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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는 다른 것들과 비슷하거나 다릅니다. SF 평론가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썼습니다. '레 미제라블'은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왜 그들이 불행한가요? 여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가난 역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가난은 아주 커다란, 아주 핵심적인 이유일 겁니다. 가난 때문에, 팡틴은 불행해지고, 팡틴이 불행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가난은 핵심적인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뮤지컬 판본은 노래 을 강조할 겁니다. 가난은 육체를 짓밟고, 영혼을 부수고, 인생을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불행들이 있으나, 가난은 정말 지배적이고 대표적인 불행입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가난해지나요? 왜 가난이 나타납니까?..
[이건 지구 생태계를 모방하기 위한 바이오 돔입니다. 만약 장거리 우주선에 이런 바이오 돔이 있다면…?] 이럴수가! 세상은 멸망하는 중입니다. 인류 문명은 비극적이고 암울한 재앙에 부딪힐 겁니다. 지질학적인 단위에서 생태 재앙은 인류 문명을 무너뜨릴 겁니다. 생물 다양성은 줄어들고, 환경 오염들은 극심해지고, 자원들은 바닥을 드러냅니다. 인류 문명은 메트로폴리스를 건축했으나, 메트로폴리스는 오직 소비에만 몰두합니다. 메트로폴리스는 생산하지 않습니다. 메트로폴리스가 뭔가를 생산한다고 해도, 이건 필요를 위한 생산이 아닙니다. 이건 지배 계급을 위한 생산입니다. 아무리 메트로폴리스가 뭔가를 만든다고 해도, 결국 이건 천연 자원 고갈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바뀝니다. 사람들에게 선한 천성이 ..
[이런 풍경은 정말 웅장하고 환상적인 생태 상상력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런 설정이 될 수 있겠죠.] 제목처럼 그래픽 노블 는 노아와 홍수 신화와 방주를 이야기합니다. 인간들은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웁니다. 이는 생태적인 재앙으로 이어지고, 생태적인 재앙은 거대한 홍수를 부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수많은 동물들을 태웁니다. 오랜 기간 동안 방주는 육지에 닿지 못하나 마침내 노아 가족은 새로운 육지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육지에 닿고, 동물들을 풀어주고, 새로운 생태계와 새로운 사회를 일굽니다. 이렇게 는 환경 아포칼립스와 에코토피아가 될 수 있습니다. 는 창조신이 개입하는 신화이나, 독자가 이걸 환경 아포칼립스와 에코토피아로 해석한다고 해도, 그런 해석은 크게 틀리지 않을 ..
[생태 유토피아로서 는 생물 다양성과 진화 역사를 장대하게 묘사합니다.] 예전에 저는 그래픽 노블 가 환경 아포칼립스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니코 앙리숑이 그린 이 만화는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천연 자원이 고갈되고, 사막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야생 동물들을 사냥하고, 함부로 뿔을 자르거나 살을 찢습니다. 그저 쾌락을 위해 누군가는 동물을 죽입니다. 노아 이야기는 고대 설화임에도, 니코 앙리숑은 상상력을 발휘했고 거대 도시를 보여줍니다. 고대의 스팀펑크 판타지 같은 거대 도시는 산업 자본주의에 찌든 런던 같은 곳입니다. 고대 도시는 웅장하나, 경이롭지 않습니다. 대신 거대 도시는 온갖 추악한 꼬락서니들을 보여줍니다. 반면, 노아는 야생 동물에게 공감하는 사람이고, ..
[만화 는 환상적이고 다양한 야생 동물들을 보여주고 가상의 생태계를 자극합니다.] 니코 앙리숑이 그린 만화 는 독특한 풍경들을 자랑합니다. 제목처럼 는 노아의 방주를 이야기하는 그래픽 노블입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기독교 이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언스 판타지 같습니다. 거대하고 지저분한 도시, 각종 고대 야수들, 외계인 같은 천사들, 기이한 기계 장치들 덕분에 는 사이언스 판타지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그래픽 노블을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겠죠. 를 계획한 대런 아로노프스키에게는 SF 만화를 그릴 마음이 없었을 겁니다. 거대 도시와 고대 야수들과 외계인들과 기계 장치들을 보여준다고 해도, 는 기독교 신화에 기반한 그래픽 노블입니다. 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