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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레우스>, 순환 고리와 생태 영성과 거대 괴수 본문

SF & 판타지/신화적인 번성

<레우스>, 순환 고리와 생태 영성과 거대 괴수

OneTiger 2020. 5. 16. 19:58

[거대 괴수는 자연 환경을 조절하고 순환 고리를 연결합니다. 신 게임에는 전체론 생태학이 있습니다.]

 

 

이른바 신 게임(god game)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신이 됩니다. 신은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발휘하고 인류 문명을 이끕니다. 신이 인류 문명을 이끌기 때문에, 신 게임은 문명 건설 게임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인류 문명을 건설하기 때문에, 이건 건설/경영 시뮬레이션과 비슷합니다.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시장으로서 게임 플레이어가 도시를 경영하는 것처럼, 신 게임에서 신으로서 게임 플레이어는 문명을 경영합니다. 종종 문명은 다른 문명과 충돌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신 게임은 전략 게임이 됩니다. 신 게임에는 세 측면들(문명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 전략)이 있습니다.

 

이건 모든 신 게임이 문명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 전략을 포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전적인 <파퓰러스>부터 최근작 <유니버심>까지, 신 게임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유구한 역사는 다양한 변주들이 됩니다. <파퓰러스>는 문명 건설, 전략을 포함하나, <제노블룸>은 생태계 시뮬레이션에 가깝습니다. 두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신이 되나, <파퓰러스>에서 신은 인류 문명을 건설하고, <제노블룸>에서 신은 자연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제노블룸>처럼, 여러 생태계 시뮬레이션들은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라고 상정합니다. 신화에서 신이 자연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자연의 여신 테 피티가 풍요로운 생명 현상을 퍼뜨리는 것처럼, 신화에서 신은 생명 현상을 창조하고 자연 환경을 조성합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생명 현상을 창조하고 자연 환경을 조성합니다. 심지어 진화 게임조차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라고 상정합니다. 진화 게임에서 신으로서 게임 플레이어는 유전 형질들을 조합합니다. <제노블룸>은 대체 진화 역사를 보여주나, 신에게서 진화 역사는 비롯합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이 생태학, 진화 생물학을 구현하기 때문에, 생태계 시뮬레이션과 신화는 대조적인 것 같으나, 생태계 시뮬레이션은 신화입니다.

 

소설 <홍수의 해>에서 유사 기독교 단체가 생태학과 진화 생물학을 중시하는 것처럼, 신이 자연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에, 생태계 시뮬레이션 역시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라고 상정합니다. <홍수의 해>가 종교 단체와 생태학/진화 생물학을 연결하는 것처럼, 신화와 생태계 시뮬레이션은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유구한 비디오 게임 문화 속에서 생태계 시뮬레이션들은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라고 상정했습니다. 1990년 <심어스>, 1997년 <에볼루션>, 2011년 <프롬 더스트>, 2015년 <어스텅>, 2018년 <Equilinox>처럼,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생태계 시뮬레이션들은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라고 상정했습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들과 신 게임이 비슷하기 때문에, 양쪽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파퓰러스>는 전형적인 신 게임입니다. 게임 제작자들이 신 게임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파퓰러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됩니다. 하지만 <던전 키퍼> 같은 던전 건설 게임이 신 게임에 속하나요? <던전 키퍼>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문명을 이끌지 않습니다. <Rise to Ruins>이 경영 시뮬레이션인가요, 아니면 신 게임인가요?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 되어야 하나요? 여러 경영 게임들은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라고 상정하지 않습니다. <심시티>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신보다 시장이 됩니다.

 

비록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심시티>에서 시장으로서 게임 플레이어는 도시를 경영합니다. 왜 경영 게임이 신 게임이 되어야 하나요? 던전 건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던전 지도자로서 게임 플레이어는 던전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던전 III>가 신 게임인가요? 아니, 이건 타워 디펜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스팀 플랫폼에서 <던전 III>는 신 게임 태그를 붙입니다. 신 게임과 타워 디펜스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심어스>, <에볼루션>, <프롬 더스트>, <Equilinox>처럼, 생태계 시뮬레이션들과 신 게임을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소설 <홍수의 해>에서 신의 정원사들은 종교 단체입니다. 동시에 신의 정원사들은 환경 보호 단체입니다. 신의 정원사들에서 '신'과 '정원사' 양쪽은 똑같은 핵심 단어입니다. <홍수의 해>가 보여주는 것처럼, 신이 자연을 조성하기 때문에, 신화는 생태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대지 모신이 환경을 정화하고 풍요로운 생명력을 퍼뜨리는 것처럼, 신화와 생태학은 잘 어울리는 한쌍입니다. 이건 모든 생태계 시뮬레이션이 게임 플레이어를 신이라고 상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심파크>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신보다 삼림 레인저입니다. <심파크>는 신 게임이 아닙니다.

 

<심파크>와 <Equilinox>는 모두 생태계 시뮬레이션에 속합니다. 양쪽 모두 자연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하지만 <심파크>는 삼림 레인저를 상정하고, <Equilinox>는 신을 상정합니다. <심파크>는 국립 공원을 조성하나, <Equilinox>는 고유한 자연 환경을 창조합니다. 삼림 레인저는 자연의 여신이 아닙니다. 하지만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삼림 레인저가 자연의 여신을 숭배하고 자연 신성 주문을 시전하는 것처럼, <심파크>와 <Equilinox>는 비슷할 수 있습니다. <홍수의 해>에서 신의 정원사들이 신화와 생태학을 결합하는 것처럼, <심파크>와 <Equilinox>에서 신화와 생태학은 어울릴 수 있습니다.

 

 

신화와 생태학이 어울릴 수 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레우스>는 신화와 생태학을 결합합니다. <레우스>는 게임 플레이어가 지성적인 행성이라고 상정합니다. <모아나>에서 지성적인 바다가 생명체들과 문명들을 원하는 것처럼, <레우스>에서 지성적인 행성은 생명체들과 문명들을 원합니다. 이 관점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의 여신, 대지 모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아나>에서 지성적인 바다가 테 피티를 살리고 마우이를 이끄는 것처럼, <레우스>에서 지성적인 행성은 네 거인들을 깨웁니다. 네 거인들은 삼림, 바위, 바다, 늪지 영역을 관장합니다. 문자 그대로 바위 거인은 바위 거인입니다.

 

전형적인 바위 거인은 산맥을 일으키고, 지진을 일으키고, 광물을 형성합니다. 바위 거인은 가장 파괴적입니다. 늪지 거인은 부글거리는 늪지 괴물입니다. 늪지 거인은 축축한 늪지를 형성하고, 식물상과 동물상을 퍼뜨리고, 부유함과 기술력을 선사합니다. 늪지 거인은 창조적이나, 부글거리는 늪지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삼림 거인은 '자연'에 가장 가깝습니다. 삼림 거인은 삼림을 조성하고, 풍요로운 식물상을 키우고, 먹거리들을 보장합니다. 삼림 거인에게 번성은 가장 커다란 특성입니다. 바다 거인은 거대한 갑각류입니다. 삼림 거인처럼, 바다 거인은 동물상(가축과 초식동물)을 퍼뜨리고 풍요를 관장합니다.

 

 

바다 거인은 바다를 만들고, 바다는 행성에 수분을 공급합니다. 바다 거인이 바다를 만들기 때문에, 삼림 거인과 늪지 거인은 삼림과 늪지를 조성합니다. 삼림과 늪지에서 식물들은 수분을 이용하고 살아갑니다. 바다 거인은 풍요로운 식물들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바다 거인이 메마르고 험준한 산맥을 바다로 바꿀 때, 이 '테라포밍'은 삼림을 조성합니다. 바다 거인이 수분을 공급하고 늪지를 (간접적으로) 조성하는 것처럼, 테라포밍은 자연 생태계를 포함합니다. 보드 게임 <테라포밍 마스>를 보세요. <테라포밍 마스>는 비단 과학 기술들만 아니라 식물 카드들과 동물 카드들을 제시합니다.

 

<테라포밍 마스>가 식물 카드들과 동물 카드들을 제시하는 것처럼, 테라포밍은 자연 생태계를 포함합니다. <레우스>에서도 테라포밍은 자연 생태계로 이어집니다. 바다 거인은 고등어 무리를 키웁니다. 만약 바다 거인이 고등어 무리를 늘린다면, 서식 반경은 넓어질 테고, 인류 문명은 고등어들을 낚고 식량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농어가 나타난다면, 농어는 고등어를 잡아먹을 테고, 살찐 농어는 훨씬 풍요로운 식량이 될 겁니다. 바다 거인과 삼림 거인은 협동하고 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삼림 거인이 식물을 키우고, 식물 서식 반경에서 바다 거인이 동물을 키운다면, 양쪽은 상호 작용할 겁니다.

 

 

[화성 테라포밍 게임이 생태 구역 카드를 제시하는 것처럼, 테라포밍은 자연 생태계를 포함합니다.]

 

 

동물은 열매를 먹을 수 있고, 동물이 씨앗을 퍼뜨리기 때문에, 식물은 번성할 수 있습니다. 이건 기본적인 순환 고리입니다. <레우스>는 기본적인 순환 고리를 비롯해 다양한 순환 고리들을 제시하고, 이것들은 훨씬 웅장한 자연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삼림과 바다와 달리, 사막은 풍요로운 식량들을 선사하지 않으나, 어마어마한 광물들 덕분에, 사막은 부유합니다. 만약 늪지 거인이 식물상을 조성한다면, 식물상은 자연력을 늘릴 테고, 이건 광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다른 동물들은 식물상에 영향을 미치고, 게임 플레이어는 식물상, 동물상, 광물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다양한 연결 고리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떤 부분이 사라진다면, 이건 다른 부분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하지만 연결 고리들이 복잡하기 때문에, 이것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생태학은 전체론이 되어야 하나, 전체는 부분들의 총합이 아닙니다. 이건 너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전체는 부분들의 총합을 뛰어넘습니다. 전체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전체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만약 어떤 부분이 사라진다면, 시너지 효과 역시 사라질 테고, 이건 연이은 파장들을 미칠지 모릅니다. 생태학은 단편적인 총합보다 전체론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식물상, 동물상, 광물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고 전체가 부분들의 총합을 뛰어넘는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레우스>가 신 게임이라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전체론으로서 생태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레우스>가 그저 게임에 불과하다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레우스>에서 바다 거인은 거대 갑각류입니다. 거대 갑각류로서 바다 거인은 바다 괴수 같습니다. 게임 밑그림은 바다에서 거대 갑각류가 솟아오르고 돛단배 선원이 거대 갑각류를 우러러본다고 묘사합니다. 바다 거인은 전형적인 거대 괴수가 됩니다. 현실에서 거대 괴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거대 괴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바다 거인은 비(非)현실입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왜 우리가 비현실을 이야기하나요? 비록 게임 플레이어가 <레우스>를 플레이하지 않는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캐롤린 머천트 서적을 읽고 생태학이 전체론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체론 생태학으로서 <레우스>보다 캐롤린 머천트 서적은 훨씬 낫습니다. <레우스>보다 캐롤린 머천트가 훨씬 나은 것처럼, 신 게임과 거대 괴수에게는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신 게임과 거대 괴수에게 가치가 없다면, 왜 <홍수의 해>에서 환경 보호 단체가 종교 단체인가요? 왜 정원사들이 신을 찬미하나요?

 

 

인류는 자연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은 존재했습니다. 자연에서 인류는 비롯했습니다. 인류보다 자연은 훨씬 원초적입니다. 자연 속에서 인류는 존재하고, 그래서 자연에는 영성이 있습니다. 영성을 표현하기 위해 인류는 자연이 신격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래서 신화는 자연의 여신, 대지 모신을 이야기합니다. 반다나 싱이 신화와 자연을 함께 언급하는 것처럼, 신화는 생태 영성을 포함합니다. 이건 모든 신화가 생태 영성을 포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지 모신은 생태 영성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레우스>에서 바다 거인 역시 생태 영성을 선사합니다.

 

<레우스>에서 자연 환경은 경이 수치, 위협 수치를 올립니다. 삼림에서 울창한 과일 나무들과 약초들은 경이 수치를 올립니다. 바다에서 흰긴수염고래는 경이 수치를 올립니다. 사막에서 방울뱀은 위협 수치를 올립니다. 바다에서 백상아리는 위협 수치를 올립니다. 만약 경이 수치와 위협 수치가 높다면, 인류 문명은 자연 환경에 감탄하고 탐욕에 빠지지 않을 겁니다. 만약 경제 발전이 너무 빠르다면, 인류 문명은 자연 환경이 그저 자원에 불과하다고 간주하고 탐욕에 빠질 겁니다. 훨씬 많은 자원들을 차지하기 위해 문명들을 전쟁을 일으킵니다. 아니면 인류 문명은 네 거인들에게 훨씬 많은 자원들을 요구합니다.

 

 

만약 네 거인들이 탐욕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전쟁을 선포하고 네 거인들을 공격할 겁니다. 너무 빠른 경제 발전은 탐욕을 부르고, 탐욕은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탐욕 수치를 낮추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환경을 조성하고 경이 수치와 위협 수치를 올립니다. 울창한 약초들은 경이 수치를 올리고, 백상아리는 위협 수치를 올리고, 인류 문명은 자연 환경에 감탄합니다. 인류 문명은 탐욕에 빠지기보다 자연 환경에 감탄합니다. 자연 환경은 경이롭고 위협적입니다. 건물과 기계 역시 경이롭고 위협적일 수 있습니다. 울창한 약초들처럼, 성채는 경이롭습니다. 백상아리처럼, 어뢰는 위협적입니다.

 

노이슈반슈타인은 경이롭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노이슈반슈타인이 경이롭다고 예찬합니다. G7e 어뢰는 위협적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G7e 어뢰가 위협적이라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노이슈반슈타인과 G7e 어뢰는 원초적이지 않습니다. 인류 문명은 성채와 어뢰를 만듭니다. 인류 문명이 나타나기 전에, 성채와 어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류 문명이 나타난 이후, 성채와 어뢰는 나타났습니다. 인류 문명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울창한 약초들과 상어들은 존재했습니다. 밀리터리 덕후들은 백상아리보다 G7e 어뢰가 위협적이라고 간주할지 모릅니다. G7e 어뢰는 구축함을 격침하고 침몰시킵니다.

 

 

반면, 백상아리는 구축함을 침몰시키지 못합니다. 구축함에게 백상아리는 그저 커다란 생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백상아리가 구축함을 물어뜯는다고 해도, 구축함 함장은 백상아리 이빨들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구축함에게 백상아리 이빨들보다 U-보트 어뢰는 훨씬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U-보트 어뢰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U-보트 어뢰는 원초적인 위협이 아닙니다. 인류는 전쟁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인류는 자연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백상아리는 원초적인 위협입니다. 아무리 인류가 백상아리를 멸종시킨다고 해도, 인류는 자연 그 자체를 억제하지 못합니다.

 

비디오 게임 <커맨드 앤 컨커: 적색 경보 2>에서 소비에트 대왕 오징어는 자유주의 함선을 휘감고 침몰시킵니다. 소비에트 오징어와 자유주의 함선은 똑같은 해군 병기입니다. 하지만 오징어는 야생 동물이고, 함선은 기계입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기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계는 인류 하인입니다. 반면, 아무리 소비에트 연방이 대왕 오징어를 조종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오징어는 야생 동물이고,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야생 동물들은 번성했습니다. 이미 선사 시대에서 거대 두족류들은 번성했습니다. 기계보다 야생 동물은 원초적이고, 자유주의 함선보다 소비에트 오징어는 원초적입니다.

 

 

원초적인 것은 영성이 됩니다. 영성은 신화가 됩니다. 그래서 소설 <홍수의 해>에서 환경 보호 단체는 종교 단체가 됩니다. 그래서 신 게임과 거대 괴수에게는 가치가 있습니다. 거대 괴수는 황당무계한 공상이 아닙니다. 거대 괴수는 생태 영성입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삼림 레인저가 자연 신성 주문을 시전하는 것처럼, 거대 괴수는 자연 신성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레우스>가 자연 신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거대 괴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환경이 신성하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배적인 관념은 이것을 가로막고 왜곡합니다.

 

<레우스>에서 인류 문명이 자연 환경을 영성보다 자원이라고 간주할 때, 탐욕 수치는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경제 발전이 너무 빠를 때, 탐욕은 자연 환경이 그저 자원에 불과하다고 간주합니다. 현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가장 지배적인 경제 발전이 무엇인가요? 대답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입니다. 언제나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빠른 경제 발전을 선호합니다. 자본주의는 제로 성장, 마이너스 성장을 혐오합니다. 언제나 자본주의는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을 부르짖습니다. 자본주의는 상품화를 선호하고, 수많은 것들은 상품이 됩니다. 시장 경제에서 자연 환경은 상품이 됩니다.

 

 

[거대 괴수는 생태 영성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거대 괴수를 바라보고 자본주의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연은 자연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연은 상품입니다. 자연이 상품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연 환경이 망가진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을 부르짖습니다. 환경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자유 무역이 대대적인 전염병을 퍼뜨릴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무역선들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생물종들은 뒤섞이고, 생물 다양성은 줄어들고, 무역선들과 함께 전염병은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닙니다. 만약 자본주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유 무역은 나타나지 않았을 테고, 세계화 역시 나타나지 않았을 테고, 대대적인 전염병은 세계화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본주의는 생물 다양성보다 상품과 이윤이 중요하다고 세뇌합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세뇌하고, 사람들은 탐욕에 빠집니다. 베로니카 벤홀트-톰센은 유명한 M-C-M' 공식을 이용하고 자본주의 체계가 사람들을 세뇌에 빠뜨린다고 주장합니다. <레우스>에서 너무 빠른 경제 발전이 탐욕 수치를 높이고, 인류 문명이 전쟁을 선포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탐욕을 부추기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전염병을 퍼뜨립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탐욕을 막기 위해 인류 문명은 자본주의를 반드시 타파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환경 운동은 절대 공존하지 못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거대 괴수를 바라보고 녹색 자본주의가 망상이라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녹색빨간색'이라는 문구처럼, <레우스>는 자연이 상품이 아니라고 묘사합니다. <레우스>에서 바다 거인이 거대 갑각류이고, 거대 갑각류가 생태 영성을 창조하는 것처럼, 거대 괴수는 생태 영성이 됩니다. 아니, <레우스>가 나오기 전에, 이미 1961년 영화 <모스라>는 거대 괴수가 생태 영성이라고 보여줬습니다. 자유주의 함선보다 소비에트 대왕 오징어가 원초적인 것처럼, 거대 괴수는 생태 영성이 될 수 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거대 괴수가 생태 영성보다 도시 파괴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정세랑 작가는 <리셋>을 썼습니다. <리셋>에서 거대 지렁이들은 산업 문명을 먹어치웁니다. 이게 그저 도시 파괴에 불과한가요? 도시 파괴를 위해 정세랑 작가가 <리셋>을 썼나요? 그건 아닙니다. 반면, 영화 <고지라: 괴수왕>을 보세요. <고지라: 괴수왕>은 거대 괴수들이 자연 환경을 정화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떻게 거대 괴수들이 자연 환경을 정화하는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환경 정화는 주된 볼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네 주연 괴수들(고지라, 기도라, 모스라, 라돈) 중에서 모스라는 가장 작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고지라: 괴수왕>은 오직 신나는 싸움박질에만 치중합니다.

 

 

거대 괴수 덕후들은 애니메이션 <고지라: 괴수 행성> 3부작을 욕하나, 적어도 <고지라: 괴수왕>보다 <괴수 행성> 3부작은 대대적인 환경 변화를 훨씬 중시합니다. 적어도 <고지라: 괴수왕>보다 <괴수 행성> 3부작에서 모스라(마이나, 미아나)는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건 신나는 괴수 싸움박질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대 괴수가 신나게 싸우든, 거대 괴수가 자연 환경을 정화하든, 양쪽 모두 취향입니다. 취존중은 중요하고, 신나는 괴수 싸움박질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대 갑각류가 보여주는 것처럼, 싸움박질은 전부가 아닙니다. 거대 괴수는 생태 영성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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