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노인의 전쟁> - 연륜과 회한 속의 첫사랑 본문
제목처럼 존 스칼지가 쓴 <노인의 전쟁>은 노인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소설입니다. 이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백발 노인들은 정말 전장으로 달려가고, 그 전장에서는 온갖 파괴들이 벌어집니다.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터지고, 폭발 파편들이 퍼지는 전장에서 노인들은 적들과 싸워야 합니다. 주인공 존 페리는 머리카락이 하얀 할아버지입니다. 모병소에서 이 할아버지는 입대를 자원하고, 이 장면은 소설의 첫머리를 장식합니다. 소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장면은 모병소에 자원 입대하는 할아버지죠.
이건 꽤나 어처구니가 없는 장면입니다. 자고로 전쟁은 남자 젊은이들이 필요하다고 외칩니다. 기력이 딸리기 때문에 전장에서 노인들은 아무 쓸모가 없어요. 애국심에 불타는 노인들이 입대하겠다고 자원한다고 해도, 군대는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뭐, 꼰대 장성들은 늙은이들입니다. 그들은 할아버지들이죠. 현실 속에서 할머니 장성들은 별로 없군요. 하지만 소설 속에서 비단 할아버지들만 아니라 할머니들 역시 얼마든지 입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전쟁>은 비단 노인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참가할 수 있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슬슬 독자들만 아니라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 역시 묻습니다. 어떻게 노인들이 (그리고 여자들이)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가?
해답은 기술력입니다. 소설 속에서 인류는 이미 우주로 진출했습니다. 인류는 다른 외계 행성들로 열심히 확장하는 중이고, 확장하는 동안 다양한 외계인들과 마주쳤습니다. 상투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외계인들은 각양각색입니다. 없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커다란 외계인도 있고 아주 작은 외계인도 있습니다. 기술력이 엄청나게 발달한 외계인도 있고 그저 그런 외계인도 있습니다. 절지류 외계인도 있고 파충류 외계인도 있습니다. 우호적이고 선량한 외계인도 있고 인간만 보면 잡아죽이려는 외계인도 있습니다.
어디 외계인들뿐이겠어요. 외계 행성들에서 인류는 여러 야수들과 식생들과 미생물들을 만납니다. 여타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처럼 존 스칼지는 우주의 구석구석을 다양한 문명들과 자연 환경들로 채웠습니다. 그 덕분에 어디에서든 등장인물들은 신나게 모험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인류는 적대적인 외계인들과 열심히 전쟁을 벌이는 중입니다. 쓸만한 행성을 차지하기 위해 인류는 여러 외계인들과 박터지게 싸우는 중입니다. 지구의 백발 노인들(과 여자들)은 외계 행성들로 확장하는 개척 방위군에 입대하고요.
내용 누설 때문에 저는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못하나, 기술력을 통해 백발 노인들은 첨단 병사로 다시 태어납니다. 기술은 성별과 나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들처럼 할머니들 역시 뛰어난 병사들이 되고, 젊은이들처럼 할아버지들 역시 뛰어난 병사들이 됩니다. 게다가 개척 방위군에는 이런 늙은 첨단 병사들이 득실거립니다. 사방팔방에 첨단 병사들이 돌아다니나, 그들은 노인들입니다. 그들은 아주 팔팔하게 싸울 수 있는 노인들이고, 사실 그들은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합니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전쟁에서 활약하는 장본인들이 노인(과 여자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대부분 전쟁 소설에서 주인공은 젊은 남자들입니다. 그건 당연하겠죠. 전쟁이 젊은이들을 축내기 때문입니다.
전장에서 오직 한창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들만 열심히 뛰고 구르고 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훨씬 열심히 뛰고 구르고 쏠 수 있죠. 적어도 백발 노인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할아버지 병사와 함께 전장에서 구르고 싶은 병사들은 없을 겁니다. 만약 잠수함이나 폭격기처럼 기계 병기를 이용해 싸운다면, 할아버지들 역시 활약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주 전함 야마토>처럼 하얀 수염이 더부룩한 늙은 함장은 전형적인 모습이죠. 우주 구축함에서 남자들처럼 여자 조종사들은 활약할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노인의 전쟁>에서 존 페리는 보병입니다. 존 페리는 우주 구축함을 조종하거나 수직 이착륙 전투기를 조종하지 않아요. 존 페리의 동료 보병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따라서 <노인의 전쟁>은 노인이 주인공인 전쟁 소설입니다. 이건 전장에서 노인 병사가 뛰고 구르고 쏘는 전쟁 소설이죠. <노인의 전쟁>은 젊은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숱한 전쟁 소설들과 다릅니다. 이건 <서부 전서 이상 없다>나 <전쟁과 평화> 같은 주류 문학과 다릅니다. 이건 <반지 전쟁>이나 <시간의 수레바퀴> 같은 서사 판타지 소설과 다릅니다. <스타십 트루퍼스>와 <영원한 전쟁>은 똑같은 밀리터리 SF 소설이나, 양쪽 모두 젊은이를 보병으로 내세웠어요. <영원한 전쟁>에서 (전투 강화복을 입기 때문에) 여자 보병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하나, 그들은 할머니들이 아니었죠. 하지만 <노인의 전쟁>은 여자들을 전장에 집어넣을 뿐만 아니라 그런 여자들이 할머니들입니다. 주연 등장인물들이 바뀐다면, 소설은 색다른 재미를 빚어내겠죠.
이는 <노인의 전쟁>이 자랑하는 매력입니다. 소설 주인공이 젊은이고 보병이라면, <플래툰>처럼 전장에서 주인공은 온갖 부조리들을 느끼거나 흔한 쇼비니즘 선전물처럼 열혈적으로 애국심을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존 페리는 그런 것들과 거리가 먼 노인이고, 그래서 소설을 지배하는 감수성은 사뭇 새롭습니다. 그건… 좀 더 관조적이라고 할까요. 모병부터 훈련소를 거쳐 실제 전장까지, 존 페리가 보여주는 사고 방식에는 어딘지 좀 더 느긋하거나 여유가 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은 아주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설정했고 아주 전형적인 전쟁 공식들을 거칩니다.
그렇다고 해도 존 페리가 노인이라는 사실은 뻔하고 뻔한 설정들과 공식들을 새롭게 변주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젊은 병사들은 "평생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쳤다."거나 "평생 동안 나는 해병대로 살았다."라고 말하지 못하겠죠. 평범한 노인들이 궤도 승강기에 타고, 지구를 떠나고, 우주 정거장에서 온갖 외계인들을 만나고, 첨단 기술을 통과하고, 젊은이들처럼 싸우는 모습은 꽤나 신기합니다. 소설의 중반부까지 <노인의 전쟁>은 전형적인 공식들에 안착하지 않으려고 애쓰죠. 아니, 전형적인 공식들에 안착하는 대신 <노인의 전쟁>은 좀 더 튀어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은 분명히 커다란 재미를 선사하고요.
뭐, 결국 중반부를 슬슬 지날 때, 이 소설은 다시 전형적인 공식들로 돌아옵니다. 문제는 존 페리가 군대에서 헤어진 아내를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존 페리는 평생 동안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던 아내와 우연히 마주쳐요. 이건 여타 전쟁 소설에서 구경하지 못할 상황입니다. 솔직히 전쟁과 연인은 아주 전형적인 소재입니다. 남자는 전장으로 떠나고, 고향에서 여자는 남자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전쟁은 연인을 갈라놓고, 그래서 비극과 아픔은 더욱 통렬합니다. 이건 상투적인 공식이죠.
하지만 존 페리는 사랑하는 여자를 고향에 두고 떠나는 젊은 병사가 아니에요. 아내는 군대에 있고, 존 페리는 이미 아내와 평생을 동반했습니다. 개척 방위군에서 첨단 병사로서 두 사람은 새로운 반려 관계를 시작할 수 있겠죠. 어쩌면 전쟁은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으나, 두 사람은 평범한 보병이 아닙니다. 첨단 기술력을 이용한다면, 두 사람은 독특한 반련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겠죠. 무엇보다 두 사람은 몇 십 년을 함께 살아온 관계입니다. 당연히 존 페리는 두 사람이 연애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기나긴 과정을 반추하고, 이런 반추는 소설을 든든히 지탱하는 기둥이 됩니다.
뻔한 우주 전쟁물로 안착하기 전에 <노인은 전쟁>은 독특한 반려 관계를 보여주고, 존 페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죠. 존 페리가 아내와 함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은 우주 전쟁이라는 상황과 맞물리고, 위협적인 동시에 애틋합니다. 군대에 복무하는 할아버지가 두근거리는 연애 시절을 추억하고 두근거리는 새로운 반려 관계를 만든다…. 이건 흔히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전쟁 이야기가 아닐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건 흔한 연애 이야기 역시 아니고요.
게다가 존 페리와 존 페리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재치와 개성을 뽐냅니다. 존 페리는 만담을 즐기는 인물이고, 덕분에 다른 인물들 역시 만담에 맞장구를 치고, 전반적으로 농담들과 유머들을 사방에 퍼뜨립니다. 전쟁 소설로서 <노인의 전쟁>에는 심각한 장면들이 많으나, 존 스칼지는 적재적소에 농담들을 적절하게 깔아놓을 줄 알고, 팽팽한 긴장들 사이에서 그런 농담들은 분위기를 여유롭게 잡아줍니다. <노인의 전쟁>은 분명히 밀리터리 SF 소설이나, 개인적으로 저는 전투 장면보다 등장인물들이 만담하는 장면이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페리와 동료들이 늙은이들 모임을 결성하거나 소대원들과 결혼 생활을 반추하거나 아내를 만나고 알콩달콩한 연애 시절을 늘어놓거나….
이건 전투 장면이 지루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투 장면 역시 긴박하고 속도감이 있으나, 존 스칼지는 만담이나 연애담에서 진짜 장기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장기가 하드한 설정과 만났을 때, 소설은 한층 더 매력을 발산하고요. 그렉 이건이나 스티븐 백스터과 달리 존 스칼지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설정들을 남발하지 않습니다. 존 스칼지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나, 그것보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흘러가는 만담과 이야기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필력은 정말 능수능란합니다.
사실 이런 만담은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에게 어울릴 겁니다. 젊은이들은 열정적으로 대화합니다. 그들 역시 농담들과 재치들을 늘어놓을 수 있으나, 그런 농담들에는 열정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활활 타오르는 웃음들입니다. 그저 젊다는 사실 그 자체는 웃음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만담을 주고받을 때, 그런 감성들은 주된 감성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노인들에게는 그런 열정이 없습니다.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고 해도, 늙은 육체는 마음을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노인들은 뜨겁지 못합니다. 대신 그들에게는 기나긴 세월들과 경험들과 연륜들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그걸 교환할 수 있고, 거기에서 넉넉하고 회의적이고 자조적인 웃음들을 이끌어낼 수 있죠.
<노인의 전쟁>은 그런 농담들을 구사합니다. 주연 등장인물들은 병사들이나, 다른 젊은 병사들과 달리, 그들은 열정적이고 활기찬 웃음을 끌어내지 않습니다. 회의적이고 자조적인 웃음들은 <노인의 전쟁>을 관통합니다. 물론 두근거리는 첫사랑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게다가 여기에 첨단 기술이 덧붙는다면, 두근거리는 첫사랑은 창공으로 행복하게 날아오를 겁니다. <노인의 전쟁>은 신나게 만담들을 늘어놓으나, 중반부 이후 설레는 첫사랑을 덧붙입니다. 그건 꽤나 오묘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여기에서 콩닥콩닥 첫사랑은 한층 새롭게 다가옵니다.
개인적으로 살짝 아쉬운 점은…. 우주 전쟁을 이야기함에도 전장 규모는 별로 크지 않습니다. 존 페리는 보병이고, 그래서 결국 소설은 보병 전투에 초점을 맞춥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보병 개인이 활약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분대 전술이나 부대 단위의 전투는 다소 희미합니다. 우주 구축함이나 순양함이 서로 싸우거나 우주 전투기들이 싸우는 모습 역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건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처럼 <노인의 전쟁>이 우주 함대전을 다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존 페리가 우주 구축함에 탑승했다면, 노인이라는 특징은 다소 희미해졌을 겁니다. 영화 <배틀십>이 보여준 것처럼, 함선에서 노인들 역시 중요한 역할들을 맡을 수 있죠.
존 페리가 노인이기 때문에, 개척 방위군 병사들이 노인이기 때문에, <노인의 전쟁>은 신체적이고 육체적인 특징을 최대한 부각해야 했을 겁니다. 따라서 우주 구축함 승무원은 <노인의 전쟁>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노인의 전쟁>은 뒤뚱뒤뚱 오리처럼 걷는 보병들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독자가 그런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우주 전쟁으로서 <노인의 전쟁>은 작은 규모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건 존 스칼지가 거대한 규모보다 사소하고 잔잔한 재미에 집중하기 때문일지 모르죠.
사실 <바실리크스 스테이션>이나 <테메레르> 같은 소설에서 소설 주인공은 함장입니다. 이런 소설들은 육중한 함선이나 드래곤을 보여주고, 함선과 드래곤을 지휘하는 지휘자를 강조합니다. 존 스칼지가 병사들이 뛰고 구르고 부대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면, 우주 구축함이나 해군 승무원을 피했어야 할 겁니다. 이건 우주 구축함의 해군 승무원이 육군 보병들보다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해군 승무원들과 육군 보병들은 똑같이 군바리들이고, 이리저리 힘들게 뛰어다녀야 하겠죠. 하지만 적어도 해군 승무원들은 우주 구축함이라는 거대한 첨단 병기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육군 보병들에게는 의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요. 첨단 전투복과 만능 소총은 좋은 병기이나, 이것들은 거대한 병기가 아니죠. 육군 전차병들과 달리, 육군 보병들은 그저 전투복과 소총만을 믿어야 합니다. SF 소설에서조차 땅개들은 고생합니다. (게다가 이 소설에는 기갑 부대가 없습니다. 아니, 왜 기갑 부대가 없습니까? 왜 배틀메크 같은 보행 전차가 없습니까?) 그래서 육군 병사들은 서로 부대껴야 하고, 그들은 전우애를 훨씬 잘 강조할 수 있죠. 전우애는 노인들의 자조적인 웃음들과 잘 어울리는 한쌍이고요. 그런 감성은 꽤나 인상적입니다.
솔직히 저는 SF 밀리터리 소설들이 보병들보다 보행 전차나 만능 잠수함이나 우주 구축함에 치중하기 바랍니다. SF 소설들은 훨씬 원대한 세상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병기들 역시 원대해질 겁니다. 왜 중세 전쟁처럼 SF 소설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보병들을 그려야 할까요. SF 세상에는 보행 전차가 있고, 만능 잠수함이 있고, 순양 비행선이 있고, 우주 구축함이 있을 겁니다. SF 작가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는 보병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대신 전차 조종사나 비행선 승무원을 모집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병과들은 <노인의 전쟁>과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노인의 전쟁>은 뭐 그렇게 인상적으로 자리매김하거나 인식을 확장하는 소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페이지들이 휙휙 넘어가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아울러 <노인의 전쟁>은 하드 SF 설정들을 밑바닥에 깔아놓고, 그런 설정들을 능숙하고 노련하게 이야기와 연결하죠. <노인의 전쟁>은 쉽고 재미있는 소설이나, 그저 그것만으로 평가하기에 아까운 소설입니다. 속편 <유령 여단>에서 이런 특징은 한층 더 두드러지고요. 입담이 너무 청산유수 같기 때문에 소설이 너무 술술 넘어간다는 사실이 단점 아닌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