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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익숙하지 않은 텍스트와 낯선 SF 소설 본문

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익숙하지 않은 텍스트와 낯선 SF 소설

OneTiger 2018. 12. 22. 09:44

왜 사람들이 SF 소설을 읽지 않을까요. 종종 SF 동호회 회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남한에서 SF 소설은 별로 인기가 없고, 그래서 SF 독서는 꽤나 소수 취향입니다. SF 영화나 SF 게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SF 소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천만 관객을 찍었습니다. 한때 국내에서는 '<인터스텔라>를 관람하며 꿀 감자칩 과자를 먹는' 행위가 환상적이라는 농담이 떠돌았습니다. 그렇게 <인터스텔라>는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우주 탐사 소설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FPS 게임 <오버워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중입니다. 이 게임에는 온갖 사이보그, 강화복, 보행 병기, 로봇이 나옵니다. 판타지 요소들 역시 많습니다. <오버워치>는 밀리터리 요소를 강조하는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오버워치>와 달리, 밀리터리 SF 소설들이나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할 겁니다. 보드 게임 <테라포밍 마스>는 화성을 지구화하는 내용입니다. <테라포밍 마스>는 엄청난 찬사들을 받았고, 국내 보드 게임 유저들 역시 <테라포밍 마스>를 상당히 호평했습니다. 심지어 초도 물량은 매진되었고, 어떤 보드 게임 관계자는 <테라포밍 마스>가 한 획을 그었다고 말했습니다.



<테라포밍 마스>가 한 획을 그었다는 발언은 홍보 성격이 강할지 모릅니다. 이건 그저 홍보 성격의 발언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테라포밍 마스>는 상당한 호평들을 받았습니다. 이 게임은 소설 <화성> 3부작에 기반했습니다. 게임 설명서는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에게 감사를 표했고, 사실 <화성> 3부작과 <테라포밍 마스>는 비슷한 내용들을 다룹니다. <화성> 3부작 이후, 화성을 지구화하는 사이언스 픽션들은 <화성> 3부작을 멀리 우회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분야에서 킴 스탠리 로빈슨이 아주 커다란 업적을 세웠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내에서 킴 로빈슨과 <붉은 화성>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심지어 <붉은 화성> 한국어 판본은 미완성입니다. <붉은 화성> 한국어 판본은 반쪽짜리이고 완역되지 않았습니다. <테라포밍 마스>는 한 획을 그을 수 있었고 엄청난 호평들을 받았으나, <붉은 화성>은 반쪽짜리입니다. <테라포밍 마스> 보드 게임 유저들은 킴 스탠리 로빈슨이 누구인지 반문할 겁니다. 그들은 행성 공학과 인공 생태계와 생태 사회주의가 무슨 관계를 맺는지 알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들이 에코라인을 이용해 정원사 업적을 달성하고, 화성에 녹색 생태계 보호 구역들을 설정하고, 다른 회사들을 제치고 승리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은 왜 생태 사회주의가 자연 생태계를 뒷받침하는지 알지 못하겠죠.



<테라포밍 마스>에는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소설 <붉은 화성>은 자연 생태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람들이 무분별한 산업 발전을 막을 수 있는지, 인류 문명과 자연 환경이 무슨 관계를 맺었는지, 왜 자유주의 사상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는지, 이상적인 공동체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화성을 지구화하는 동안 과학자들은 그런 주제들을 논의합니다. 이런 논의들은 꽤나 흥미롭고, <붉은 화성>이 선사하는 커다란 재미입니다. 하지만 <테라포밍 마스> 유저들이 이걸 논의할까요? 보드 게임 유저들이 왜 자유주의가 악랄하고, 인류 문명과 자연 환경이 무슨 관계를 맺었고, 이상적인 공동체가 무엇인지 논의할까요.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보드 게임 유저들은 자원 수치, 테크 트리, 비용을 계산하기 원하겠죠. <테라포밍 마스>와 <붉은 화성>이 비슷한 소재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양쪽은 서로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래서 <테라포밍 마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붉은 화성>은 반쪽짜리가 되었을 겁니다. 양쪽이 서로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에. 그래서 SF 영화와 SF 게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SF 소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을 겁니다. 이건 무조건 SF 소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SF 영화나 SF 게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보다 많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건 SF 소설이 SF 영화나 SF 게임보다 무조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붉은 화성>이 <테라포밍 마스>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SF 영화나 SF 게임은 SF 소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소마> 같은 비디오 게임은 대놓고 필립 딕을 예찬합니다. 하지만 <소마>를 플레이하는 게임 플레이어는 필립 딕이 누구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 게임 플레이어는 <소마>를 깊이 분석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게임 플레이어는 사이버펑크가 뭔지 모르고, 필립 딕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SF 소설들이 실존 문제를 다루는지 제대로 알지 못할 겁니다.


<소마>가 무슨 주제를 드러내는지 그런 게임 플레이어가 열심히 떠든다고 해도, 그런 분석은 금방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게임 플레이어가 열정적인 SF 독자가 될 필요는 없을 겁니다. SF 소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얼마든지 SF 장르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들이 빨리 한계에 부딪히거나 잘못된 길로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매트릭스>가 세계 최고의 사이버펑크라고 운운하는 발언은 꽤나 피상적인 분석입니다. 열렬한 사이버펑크 독자들은 그런 발언을 비웃을 겁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피상적인 분석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만약 SF 장르를 이야기하거나 분석할 때 사람들이 SF 소설을 주목한다면, 많은 오해들과 편견들은 줄어들 겁니다. 사람들이 SF 소설들을 아주 열심히 읽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SF 소설들에 주목한다면, 얄팍하거나 엇나간 분석들은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SF 소설들을 훑어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여러 이유들이 있겠으나, SF 소설이 별로 화려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문제가 될 겁니다. SF 소설은 텍스트입니다. 아무리 SF 작가가 첨단 미래 도시와 거대한 세대 우주선과 신비한 외계 행성을 떠든다고 해도, 그것들은 그저 텍스트일 뿐입니다. 독자는 텍스트를 읽고 상상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독자는 첨단 도시와 세대 우주선과 외계 행성을 만나지 못합니다.


반면, SF 영화와 SF 게임은 자극적이고 시각적이고 화려합니다. 구태여 관객이나 게임 플레이어가 상상하지 않는다고 해도, 영화와 게임은 화려한 영상을 두 눈 앞으로 들이밉니다. 영화와 비디오 게임은 근본적으로 영상 매체이고, 관객과 게임 플레이어는 힘들게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테라포밍 마스> 같은 보드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보드 게임 유저들은 카드 그림이나 사진을 칭잔합니다. 사실 보드 게임에서도 삽화나 사진 같은 시각적인 요소들은 중요합니다.



이런 시각적인 자극에 익숙해진다면, 사람들은 SF 소설을 쉽게 읽지 못할 겁니다. 뭔가에 길들여진 사람이 그것을 쉽게 뿌리칠 수 있을까요. 아니,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낯선 것을 이상하거나 불편하거나 틀리다고 여깁니다. 낯선 것은 이상하고 불편하고 틀린 겁니다. 익숙한 것은 옳은 것이 되죠. 가령, 백인 주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는 이유는 그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인종 차별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백인 주인들은 인종 차별이 옳다고 여깁니다. 언제나 그들이 인종 차별을 접했고 그게 익숙하기 때문이죠. 다국적 기업들이 원주민들을 수탈한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산업 자본주의 발전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교육들은 산업 자본주의가 아주 끔찍한 수탈을 저지른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들은 산업 자본주의가 중심이라고 가르치고 원주민들과 자연 환경을 멀리 배제합니다.


아이들이 이런 사고 방식에 익숙해진다면,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고 해도, 그런 어른들은 계속 원주민들을 배제하겠죠. 그런 어른들은 원주민 운동과 생태 공동체가 미개하고 원시적이라고 비웃을 겁니다. 원주민 운동과 생태 공동체는 미개하고 낯선 것이 됩니다. 익숙한 것은 옳은 것이 되고, 낯선 것은 불편하거나 틀린 것이 됩니다. SF 장르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시각적인 자극에 익숙한 사람들이 쉽게 SF 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요. 만약 사람들이 꾸준히 SF 소설, 만화, 영화, 게임을 골고루 접한다면, 사람들은 계속 SF 소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여러 매체들이 각자 장단점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알 겁니다. 사람들은 폭넓게 SF 장르를 즐길 수 있겠죠. 하지만 오직 SF 영상 매체들만 접한 사람들은 쉽게 SF 소설에 다가가지 못하겠죠. 영상과 텍스트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고 재미있게 SF 소설들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 매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설보다 영상 매체들을 먼저 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할지 몰라요. 게다가 국내에는 SF 소설들이 다양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생체 우주선이 등장하는 우주 탐사 소설을 읽기 원한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아쉽게도 국내에 생체 우주선이 등장하는 유명한 우주 탐사 소설은 없습니다. 그 사람은 간절하게 생체 우주선을 읽기 원하겠으나, 남한에 그런 소설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실망하고 SF 게임으로 시각을 돌리겠죠. 적어도 SF 게임들에는 이런저런 생체 우주선들이 있어요. SF 게임들이 훨씬 풍성한 소재들을 자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SF 소설들에서 시선을 돌리고 SF 게임들을 바라보겠죠.


이런 조건들이 겹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SF 소설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이건 그저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 정확하고 자세한 통계나 근거 자료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측은 완전히 틀리지 않을 겁니다. 대안이 있을까요? 글쎄요. SF 독자들이 계속 재미있고 기발한 SF 세상을 안내하고 소개한다면, SF 소설 역시 저변을 넓힐 수 있을지 모르죠. 무엇보다 남한 사회는 책을 읽을 여유를 좀 찾아야 할 겁니다. 바쁘고 힘들고 지친 피로 사회에서 텍스트 매체를 읽기는 쉽지 않겠죠. 다들 시각적인 자극을 추구할 겁니다. 차분하게 텍스트를 읽고 고민하기 위해 남한 사회는 여유를 좀 찾아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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