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도덕이라는 가변적인 관념 본문
다양한 시간 여행 소설들에서 소설 주인공들은 여러 시간대를 건넙니다. 어떤 주인공은 그저 단순히 특정한 시간대에 머무나, 어떤 주인공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건너가죠. 심지어 시간 여행자들은 고대와 중세와 근대와 머나먼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시간 여행자들은 전혀 다른 관념들에 휩싸입니다. 고대 성직자들은 하늘이 왕을 점지했다고 이야기했고, 그건 고대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왕권신수설은 더 이상 윤리적이지 않은 논리가 되었습니다. 아마 고대의 시간 여행자가 미래로 건너뛴다면, 사람들이 왕을 떠받들지 않는 모습을 보고 놀랄지 모릅니다. 어쩌면 고대의 시간 여행자는 사람들이 왕 대신 대기업들을 떠받드는 모습을 보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지배 계급을 떠받든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시간 여행자가 뭐라고 생각하든, 중요한 점은 지배적인 관념들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21세기의 시간 여행자가 중세로 돌아가고 사람들에게 왕을 내쫓으라고 말한다면, 중세 사람들은 시간 여행자를 공격할 겁니다. 그들은 시간 여행자가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겠죠.
예전에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나 폴 앤더슨의 <타임 패트롤>을 이야기했을 때처럼 시간 여행 소설들은 지배적인 관념들이 수시로 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겁니다. 생산 방식을 둘러싼 계급 관계가 바뀌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왕 대신 자본가들이 더 많은 권력을 움켜쥔다면, 당연히 왕권신수설은 힘을 잃을 겁니다. 저는 그런 영향이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에 다른 이유들도 있겠죠. 세월이 흐르고 인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사상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의식을 계몽하기가 더 쉬울 겁니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한다면, 역시 사람들이 사상을 교환하기가 쉬워질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끈질긴 투쟁이 효력을 발휘할지 모르죠. 어쨌든 시간과 장소에 따라 관념들은 수시로 바뀌었고, 앞으로 그럴지 모릅니다. 아마 23세기나 24세기 사람들은 21세기 사람들과 전혀 다른 관념들 속에서 살아갈지 모릅니다. 그게 뭔지 저는 자세히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배적인 관념과 우리의 지배적인 관념은 서로 다를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도덕들을 비웃거나 무시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종종 저는 도덕이나 정의, 개인적인 성향, 정의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은 꾸준히 바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가변적인 것들을 꾸준히 지지할 수 있겠어요. 정의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주인이 노예에게 매질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당연했습니다. 아무도 그걸 불의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21세기에서 노예 제도는 (표면적으로) 불의입니다. 어쩌면 미래에 낚시라는 유희는 불의가 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낚시는 물고기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는 정의롭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먹고 살기 위해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불의나 비윤리와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저 재미를 위해 낚시하는 사람들이 숱합니다. 그들은 그저 재미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에게 커다란 고통을 줍니다. 따라서 미래 사람들은 낚시가 비윤리적이거나 부도덕한 행위라고 말할지 몰라요. 대부분 20세기 사람들은 낚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으나, 미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물론 저는 선의나 정의라는 아주 근본적인 요소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가치들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선의나 정의라는 포장지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바뀌었습니다.
노예 제도는 과거에 윤리였으나, 지금은 불의입니다. 하지만 노예 제도가 바뀌거나 말거나, 노예가 채찍에 맞았을 때, 노예는 고통을 느낍니다. 노예 제도가 바뀌거나 말거나, 노예가 폭행을 당할 때, 노예는 고통을 느낍니다. 우리가 동물 권리를 존중하거나 말거나,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리면, 그 물고기는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낄 겁니다. (많은 동물학자들은 물고기 역시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완전히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생명체가 고통을 느낀다는 상황 자체를 인지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도덕은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다시 말하지만, 선의라는 근본적인 성향조차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도덕이나 정의가 가변적이라는 뜻입니다. <킨>이나 <타임 패트롤> 같은 소설들은 그런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요. 그런 점을 살펴보기 위해 반드시 시간 여행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 여행 소설 속에서 독자는 시간 여행자와 함께 여러 시대들을 떠돌 수 있고, 덕분에 도덕이라는 가변적인 관념을 훨씬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죠. 그게 바로 소설의 미덕일 겁니다. 예전에 로쟈 블로그였나…. 거기에서 누군가가 왜 소설이 철학책보다 나은지 설명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논리를 SF 소설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도덕과 논리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철학자가 비윤리적으로 살았다고 해도 그 철학자가 주장하는 사상은 그런 삶과 아무 연관이 없을 겁니다. 중요한 점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논리와 과학이죠. 유명한 좌파 지식인들조차 불평등하고 비윤리적인 짓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들의 철학이 체계나 논리나 과학을 잃어버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덕과 정의, 논리와 과학은 서로 다른 영역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덕을 이용해 논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도덕이 막강한 관념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도덕을 무기로 삼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주장은 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