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쌀과 소금의 시대>와 거시적이고 장대한 변혁 본문
소설 <쌀과 소금의 시대>는 대체 역사 장르입니다. 하지만 <쌀과 소금의 시대>는 일반적인 대체 역사 소설과 다릅니다. 이건 대체 역사보다 윤회를 다루는 소설에 가깝습니다. 소설 속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은 꾸준히 윤회하고, 서로 다른 시대들을 거칩니다. 다양한 시대들 속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은 비슷한 성향으로 윤회합니다. 누군가는 급진적인 운동가이고, 누군가는 냉철한 분석가이고, 누군가는 온화한 중재자입니다. 그렇게 역사는 굴러가고, 계속 바뀝니다. 그러는 동안 억압적이고 끔찍한 학살들과 전쟁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흐른다고 해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마 어떤 독자는 결국 인류 문명이 약육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정말 <쌀과 소금의 시대>가 그런 반복적인 굴레, 변하지 않는 세상을 이야기하기 원할까요? 하지만 이 소설을 쓴 킴 스탠리 로빈슨은 유토피아 작가로서 유명합니다. <퍼시픽 엣지>, <푸른 화성>, <2312> 같은 소설들은 유토피아 소설에 가깝죠. 여러 강연들과 인터뷰들에서 킴 스탠리 로빈슨은 유토피아 소설을 꾸준히 강조했고요.
왜 킴 스탠리 로빈슨이 <쌀과 소금의 시대>를 썼을까요. 왜 유토피아 소설을 강조하는 작가가 이렇게 기나긴 억압과 전쟁을 보여줄까요? 저는 이게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하고 좋은 세상이 당장 찾아올 수 있을까요? 하루 아침에 갑자기 좋은 세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세상을 바랍니다. 그런 세상이 찾아온다면, 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습니다. 하지만 <쌀과 소금의 시대>는 아주 장대한 역사를 보여줍니다. 시대는 계속 바뀌었고, 여러 변혁들은 존재하나, 그것들은 당장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변혁 그 자체는 존재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세상은 계속 바뀌고, 어떤 것들은 계속 좋아집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절대 빠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논리를 인류 역사 전체에 확장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이런 대체 역사 소설보다 미래 문명 소설로서 훨씬 유명하죠.) 원시, 고대, 중세, 근대, 현대는 대략적인 역사 구분입니다. 이는 완전한 역사 구분이 아니나, 많은 학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죠. 인류 역사에서 이런 시대들이 당장 나타났을까요? 갑자기 하룻밤만에 세상이 바뀌었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분명히 바뀝니다. 하지만 세상은 느리게 바뀝니다. 세상은 아주 거대하고 느립니다.
만약 당장 좋은 세상이 찾아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낮을 겁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느리게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떠듭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세상이 빨리 찾아올 수 있을까요? 글쎄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인류 문명은 언제나 기나긴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변혁을 위해 인류 문명은 몇 백 년이나 심지어 1천 년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인류 문명은 천천히 바뀌었습니다.
반면, 사회주의 사상은 그렇게 오래된 사상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고려한다고 해도, 사회주의 사상은 이제 3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벨라미나 윌리엄 모리스나 잭 런던이 사회주의 소설을 쓴 이후, 세월은 별로 오래 지나지 않았습니다. 잭 런던은 거의 100년 전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회주의가 좋은 사상이라고 해도, 사회주의 세상이 200년만에 뚝딱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건 너무 안일한 발상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평등한 사회주의 세상은 몇 백 년이나 1천 년 이상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흘러온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좋은 세상이 몇 백 년 이후에 찾아온다면, 그게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을까요? 우리와 몇 백 년 이후의 세상이 아무 관계가 없을까요? 누군가는 그렇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인간은 채 100년조차 살지 못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몇 백 년 이후를 내다볼 수 있겠어요? 그게 말이 될까요? 솔직히 인간은 100년조차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몇 백 년이나 1천 년 이후를 내다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그저 과거를 살필 수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 무엇이 세상을 바꾸었을까요? 왜 여자들이 투표권을 얻고, 왜 부족민들이 대통령을 뽑고, 왜 전쟁 반대 시위가 열렸을까요? 정치인들이 착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보 정당을 뽑아줬기 때문에?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인들은, 심지어 진보 정당 정치인들조차 전쟁에 찬성하고 자연 환경을 파괴했습니다. 세상이 바뀐 이유는 다른 것입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건 이유가 될 수 있겠군요. 과학 기술은 생산 양식을 바꾸고, 아울러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저는 민중 투쟁(계급 투쟁)을 꼽고 싶습니다.
여자들이 투표할 수 있고, 원주민들이 대통령을 뽑을 수 있고,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을 단축시키고,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모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계속 투쟁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기술 발달과 계급 투쟁, 이 두 가지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일지 모릅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기술 발달과 계급 투쟁이 세상을 바꾸는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해도, 그런 원인은 세상을 당장 바꾸지 않겠죠.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생각을 바꾸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겠죠. 하지만 그게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그런 길을 가야 할 겁니다. 설사 몇 백 년 이후에 평등한 세상이 찾아오고 우리가 그걸 볼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 인류 문명은 거시적으로 바뀌었고, 우리는 계속 바꿀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