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다키스트 던전>, 우주적이고 공포스러운 수치 계산(?)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다키스트 던전>, 우주적이고 공포스러운 수치 계산(?)

OneTiger 2019. 1. 21. 17:58

비디오 게임 <다키스트 던전>은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을 추앙합니다. 어쩌면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소설들을 쓰지 않았다면, <다키스트 던전> 같은 게임은 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면 <다키스트 던전>은 아예 다른 게임이 되었을 겁니다. 전반적으로 이 게임은 압도적이고 기괴한 외계 존재가 사람들을 정신적인 파멸에 빠뜨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외계 존재들, 악마들, 괴물들, 해저 생물들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입니다. 동시에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아주 막강한 정신적인 충격을 미칩니다.

 

외계 존재를 처치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영지를 관리하고, 모험가들을 소집하고, 던전을 탐험하고, 유물들을 구성해야 합니다. 모험가들은 무너진 저택과 울창하고 어두운 숲 속과 지저분하고 역겨운 지하실과 해안 동굴을 탐험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모험가들은 온갖 부정하고 기괴한 존재들을 만나고 정신적인 충격에 빠집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영지에 여러 건물들을 지어야 합니다. 정신병원과 성전과 술집에서 모험가들은 물리 치료와 도박과 폭음과 섹스를 거칩니다.

 

 

주사를 맞고, 술을 퍼마시고, 주사위를 굴리고, 살을 섞는 동안, 모험가들은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납니다. 하지만 다시 폐허나 지하실이나 해안 동굴에 들어갈 때, 그들은 다시 기괴한 존재들을 만나고 정신적인 충격에 빠질 겁니다. 정신적인 충격은 다양한 증상들을 부를 겁니다. 누군가는 자해할 테고, 누군가는 세상을 외면할 테고, 누군가는 혼자 도망칠 테고, 누군가는 망상에 빠지겠죠. 이런 감성은 러브크래프트 소설들과 비슷합니다. 이런 감성을 묘사한 작가들은 다양하나, 그들 중에서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대표적일 겁니다. (이건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가장 글을 잘 썼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키스트 던전>에는 여러 유물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물고기 우상이나 해안 동굴, 해저인들은 정말 <인스머스의 그림자> 같은 소설과 비슷해요. 러브크래프트는 심해 공포 소설을 별로 많이 쓰지 않았으나, <다곤>과 <크툴루의 부름>과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심해 괴수는 러브크래프트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죠. 게임 플레이어는 모험가들이 겪는 공포들과 기벽들을 제거해야 하고, 이런 기벽 관리는 핵심적인 사항입니다. 어쩌면 다른 던전 탐험 게임들과 <다키스트 던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기벽 관리일 겁니다.

 

 

<다키스트 던전>에서 영지는 그저 모험을 의뢰하거나 물품을 장비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판타지 롤플레잉 게임에는 으레 중심적인 마을이 존재합니다. <엘더 스크롤 5: 스카이림>에 등장하는 화이트런은 좋은 사례입니다. 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에서 영지는 그저 상인들과 의뢰인들이 모인 장소가 아닙니다. 영지는 공포에 질린 모험가들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장소입니다. <다키스트 던전> 역시 물품을 판매하거나 전투 기술을 가르치거나 모험 의뢰를 받는 과정을 빼먹지 않으나, 영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벽 관리 때문이겠죠.

 

적어도 기벽 관리는 <다키스트 던전>의 영지와 다른 판타지 롤플레잉 게임들의 마을이 드러내는 가장 큰 차이일 겁니다. 모든 모험가는 공포 수치를 보여주고, 게임 플레이어는 이런 공포 수치를 낮추느라 애씁니다. 몇몇 모험가는 용기를 북돋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거나 격려를 늘어놓고 공포 수치를 낮출 수 있습니다. 몇몇 모험가는 기괴한 주문을 외우거나 괴물로 변하거나 이기적인 발언을 내뱉고 공포 수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체력 수치처럼 공포 수치는 중요합니다. 아니, 어쩌면 (게임이 추구하는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체력 수치보다 공포 수치는 훨씬 중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공포 수치는 문자 그대로 수치입니다. 감정이 수치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겠죠. 그렇다고 해도 <다키스트 던전>은 감정을 수치화해야 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모험가들이 뭐라고 느끼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충격에 빠질 때마다 모험가들은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런 대사는 모험가들이 느끼는 속내를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모험가의 속내로 깊게 들어가지 못합니다. 해설자(죽은 선대 영지 주인)가 떠드는 이야기 역시 간접적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반면, <다곤>이나 <크툴루의 부름>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소설 주인공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자세히 보여줍니다. 독자는 소설 주인공의 속내를 깊게 알 수 있습니다.

 

아예 <다곤>과 <크툴루의 부름>과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거나 1인칭 화자 시점입니다. 비단 이 세 소설들만 아니라 여러 소설들에서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1인칭 시점을 도입했습니다. 1인칭 시점은 화자의 속내를 솔직하게 직접 드러냅니다. 독자와 화자는 곧바로 만날 수 있고, 화자가 속내를 드러낼 때, 독자는 그걸 직접 읽을 수 있죠. 그래서 러브크래프트는 3인칭 시점이나 전지적 시점을 도입하지 않았을 겁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깊게 파고들어야 했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을 읽을 때, 매개자 없이 독자는 화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건 게임과 소설의 차이일 겁니다. 1인칭 시점 소설과 달리, 결국 <다키스트 던전>은 수치를 계산하는 과정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주사위를 굴리고, 피해 수치나 공격 수치나 공포 수치를 계산하고, 금화들과 건설 비용과 훈련 비용을 계산합니다. <다키스트 던전>에서 대부분 요소들은 수치들로 이루어집니다. 암울하고 비관적인 그림이나 음악, 해설 역시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수치가 아니죠. 하지만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가 그림이나 음악을 오래 감상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을 공략하지 못합니다. 게임을 공략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수치를 계산해야 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피해 수치를 계산하고 금화들을 계산하고 얼마나 피가 부족한지 계산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다키스트 던전>의 엔딩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치 계산들은 우주적인 공포가 아닐 겁니다. 우주적인 공포는 <다키스트 던전>의 분위기를 조성하나, 그건 전부가 아닙니다. 핵심은 수치 계산입니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는 수치 계산을 비장미 넘치게 꾸미는 요소입니다. 그 자체로서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는 주된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이건 <러브크래프트 전집> 뒷표지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이 공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지를 바라볼 때, 인간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를 느낍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정말 미지를 바라볼 때, 인간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공포)을 느낄까요?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반박하거나 긍정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은 미지를 두렵게 여깁니다. 심리학을 잘 모른다고 해도, 사람들은 인간이 미지를 두려워한다고 말할 겁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직면'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미지를 직면할 때, 인간은 미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미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때, 인간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인간은 대안을 찾을 겁니다. 미지를 두려워할 때, 인간은 직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직면은 쉽지 않은 행위입니다. 인간이 미지를 직면할 때, 미지가 인간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미지는 사소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미지는 아주 강력할지 모릅니다. 미지는 그저 이웃집에 사는 여자 이름에 불과하지 않겠죠.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은 어떻게 인간이 압도적인 미지를 대면하는지 묘사합니다. <다키스터 던전>에서 그런 과정은 수치 계산을 뒷받침하는 요소입니다. 분위기가 절망스럽기 때문에 수치 계산은 훨씬 재미있습니다. 분명히 <다키스트 던전>은 매력적인 던전 탐험 게임입니다. 제작 비용이 많지 않은 킥스타터 게임임에도, <다키스트 던전>은 아주 비장미가 넘치는 던전 탐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치를 계산하는 행위가 우주적 공포일까요?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읽을 때, 독자는 인간이 초월적인 존재에게 느끼는 감성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주적 공포 장르는 이런 체험일 겁니다. 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의 핵심은 수치 계산입니다.

 

분명히 암울하고 절망적인 그림체, 음악, 대사, 성우 연기, 서사는 <다키스트 던전>의 일부이고 <다키스트 던전>과 떨어지지 못합니다. 수치 계산, 그림체, 음악, 대사, 성우 연기, 서사가 총체적으로 결합할 때, <다키스트 던전>이라는 게임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다키스트 던전>은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들 중에서 핵심은 수치 계산이고, 수치 계산은 우주적 공포 장르가 되지 못하겠죠. 비단 <다키스트 던전>만 아니라 다른 게임들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종종 수치 계산을 위해 SF 게임들은 설정과 사상과 세계관을 우회하거나 간과하거나 축약합니다. 수치 계산은 핵심이고, 설정과 사상과 세계관은 뒤로 밀립니다. 하지만 SF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수치 계산이 아니죠. 그래서 어떤 SF 팬들은 SF 게임이 진정한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솔직히 감정이나 사상을 수치화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웅장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바라볼 때, 사람들은 감탄할 겁니다. 그런 감탄이 수치가 될 수 있을까요? 환경 경제학자들은 그게 가능하다고 말할지 모르나, 글쎄요, 정말 이게 가능할까요? 이런 소리를 들을 때, 심층 생태주의자들은 길길이 날뛸 겁니다. 하지만 게임은 감정이나 사상을 수치화해야 합니다. <문명> 같은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가 자연의 경이를 찾았을 때, 자연의 경이는 보너스 점수를 줘야 합니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감동은 수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모순이라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런 모순을 즐겨야 할 겁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