를 우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언제나 <옥토넛>은 발광 생명체들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옥토넛>에서 신비스럽게 빛을 뿜는 생명체들은 많지 않습니다. 표층 수면과 해안에서 발광 생명체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생명체들은 스스로 빛을 뿜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가 고등 동물이라고 부르는 생명체들은 빛을 뿜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생명체가 스스로 빛을 뿜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체와 발광 사이에는 커다란 관계가 없습니다. 형설지공이 정말이라고 해도, 우리는 생명체와 발광을 쉽게 연결하지 않아요.
가끔 표층 수면과 해안에서 사람들은 생체 발광을 목격합니다. 포털 사이트 이미지 검색창에서 사람들이 푸른 생체 발광(blue bioluminescence)을 검색한다면, 사람들은 신비스러운 해양 생체 발광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장면은 정말 장관입니다. 이런 장면은 우주가 바다로 내려온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푸르게 빛나는 오징어 무리(이른바 반딧불 오징어)로서 일본 도야마의 나메리카와 해안은 유명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생체 발광을 목격한다면, 사람들은 왜 생물 다양성이 신비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생체 발광에는 여러 목적들이 있습니다.
오징어들은 생체 발광을 이용해 자신을 숨깁니다. 바다 속에서 오징어는 빛을 내고 바다 위의 빛과 바다 아래의 빛을 혼합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오징어는 자신을 숨길 수 있어요. 반면, 반딧불처럼, 어떤 동물은 빛을 이용해 소통합니다. 불우렁쉥이가 발광 기관을 깜빡거릴 때, 다른 불우렁쉥이는 거기에 반응합니다. 바다 달팽이가 반짝거릴 때, 이건 경고 표시인지 모릅니다. 이건 자신이 위험하거나 맛이 없다는 경고인지 모릅니다. 포식자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오징어가 먹물을 뿜는 것처럼, 오징어는 화학 혼합 물질을 빛낼 수 있습니다. 초롱아귀는 빛나는 미끼를 이용해 먹이를 유인합니다.
하지만 <바다 탐험대 옥토넛>이 심해 발광 생명체들을 보여주는 것처럼, 도야마의 나메리카와 해안에서 파란 오징어 무리가 빛나는 것처럼, 많은 발광 생명체들은 해양 생물 다양성에 속합니다. 육상 발광 생명체들은 훨씬 적습니다. 게다가 육상 인간이 쉽게 만날 수 있는 포유류들은 빛을 뿜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을 비롯해 많은 포유류들은 빛을 뿜지 않습니다. 밤중에 동물들은 두 눈을 번쩍일 수 있으나, 이건 생체 발광보다 반사에 가깝습니다. 비디오 게임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나르가쿠르가는 붉은 안광 잔상을 남기나, 현실에는 이런 거대 육상 동물이 없습니다.
오늘날 21세기 도시에서 우리는 수많은 불빛들에 둘러싸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전기 불빛들입니다. 우리는 전기 불빛들에 익숙합니다. 기계들이 번쩍거리며 빛난다고 해도, 이건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태블릿 컴퓨터가 전원 표시등을 반짝거리거나, 가로등이 은은하게 불빛을 비추거나, 네온 사인이 요란하게 반짝거린다고 해도, 우리는 놀라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좌측 깜빡이를 반짝거리고 좌회전한다고 해도, 우리는 좌측 깜빡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전기 불빛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생체 발광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대한 동물이 스스로 빛난다면, 우리는 그게 이질적이라고 여길 겁니다.
[모스라가 형형색색으로 날개들을 반짝거릴 때, 모스라는 훨씬 초자연적인 생명체가 될 겁니다.]
거대 괴수들 역시 이질적입니다. 고지라는 커다란 골판들을 파랗게 빛냅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들은 이런 생체 발광을 적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예고편들에서 거의 대부분 고지라는 골판들을 파랗게 빛냅니다. 바닷속에서 고지라가 모나크 탐사대를 마주볼 때, 고지라가 바다 위로 올라오고 하늘을 향해 방사 열선을 뿜을 때, 도시에서 기도라에게 달려들 때, 거의 대부분 고지라는 골판들을 파랗게 반짝거립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들에서 비단 고지라만 아니라 다른 괴수들 역시 생체 발광을 보여줍니다. 라돈은 화산에서 나왔고 언제나 붉은 불똥들을 흩날립니다.
이건 자체적인 생체 발광이 아니나, 생체 발광 효과와 비슷합니다. 고지라는 푸르고, 라돈은 붉습니다. 모스라는 날개 무늬들을 반짝거립니다. 왜 모스라가 날개 무늬들을 반짝거리는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건 신의 광선을 퍼뜨리기 위한 준비 과정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모스라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릅니다. 기도라가 번개를 토하거나 충전하기 때문에, 기도라는 노랗게 빛납니다. 고지라, 라돈, 모스라와 달리, 기도라는 계속 빛나지 않으나, 분명히 기도라 역시 빛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거대 괴수들이 파랗게, 붉게, 화려하게, 노랗게 빛나나요?
영화 제작자들이 생체 발광을 이용해 이질적인 거대 괴수들을 강조하기 원했나요? 생체 발광이 거대 괴수들을 독특하게 장식할 거라고 영화 제작자들이 기대했나요? 아니면 이게 그저 번쩍거리는 시각 효과의 일부에 불과한가요? 이유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체 발광이 신비로운 현상인 것처럼, 모스라가 복잡한 날개 무늬들을 화려하게 빛낼 때, 이 장면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은 거창한 블록버스터 영화이고, 거대 괴수들은 열심히 싸우고 부수고 죽일 겁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비단 이런 싸움과 폭력과 학살만이 아니라 우아하고 거대한 생체 발광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이것 역시 거대 괴수를 덕질하기 위한 방법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