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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발전기의 왕>과 기계 신도들 본문

SF & 판타지/스팀펑크, 사이언스 판타지

<발전기의 왕>과 기계 신도들

OneTiger 2018. 9. 12. 19:07

허버트 웰즈가 쓴 <발전기의 왕>은 1894년 소설입니다. 흔히 우리는 허버트 웰즈가 SF 작가라고 생각하나, (다른 SF 작가들처럼) 허버트 웰즈는 SF 이외에 다른 소설들을 많이 썼습니다. <발전기의 왕>에는 상상 과학이 없어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 노동자는 발전기가 내뿜는 엄청난 동력을 숭배합니다. 주인공은 발전기가 신이라고 생각하고, 막대한 동력이 신의 힘이라고 느끼죠. 주인공은 발전기를 숭배하고, 누구도 발전기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은 살인적인 광신이 되고, 발전기는 기계신이 됩니다.


문자 그대로 이건 데우스 엑스 마키나입니다. <발전기의 왕>은 (다른 측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보여줘요. 여기에서 1894년이라는 시기는 중대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주인공 노동자는 유럽 사람이 아니라 인도 사람입니다. 19세기를 살아가는 인도 사람으로서 주인공 노동자는 아직 산업 혁명이나 근대성이나 과학 기술이 뭔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근대 산업화 과정을 산업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21세기 초반 사람이고, 19세기 산업 혁명은 과거지사입니다. 오히려 19세기 증기선은 21세기 초반 사람에게 구닥다리가 될 겁니다.



하지만 19세기 인도 노동자에게 산업 혁명은 눈부신 진보입니다. 19세기 사람들은, 심지어 유럽 사람들조차 이렇게 산업 혁명이 모든 것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꿈에서조차 유럽 사람들은 거대 공장이나 증기선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산업 혁명은 그것을 이룩했어요. 인도 노동자에게 이런 산업 혁명은 눈부신 진보입니다. 너무 눈이 부시기 때문에 인도 노동자는 장님이 되고 기계신을 섬기는 광신도가 됩니다. <발전기의 왕>은 시대 변화가 사람들에게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해요. 이건 절대 SF 소설이 아니죠.


하지만 저는 <발전기의 왕>이 SF 소설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 혁명이 19세기를 엄청나게 바꾼 것처럼, 여전히 과학 기술이 계속 시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에 정보 통신 기술은 가상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가상 공간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꿨어요. 과거와 달리,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집회나 시위나 가투는 훨씬 쉬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적/공간적인 제약 없이 인터넷 동호회를 만듭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우리는 지구 궤도를 떠도는 자동차와 마네킹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100년이나 200년 이후, 과학 기술은 또 다시 세상을 바꿀지 모릅니다.



<발전기의 왕>은 미래가 계속 바뀐다고 전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건 SF 소설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이런 개념(시대가 바뀐다는 개념)을 <발전기의 왕>에서 끌어낼 수 있습니다. SF 작가들은 그걸 SF 소설들에 적용하고, 계속 미래를 전망할 수 있죠. 그런 전망은 틀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틀리다고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분명히 계속 바뀔 테고, 현재와 미래가 드러내는 격차를 상상할 때, 우리는 현재를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종종 그건 아주 짜릿한 경이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SF 독자들은 SF 소설들을 좋아하겠죠.


한편으로 <발전기의 왕>은 이미 19세기 소설이 '기계 신도'를 이야기했다고 증명합니다. SF 세상에서 기계 신도는 드물지 않은 소재일 겁니다. 기계는 위대합니다. 기계 덕분에 우리는 심해로 내려가거나 엄청난 재화들을 생산하거나 지구 궤도에 머물거나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학살할 수 있습니다. 기계는 놀라운 변화이고, 앞으로 계속 놀라운 변화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가끔 어떤 인문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어떤 인문학자들은 그걸 꽤나 두렵다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건 관심을 끌기 위한 설레발일지 모릅니다. 인문학이 위기이기 때문에 인문학자들은 설레발을 치고 싶어하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인공 지능이 무섭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여러 전문가들은 인공 지능이 인간들을 지배할지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만약 정말 인공 지능이 인간들을 지배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인공 지능을 신이라고 여길지 모르죠. 뭐, 저는 그런 세상이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나, 원시 부족들은 항공기 같은 첨단 문물이 신이라고 여겼습니다. 기계는 신이 될 수 있습니다. SF 세상에는 정말 기계신이나 기계 신도가 있고요.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는 구조 의회(컨스트럭트 의회)가 등장합니다. 자동 기계 장치들(19세기 로봇들)은 우연히 지성을 갖추었고, 그걸 계속 발전시켰고, 결국 인간보다 뛰어난 합동 지성체가 됩니다. 구조 의회는 거대한 인공 지능이고, 동시에 수많은 자동 기계 장치들을 부릴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은 거대한 인공 지능을 숭배하고, 기계 신도가 됩니다. 미니어처 게임 <워해머 40K>에는 정말 기계신이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기계를 개조하거나 수리하지 못합니다. 기계 성직자가 허가할 때, 사람들은 기계를 개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총기가 망가졌다면, 기계신이 저주를 내렸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기계가 너무 급속히 세상을 바꿨기 때문에 기계는 놀라운 신이 될 수 있습니다. SF 소설들이나 게임들은 정말 기계신을 이야기하고요. 비록 현실에는 그런 기계 신도들이 나타나지 않겠으나, 기계 신도는 얼마나 기계 장치들이 놀라운지 증명하는 설정입니다. 사람들에게 기계는 신이나 악마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러다이트 운동 역시 그런 일환일지 모르죠.) <발전기의 왕>은 SF 소설이 아니나, 기계 신도라는 단초를 이미 이야기했어요. 허버트 웰즈가 인도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얼마나 많이 첨단 기술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유럽 사람들과 달리, 인도 사람은 산업 혁명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허버트 웰즈는 시대 변화를 예리하게 꿰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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