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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스페이스 오페라 속의 고대 첨단 문명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스페이스 오페라 속의 고대 첨단 문명

OneTiger 2018. 12. 9. 18:48

소설 <스타타이드 라이징>에는 이른바 선조 종족이 등장합니다. 선조 종족은 경외적인 첨단 우주 문명을 이룩했으나, 그들은 모두 사라지고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저 장대한 우주 여기저기에 그들이 만든 기술들이 남아있을 뿐이죠. 수많은 종족들은 선조 종족이 남긴 기술들을 연구하기 원합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여러 종족들은 서로 다투는 중입니다. 만약 어떤 종족이 선조 기술을 연구할 수 있다면, 다른 종족들보다 그 종족은 훨씬 우위에 설 수 있을 겁니다.


어느 날, 우연히 지구 우주선은 선조 종족의 함대를 발견합니다. 지구 우주선은 선조 함대를 탐사했고 거기에서 아주 귀중한 정보를 얻습니다. 문제는 그걸 다른 종족들이 눈치챘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종족들은 지구 우주선이 찾은 선조 기술을 뺏고 싶어합니다. 이제 숱한 외계 종족들은 지구 우주선을 쫓고, 지구 우주선은 그들을 피하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지구 우주선은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했고 어떤 바다 행성에 불시착합니다. 다양한 외계 종족들은 바다 행성을 둘러싸고 누가 먼저 지구인들에게서 귀중한 기술을 빼앗을지 서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동안 지구인들은 우주선을 수리하고 탈출 계획을 궁리합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에서 선조 기술은 숱한 갈등들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지구 우주선이 선조 함대를 찾고 기술을 얻지 않았다면, 외계 종족들은 지구 우주선을 쫓지 않았을 테고, 지구 우주선은 바다 행성에 불시착하지 않았을 겁니다. 바다 행성(에 추락한 지구 우주선)을 두고 외계 종족들은 서로 싸우지 않았겠죠. 이렇게 선조 기술은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전반적으로 꿰뚫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솔직히 이 소설에서 선조 기술은 맥거핀에 가깝습니다. 다들 그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나, 아무도 그 기술을 제대로 분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지구 우주선이 찾은 선조 기술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에서 제일 중요한 소재는 선조 기술이 아니라 인간들과 신종 돌고래들이 일으키는 갈등이나 협력입니다. 구태여 작가 데이빗 브린이 선조가 남긴 첨단 기술을 집어넣지 않았다고 해도, 데이빗 브린은 얼마든지 소설을 재미있게 꾸밀 수 있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선조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신종 돌고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된 내용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히 선조 기술은 수많은 싸움들을 부른 원인입니다. 작가가 선조 기술을 집어넣지 않았다면, 배경 설정은 크게 줄어들었을 테고, 각종 외계인들은 서로 싸우지 않았을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같은 느낌 역시 크게 줄어들었겠죠.



이렇게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고대 첨단 문명은 빠지지 못하는 소재입니다. 비단 <스타타이드 라이징>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들에는 으레 고대 첨단 문명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고대 첨단 문명은 후대 문명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자랑하고, 그 덕분에 고대 유적을 연구하는 종족은 다른 종족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고대 유적을 먼저 차지하고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외계 종족들은 서로 싸우죠. 비단 스페이스 오페라만 아니라 <광기의 산맥> 같은 우주적 공포 소설이나 <2001 우주 대장정> 같은 우주 탐사 소설 역시 고대 문명을 이야기해요.


비단 스페이스 오페라만 아니라 SF 세상에서 고대 첨단 문명은 전반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고대 첨단 문명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작가가 설정을 방대하게 넓힐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고대 문명이 압도적인 기술력을 선보이기 때문에 고대 유적을 연구하는 후대 종족은 엄청난 기술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고대 문명은 엄청난 떡밥을 남길 수 있고, 그런 떡밥은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 수 있겠죠. 고대 문명이 정말 초월적이기 때문에 <광기의 산맥>이나 <우주 대장정>은 아주 장엄한 결말을 향해 나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작가들이 고대 첨단 문명을 외면하겠어요.



이건 스페이스 오페라나 우주 탐사 소설이나 우주적 공포 소설에게 고대 첨단 문명이 필수적인 소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런 고대 첨단 문명을 집어넣는다면, 작가는 엄청난 기술력이나 떡밥을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방대하게 설정하고 싶다면, 고대 첨단 문명은 마르지 않는 금맥이 될 겁니다. 반면, 다들 고대 문명을 너무 자주 떠들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런 소재가 너무 진부하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유명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온갖 첨단 고대 문명들을 떠들었고, 독자는 첨단 고대 문명을 경외적인 시선이 아니라 지루한 시선으로 바라볼지 모릅니다.


게다가 첨단 고대 문명은 비단 SF 세상에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 역시 얼마든지 고대 첨단 문명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고대 문명이 남긴 유적은 복잡하고 위험한 던전이 되고, 모험가 일행은 고대 던전을 탐험하고 중요한 보물을 얻을 수 있겠죠. 거대한 서사를 자랑하는 환상 소설은 모두 고대 첨단 문명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른바 모험 소설들 역시 고대 문명 떡밥을 던지고 위험하고 부유한 던전을 구성할 수 있겠죠. 영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고대 문명과 모험 이야기가 무슨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방대한 설정 이외에 고대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른 재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가끔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고대인들이 남긴 기술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인들은 아주 놀라운 기술력을 선보였으나,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런 기술은 사라졌고, 현대인들은 그게 무슨 기술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의 불' 같은 기술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겠죠. 고대와 현대라는 엄청난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라진 기술은 흥미로운 수수께끼가 됩니다. 모험 소설 작가들에게 사라진 기술들은 장편 소설 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 핵심 소재가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 역시 이런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에게 '시간을 뛰어넘는 수수께끼'는 긴장감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가 될 겁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장대한 역사를 느낄 수 있을 테고 이야기 속에 훨씬 몰입할 수 있겠죠. 아울러 이런 이야기는 '찬란했던 과거'를 추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국을 그리워하거나 동경하는 이유는 제국이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20세기에 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팍스 아메리카를 운운하고 초강대국 미국이 제국이라고 비유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비유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지구에서 미국은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죠. 자본주의는 현대적인 것이고, 그래서 자본주의에게는 신비로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구경하고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분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나, 적어도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직접 구경할 수 있죠. 자본주의는 냉철하게 수익을 계산합니다. 심지어 자본주의가 뭔지 모르는 사람조차 이런 냉철한 계산을 인정할 겁니다. 반면, 고대 제국에는 이런 냉철함이 없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들은 상인들(자본가들)입니다. 고작 상인 따위가 가장 강력한 권력자라니. 여기에 무슨 신비로움이 있겠습니까. 반면, 고대 제국에는 귀족들이 있습니다. 황제와 귀족들과 전사들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덕과 명예와 의리를 중시합니다. 중세 귀족들과 달리, 고대 귀족들은 신앙에 깊이 빠지지 않았을지 모르나, 중세 귀족들처럼 고대 귀족들 역시 상인들과 다릅니다. 설사 귀족들이 아주 야비하거나 비인간적이라고 해도, 적어도 귀족들은 천박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귀족들은 인간을 죽이지 않습니다. 인간을 죽인다고 해도, 귀족들은 도덕과 명예와 의리를 이야기하죠. 적어도 현대인들은 고대인들이 그렇다고 생각(착각)합니다. 우주 고대 제국 역시 다르지 않겠죠.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가 이런 고대 제국 설정을 소설에 집어넣는다면, 현대 독자들은 찬란했던 과거, 아련한 과거를 꿈꿀 수 있을 겁니다. 비록 그런 꿈이 그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해도, 냉철한 상업 계산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도덕과 명예와 의리는 멋스러운 도피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고대 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런 동경이 있죠.



이렇게 고대 제국에 로망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에게 고대 문명 설정은 참지 못할 유혹일 겁니다. 고대 첨단 문명이 너무 진부한 소재라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는 이걸 쓰고 싶은 유혹을 쉽게 이기지 못하겠죠. 따라서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는 고대 첨단 문명을 좀 더 특별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처럼 작가가 선조 기술을 맥거핀에 가깝게 묘사한다면, 그것 역시 한 가지 방법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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