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소설이 그리는 비가시적인 영역 본문
예전에 2017년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비평했을 때, 듀나님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영화화하기에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비롯해 크리스티 소설들은 시각적이지 않습니다. 크리스티 탐정들은 액션 장면을 펼치지 않고, 수사 장면은 탐정과 용의자가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입니다. 추리 소설은 이런 것들을 이용해 긴장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영화는 그렇지 못합니다. 영화는 종합 영상 매체이고 따라서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해야 합니다.
만약 배우들이 오직 대사들만 줄줄이 늘어놓는다면, 거기에 대사들 이외에 다른 시각적인 측면이 없다면, 그 영화는 꽤나 맥이 빠질 겁니다. 어떤 영화가 대사들에 신경을 아주 많이 기울인다고 해도, 그런 영화조차 시각적인 측면을 빼먹지 못할 겁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들을 보세요. 어떤 영화들에서 대사들은 주된 비중을 차지할지 모르나, 그런 영화들보다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영화들은 훨씬 많을 겁니다. 관객들은 대사를 듣기 위해 영화를 관람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대사와 함께 배우의 외모, 의상과 무대 세트, 시각 효과, 조명과 배경 촬영 같은 것들을 보기 원합니다. 대사는 영화를 이루는 주된 요소가 아닙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대사는 소설을 이루는 주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소설이 텍스트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대사(언어)는 기호입니다. 뭔가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약속된 기호를 사용합니다. 언어는 그런 것이죠. 소설은 그런 기호들로 이루어진 매체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기호들을 읽습니다. 그 자체로서 기호들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기호들은 언어가 되고 어떤 의미를 가리킵니다. 어떤 장면을 자세하게 그리거나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언어를 이용해 많은 의미들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언어를 이용해 우리는 아주 추상적이고 사유적인 개념을 정리하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언어 덕분에 추상적인 사유는 구체적인 개념이 됩니다. 그래서 숱한 철학자들은 언어에 주목합니다. 누군가는 현대 분석 철학이 언어 분석 철학이라고 농담합니다. 언어의 장점은 그거죠. 언어는 시각적이지 않으나, 대신 논리를 정리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구체적으로 늘어놓고, 거대한 흐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가시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건 언어의 장점이고, (소설이 언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동시에 그건 소설의 장점입니다. 추리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티 소설들 속에서 탐정과 용의자들은 여러 문답들을 주고받습니다. 소설 그 자체가 텍스트이기 때문에, 소설이 언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설은 이런 문답들을 능숙하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합니다. 영화에서 텍스트는 오직 일부 비중만 차지하고 주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와 달리,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다른 것에 집중합니다. 화려한 출연 배우들, 호화로운 무대 세트, 설산 속의 숨 막히는 추격, 포와로의 기묘한 네 갈래 콧수염까지.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된 요소는 그런 호화로운 볼거리일 겁니다. 영화 때깔은 정말 고급스럽죠.
오히려 수사 과정은 줄어들었습니다. 소설은 수많은 언어들을 쏟아낼 수 있으나, 영화가 그렇게 시도했다면, 관객들은 이 영화를 외면했을 겁니다. 어떤 관객들은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중요한 수사 과정을 너무 얼렁뚱당 넘어간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수사 과정을 강조하고 싶다고 해도, 영화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겁니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자신에게 그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영화는 수사 과정을 아예 포기하고, 대신 출연 배우들과 호화로운 무대 세트에 집중합니다. 사실 무대 세트는 아주 근사합니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영화입니다. 이건 소설이 따라가지 못하는 장점이죠.
이렇게 추리 소설과 추리 영화는 다릅니다. 양쪽 모두 똑같이 열차 밀실 살인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소설과 영화는 서로 다른 부분에 집중합니다. SF 소설과 SF 영화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둘째 문단이 말한 것처럼, 언어는 추상적인 부분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글처럼, 소설은 추상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SF 소설에서 추상적인 부분들이 뭘까요? 그건 설정과 심리적인 변화일 겁니다. 사람들은 과학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가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절반만 옳은 정의일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고, 동시에 사람들이 변화에 반응하는 심리를 포착합니다.
하지만 이런 심리는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누가 생각을 그릴 수 있나요? 누가 생각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이것의 무게를 잴 수 있나요? 아니,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뇌를 저울대에 올려놓을 수 있으나, 생각을 저울대에 올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뇌파를 측정할 수 있으나, 생각을 시각화하지 못합니다. 생각, 심리, 사고. 이런 것들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것들은 존재합니다. SF 소설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과 심리와 사고 방식이 바뀌는지 포착해야 합니다. 좋은 SF 소설은 그런 소설이겠죠.
하지만 영화는 그런 변화를 포착하지 못해요. 심리가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종합 영상 매체로서 영화는 심리를 포착하지 못합니다. 설사 영화가 그걸 시도한다고 해도, 영화는 오직 연기와 세트, 시각 효과, 음향 효과 등을 동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심리에 직접 다가가지 못합니다. 영화는 오직 우회적으로 심리를 표현할 뿐입니다. 그래서 진짜 좋은 사이언스 픽션은 SF 소설이겠죠. 하지만 영화(를 비롯해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 게임)에는 다른 장점들이 많습니다. 핵심적인 사이언스 픽션이 SF 소설이라고 해도, 우리는 다양한 장점들을 함께 즐길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