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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역사 이야기와 목적론 세계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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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역사 이야기와 목적론 세계관

OneTiger 2019. 2. 6. 19:00

목적론 세계관은 역사에 특정한 목적이 존재한다는 세계관입니다. 흔히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적론 세계관에게 불확실한 미래는 없습니다. 역사에 특정한 목적이 존재한다면, 역사는 그 결론으로 나가야 하고, 결국 특정한 미래는 나타날 겁니다. 다른 경로들은 없습니다. 역사는 특정한 방향을 향해 계속 나갑니다. 얼마 동안 역사는 비틀거리거나 길을 잃거나 샛길을 헤맬지 모르나, 결과는 바뀌지 않고, 결국 역사는 목적에 도달할 겁니다. 역사에게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역사는 추진력을 이용해 특정한 결론에 닿을 테고 목적을 이룰 겁니다. 아무것도 목적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역사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결과를 막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싸우고 사랑하고 울고 웃는 수많은 행위들은 이런 추진력을 뒷받침합니다. 아무도 이걸 막지 못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영웅이 나타난다고 해도, 대단한 영웅이 역사를 막고 싶다고 해도, 역사는 계속 전진할 테고, 결국 역사는 목적에 도달할 겁니다. 21세기 오늘날과 이런 목적론 역사관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역사관을 받아들입니다.



대표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은 역사에 목적이 있다고 간주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역사가 유일한 경로로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따라서 신의 의지로서 이 세상은 흘러가야 합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신이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신의 뜻을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현상들이나 사건들이 이상하고 엉뚱하다고 해도, 결국 그것들 역시 신의 뜻입니다. 전지전능한 신은 모든 것을 예상하고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신의 뜻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신은 이미 종말을 압니다.


세상을 창조하는 그 순간, 이미 신은 종말을 봤습니다. 신이 종말을 알지 못한다면, 심판의 날은 없을 겁니다. 신은 미래를 알고, 심판의 날을 알고, 종말을 압니다. 언젠가 심판의 날은 올 테고, 그때 신은 인간들을 구원할 겁니다. 그건 유일한 경로입니다. 그건 유일한 역사입니다. 다른 역사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에게 다른 역사는 없습니다. 만약 다른 경로가 생긴다면, 신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거나 심판의 날을 알지 못하거나 종말을 잊거나 인류를 구원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걸 인정하지 않죠. 인간은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조차 심판의 날을 알지 못하죠. 하지만 신은 압니다. 종말은 신의 뜻이고, 종말이 다가올 때, 신은 인간들을 구원할 겁니다.



'만약' 다른 역사 경로가 생기고, 신이 심판의 날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신은 인류를 구원하지 못할 겁니다. 신은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죠. 세상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 테고, 신은 세상에 간섭하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더 이상 인류가 신을 숭배할 이유는 없습니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해도, 신은 더 이상 세상에 간섭하지 못합니다. 신이 세상에 간섭한다고 해도, 역사는 또 다른 경로로 흘러갈 테고, 신은 그걸 막지 못하겠죠. 신은 제한적으로 세상에 간섭할 수 있습니다. 신은 세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죠. 기독교 세계관은 이런 사고 방식을 좋아하지 않겠죠. 기독교 세계관에게 이런 사고 방식은 불경이고 신성 모독입니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역사 경로가 심판의 날을 밀어내고 신이 제한적으로 세상에 간섭한다면, 기독교는 위세를 잃을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은 또 다른 역사 경로를 인정하지 않죠. 물론 이건 꽤나 단순한 요약입니다. 기독교에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고, 기독교 세계관은 단순무식하게 역사가 심판의 날로 흘러간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역사가 단순무식하다면, 왜 기독교를 믿는 수많은 수도사들과 신학자들과 사회 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적극적으로 압제에 투쟁하겠습니까. 구원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중세 1,000년 동안, 목적론 세계관은 지배적이었습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역사에 목적이 있다고 믿었고, 어떻게 역사가 흐르든, 중세 사람들은 결국 신이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신을 믿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다른 미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런 목적론 세계관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계몽주의 세계관은 신을 밀어내기 시작하고 자유로운 인간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자유롭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신에게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자유롭게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유롭다면, 왜 인간이 스스로 미래를 만들지 못하겠습니까. 미래는 한껏 열렸습니다. 미래는 닫힌 세계가 아니라 열린 세계입니다. 우리는, 인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인류는 암담하고 끔찍한 역사를 거쳤으나, 얼마든지 평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신이 돕지 않는다고 해도, 인류는 스스로 미래와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런 세계관은 널리 퍼지고 기독교 세계관은 힘을 잃습니다. 이건 기독교 세계관이 당장 추락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목적론적인 구원과 희망을 믿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목적론 세계관은 서구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죠. 심지어 19세기에 서구 사회는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을 썼고 타임 슬립과 대체 역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임 슬립과 대체 역사는 '만약'을 이야기합니다.



타임 슬립과 대체 역사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또 다른 역사 이야기입니다. 타임 슬립과 대체 역사 이야기는 역사에 '만약'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역사 속에서 또 다른 경로들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과 대체 역사는 서로 공존하지 못합니다. 기독교 세계관과 대체 역사가 공존하고 싶다면, 오직 신이 준비한 역사 속에서 대체 역사는 존재해야 합니다. 인간이 타임 슬립하고 또 다른 역사가 생긴다고 해도, 그건 신의 뜻이어야 합니다. 역사가 다른 경로로 흐른다고 해도, 그건 신의 뜻이어야 합니다. 이건 진짜 대체 역사가 아니겠죠. 결국 이건 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목적으로 나갈 겁니다.


결말이 고정적이라면, 역사 경로가 고정적이라면, 그건 진짜 대체 역사가 아닐 겁니다. 왜 타임 슬립, 시간 여행, 대체 역사가 인기를 끌까요? 이것들은 역사 경로가 고정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역사 경로가 고정적이라면, 대체 역사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무리 인간이 타임 슬립하고 수 백 번 역사를 뜯어고친다고 해도, 결국 역사가 신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심판의 날을 벗어나는 대체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타임 슬립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 세계의 목적이 무조건 심판의 날이라면, 그래서 신이 무조건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면, 타임 슬립은 소용이 없겠죠.



타임 슬립은 역사에 목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역사 경로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만약'은 존재해야 합니다. 역사는 수많은 경로들로 뻗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만약들'이라는 가정 없이, 타임 슬립, 시간 여행, 대체 역사 이야기는 가치를 잃을 겁니다. 만약 수많은 '만약들'이 존재한다면, 신이 인류를 구원하지 못하거나 인류가 심판의 날을 피하는 '만약' 역시 존재할 겁니다. 기독교 같은 목적론 세계관은 역사 경로가 고정적(심판의 날과 인류 구원)이라고 말하나, 대체 역사는 그걸 거부합니다.


대체 역사 속에서 심판의 날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신을 통하는 인류 구원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류는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론 세계관과 대체 역사는 충돌합니다. 대체 역사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신을 거부하고 인간들과 독립적인 세상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타임 슬립, 시간 여행, 대체 역사 이야기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 역사 이야기는 서구 중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서구 중세는 기독교 세계관이었고, 기독교 세계관은 대체 역사 이야기를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독립적인 세상이 스스로 움직인다면, 심지어 세상은 신을 내쫓을 수 있을 겁니다.



인류가 스스로 신을 쫓아낸다면, 기독교 세계관, 서구 중세에게 이건 신성 모독일 겁니다. 서구 중세에서 지배적인 관념은 이걸 용납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구 중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계몽주의 이후 시대가 신을 밀어냈기 때문에, 우리는 대체 역사를 상상할 수 있죠. 타임 슬립과 시간 여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임 슬립과 시간 여행은 대체 역사를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이죠. 이런 관점에서 타임 슬립, 시간 여행, 대체 역사는 서구 근대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타임 슬립, 시간 여행, 대체 역사는 신보다 인간들과 독립적인 세상을 인정합니다. 타임 슬립, 시간 여행, 대체 역사가 서구 중세 분위기보다 계몽주의에 어울린다면, 타임 슬립, 시간 여행, 대체 역사는 SF 울타리 안에 들어올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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