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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쏘아올린 불꽃>은 세계를 고정시키지 않는다 본문

SF & 판타지/또 다른 시간 속으로

<쏘아올린 불꽃>은 세계를 고정시키지 않는다

OneTiger 2018. 9. 10. 19:24

[사랑이 영원으로 승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연인은 세계를 고정시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별'은 꽤나 통속적인 소재입니다. 수많은 소설들, 만화들, 영화들은 이별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야 하는 슬픔을 그립니다. 이별에는 여러 종류들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가족과 떨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친구와 떨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스승과 떨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애완동물과 떨어져야 하고…. 하지만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질 때, 그건 가장 커다란 비극이 될 것 같습니다.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야기는 가장 비극적인 이별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나 스승과 헤어지는 이야기보다 연인과 헤어지는 이야기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로맨스 소설이나 만화나 영화에 나올 때, 등장인물들은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이나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이나 윤회를 거듭하는 사랑 운운하죠. SF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정말 그런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릴 수 있고요. 연인은 한쌍입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나 스승들은 많을 수 있으나, 연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연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물론 이건 시대적인 고정 관념일지 모릅니다. 왜 연인이 하나여야 하나요? 왜 만인이 만인을 사랑하지 못할까요?

 

 

흔히 우리는 집단 성교가 변태 같은 미친 짓거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시대적인 고정 관념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미래에 집단 성교는 아주 당연한 행위가 될지 몰라요. 미래 사람들은 집단 성교를 거부하는 과거 사람들이 웃기다고 여길지 모르죠. 하지만 어쨌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연인이 오직 한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인이 헤어질 때, 그건 친구나 가족이나 스승과 헤어지는 이야기보다 슬픕니다. 헤어지는 연인은 많은 인기를 끄는 소재이고, 숱한 로맨스 소설들과 만화들과 영화들은 이별을 극복하고 싶어합니다.

 

SF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아예 비일상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그런 요소를 이용해 연인은 이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연인을 만나기 위해 로맨스 등장인물들은 시간을 뛰어넘고 시대를 뛰어넘습니다. 연인들이 시대를 초월할 때, 그 사랑은 영원성으로 승화할 수 있을 테고, 사람들은 거기에 감동을 받겠죠. 그래서 저는 연애 이야기가 시간 여행이나 타임 슬립을 이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임 슬립할 수 있다면, 연인은 이별을 극복하고 서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결혼을 서약할 때, 우리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된다고 운운합니다. 하지만 타임 슬립은 아예 그걸 뛰어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수 있습니다.

 

 

타임 슬립을 이용한 연애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건 아주 진부한 소재일 겁니다. 그렇게 SF 설정과 연애 이야기는 서로 만날 수 있죠. 고려원 출판사의 <시간여행 SF 걸작선>은 어떻게 SF 설정과 연애 이야기가 두근두근 어울릴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타임 슬립을 이용한다고 해도, 이런 연애 이야기는 SF 장르보다 로맨스 장르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타임 슬립은 그저 연애를 보조하는 장치에 불과할지 모르죠. 많은 평론가들은 SF 장르가 시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SF 장르는 세계가 무너지거나 흥하거나 바뀌는 모습을 담아야 합니다.

 

그렇게 SF 장르는 세계를 논증해야 합니다. SF 장르는 고정적인 세계를 바라봐서는 안 될 겁니다. 왜 링월드가 흥미로운 SF 설정일까요? 우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보적인 첨단 기술을 연구할 수 있고, 우주선이나 인공 지능이나 개조 생명체는 세상을 뒤집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고 뒤집어진다면, 우리 역시 바뀔 겁니다. 우리의 관념이나 신체 역시 바뀌겠죠. 링월드는 그저 초거대 우주 구조물이 아닙니다. 링월드는 어떻게 기술적인 진보가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세계가 고정적이라면, 링월드 역시 존재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타임 슬립 연애 이야기는 세계를 논증하지 않습니다. 이런 연애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는 과정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인간이 관념과 육체를 바꾸는지 말하지 않아요. 이는 타임 슬립 연애 이야기가 언제나 SF 장르를 빗나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간여행 SF 걸작선>이 보여주는 것처럼, 타임 슬립 연애 이야기는 SF 장르와 가까워질 수 있어요. 하지만 타임 슬립 연애 이야기가 시대 변화보다 연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 이야기에서 타임 슬립은 그저 연애를 보조하는 들러리에 불과하겠죠. 그런 타임 슬립 이야기 역시 SF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겠으나, 사람들은 시대 변화보다 연애에 더 주목하겠죠.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SF 장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요? 이런 연애 이야기가 어떻게 타임 슬립을 세계와 연결할 수 있을까요? 애니메이션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는 타임 슬립과 연애를 합쳤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자꾸 남자는 시간을 거스릅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남자가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지 <쏘아올린 불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평행 세계나 양자 역학이 중요하겠어요? 남자는 구슬을 던지고, 시간을 거스르고, 사랑하는 여자를 돕습니다. 다른 설명은 없습니다.

 

 

<쏘아올린 불꽃>에서 기술적인 진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쏘아올린 불꽃>은 기술적인 진보가 세상을 바꾸거나 무너뜨리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비일상적인 타임 슬립은 그저 보조 장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쏘아올린 불꽃>이 SF 울타리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 애니메이션은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머물겠죠. 그렇다고 해도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타임 슬립을 거듭할 때마다 <쏘아올린 불꽃>이 희한한 세계를 조성한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타임 슬립할 때마다, 세계는 기이해지고, 두 연인은 사랑이 영원성으로 승화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연인은 계속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고, 세계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세계가 고정적이지 않을 때, 두 연인은 서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요. 고정적이지 않은 세계. SF 세상에서 그건 핵심적인 개념이고, 적어도 <쏘아올린 불꽃>은 그런 개념을 살짝 드러내는군요. 만약 이 애니메이션이 타임 슬립을 이용해 뭔가 감동을 선사한다면, 애니메이션이 그런 개념을 살짝 포함했기 때문일 겁니다. <쏘아올린 불꽃>은 서글픈 이별이라는 개인적인 감성을 기이한 세계라는 거대한 규모로 확장했습니다.

 

 

개인과 세계가 만날 때, 개인적인 고민이 세계적인 변화로 확장할 때, SF 장르는 짜릿한 감성을 발산합니다. 필립 딕이 쓴 <사기꾼 로봇>을 보세요. 이 소설이 훌륭한 SF 소설인 이유는 개인적인 고통이 세계적인 비극으로 확장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SF 창작물은 개인을 세계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류 문학은 그렇게 확장하지 못합니다. 주류 문학은 개인적인 고민을 그저 개인적인 고민에서 멈춥니다. 여기에 어떤 로맨스 전쟁 소설이 있다고 가정하죠. 집안 사정 때문에 두 연인은 서로 헤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두 연인은 도망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때 2차 세계 대전이 터졌고, 남자는 군대에 가고, 여자는 고향에 남습니다. 전쟁 때문에 두 연인은 이별했습니다. 이안 매큐언이 쓴 <속죄> 같은 소설은 이런 부류에 속하겠죠.

 

하지만 이게 개인적인 아픔(이별)이 세계적인 비극(전쟁)으로 확장한 사례일까요? 이게 개인적인 아픔이 세계적인 비극과 만나는 사례일까요? 아니, 이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아픔이 세계적인 변화를 촉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이별은 2차 세계 대전을 촉발하지 않았죠. 전쟁은 개인적인 비극을 강조하나, 그건 그저 강조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이런 주류 문학은 세계가 계속 바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세계적인 변화인 것처럼, 미래는 계속 바뀔 겁니다. 미래에는 또 다른 세계적인 격변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류 문학은 그런 변화를 전망하지 않아요. 개인과 세계를 연결시킨다고 해도, 세계를 들여다본다고 해도, 주류 문학은 고정적이고 단편적인 시각을 유지합니다.

 

 

반면,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는 이별을 앞둔 두 연인과 기이한 세계 변화를 서로 연결하고, 세계가 고정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두 연인이 이별을 거부할 때마다, 세계는 훨씬 기이해지고, 이별이라는 개인적인 슬픔은 기이한 세계 변화라는 거대한 규모로 확장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진이 이런 구도를 중요하게 고려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쏘아올린 불꽃>은 미래적인 전망이나 시대적인 고정 관념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겠죠. 하지만 <쏘아올린 불꽃>은 개인적인 이별이 기이한 세계로 확장하는 구도를 살짝 (아주 살짝) 보여주고, 그런 점은 인상적입니다.

 

적어도 <쏘아올린 불꽃>은 두 연인이 타임 슬립을 이용해 행복하게 산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계속 바뀔 수 있고, 그건 고정적이지 않아요. 어쩌면 서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두 연인은 영원히 기이한 세계들을 계속 떠돌아야 하는지 모르죠. <쏘아올린 불꽃>은 확실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들은 세계가 고정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어느 정도 SF 장르와 맞닿을 수 있겠죠. 그래서 두 연인이 함께 걷는 뒷모습을 바라볼 때, 관객들은 두 연인이 행복하게 살기 바랄지 모릅니다.

 

 

※ 이런 달달한 연애 이야기에 성 희롱 장면은 최악의 조합이죠. 하지만 다들 연애 이야기에 성 희롱 장면을 넣느라 애쓰는군요. 그건 비단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관념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달달한 연애 이야기와 최악으로 어울리지 않아요. 이렇게 예쁘고 화사한 그림과 두 연인이 나옴에도, 왜 로맨스 애니메이션이 여자 가슴이 크다 운운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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