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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만약 이 세상에서 남자들이 사라지고 오직 여자들만 존재한다면? SF 장르에서 여자들의 문명은 드문 소재가 아닙니다. 이미 18세기 사라 스콧은 고전 문학을 썼고, 여전히 사이언스 픽션은 여자들의 문명을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왜 SF 장르가 여자들의 문명을 이야기하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전복적인 것을 좋아하고, 여자들의 문명은 전복적입니다. 인류 문명이 가부장 제도이기 때문에, 만약 가부장 제도가 사라지고 여자들의 문명이 나타난다면, 이건 아주 전복적일 겁니다. 하지만 만약 남자들이 사라진다면, 이게 포스트 아포칼립스인가요? 이게 비극과 절망인가요? 남자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이건 비극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부장 제도가 존재..
여기는 미국 대도시입니다. 미국 대도시로서 거리에는 북적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남자는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집니다. 남자가 미끄러지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은 남자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많이 다치셨나요? 저는 변호사입니다! 저에게 고소를 위임하세요! 누가 바나나 껍질을 버렸든, 저는 아주 두둑하게 합의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고 대답합니다. "이런, 젠장, 다들 돌아가세요. 저 역시 변호사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진부한 변호사 농담에 속합니다. 미국 대도시에는 수두룩한 변호사들이 있고, 그들은 약삭빠릅니다. 변호사들은 약삭빠르게 법망을 이용해 돈을 뜯어냅니다. 이건 대중적인 편견이고, 전형적인 변호사 농담들은 대중적인 편견을 이용해 변호..
[삼림 건물은 다양한 상대적인 해석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여기에는 발생 흐름이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물잔이 있습니다. 물잔에는 물이 절반 있습니다. 아니, 물잔에는 물이 절반 비었습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세요. 분명히 물잔에는 물이 절반 있습니다. 잠깐, 정말 물잔에 물이 절반 있나요? 물잔에는 물이 절반 비었습니다. 물잔에는 물이 절반 있거나 물이 절반 비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잔에 물이 절반 있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물잔에 물이 절반 비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아주 유명한 논란입니다. 이런 사례는 사람들이 똑같은 상황을 얼마든지 상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비록 상황이 똑같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물잔에 물이 절반 있다고 말합니다. 비록 상황이 똑..
박문영 작가가 쓴 은 여자들만의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들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유구한 격언(?)처럼, 남자들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지상에는 오직 여자들만 있습니다. 남자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소설 은 어떻게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가 바뀌는지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지상에 오직 여자들만 남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상적인 여자들만의 공동체를 이룩할지 모릅니다. 여자들은 21세기 아마조네스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페미니즘 유토피아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여자들만의 공동체에서 돌봄 노동은 가장 ..
영화 는 어떻게 조씨 부인, 조원, 숙부인 정씨가 복잡한 정사 관계들을 맺는지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내기이고,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순정이고,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질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랑은 장난이 되거나, 죽음이 되거나, 희생이 됩니다. 제목처럼, 영화 은 조선 시대 상류층을 이용해 위선과 가식, 순정, 정열, 시기, 질투, 희생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시대 배경과 달리, 은 18세기 서구 소설에 기반합니다. 1782년에 서구 작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는 소설 를 썼습니다. 소설 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여러 연극들, TV 드라마들, 영화들은 를 각색합니다. 역시 이런 각색에 속합니다. 은 18세기 서구 상류층을 조선 시대 상류층으로 바꾸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
어슐라 르 귄이 쓴 에서 소설 주인공은 노동자 평의회 사회에 속합니다. 소설 주인공이 자본주의 국가로 건너간 이후, 사회주의자로서 소설 주인공은 여러 모순들을 경험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계급 차별이 아무렇지 않다고 여깁니다. 빈부 격차는 당연합니다. 당연히 누군가는 엄청난 부를 차지해야 하고, 당연히 누군가는 굶주려야 합니다. 자본주의 학자들은 소설 주인공에게 비참한 가난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학자들은 오직 부유하고 화려한 것들만 보여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소설 주인공은 몰래 탈출해야 했습니다. 현실 속의 자본주의 강대국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현실을 왜곡하고,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범죄들을 감추고, 오직 좋은 것들만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솔라펑크는 재생 에너지가 흐르는 희망찬 미래 도시를 묘사합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해요.] "디스토피아와 아포칼립스에 지친 독자들에게 이런 밝은 미래 전망들은 신선한 공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소설 모음집 은 주장합니다. 은 이른바 솔라펑크 소설 모음집입니다. 이름처럼 솔라펑크는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SF 장르입니다.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 미래 인류는 재생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 연료에 과다하게 의존하지 않고 태양열 에너지를 비롯해 풍력 발전과 수력 발전과 여러 재생 에너지들을 연구합니다. 표지 그림은 밝은 태양과 세련된 기하학적 미래 도시와 태양열 전지판들과 풍력 발전기들을 보여줍니다. 표지 그림은 따스하고 경쾌합니다. 표지 그림처럼 은 재..
이른바 원형적인 SF 소설(Proto SF Novel)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토머스 모어가 쓴 나 사라 스콧이 쓴 ,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는 유명한 원형적인 SF 소설들입니다. '본격적인' SF 시각에서 나 , 같은 소설들은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설사 이 본격적인 SF 소설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은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사라 스콧은 종교를 이용해 이상향을 그리고 현실을 비판했죠. 하지만 이런 소설들이 SF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토머스 모어나 사라 스콧이나 조나단 스위프트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어요. SF 울타리 안에서 그런 족적은 본격적인 SF 작가들에게 이어졌고 유토피아 SF 소설들을 만듭니다. 19세기 이후, 유토피아 소설들은 더 이상 ..
필립 호세 파머는 시리즈라고 불리는 여러 장편들과 단편들을 썼습니다. 이 소설 시리즈에서 사람들은 풍족한 재화를 누립니다. 과학 기술이 아주 발달하고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막대한 생산량 증가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기술적인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그걸 그리는 SF 소설들 역시 있습니다. 하지만 필립 파머는 기술적인 유토피아에 반박하고 물질적인 풍요가 무조건 유토피아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시리즈에서 충분한 재화들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짓밟습니다. 물질적인 조건은 기술적인 유토피아를 충족하나, 여전히 수탈은 존재합니다. 필립 파머는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고 권력 욕구에 끝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계가 기계를 만들다니!" 영화 에서 C-3PO는 외칩니다. 드로이드 공장에 들어섰을 때, C-3PO는 거대한 자동 로봇들이 드로이드들을 조립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C-3PO에게 그건 꽤나 충격적인 장면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C-3PO는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 C-3PO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한다고 생각했고 노동자가 없는 공장을 상상한 적이 없을지 모릅니다. 사실 이건 다소 모순적이고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C-3PO 역시 드로이드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C-3PO는 인간 형태 드로이드입니다. 비록 인간과 달리 C-3PO는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하나, 어느 정도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만약 로봇 공학 기술자들이 C-3PO를 훨씬 개선한다면, 그런 개량 드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