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볼터, 사이언스 판타지와 스팀펑크 본문

SF & 판타지/스팀펑크, 사이언스 판타지

볼터, 사이언스 판타지와 스팀펑크

OneTiger 2018. 10. 31. 18:41

[중세 유럽 판타지 속의 거대 로봇과 첨단 쇠뇌들. 어떻게 이런 것들이 작동할까요?]



비디오 게임 <엔들리스 레전드>에는 볼터라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볼터는 일반적인 중세 판타지 설정이 아닙니다. <엔들리스 레전드>는 중세 판타지 설정 같으나, 사실 <엔들리스 레전드>는 <엔들리스 스페이스>로 이어집니다. 제목처럼 <엔들리스 스페이스>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엔들리스 레전드>는 중세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에 걸친 설정이죠. 어쩌면 이런 설정은 스팀펑크 장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스팀펑크 장르는 상상 과학과 마법을 결합하고 양쪽을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분위기나 주제에 따라 스팀펑크 장르는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거나 판타지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어떤 스팀펑크는 아예 마법을 배제하고 완전히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어요. 어떤 스팀펑크는 아예 상상 과학을 배제하고 판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스팀펑크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팀 파워스는 <아누비스의 문> 같은 소설을 썼고, 이건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에 아주 가깝죠. 누군가는 어떻게 <아누비스의 문>이 스팀펑크 소설이 될 수 있는지 반문할 겁니다. 하지만 <황금 나침반> 같은 소설은 분명히 스팀펑크입니다. 여기에서 작가가 상상 과학을 좀 더 뺀다면, <황금 나침반>은 <아누비스의 문>과 비슷해질 겁니다.



이건 <엔들리스 레전드>의 볼터 세력이 스팀펑크 설정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볼터와 스팀펑크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스팀펑크는 (장르 이름처럼) 증기 기관을 비롯해 19세기 산업 혁명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야 합니다. 19세기 유럽 산업 문명은 근대적인 진보를 본격적으로 구현했으나, 아직 계몽주의 이전의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유럽에는 과학과 요정이 함께 있었죠. 스팀펑크 장르는 그런 과도기를 들여다보고, 부풀리고, 비틀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그런 과도기적인 분위기는 스팀펑크가 선사하는 커다란 재미입니다. 반면, 볼터 세력에게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으나, 볼터는 19세기 산업 혁명보다 훨씬 진보한 상상 과학을 보여줍니다.


볼터 세력은 전형적인 사이언스 판타지 세력일 겁니다. 이것 역시 드문 유형이 아니죠. 이미 앤 맥카리프나 잭 밴스 같은 작가들은 무엇이 사이언스 판타지인지 보여줬습니다. 첨단 과학과 마법을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함께 커다란 인기를 끕니다. SF 출판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장르는 사이언스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일지 모릅니다. 저는 출판계 상황을 잘 모르나, 여러 평론가들은 두 장르가 출판 시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이언스 판타지와 쉽게 합칠 수 있죠. 독자들이 <대수학자> 같은 소설을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부른다면, 그건 다소 어색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리움> 같은 소설은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동시에 사이언스 판타지가 될 수 있겠죠.



똑같이 상상 과학과 마법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와 스팀펑크는 서로 다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가 우주 시대로 기우는 반면, 스팀펑크는 19세기 분위기를 계속 재현하느라 애씁니다. 아니, 스팀펑크는 사이언스 판타지의 일종일 겁니다. 상상 과학과 마법을 이야기하는 무수한 사이언스 판타지들이 있고, 그것들 중에서 어떤 것은 스페이스 오페라가 되고, 어떤 것은 스팀펑크가 되겠죠. 이런 상황에서 사이언스 판타지가 스팀펑크의 상위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스팀펑크는 사이언스 판타지의 하위 장르일까요? 누군가는 스팀펑크가 사이언스 판타지의 하위 장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의견에 반대할지 모릅니다.


사실 장르들을 완벽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장르들을 딱딱 나눌 수 있을까요? 스페이스 오페라, 사이언스 판타지, 스팀펑크는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었고, 심지어 뛰어난 평론가조차 그런 것들을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할 겁니다. SF 팬들은 끊임없이 그런 작업을 시도하나, 그런 작업은 그저 언제나 끝나지 않은 분류법으로 수렴할 뿐이죠. 하지만 그런 작업에는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 겁니다. 그런 작업을 통해 SF 팬들은 무슨 창작물들이 존재하는지 살필 수 있고, 여러 창작물들을 비교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장점들과 단점들을 대조할 수 있겠죠.



<엔들리스 레전드>의 볼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액 매카프티나 잭 밴스 같은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들과 볼터 세력을 비교한다면, SF 팬들은 볼터 세력을 좀 더 파고들 수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엔들리스 레전드>는 설정을 많이 드러내는 게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엔들리스 레전드>를 플레이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엔들리스 레전드>를 직접 플레이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이 많은 설정들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평가합니다. 뭐, 사실 자세하고 방대한 설정이 없다고 해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엔들리스 레전드>는 4X 게임이고, 4X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설정들을 줄줄이 살피는 게임 플레이어는 없을 겁니다. 설정을 외운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유닛을 빨리 뽑거나 건물을 빨리 짓지 못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볼터 세력의 해병들이 사용하는 쇠뇌가 궁금합니다. 볼터 해병들의 쇠뇌는 일반적인 중세 판타지의 쇠뇌와 많이 다릅니다. 볼터 세뇌는 좀 더 세련되었고 근대적인 장비 같습니다. 게다가 활은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달렸고, 해병은 쇠뇌를 한 손으로 들고 다닙니다. 심지어 볼터 해병들은 쇠뇌와 둥근 방패를 동시에 착용합니다. 어떻게 이런 쇠뇌가 작동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엔들리스 레전드>에 그런 설정이 나올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설정은 나오거나 나오지 않을지 모르죠. 하지만 설사 설정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볼터 해병의 쇠뇌는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장비는 많은 상상들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판타지와 우주 항해의 경계를 가로지를 수 있겠죠. <엔들리스 레전드>는 4X 게임입니다. 하지만 많은 게임 플레이어들이 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단 게임 규칙만 아니라) 저런 감성 때문일지 모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