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라이프>와 우주 속의 생명 현상 본문
영화 <라이프>는 '국제 우주 정거장 속의 외계 생명체'를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국제 우주 정거장과 외계 생명체일 겁니다. 하지만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이 훨씬 중요할까요? 구태여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관객들은 무엇이 훨씬 중요하다고 선택해야 할까요? 대답은 국제 우주 정거장일 겁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이 현실이기 때문이죠. 인류가 지구 궤도 밖으로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사람들이 지구 외부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라이프>는 외계 생명체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구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면, <라이프>는 외계 생명체를 상상하지 못했겠죠. 외계 생명체는 그런 시각에서 비롯했습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은 그런 시각을 뒷받침합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을 바라보는 순간, 관객들은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는 가능성을 고려할 겁니다. 그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라이프>는 외계 생명체를 언급할 수 있죠. 이 영화에서 흐물거리는 외계 생명체, 이른바 켈빈은 뜸금없는 상상력이 아닙니다. 켈빈은 국제 우주 정거장과 우주 진출을 고려하는 가능성에서 비롯했습니다. 우주 진출이라는 연장선 위에서 켈빈은 존재합니다. 그런 연장선이 없다면, 켈빈은 존재하지 못하겠죠.
영화 <라이프>에서 국제 우주 정거장은 단순한 배경 무대가 아닙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은 우주 진출을 고려하는 가능성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라이프>의 배경 무대가 일상적인 가정 주택이라면, 우주 진출 가능성은 날아갈 테고, 영화는 완전히 다른 감성을 풍기겠죠. 일상적인 가정 주택 속의 외계 생명체와 국제 우주 정거장 속의 외계 생명체는 다릅니다. 가정 주택에서 평범한 가정 주부가 외계 생명체와 싸운다면, 이런 장면은 우주로 진출하는 첨단 과학을 상징하지 못할 겁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은 교두보이고 전초 기지이고 관문입니다. 이건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기 위한 매개체입니다. 그런 상징이 있기 때문에 외계 생명체 켈빈은 현실에서 이어지는 상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우주는 미지의 공간입니다. 아무도 우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지구인들은 무인 탐사선들을 날렸으나, 무인 탐사선들은 행성들과 위성들과 우주 공간을 자세히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무인 탐사선들은 아주 중요한 뭔가를 놓쳤을지 모릅니다. 아직 무인 탐사선들은 우주를 깊이 파고들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우주에는 훨씬 위험하고 이질적인 것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건 아주 끈질긴 생명체일지 모릅니다. 켈빈은 그런 위험과 이질성을 반영합니다. 켈빈은 우주 진출이라는 가능성과 공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제 우주 정거장과 켈빈은 서로 떨어지지 못합니다. 켈빈은 우선하지 못합니다. 우주 정거장 때문에 켈빈은 존재합니다.
어떤 관객들은 물을지 모릅니다. "왜 흐물거리는 공격적인 생명체가 등장하는가? 이런 외계 생명체 없이, 우리는 얼마든지 미지의 우주가 위험하다고 상상할 수 있다." 네, 맞습니다. 흐물거리는 공격적인 외계 생명체 없이 우리는 우주가 위험하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주가 위험하다고 인식하기 위해 우리가 구태여 흐물거리는 외계 생명체를 상정할 필요는 없죠. 왜 영화 제작진이 켈빈을 상상했을까요? 왜 영화 제작진이 국제 우주 정거장에 다른 위협이 아니라 켈빈을 집어넣었을까요?
아서 클라크를 비롯해 수많은 하드 SF 작가들이 보여준 것처럼, 외계 생명체 따위가 없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은 우주를 위험하고 신비롭고 장대하고 막막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외계 생명체 없는 하드 SF 소설들은 수두룩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외계 생명체에 끌릴 겁니다. 우리가 생명체이기 때문이고, 생명 현상이 꽤나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우주에서 생명 현상은 가장 독특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드 SF 작가들 역시 외계 생명체를 묘사하고 싶어합니다. 영화 <라이프> 역시 다르지 않겠죠.
왜 생명 현상이 독특할까요? 왜 이 우주에서 생명 현상이 가장 독특할까요? 지구 생태계처럼, 생명체들에게는 특별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생명체들은 아무 환경에나 적응하지 못합니다. 다양한 미생물들은 그럴 수 있고, 심지어 미생물들은 우주에 나갈 수 있습니다. 우주에서 미생물들은 생존할 수 있고, 어떤 과학자들은 지구 생명체가 다른 행성에서 왔을지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훨씬 '고등한' 생명체들은 (고등하고 고귀하신 몸이기 때문에) 아무 환경에나 적응하지 못합니다. 고등한 생명체들에게는 특별한 환경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특별한 조건들 때문에 우주 생물학자들은 외계 생명체가 서식하는 행성들이 제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들과 위성들이 있고, 과학자들은 그것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외계 생명체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들 중에서 오직 일부 행성들과 위성들에만 외계 생명체들은 존재할 겁니다. 게다가 외계 생명체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미생물들이거나 '하등한' 생명체들일지 모릅니다. 지구에서 진화 역사는 35억 년 이상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30억 년 동안 진화 역사는 '하등한' 역사였습니다. '고등한' 역사는 고작 5억 년에 불과하죠. 따라서 외계 생명체들 역시 그럴지 모릅니다.
물론 이건 고정 관념일지 모릅니다. 아직 어떤 과학자도 외계 생명체를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오직 지구 생명체들만 연구했습니다. 게다가 아직 과학자들은 모든 지구 생명체를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구에는 과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생명체가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앞으로 진화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생명체를 낳을지 모릅니다. 어머니 자연이 무엇을 낳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외계 생명체는 우주 생물학자들이 상상하는 것과 많이 다를지 모릅니다. 과학자들은 생명 현상이 무엇인지 아직 완전히 밝히지 못했습니다.
아직 과학자들은 최초 생명체를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생명체가 나타났는지 과학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외계 생명체를 가정한다면, 그건 오류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기 머나먼 우주에는 정말 우주 드래곤(!)이 날아다니고 우아하게 열선을 뿜는지 모르죠. 하지만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과학자들은 부족한 지식을 이용해 생명 현상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생명 현상'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한 특별한 화학 체계 조성. 그런 조성에서 비롯하는 번성과 진화. 이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생명 현상입니다.
이 우주에서 생명 현상 이외에 다른 것들은 이런 특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우주에서 오직 생명 현상만 이런 특징을 드러냅니다. '살아있다'는 문구는 이런 특징입니다. 하지만 위 문단이 이미 설명한 것처럼, 이런 특징에는 특별한 환경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과학자들은 첨단 망원경들을 이용해 숱한 우주 현상들을 관찰했으나, 그것들 중에서 생명 현상은 없죠. 생명체는 살아있으나, 살아있기 때문에 오직 제한적인 환경에서만 생명체는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체가 살아있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외계 생명체가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주를 상상할 때, 외계 생명체는 정말 매혹적인 소재가 됩니다. 영화 <라이프>는 그런 매혹적인 소재를 끔찍하게 변주했습니다. 어떤 관객들은 이 영화가 그저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는 원초적인 공포만을 자극한다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흐물거리는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은 얼마든지 생명 현상이 매혹적이라고 묘사할 수 있죠. 분명히 영화 <라이프>는 원초적인 핏빛 공포를 자극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원초적인 핏빛 공포와 함께 이 영화는 어떻게 생명 현상이 줄기차고 집요하게 생존하기 위한 길을 찾는지 보여줍니다.
우주 정거장 승무원들(과 관객들)에게 켈빈은 끔찍한 식인 괴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 중심적인 시각일지 모릅니다. 켈빈 입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켈빈은 최선을 다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명 현상이 줄기차고 집요하게 생존하기 때문에 생명 현상은 매혹적이죠. 관객들이 그런 생명 현상을 인식한다면, 관객들은 <라이프>를 좀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관객들은 켈빈이 아름답다고 느낄지 모르죠. 뭐, 그렇다고 해도 켈빈은 끔찍하죠. 결국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 중심적으로 우리는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