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비서구적인 스팀펑크 장르가 가능할까 본문
소설 <테메레르>는 드래곤 공군 편대를 이야기합니다. 시대 배경은 나폴레옹 전쟁이죠. 소설 주인공은 영국 공군 소속이고 테메레르라는 드래곤과 함께 나폴레옹 군대(프랑스 공군 드래곤 편대)와 싸웁니다. 소설 주인공이 영국 공군 장교이기 때문에 당연히 테메레르는 영국 드래곤…이 아니라 중국 드래곤입니다. 사실 테메레르는 자신에게 국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테메레르는 국적 따위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 바랄 뿐이에요.
그렇다고 해도 테메레르는 중국 드래곤에게서 태어났고 중국 드래곤 같은 겉모습을 선보입니다. 어쩌면 테메레르를 설정했을 때, 작가 나오미 노빅은 중국 용을 참조했을지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전설 속의 유럽 드래곤에게는 수염이 없습니다. 하지만 테메레르에게는 길다란 두 수염이 있고 이건 중국 전설이 영향을 미친 결과일지 몰라요. 저는 어떻게 나오미 노빅이 테메레르를 설정했는지 잘 모릅니다. 나오미 노빅은 중국 전설을 아예 참고하지 않고 무시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전설 속의 중국 용처럼 테메레르에게는 두 수염이 있고, 그래서 전설 속의 중국 용과 테메레르는 닮았습니다. 시리즈 2권에 등장하는 중국에는 테메레르 같은 드래곤들이 더 많습니다.
아니, 테메레르는 드래곤이 아니라 용일지 모르겠습니다. 테메레르가 중국 태생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테메레르를 드래곤이 아니라 용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테메레르를 드래곤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테메레르는 영국 공군 소속이고 유럽에서 싸웁니다. 시대 배경은 나폴레옹 전쟁이고, 테메레르는 유럽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유럽 사람들은 용보다 드래곤에게 친숙합니다. 게다가 두 수염과 다른 특징들이 있다고 해도, 테메레르는 용보다 드래곤과 비슷합니다. 소설의 배경 무대가 유럽이기 때문에 나오미 노빅은 테메레르를 드래곤과 비슷하게 묘사했을 겁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나 서사 판타지는 드래곤 기사를 자주 이용하고, 그런 연장선 위에서 <테메레르> 시리즈는 서있습니다. 아무리 테메레르가 중국 용이라고 해도, <테메레르> 시리즈는 유럽적인 색깔을 드러내야 했을 겁니다. 아무리 소설에 중국이나 투르크나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나 북아메리카가 나온다고 해도, 결국 <테메레르>는 유럽 중심적입니다. 이건 나오미 노빅이 다른 대륙들을 차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오미 노빅은 서구 사람이고, 서구 사람이 서구적인 상상력을 펼친다고 해도, 그건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유럽에서 탄생한 장르입니다. <테메레르> 시리즈가 유럽 중심적이라는 결과는 당연할 겁니다. 그런 관습과 전통은 차별이 아니겠죠.
SF 독자들은 이런 시각을 다른 장르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스팀펑크 소설은 어떨까요. 이미 말한 것처럼 사이언스 판타지는 유럽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스팀펑크 역시 유럽적인 색깔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19세기 쥘 베른, 20세기 필립 풀먼, 21세기 셰리 프리스트 역시 서구를 이야기해요. 다른 작가들 역시 유럽이나 미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요. 여러 인터넷 도서 사이트들에서 독자들이 스팀펑크 소설들을 검색한다면, 독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을 줄줄이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스팀펑크 소설들 중에서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나 동남 아시아를 이야기하는 소설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설사 중세 유럽 판타지가 스팀펑크를 구현한다고 해도, 중세 '유럽' 판타지로서 그런 스팀펑크는 유럽 중심적일 겁니다.
아즈텍 스팀펑크나 이집트 스팀펑크가 가능할까요? SF 작가들이 이집트 스팀펑크를 구상한다고 해도, 독자들은 그게 어색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유럽 스팀펑크 설정과 달리, 이집트 스팀펑크 설정은 어색할지 모릅니다.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처럼, 비서구(non western) 지역은 과학적인 스팀펑크보다 마법적인 스팀펑크에 의존해야 할지 모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유럽 태생이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동남 아시아는 사이언스 판타지에 어울리지 않겠죠. 특히, 스팀펑크는 산업 혁명과 깊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산업 혁명은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동남 아시아와 별로 관계가 없어요. 중국 같은 동아시아 역시 그렇죠.
중국이 스팀펑크에 어울릴까요. 19세기 중국은 본격적인 산업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비산업 국가와 스팀펑크는 서로 어울리지 않아요. 스팀펑크는 근대적인 서구화 및 산업화와 관계가 깊고, 그래서 중국과 스팀펑크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거대 도시는 스팀펑크와 어울릴 수 있겠으나, 런던이나 파리나 베를린 같은 도시보다 뒤쳐질 겁니다. 이건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촌스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스팀펑크가 근대적인 산업화의 파생물이기 때문에 베이징과 스팀펑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비단 중국만 아니라 사라센과 이집트와 아즈텍 역시 마찬가지겠죠.
생각해 보세요.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산업 혁명을 일으켰을 때, 중국은 산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중국은 근대적인 산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어요. 19세기 유럽 사람들은 엄청난 공장 매연이 근대적인 진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때 중국은 공장을 짓지 못했고 공장 매연을 구경하지 못했어요. 19세기 유럽이 공산주의를 낳고 노동 운동과 파업을 겪는 동안, 중국 사람들은 임금 노동과 상품화에 기반한 시장 경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20세기를 넘고 2차 세계 대전에 이를 때까지, 중국은 근대적인 산업화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20세기 이후에도 중국은 비산업 국가였어요.
이건 중국에게 아주 커다랗고 절실한 위기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은 미국 및 유럽 강대국들 및 일본과 맞서야 했습니다. 중국은 그들에게 끌려다니기 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은 중국 대륙을 짓밟았고, 폐허와 잿더미 위에서 중국은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과 일본은 산업화를 한창 진행하는 중이었으나, 중국은 산업화에 아예 손조차 대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거대 문명이었으나, 19세기 이후, 산업화 없는 거대 문명은 자본주의 강대국을 당하지 못했습니다. 몇몇 아프리카 국가가 이탈리아 군대를 물리친 것처럼, 예외적인 사례들은 없지 않았으나, 문자 그대로 그것들은 예외들이었습니다. 중국 인민 공사는 이런 격차를 빨리 줄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중국 인민 공사는 19세기와 1950년대가 만든 격차, 100년이 넘는 격차를 극복하고 줄여야 했어요. 만약 중국이 그런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중국은 자본주의가 또 다시 비극을 터뜨릴지 모른다고 여겼죠. 세계 대전은 자본주의에서 비롯한 거대한 비극이고, 중국은 그런 비극을 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100년을 넘는 격차를 쉽게 극복할 수 있겠어요? 폐허와 잿더미에서 누가 그런 어마어마한 격차를 쉽게 뛰어넘을 수 있겠어요? 중국은 그래야 했고, 결국 중국 인민 공사는 온갖 뻘짓들을 저지릅니다. 막대한 환경 오염들은 그런 뻘짓들이었죠. 영리 기업들이 주도하든, 국가 정부가 주도하든, 결국 급속한 생산력 증가는 끔찍한 환경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 인민 공사에게는 급격하게 생산력을 늘릴 이유가 있었어요. 유럽과 중국에 너무 커다란 격차가 있었고 중국이 유럽에게 질질 끌려다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럽과 중국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격차가 있었습니다.
그런 격차 때문에 중국은 스팀펑크와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중국은 산업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중국은 쉽게 산업화에 접어들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유럽이 증명한 것처럼, 산업화는 아주 폭력적인 과정입니다. 중국은 그런 폭력적인 과정 없이 급속하게 성장하기 원했으나, 결과는 아주 비참한 뻘짓이었죠. 어쩌면 이건 운명인지 모릅니다. 전세계적인 자본주의화, 세계 대전, 폐허와 잿더미, 무조건적이고 급속한 생산력 증대. 이런 악조건들 속에서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발버둥친다면, 누구나 뻘짓들을 저지를지 모르죠. 그렇게 중국이 발버둥쳐야 했기 때문에 중국은 스팀펑크와 어울리지 않아요. 20세기 중반까지 중국이 산업 문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은 스팀펑크와 어색한 관계를 맺겠죠. 물론 절대적인 법칙은 없습니다. 비록 어색하게 보인다고 해도, 작가가 원한다면, 충분히 스팀펑크를 베이징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서구 스팀펑크들이 워낙 범람했기 때문에 중국 스팀펑크나 이집트 스팀펑크, 아즈텍 스팀펑크는 어색하게 보일지 모르죠. <잃어버린 제국>에서 아틀란티스 비행선이 증기 기관을 돌린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게 어색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19세기 베이징이나 아즈텍이 스팀펑크와 결합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법칙은 없겠죠. 그건 고정관념에 불과할지 몰라요. 구글링 이미지에서 사람들이 중국 스팀펑크를 검색한다면, 구글링 이미지는 온갖 중국 스팀펑크 그림들을 보여줄 겁니다. 자세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저는 확신하지 못하나, 서구권 사람들 역시 비서구권 스팀펑크 장르가 가능한지 묻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건 비서구권 스팀펑크 운동(?)으로 이어질지 모르죠. 작가가 시대적인 배경과 상상 과학을 깊이 연구하고, 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작가는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