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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니치>와 재생산 가치와 어리석은 늑대인간 본문

감상, 분류, 규정/생태 사회주의, 에코 페미니즘

<니치>와 재생산 가치와 어리석은 늑대인간

OneTiger 2019. 10. 26. 20:56

[재생산 과정 없이, 생태학 SF 게임 플레이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재생산 과정은 가치를 만듭니다.]



많은 전략 게임들, 전술 게임들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유닛들을 만듭니다. 유닛들 없이, 전략 게임들, 전술 게임들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원들을 채취하고, 자원들을 소비하고, 유닛들을 만듭니다. 유닛들을 생산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가 자원들을 소비하기 때문에, 유닛들을 생산하기 위한 조건은 자원 소비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직 자원 소비만 유닛들을 생산하기 위한 조건이 되나요? 오직 충분한 자원만 생산으로 이어지나요? 진화 생물학 게임 <니치>는 그게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여러 동물들을 이용해 자연 생태계를 채우고 탐사합니다.


진화 생물학 게임으로서 <니치>는 새로운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를 채운다고 이야기합니다. 동물들은 숫자를 늘리고 새로운 자연을 조성합니다. 동물들에게는 과일들과 고기들, 수풀들 같은 자원들이 필요하나, 오직 이런 자원들만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새로운 동물들을 '생산'하기 원한다면, 암컷과 수컷은 교미하고, 암컷은 출산해야 합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새로운 동물들을 '생산'하기 원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재생산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재생산 과정 없이,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진화 생물학 게임으로서 <니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만약 게임 프로그램에 버그가 나타나고, 재생산 과정이 불가능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겁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니치>에서 새로운 유전 형질 조합, 새로운 동물들, 새로운 자연 생태계는 핵심적인 게임 플레이입니다. 만약 암컷 동물들이 재생산하지 못한다면, 동물들이 후손들을 낳지 못한다면, 새로운 유전 형질이고 뭐고 없을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게임 제작자들에게 항의하고 재생산을 하기 위한 패치를 내놓으라고 난리법석을 부릴 겁니다. 스팀 같은 게임 플랫폼에서 부정적인 엄지 손가락들은 주르륵 늘어날 겁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니치>는 얼마나 재생산이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재생산은 원초적입니다. 재생산 없이, 진화고 자연이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인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체, 동물입니다. 인류가 번영하기 위해 재생산은 필수적이고 원초적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섹스, 임신, 출산, 육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만약 <니치>에서 재생산 불가능 버그가 나타난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난리법석을 일으킬 겁니다. <니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재생산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류 문명에게 풍족한 자원들이 넘쳐난다고 해도, 재생산 없이, 인류 문명은 망할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비일상적인 상황을 이용해 특정한 주제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니치>는 새로운 진화 역사와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보여줍니다. 재생산은 새로운 진화 역사와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뒷받침합니다. 진화 역사와 자연 생태계에게 재생산은 필수적이고 원초적인 조건입니다. 재생산은 새로운 동물을 '생산'합니다. 생산은 다소 딱딱하고 기계적인 단어 같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미스는 이런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재생산 역시 중요한 '생산' 개념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에, 인류 문명에서도 재생산은 중요한 생산 개념입니다.


동물로서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식량을 비롯해 재화들을 '생산'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들에게 많고 많은 재화들이 있다고 해도, 만약 인간들이 재생산하지 못한다면, 인간들이 후손들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인류 문명은 망할 겁니다. 재화 생산처럼, 사회적인 생산, 재생산은 필수적입니다. 인간 노동은 재화를 생산하나, 재생산이 인간 노동을 생산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 노동보다 재생산은 훨씬 원초적인지 모릅니다. 인간 노동이 가치(재화)를 만드는 것처럼, 재생산은 가치(인간 노동)를 만듭니다. 그래서 <가부장제 이론>에서 실비아 월비는 재생산과 생산을 구분하지 않을 겁니다.



<가부장제 이론>에는 여러 한계들이 있고 커다란 결함들이 있으나, 실비아 월비는 중요한 사실을 짚었습니다. 재생산은 생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 노동이 가치(재화)를 만드는 것처럼, 재생산 과정은 가치(인간 노동)를 만듭니다. 이런 가치 개념은 <자본론>에 부합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런 가치 개념과 <자본론>은 어긋나지 않을 겁니다. 자본주의 작동 원리를 밝히기 위해 <자본론>은 노동 가치 이론과 잉여 가치 이론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이고, 하늘에서 동물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니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재생산 과정은 동물들을 만들고, 동물들은 자연을 조성합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진화 생물학을 열심히 지지했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생태학 SF <니치>를 좋아할 겁니다. <니치>는 재생산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프리드리히 엥겔스 역시 이것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재생산이 가치를 만들기 때문에, 인류 사회에서 재생산 과정은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인간 노동이 댓가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재생산 과정은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생물적으로, 사회 구조적으로 수많은 여자들은 재생산 과정에 참가합니다. 심지어 재생산을 위해 여자들은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이 댓가를 제대로 받나요? 만약 여자들이 댓가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면, 성 해방 운동이 이것을 지적하나요?



손냐 아이스만이 쓴 <페미니즘을 어떠 써먹어?>는 마가렛 앳우드를 인용합니다. 페미니즘이 불편하고 분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마가렛 앳우드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원합니다. 페미니즘은 분란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건 당연합니다. 사회 구조가 삐뚤어졌기 때문에, 사회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페니미즘은 분란을 일으켜야 합니다. 삐뚤어진 사회 구조는 사람들을 장악합니다. 지배적인 관념은 사람들을 세뇌시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은 불편합니다. 노예 주인들이 노예 해방 운동을 불편하게 간주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불편하다고 간주합니다. 페미니즘은 불편합니다.


만약 페미니즘이 불편하지 않다면, 페미니즘이 안락하다면, 이건 페미니즘이 아닐 겁니다. 페미니즘은 분란을 일으켜야 합니다. 페미니즘이 분란을 일으킬 때, 페미니즘은 뭔가를 공격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만약 페미니즘이 아무것도 공격하지 않고 아무것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분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페미니즘은 뭔가를 반드시 공격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무엇을 공격하고 비판해야 하나요? 꼰대 할아버지? 수구 꼴통 아재? 한심한 남정네? 이른바 일베충들? 분명히 이런 사람들은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격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인가요? 만약 페미니즘이 꼰대 할아버지를 공격하고, 수구 꼴통 아재를 공격하고, 한심한 남정네를 공격하고, 이른바 일베충들을 공격한다면, 이게 근본적인 비판이 되나요? "오늘 지하철에서 어떤 아재는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나는 아재를 째려봤다. 아재는 황급히 손을 뗐다. 아놔, 씨발, 또라이 놈팽이 같으니. 더 이상 나는 수동적인 여자가 아니다. 나는 당당하게 파렴치한 놈팽이들을 노려볼 수 있다." 이런 선언이 페미니즘의 전부인가요? 만약 여자들이 당당한 정체성을 찾고, 남자들과 동등한 지위들을 얻고, 브래지어들을 벗고, 모유 수유를 거부한다면, 이런 행위들이 페미니즘을 뒷받침할 수 있나요?


분명히 이런 행위들은 중요합니다. 당당한 정체성은 중요합니다. 당당한 정체성 없이, 어떻게 여자가 인간이 될 수 있나요? 동등한 지위 역시 중요합니다. 만약 여자들이 오직 보조적인 지위들만 차지한다면, 사람들은 여자가 보조적이라고 착각할 겁니다. 지위는 인간 성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여자들과 남자들은 동등한 지위들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브래지어들을 얼마든지 벗을 수 있습니다. 생물적으로, 사회적으로 브래지어는 억압이 됩니다. 비록 티셔츠에 돌출된 젖꼭지가 비친다고 해도, 이게 무슨 문제입니까? 아무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모유를 찬미했다고 해도, 모유 수유 역시 진리가 아닙니다.



당당한 정체성, 동등한 지위, 브래지어 탈의, 전형적인 모성 파괴. 이런 것들은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게 페미니즘의 전부가 된다면, 이런 페미니즘은 어리석은 늑대인간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스토리텔링 게임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에는 늑대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이아의 전사들입니다.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 자연 가이아는 늑대인간들을 만들었습니다. 20세기 산업 문명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막대한 환경 범죄들을 일으키기 때문에, 늑대인간들에게 다국적 기업들은 가장 커다란 적수입니다. 다른 괴물들, 악마들보다 다국적 기업들은 훨씬 커다란 문제입니다.


심지어 다국적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을 퍼붓고, 악마들을 소환하고, 괴물들을 실험하고, 로봇들을 조립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은 가장 거대한 권력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자본은 가장 거대한 권력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거대 자본가 계급들은 막대한 자본을 퍼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마들과 괴물들과 로봇들보다 다국적 기업들은 훨씬 위협적입니다. 거대 자본가 계급은 일급 과학자들과 마법사들을 고용하고, 차원 관문을 실험하고, 우주로 진출하고, 심해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고위 악마들 역시 다국적 기업 간부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고위 악마들은 대기업 간부가 되어야 합니다.



늑대인간들은 다국적 기업을 미워합니다. 그들은 다국적 기업을 쓰러뜨리기 원합니다. 다국적 기업은 엄청난 매연들을 뿜고, 산업 폐기물들을 강물들과 바다들에 무단 방출하고, 독성 화학 물질들을 실험하고, 불안전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광고들을 내보내고, 열대 밀림들을 밀어내고, 플랜테이션 농장들을 세우고, 해양 어종들을 싹쓸이하고, 야생 동물들을 학살합니다. 늑대인간들이 자연 환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자연의 수호자이기 때문에, 늑대인간들은 다국적 기업을 쓰러뜨리기 원합니다. 문제는 다국적 기업이 너무 막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늑대인간들은 약자입니다.


늑대인간들은 3m짜리 거구입니다. 그들은 철판을 물어뜯을 수 있고, 자동차를 뒤집을 수 있고, 총알 세례를 향해 돌진할 수 있습니다. 늑대인간들은 놀라운 치유력, 회복력을 자랑합니다. 아무리 늑대인간이 커다란 부상을 입는다고 해도, 순식간에 늑대인간은 부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늑대인간들은 정령들과 친하고 정령 세계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정령들이 주술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늑대인간들은 놀라운 주술들을 부립니다. 늑대인간들은 의식을 치르고, 강력한 폭풍을 부르고, 대규모 산업 폐기물 창고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악마가 덤빈다고 해도, 늑대인간들은 뛰어난 협동력을 이용해 악마와 맞섭니다.



하지만 이런 신체적인 능력, 주술적인 능력은 막대한 자본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무리 늑대인간들이 철판을 물어뜯고, 강력한 폭풍을 부르고, 놀랍게 회복하고, 뛰어난 협동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늑대인간들은 소수입니다. 그들은 숫자를 빠르게 불리지 못합니다. 반면,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다국적 기업들은 엄청난 이윤들을 창출합니다. 정령 주술들은 엄청난 이윤들을 상대하지 못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진짜 권력은 정령 주술들보다 엄청난 이윤들입니다. 아무리 대기업 간부가 인간이라고 해도, 대기업 간부는 막대한 비용을 퍼붓고 첨단 강화복을 입을 수 있습니다. 첨단 강화복은 늑대인간과 싸울 수 있습니다.


늑대인간들은 대기업 간부를 처지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이미 대기업 간부는 첨단 방탄 차량, 늑대인간 전용 은제 무기들, 인공 지능 소형 컴퓨터, 튼튼한 강화복을 갖추었습니다. 대기업 간부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늑대인간들이 철판을 찢고, 주술을 부리고, 놀랍게 회복한다고 해도, 그들이 아이언맨을 이길 수 있나요? 만약 늑대인간들이 대기업 간부를 공격한다면, 대기업 간부는 강화복을 입고, 강력한 무기들을 퍼붓고, 늑대인간들을 몰아붙일 겁니다. 오히려 늑대인간들은 수세에 몰릴 겁니다. 어쩌면 대기업 간부는 늑대인간들을 사로잡을지 모릅니다. 늑대인간들은 포로가 될지 모릅니다.



만약 늑대인간들이 포로가 된다면, 대기업은 늑대인간들을 해부하고, 실험하고, 연구할 겁니다. 대기업은 훨씬 뛰어난 늑대인간 전용 무기들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늑대인간들은 대기업 간부를 처치하기 원했으나, 오히려 대기업은 늑대인간 전용 무기들을 양산합니다. 그래서 늑대인간들은 대기업 간부를 쉽게 처치하지 못합니다. 늑대인간들은 그저 하급 직원들만 공격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늑대인간들이 하급 직원들을 공격한다고 해도, 다국적 기업들이 쓰러지나요? 솔직히 하급 직원들은 그저 월급쟁이들에 불과합니다. 늑대인간들은 월급쟁이들을 처치하고 의기양양하게 포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늑대인간들이 월급쟁이 하급 직원들을 처치한다고 해도, 다국적 기업 간부들은 늑대인간들을 비웃을 겁니다. 늑대인간들이 다국적 기업 핵심을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 간부들은 비웃을 수 있습니다. 만약 늑대인간들이 많은 하급 직원들을 죽인다면, 사람들은 연쇄 살인 사건들을 두려워할 테고, 오히려 기업 간부들은 두려움을 이용해 악마들을 소환할 겁니다. 악마들은 늑대인간들을 공격할 테고, 악마들과 싸우기 위해 늑대인간들은 전력을 잃어야 합니다. 늑대인간들이 하급 직원들을 처치하고 포효한다고 해도, 이건 명예로운 포효보다 그저 우스꽝스러운 울부짖음에 불과합니다.



사실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에서 이런 모순은 중요한 게임 플레이입니다.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들이 모순을 피하기 원한다고 해도,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는 모순을 제시합니다. 스토리 텔러는 게임 플레이어들이 모순을 피하지 못한다고 설정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모순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는 재미있습니다. 스토리 텔러와 게임 플레이어들은 모순적인 상황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건 스토리텔링 게임입니다. 아무리 게임 속에서 첨단 강화복이 늑대인간들을 두들겨패고, 늑대인간들이 엉뚱한 표적들을 공격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의 상황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스토리텔링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늑대인간들이 어리석다고 느끼고 모순적인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으나, 현실에서 이건 즐거운 게임 플레이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페미니즘이 그저 꼰대 할아버지를 공격하고, 수구 꼴통 아재를 공격하고, 한심한 남정네를 공격하고, 이른바 일베충들을 공격할 뿐이라면, 이런 페미니즘은 어리석은 늑대인간들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만약 페미니즘이 오직 당당한 정체성과 동등한 지위와 브래지어 탈의와 모성 파괴만 외친다면, 이런 선언은 우스꽝스러운 울부짖음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런 비판, 이런 선언은 가장 중요한 핵심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진보 사상들은 민중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떠듭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 역시 민중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민중의 목소리가 정말 중요한가요? 꼰대 할아버지는 민중입니다. 수구 꼴통 아재는 민중입니다. 한심한 남정네는 민중입니다. 일베충 역시 민중입니다. 만원 지하철 속에서 또라이 놈팽이가 젊은 아가씨 엉덩이를 더듬는다고 해도, 또라이 놈팽이 역시 민중입니다. 그래서 꼰대 할아버지와 수구 꼴통 아재와 한심한 남정네와 일베충과 또라이 놈팽이의 목소리들이 중요한가요? 꼰대 할아버지가 수구 꼴통 정당을 응원하기 때문에, 수구 꼴통 정당이 중요한가요?


로자 룩셈부르크는 대표적인 민중 혁명가입니다. 하지만 아무 조건 없이, 로자는 민중들을 떠들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회 구조가 지배적인 관념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세뇌하기 때문입니다. 노예 제도 사회에서 흑인들이 민중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백인들의 목소리들이 민중의 목소리가 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오직 민중의 목소리만이 아닙니다. 민중은 고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만약 사회 구조가 바뀐다면, 민중 역시 바뀔 겁니다. 민중은 얼마든지 지배적인 관념의 좀비가 되거나 혁명적인 잠재력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비단 민중의 목소리만 아니라 사회 구조입니다.



얄팍한 진보 지식인들은 이것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얄팍한 진보 지식인들은 사회 구조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배적인 체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조는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 구조는 옳습니다. 사회 구조가 지배적인 관념을 퍼뜨리고, 사람들이 지배적인 관념을 떠받든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얄팍한 진보 지식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민중의 목소리를 떠듭니다. 하지만 모든 민중은 똑같지 않습니다. 수구 꼴통 민중들이 군사 파쇼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에, 군사 파쇼주의는 혁명적인 민중들을 학살합니다. 수구 꼴통 민중들이 다국적 기업들을 지지하기 때문에, 기후 변화 속에서 가난한 민중들은 죽어나갑니다.


모든 민중은 똑같지 않습니다. 당파성(黨派性)은 민중들을 가릅니다. 사회 구조는 당파성에 영향을 미치고, 당파성은 민중들을 나눕니다. 하지만 얄팍한 진보 지식인들은 지배적인 체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당파성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혁명적인 민중들이 당파성을 중시할 때, 얄팍한 진보 지식인들은 혁명적인 민중들을 모욕합니다. 얄팍한 진보 지식인들은 지배적인 체계가 바뀌기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급진적인 것들을 나불거린다고 해도, 결국 그들은 지배 계급의 앞잡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밑도 끝도 없이 민중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떠듭니다. 그들은 성 폭행 피해자 아가씨와 수구 꼴통 아재가 똑같이 민중이라고 말합니다.



수구 꼴통 아재는 민중입니다. 동시에 수구 꼴통 아재는 민중이 아닙니다. 어떻게 성 폭행 피해자와 성 폭행 가해자가 똑같이 민중이 되나요? 만약 모든 민중이 똑같다면, 왜 어떤 민중들이 수구 꼴통 정당을 지지하고, 왜 어떤 민중들이 군사 파쇼주의에 반대하나요? 사회 구조가 지배적인 관념을 퍼뜨리고, 지배적인 관념이 사람들을 세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중의 목소리와 함께 사회 구조를 말해야 합니다. 사회 구조 없이, 우리는 민중의 목소리를 논의하지 못합니다. 무슨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나요? 대답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입니다. 자본주의는 가장 지배적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늑대인간들이 싸우는 것처럼,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페미니즘은 싸워야 합니다. 좋든 싫든, 페미니즘은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합니다. 페미니즘이 무엇을 하든,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페미니즘은 뭔가를 해야 합니다. 언제나 페미니즘은 세계화 자본주의를 의식해야 합니다. 어떻게 세계화 자본주의가 여자들을 착취하나요? 가부장 문화로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여자들을 착취할 때, 무엇이 가장 문제가 되나요? 자본주의가 여자, 인디언, 노동자, 열대 밀림을 착취할 때, 이런 착취들이 똑같은가요? 여자, 인디언, 노동자, 열대 밀림이 똑같은가요?



그건 아닐 겁니다. 가부장 문화로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여자들을 착취할 때, 여기에는 고유한 착취 구조가 있을 겁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여자에게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가요? 어떻게 자본주의가 여자의 고유한 특성을 착취하나요? 유력한 대답은 사회적인 재생산, 섹스, 임신, 출산, 수유, 육아입니다. 여자와 남자는 다릅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들 중에서 하나는 출산입니다. 출산이 가장 커다란 차이, 가장 중요한 차이가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출산은 아주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건 생물학적인 결정론이 아닐 겁니다. 오직 여자만 임신하고, 출산하고, 수유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것을 착취합니다.


생태학 SF 게임 <니치>가 강조하는 것처럼, 임신, 출산, 육아 없이, (자연 환경과) 인류 문명은 망합니다. 인간은 동물입니다. 다른 많은 동물들처럼, 인류에게 재생산은 가장 원초적입니다. 가부장 문화로서 자본주의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재생산 없이, 인류 문명이 망함에도, 인류 문명에게 재생산이 가장 원초적임에도, 자본주의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본주의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인류 사회는 재화들을 재생산에 투자할 겁니다. 만약 인류 사회가 재화들을 재생산에 투자한다면, 자본가 계급은 이윤을 극대화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재생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노동을 너무 협소하게 규정합니다. 자본가 계급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을 때, 자본주의는 노동을 인정합니다. 심지어 자본주의가 노동을 인정한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노동에게 댓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습니다. 자본가 계급은 잉여 가치를 반드시 착취해야 합니다. 심지어 임금 노동조차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함에도, 어떻게 재생산이 댓가를 받을 수 있나요? 여자들은 월경합니다. 월경은 노동이 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여자들이 월경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아기들을 건강하게 낳을 수 있습니다. 월경 때문에, 여자들은 고통을 겪습니다. 이런 고통 때문에, 인류 문명은 번성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부장 문화가 사라지고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해도, 여자들은 월경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평생 동안 여자가 임신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자가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자는 월경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여자와 남자가 출산에 똑같이 동의한다고 해도, 오직 여자만 임신하고 온갖 불편들과 고통들을 겪어야 합니다. 이건 너무 불리한 구조입니다. 이렇게 여자들이 부담들을 떠맡고 고통들을 겪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번성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재생산 없이, <니치>를 플레이하시기 바랍니다. 재생산 없이,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니치>를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다면, 이 게시글은 헛소리가 될 겁니다. 그리고 재생산 없이, 아무도 <니치>를 원활하게 플레이하지 못할 겁니다. 재생산 과정이 원초적이기 때문입니다. 재생산 과정은 가치를 '생산'합니다.



여자들이 월경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여자들은 노동자인지 모릅니다. 적어도 여자들은 가장 원초적인 가치를 생산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여자들은 안전한 생리대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월경 휴가를 얼마든지 신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잘나고 고상하신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이것을 인정하나요? 여자들이 얼마든지 안전한 생리대를 이용하고 월경 휴가를 신청할 수 있나요? 아니, 생리대는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자본가 계급은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고, 생리대는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자본가 계급을 위해 재생산은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구호 광고들은 가난한 여학생들에게 생리대를 후원하자고 운운합니다. 왜 오직 가난한 여학생들만 후원을 받아야 합니까? 왜 이게 후원이 되어야 합니까? 인류 사회는 재생산 가치를 보편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본주의는 이것을 거부합니다. 생리대는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호 광고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구호 광고 속의 멋지고 예쁜 광고 모델들, 홍보 대사들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재생산 가치를 착취한다고 비판하나요? 아니, 오히려 멋지고 예쁜 광고 모델들, 홍보 대사들은 자본가 계급에게 복종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배적인 체계의 나팔수들입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에는 가치 이론이 없습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수요-공급 곡선을 주구장창 나불거립니다. 무엇보다 오직 여자만 출산하기 때문에, 가부장 문화로서 자본주의는 여자와 돌봄 노동을 연결합니다. 이런 연결은 억지입니다. 아무리 여자가 출산한다고 해도, 남자들 역시 돌봄 노동들에 얼마든지 참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인류 사회가 돌봄 노동자들을 정당한 노동자들이라고 인정하고 댓가를 지불한다면, 사회적인 재화들은 돌봄 노동들로 흘러갈 테고, 자본가 계급은 이윤을 극대화하지 못할 겁니다. "집에서 여자는 애나 봐라!" 이렇게 가부장 문화는 재생산을 모욕합니다. 하지만 만약 '집에서 여자가 애를 보기 때문에', 여자가 댓가를 받는다면?


더 이상 이건 모욕이 되지 못합니다. "밖에서 남자들은 힘들게 돈을 벌고, 집에서 여자들은 편하게 애를 본다." 더 이상 이런 주장은 성립하지 못합니다. 만약 돌봄 노동이 정당한 노동이 된다면, 이런 구분은 의미를 잃습니다. "밖에서 남자들은 힘들게 돈을 번다." 여기에서 '밖'은 시장 경제입니다. 만약 돌봄 노동들이 댓가를 받는다면, 이건 시장 경제에서 벗어날 테고, 심지어 이건 시장 경제를 깨뜨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재생산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여자는 임신하고, 출산하고, 수유하고, 육아해야 합니다.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게 당연하기 때문에, 이건 댓가를 받지 못합니다. 당연히 여자는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생산 과정(섹스부터 육아 및 교육까지)이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겁니다. 재생산 과정이 개인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재생산 과정이 노동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겁니다. 만약 재생산 과정이 노동이 되지 못한다면, 인류 사회는 재생산 과정에 댓가를 지불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정말 섹스부터 육아까지, 재생산 과정이 그저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한가요? 사람들이 섹스하기 원하고, 아기를 갖기 원하고, 아이를 돌보기 원할 때, 이게 그저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한가요? 우리가 사랑을 선택할 수 있나요? 이건 헛소리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집니다.


우리에게는 '몸'이 있습니다. 동물로서 우리에게는 '몸'이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여자들이 임신하기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자들은 월경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그 날'을 겪어야 합니다. 제약 광고에서 아이유가 "아프지 마세요. 호~."라고 말하는 것처럼, 좋든 싫든, 여자들은 '그 날'을 겪어야 합니다. 이게 개인적인 선택인가요? 만약 재생산 과정이 그저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하다면, 왜 종족 단위에서, '생물종 단위'에서 월경 같은 배란 현상이 존재하나요? 생명 진화 과정에서 재생산 과정은 몸과 결합했습니다. 우리가 몸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식량들을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가 몸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재생산 현상들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몸'을 떠나지 못합니다. '몸'이라는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인류 문명 번성을 위해 재생산과 노동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만약 이게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해도, 여자가 임신하기 때문에, 여자가 아기를 낳기 때문에, 돌봄 노동자가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아이는 어른이 되고 인간 노동을 발휘합니다. 재생산 과정은 인간 노동을 만듭니다. 만약 어떤 행위가 가치를 만든다면, 행위는 댓가를 받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여자가 임신하거나 돌봄 노동자가 아이를 돌본다고 해도, 이런 행위가 가치(인간 노동)를 만든다고 해도, 이건 댓가를 받지 못합니다.


만약 농민이 꿀벌들을 키우고 꿀을 생산한다면, 사람들은 농민이 가치를 생산했다고 인정할 겁니다. 만약 돌봄 노동자가 아이를 키운다면, 이런 행위 역시 가치(인간 노동)를 생산할 겁니다. 하늘에서 아이는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황새는 아이를 운반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기 위한 몸을 준비(월경)합니다. 이런 준비 이후, 여자가 힘들게 임신하고 아기를 낳기 때문에, 아기는 나타납니다. 만약 여자의 몸이 일종의 생태계라면, 월경, 임신, 출산은 영양분을 분배하고 순환시키기 위한 아주 막대한 투자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부장 문화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부장 문화가 재생산 과정에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가부장 문화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부장 문화로서 자본주의는 정당한 댓가를 착취하고 권력을 유지합니다.



꼰대 할아버지, 수구 꼴통 아재, 일베충, 또라이 놈팽이는 공격과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당당한 정체성, 동등한 지위, 브래지어 탈의, 모성 파괴는 중요한 선언들입니다. <가부장제 이론>에서 실비아 월비는 이성애가 가부장적인 억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는 정말 억압일 겁니다.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게 연애, 사랑, 섹스, 결혼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 문화는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오직 이런 문화적인 측면만 문제인가요? 문화가 전부인가요? 많은 진보 지식인들은 문화, 문화, 문화, 문화, 다시 문화를 떠듭니다. 문화가 전부인가요? 자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식량을 얻고, 응가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섹스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생태학과 경제학 역시 중요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니치>는 새로운 유전 형질, 새로운 생물종,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보여주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생태학 SF를 이용해 자연과 문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문화가 중요한 것처럼, 생태학과 경제학 역시 중요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자본주의, 이윤 극대화 구조를 인식해야 합니다. 가부장 문화로서 자본주의가 재생산을 착취하기 때문에, 우리는 재생산 착취를 막아야 합니다. 브래지어 탈의가 재생산 착취를 막나요? 아니, 브래지어 탈의는 재생산 착취를 논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래지어 탈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복종하고 북한과 쿠바를 힐난할지 모릅니다.



브래지어 탈의가 근본적인 저항이 될 수 있나요? 만약 퀴어 축제에서 젊은 여자들이 브래지어들을 벗고 젖가슴들을 흔든다면, 가부장적인 편견들은 이것을 즐길지 모릅니다. "와, 씨발, 계집년들은 공짜로 젖탱이들을 보여주네. 오늘 눈호강 좀 하겠다. 존나게 좋군?" 이렇게 가부장적인 편견은 왜곡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탁자 위의 물잔에 물이 절반 찼거나 물이 절반 비었다고 해석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을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편견에게 브래지어 탈의는 즐거운 눈호강인지 모릅니다. 재생산 착취 경제 속에서 브래지어 탈의는 눈호강인지 모릅니다.


이건 오직 재생산 착취만 유일한 원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재생산 착취 이외에 다른 여러 원인들은 가부장 문화를 뒷받침합니다. 만약 인류 사회가 재생산 '노동'을 인정한다고 해도, 인류 사회는 성 해방 운동을 지속적으로, 대대적으로 지원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재생산 착취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이건 심각한 착취이고, 그래서 성 해방 운동은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성 해방 운동은 어리석은 늑대인간이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게임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는 어리석은 늑대인간을 비웃습니다.



물론 지배적인 관념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배적인 관념이 나쁘다고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아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성장하는 동안, 인간은 지배적인 관념을 계속 받아들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심각한 모순들을 일으키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지배적인 관념을 의심하나, 당장 모든 사람은 지배적인 관념을 의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모순을 일으킨다고 해도,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용서하고 다른 것들을 탓합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북한을 봉쇄하고 고립시키고, 북한이 썩은 물이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서구 제국주의보다 북한을 헐뜯습니다.


게임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는 어리석은 늑대인간을 비웃으나, 솔직히 어리석은 늑대인간은 피해자입니다. 체계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저항 세력은 체계를 쉽게 이기지 못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감히 정령 주술들은 막대한 이윤들을 당하지 못합니다. 성 해방 운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성 해방 운동은 지배적인 관념에 순응합니다. 성 해방 운동이 지배적인 관념에 순응한다고 해도, 성 해방 운동은 피해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만약 성 해방 운동이 지배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무엇이 성 착취를 막을 수 있나요? 성 해방 운동은 초월적인 윤리와 도덕과 문화 환원론을 말하기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공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임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가 어리석은 늑대인간을 비웃는다고 해도, 이건 의도적인 게임 플레이입니다. 어리석은 늑대인간과 달리, 성 해방 운동은 핵심을 공격해야 할 겁니다. 생태학 SF 덕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니치>가 재생산을 강조하는 것처럼, 생태학 SF 덕질은 재생산이 가치를 만들고 재생산이 '노동'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생태학 SF 덕후가 아니나, 만약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니치>를 좋아한다면, 엥겔스 역시 재생산 노동을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간단하고 논리적인 귀결이기 때문입니다.



※ 게임 <니치> 스크린샷 출처: JessiMew,

https://www.youtube.com/watch?v=qv2NfmxRG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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