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노아>, 환경 아포칼립스이자 생태 유토피아로서… 본문
[생태 유토피아로서 <노아>는 생물 다양성과 진화 역사를 장대하게 묘사합니다.]
예전에 저는 그래픽 노블 <노아>가 환경 아포칼립스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니코 앙리숑이 그린 이 만화는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천연 자원이 고갈되고, 사막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야생 동물들을 사냥하고, 함부로 뿔을 자르거나 살을 찢습니다. 그저 쾌락을 위해 누군가는 동물을 죽입니다. 노아 이야기는 고대 설화임에도, 니코 앙리숑은 상상력을 발휘했고 거대 도시를 보여줍니다. 고대의 스팀펑크 판타지 같은 거대 도시는 산업 자본주의에 찌든 런던 같은 곳입니다. 고대 도시는 웅장하나, 경이롭지 않습니다.
대신 거대 도시는 온갖 추악한 꼬락서니들을 보여줍니다. 반면, 노아는 야생 동물에게 공감하는 사람이고, 약초를 캘 수 있고, 동물들을 보살핍니다. 결국 노아는 방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야생 동물들은 방주로 몰려가고, 노아는 이런 동물들을 돌보거나 방주 안에 작은 생태계나 동물원을 만듭니다. 홍수 재난 때문에 세상은 물에 잠기고, 오랜 동안 방주는 육지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홍수는 끝나고, 악당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땅에서 노아 가족은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다시 퍼뜨립니다.
이는 꽤나 감동적이고 거시적인 환경 아포칼립스이고 동시에 생태 유토피아입니다. 시작은 환경 아포칼립스이나, 결말은 생태 유토피아입니다. 니코 앙리숑은 놀라운 고대 스팀펑크 판타지와 신비로운 야생 동물들을 보여줬습니다. 생명체가 진화하는 부분은 고대 판타지와 현대적인 자연 과학이 서로 결합된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현대적인 산업 문명을 비판하기 위해 니코 앙리숑은 이런 설정들을 구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화 <노아>는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만든 영화 <노아>에 기반하는 창작물이나, 저는 만화가 영화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저런 스팀펑크 고대 도시나 각종 기이한 야생 동물들이 나오지 않는 것 같더군요. 제작비 때문에 영화는 설정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곤 합니다. <터미네이터>를 만들 때, 예산 때문에 이것저것 삭제해야 했다고 제임스 카메론은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비단 제임스 카메론만 그랬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영상 매체보다 출판 매체가 보다 사이언스 픽션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출판 매체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웅장한 장면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출판 매체는 영상 매체보다 생생하지 않겠으나, 대신 창작가는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힘들이지 않고 묘사할 수 있어요.
영화가 워낙 대중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만화 <노아>는 영화 <노아>보다 유명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만화가 영화보다 신비롭고 이질적인 세계를 훨씬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만화를 본 독자가 영화를 본다면, 독자는 영화에 실망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만화와 영화 모두 한 가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만화와 영화 <노아>는 계급 투쟁을 놓치고, 무조건 모든 인간이 사악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인류 역사는 계급 투쟁이 흐르는 역사였고, 자연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되는 이유는 지배 계급 때문입니다.
이는 지배 계급이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유일한 원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현대적인 환경 오염이 자본주의라는 계급 사회에서 비롯했다는 뜻입니다. 만약 <노아>가 현대적인 환경 오염을 묘사하고 싶었다면, 그런 계급 사회와 사적 소유를 비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걸 지적하지 않았고, 관념적인 환경 운동가들처럼 모든 인간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인간이 정말 탐욕스러운가요? 빈곤선에서 살아가는 30억 명이 탐욕스러운가요? 우리가 정말 비판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연 환경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환경 보호 운동에게 미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노아>는 꽤나 감동적인 환경 아포칼립스와 비슷합니다. 비록 <노아>는 SF 만화가 아니나, 다른 사이언스 픽션과 비슷해 보입니다. SF 독자는 킴 스탠리 로빈슨이 쓴 <오로라> 같은 소설과 <노아>를 비교할 수 있겠죠. <오로라>는 환경 아포칼립스에서 시작합니다. 사실 킴 스탠리 로빈슨이 쓴 <비의 마흔 징표들>이나 <와일드 쇼어>나 <뉴욕 2140> 같은 소설들은 환경 아포칼립스이죠. <오로라> 역시 그런 소설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로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항성계로 건너갑니다. 세대 우주선에 여러 동식물들을 태우고, 사람들은 외계 항성계를 향합니다. 하지만 우주선 생태계는 자꾸 병들거나 줄어들고, 사람들은 우주선 생태계를 복원하지 못해요. 그들은 외계 항성계에 도착했으나, 지구화(테라포밍)는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얼마나 지구 생태계가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죠. <노아>와 달리, 킴 스탠리 로빈슨이 쓴 <비의 마흔 징표들>이나 <와일드 쇼어>나 <뉴욕 2140>이나 <오로라>는 자본주의와 환경 오염을 훨씬 근본적으로 분석합니다.
하지만 여러 부분들에서 <노아>와 <오로라>는 비슷해 보입니다. 전세계적인 환경 오염, 홍수와 해수면 상승, 방주와 우주선, 방주와 우주선 속의 생태계와 농장, 새로운 땅, 새로운 생태계. 어쩌면 누군가는 어떻게 고대 스팀펑크 판타지와 하드 SF 소설이 비슷하냐고 반문할지 몰라요. 네, 맞아요. 양쪽은 서로 다른 장르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양쪽 모두 환경 재난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방주에 동물들을 싣고 새로운 땅을 찾아간다고 이야기하죠. 어쩌면 이런 이야기 구조(환경 재난, 방주, 새로운 땅)가 환경 아포칼립스와 생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