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노아>의 방주 동물원과 <세븐이브스>의 유전자 지도들 본문
[이런 풍경은 정말 웅장하고 환상적인 생태 상상력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런 설정이 될 수 있겠죠.]
제목처럼 그래픽 노블 <노아>는 노아와 홍수 신화와 방주를 이야기합니다. 인간들은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웁니다. 이는 생태적인 재앙으로 이어지고, 생태적인 재앙은 거대한 홍수를 부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수많은 동물들을 태웁니다. 오랜 기간 동안 방주는 육지에 닿지 못하나 마침내 노아 가족은 새로운 육지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육지에 닿고, 동물들을 풀어주고, 새로운 생태계와 새로운 사회를 일굽니다. 이렇게 <노아>는 환경 아포칼립스와 에코토피아가 될 수 있습니다. <노아>는 창조신이 개입하는 신화이나, 독자가 이걸 환경 아포칼립스와 에코토피아로 해석한다고 해도, 그런 해석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기독교 <성경>과 달리, 그래픽 노블 <노아>는 사이언스 판타지에 가깝고 심지어 가끔 SF 영역을 넘어갑니다. 온갖 희한한 야수들 역시 전형적인 <성경> 분위기를 밀어냅니다. 아쉽게도 영화 <노아>는 이런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죠. 만화와 달리, 영화는 너무 일상적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같은 이색적인 디자인들은 많이 사라졌죠. 이런 점은 꽤나 아쉽습니다. 어쩌면 그래픽 노블을 그린 니코 앙리숑과 달리, 영화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그런 느낌을 지우고 싶어했는지 모르죠.
아니면 이건 제작 비용 문제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영화 <노아>가 사이언스 판타지를 구현했다면, 영화 제작진은 제작 비용을 훨씬 많이 소모했을 테고, 배급사는 그걸 거부했을지 모르죠.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들이 환상적인 생태계를 보기 원한다면, 영화 <노아>보다 그래픽 노블 <노아>는 훨씬 나은 선택일 겁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방주 이야기이고, 방주 이야기는 수많은 동물들이 방주에 탄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꼼꼼한 사람들은 물어볼 겁니다. 어떻게 방주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잘 지낼 수 있었을까요? 방주에는 아주 작은 설치류와 거대한 초식동물과 사나운 포식동물이 있을 겁니다. 노아 가족이 그것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요?
아무리 방주가 거대하다고 해도, 동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동물들은 비좁게 지내야 할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요?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온갖 스트레스들에 시달립니다. 사실 동물원은 자연을 교육하는 곳이 아닙니다. 동물원은 동물들을 가두는 감옥이죠. 그래서 동물원은 사라져야 할 겁니다. 방주 역시 비슷한 문제에 부딪힐지 모릅니다. 방주가 망망대해를 떠도는 동안, 방주 속에서 동물들은 온갖 스트레스들에 시달릴지 몰라요. 노아 가족이 그걸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무슨 지식들로 그들이 그걸 해결할까요? 노아 가족이 생태학자들일까요?
게다가 아무리 방주가 거대하다고 해도, 수많은 동물들이 방주에 탈 수 있을까요? 만약 정말 수많은 동물들이 방주에 탄다면, 각종 오물들과 대변들과 소변들은? 매일 노아 가족은 엄청난 오물들을 치워야 할지 모릅니다. 뭐, 어쩌면 방주는 어느 정도 하수 체계를 갖췄을지 모르고, 노아 가족은 쉽게 오물들을 치울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바다로 빠지겠죠. 하지만 이런 비좁은 우리는 전염병의 온상입니다. 그래서 공장 축산은 언제나 문제가 됩니다. 동물원이 사라져야 하는 것처럼, 공장 축산 역시 사라져야 할 겁니다. (대기업들이 오직 이윤만을 쫓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공장 축산은 사라지지 않겠죠.) 방주는 공장 축산과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동물들을 비좁은 우리로 몰아넣습니다.
아, 먹이 역시 문제가 되겠군요. 노아 가족이 동물들에게 무엇을 먹일까요? 사방이 바다이기 때문에 노아 가족은 물고기들을 낚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동물들을 먹이고 싶다면, 노아 가족은 정말 엄청난 물고기들을 낚아야 할 겁니다. 게다가 초식동물들은 물고기들을 거부할지 모르죠. 물고기들이 쉽게 썩기 때문에 보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소금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테고, 염장 생선들은 별로 몸에 좋지 않겠죠. 소금을 구할 수 있다고 해도, 다들 염장 생선들을 먹는다고 해도, 홍수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수질 변화 때문에, 물고기들은 떼죽음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뭐, 독자들이 이런 것들을 너무 따진다면, <노아>는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생태학 고증이 아니라 <노아>가 전달하는 주제일 겁니다. 우리는 자연 생태계를 보존해야 하고 각종 환경 오염들을 당장 멈춰야 할 겁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가 자연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는지,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겁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런 주제겠죠. 물론 작가가 생태학 고증을 이용해 방주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방법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유전자 지도는 아주 좋은 대책이 될 수 있겠죠.
닐 스티븐슨이 쓴 소설 <세븐이브스>는 방주 이야기입니다. 달이 뽀개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주로 도망쳐야 합니다. 뽀개진 달이 지구를 덮치기 전에 사람들은 부랴부랴 방주 우주선을 만듭니다. 방주 우주선은 숱한 생명체들을 태워야 합니다. 어떻게? 해답은 유전자 지도입니다. 소설 속에서 어떤 과학자가 말한 것처럼, 기린을 방주에 태우기는 어렵습니다. 기린은 엄청난 공간과 식량과 생명 유지 요소들을 소모할 겁니다. 하지만 유전자 지도는 공간을 거의 차지하지 않습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기린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그걸 방주 우주선에 전송한다면, 나중에 방주 우주선을 그걸 이용해 기린을 복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방주 우주선은 생물 다양성을 복원할 수 있겠죠.
물론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저장하기 원한다면, 과학자들은 숱한 생명체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소설 속에서 유전자 지도 장치는 한 순간조차 쉬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전자 지도는 노아의 방주보다 훨씬 논리적인 설정이죠. 만약 인류가 정말 방주 우주선을 만든다면, 방주 우주선은 수많은 동물들이 아니라 수많은 유전자 지도들을 담겠죠. 하지만 유전자 지도에는 별로 로망이 없습니다. 방주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게 거대한 동물원이고 폐쇄 생태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선박과 선박 속의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동물들…. 그건 정말 압도적인 상상력이죠. 유전자 지도는…. 뭐, 여기에 스펙타클은 아예 없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유전자 지도보다 노아의 방주는 훨씬 로망일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