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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백 투 더 퓨처 3>에 쥘 베른이 어울릴까 본문

SF & 판타지/스팀펑크, 사이언스 판타지

<백 투 더 퓨처 3>에 쥘 베른이 어울릴까

OneTiger 2018. 8. 27. 19:19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의 한 장면. 쥘 베른은 진보를 긍정할 수 있는 SF 작가입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3>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를 완결하는 마지막 영화입니다. 1편이나 2편과 달리, 3편은 현대와 미래를 벗어나고 서부 시대로 돌아갑니다. 3편이 드러내는 분위기는 1편이나 2편과 꽤나 다르고, 그래서 어떤 관객들은 3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2편은 미래 첨단 도시를 보여줬고, 1편에는 그런 게 없으나 적어도 여전히 현대적인 측면을 간직했습니다. 하지만 3편은 황량한 서부를 보여주고,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관객들이 3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3편 역시 멋진 시간 여행 이야기이고, 1편과 2편을 감동적으로 연결했습니다.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3편에 현대적인 측면이나 미래적인 측면을 담을 수 있었겠으나, 오히려 그건 3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죠. 서부 시대라는 이질적인 측면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관객들은 3편의 여러 특징들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것들 중 하나는 브라운 박사의 연애입니다. 1편과 2편에서 브라운 박사는 계속 (긍정적인) 미치광이 박사였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3편에서 브라운 박사는 연애를 시작합니다.



연애 상대는 클라라 클레이튼이라는 학교 선생님이고 동시에 천문학 연구자입니다. 당연히 브라운 박사와 클라라 클레이튼은 서로 죽이 잘 맞습니다. 브라운과 클라라는 공대 커플입니다. 시간 여행 장치를 만드는 박사와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교 선생님. 한 사람은 미래에서 왔고, 또 한 사람은 미래를 꿈꿉니다. 이거 멋진 공대 커플이 아닌가요. 게다가 과학을 연구하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로서 브라운과 클라라는 쥘 베른을 좋아합니다. 양쪽 모두 쥘 베른 애호가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백 투 더 퓨처 3>는 시간 여행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9세기 SF 작가들 중 시간 여행 작가로서 유명한 사람은 허버트 웰즈입니다.


뭐, 19세기에 시간 여행 이야기를 쓴 작가들은 많으나, 허버트 웰즈는 그들 중 대표가 될 수 있겠죠. <뒤돌아보며> 같은 소설은 이른바 미국 최초의 SF 소설이고 동시에 타임 슬립에 가까워요. 하지만 <뒤돌아보며>는 판타지에 가깝고, <타임 머신>은 훨씬 엄중하게 시간 여행을 고찰했죠. 그래서 허버트 웰즈는 19세기 시간 여행 작가를 대표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백 투 더 퓨처 3>에서 브라운과 클라라가 허버트 웰즈를 선호한다면, 그건 어떤 상징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시간 여행 장치를 만든 과학자가 19세기로 돌아가고 허버트 웰즈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꽤나 특별한 감흥을 풍길지 모르죠.



그래서 저는 브라운과 클라라가 허버트 웰즈를 좋아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백 투 더 퓨처 3>의 배경은 1885년입니다. 소설 <타임 머신>은 1895년에 나왔습니다. 따라서 <백 투 더 퓨처 3> 속의 세계에는 원론적으로 <타임 머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에서 왔기 때문에 브라운 박사는 <타임 머신>을 읽었을지 모르나, 클라라는 허버트 웰즈가 <타임 머신>을 쓸 거라는 사실을 모르죠. 따라서 브라운과 클라라가 허버트 웰즈를 언급한다고 해도, 두 사람은 <타임 머신>을 이야기하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브라운과 클라라가 허버트 웰즈를 좋아한다면, 아주 커다란 문제가 터집니다. <타임 머신>을 비롯해 <우주 전쟁>, <투명 인간>, <모로 박사의 섬> 같은 소설들로서 허버트 웰즈는 유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소설들은 꽤나 암울합니다. <타임 머신>은 멸망하는 미래 세계를 보여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사실 <타임 머신>은 시간 여행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훨씬 가깝죠. <우주 전쟁>은 외계인들이 침략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인류 문명은 멸망하지 않으나, 소설 분위기는 꽤나 묵시적입니다. <투명 인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나, 분위기가 절대 밝지 않습니다. 투명 인간은 교활하게 인류 문명을 정복하기 원합니다.



<모로 박사의 섬>은 다른 세 소설들보다 훨씬 지독하죠. 무인도에서 소설 주인공은 온갖 살육들과 광기들을 목격합니다. 모로 박사가 동물들을 개조하는 과정은 상당히 끔찍한 연출이고요. 개조는 우회적인 표현이고, 사실 모로 박사는 동물들을 끔찍하게 자르고 째고 꺾고 붙이고 수술하죠. 이렇게 허버트 웰즈는 암울하고 끔찍한 소설들을 썼습니다. 웰즈가 가난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허버트 웰즈는 19세기 유럽 사회에 엄청난 부조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회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화기애애한 소설들을 썼다면, 그건 좀 이상한 현상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허버트 웰즈가 <백 투 더 퓨처 3>에 어울릴까요?


<백 투 더 퓨처 3>는 화목한 가족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자연 과학과 인간 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허버트 웰즈가 쓴 여러 소설들은 절대 화목하지 않고 인간들의 추잡한 측면들을 보여주죠. 사회주의자로서 허버트 웰즈가 이성적인 인간을 믿었다고 해도, 설사 허버트 웰즈가 그런 소설들을 썼다고 해도, 유명한 <타임 머신>이나 <우주 전쟁>이나 <모로 박사의 섬>은 <백 투 더 퓨처 3>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설사 브라운과 클라라가 (고증을 무시하고) 허버트 웰즈를 언급할 수 있다고 해도, 허버트 웰즈는 <백 투 더 퓨처 3>와 상극일 겁니다. 관객들이 <타임 머신>과 <백 투 더 퓨처 3>를 연결시키는 순간, 관객들은 화목한 가족 SF 영화가 아니라 미래 묵시록을 머릿속에 떠올리겠죠.



따라서 <백 투 더 퓨처 3>에는 허버트 웰즈보다 쥘 베른이 훨씬 어울립니다. 그래서 브라운과 클라라는 쥘 베른을 언급했겠죠. 이는 쥘 베른이 무조건 이성적인 인간을 말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쥘 베른 역시 암울한 이야기를 썼어요. 심지어 대표 소설 <해저 2만리> 역시 화목한 해저 여행이 아닙니다. 네모 선장은 무시무시한 복수귀이고, 처절하게 상대 함선을 침몰시켰죠. 사실 <해저 2만리>는 굉장히 처절한 이야기입니다. 신비로운 해저 여행 때문에 그저 그게 잘 안 보일 뿐이죠. 저는 사람들이 쥘 베른을 너무 가볍게 평가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쥘 베른은 허버트 웰즈보다 훨씬 이성적인 인간을 더 많이 보여줬고, 그래서 <백 투 더 퓨처 3>는 쥘 베른을 언급했을 겁니다. 비단 <백 투 더 퓨처 3>만 아니라 가족 SF 영화들에게 쥘 베른은 인기 작가죠. 디즈니가 만든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이나 브렌든 프레이저가 나오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같은 사례를 보세요. 앞으로도 이성적인 작가로서 쥘 베른은 꾸준히 인기를 끌겠죠. 그게 쥘 베른의 진면목이 아니라고 해도. (브라이언 싱어가 만든다고 언급한 영화가 어떻게 될까요? 아니, 그게 나올까요? 제작 소식을 듣기가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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