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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장르를 바라보는 프란체스코 계보와 갈릴레이 계보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SF 장르를 바라보는 프란체스코 계보와 갈릴레이 계보

OneTiger 2018. 12. 21. 19:02

생물학 서적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쓴 에세이들을 모은 모음집입니다. 유명한 고생물학자로서 스티븐 굴드는 여러 생태적인 에세이들을 썼고,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몇몇 에세이를 갈무리했어요. 이 책의 서문에서 스티븐 굴드는 인문주의적 자연학에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언급합니다. 하나는 프란체스코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갈릴레이 계보입니다. 프란체스코 계보는 아시시의 동물을 보호하는 성인 프란체스코를 가리키겠죠. 스티븐 굴드는 이 계보가 좀 더 문학적인 흐름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프란체스코 계보는 단어와 구절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왜 생물이 아름다운지 찬양합니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 영국 구릉지를 쓴 윌리엄 허드슨, <광대한 여행>을 쓴 로렌 아이즐리는 프란체스코 계보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갈릴레오 계보는 좀 더 자연 과학적인 흐름입니다. 갈릴레이적인 글쓰기는 자연의 지적 수수께끼와 그것을 이해하는 탐색을 좋아합니다. 갈릴레이 계보는 마음으로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부정하지 않으나, 인과적 이해와 통합에서 더욱 큰 기쁨을 느낍니다. 문학과 과학이 있다면, 프란체스코 계보는 문학으로 기울 겁니다. 반면, 갈릴레이 계보는 문학보다 과학으로 기울 겁니다.



스티븐 굴드는 갈릴레이적(합리주의적) 계보가 꽤나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갈릴레오 본인은 물론이고, 오징어를 해부한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치를 전복한 토마스 헉슬리 같은 인물들은 갈릴레이 계보에 속합니다. 스티븐 굴드는 본인이 프란체스코 계보를 좋아하나 갈릴레이 계보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스티븐 굴드는 고생물학자이고, 과학자이고, 자연과 시적으로서 통합하기보다 자연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원합니다. 어쩌면 SF 작가들 역시 이런 계보를 그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SF 소설들은 문학과 과학을 추구합니다. SF 소설들은 상상 과학을 품은 문학입니다. 여러 작가들과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SF 세상에서 문학과 과학이 무슨 비중을 차지하는지 논의합니다.


누군가는 뛰어난 상상 과학이 이른바 문학성보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SF 소설 역시 소설이고 문학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프란체스코 계보와 갈릴레이 계보 중에서 일반적으로 SF 소설가가 어디에 속할까요. SF 소설은 소설입니다. SF 소설은 필력과 문학성을 중시합니다. 초기 SF 작가들은 필력이 아니라 발상으로서 승부했고, 아직 SF 소설은 그런 경향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뉴웨이브와 사이버펑크를 거치는 동안, SF 작가들 역시 각성했고 필력과 문학성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본격적인 SF 소설이 등장하기 전에 여러 철학자들은 외계인이나 다른 세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문학적인 흐름에서 SF 소설은 출발했고 프란체스코 계보에 속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은 발상의 문학입니다. 여전히 수많은 SF 독자들은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문학성보다 뛰어나고 기발한 발상에 손을 들어줍니다. <마션> 같은 소설이 증명하는 것처럼 서정적인 가락이나 서사적인 물줄기, 치밀한 내면과 심리 묘사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뉴웨이브 운동? 사이버펑크 운동? 그것들은 분명히 SF 소설을 바꿨으나, SF 소설이라는 뿌리를 뽑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SF 소설은 뛰어난 발상을 중시하고, 뛰어난 필력은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2000년대 초반, 뉴위어드 운동 역시 그저 문학성만으로서 승부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글빨이 좋지 않다고 해도, 작가가 기발한 발상들에 연이어 집착할 수 있다면, 작가는 SF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하드 SF 소설은 엄중한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합니다. 아무리 하드 SF 소설이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친다고 해도, 하드 SF 소설은 엄중한 고증에서 멀어지지 못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피터 왓츠 같은 사람들은 과학자 출신입니다. 사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정말 과학자입니다. 칼 세이건 같은 과학자는 SF 소설을 썼고 SF 같은 시각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SF 소설은 프란체스코 계보가 아니라 갈릴레이 계보에 속할지 모릅니다. 미국에서 휴고 건즈백은 SF 소설들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SF 소설들이 자연 과학 계몽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들은 갈릴레이 계보에 속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SF 소설은 프란체스코 계보와 갈릴레이 계보에 속할 수 있습니다. SF 소설들은 두 계보에 함께 속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소설은 좀 더 프란체스코 계보에 가까울 테고, 어떤 소설은 좀 더 갈릴레이 계보에 가깝겠죠. 게다가 똑같이 하드 SF 소설이라고 해도, 어떤 소설은 갈릴레이보다 프란체스코 계보에 가까울 겁니다. 하지만 SF 소설들에게 프란체스코 계보와 갈릴레이 계보가 있다고 해도, 결국 SF 소설들은 프란체스코 계보를 향해 수렴할 것 같습니다. 결국 SF 소설은 소설입니다. 아무리 하드 SF 소설이 엄중하다고 해도, SF 소설은 과학 논문이나 과학 에세이가 아닙니다.


SF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문학적인 형식입니다. 문학이라는 형식과 떨어진다면, SF 소설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합니다. SF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로서 사이언스 픽션은 자연 과학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사이언스 픽션은 문학(창작물) 형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창작물 형식을 떠나는 순간, 사이언스 픽션은 형체 없는 유령이 되겠죠. 아무리 SF 작가가 문학성에 상관하지 않는다고 해도, SF 소설을 쓰는 순간, SF 작가는 문학 형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문학성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SF 소설은 문학 형식에 기반합니다.



SF 소설을 쓸 때, SF 작가들은 시점, 묘사 방법, 문단 구성, 기승전결을 고민할 겁니다. SF 작가들은 과거 서술 시제와 현재 서술 시제를 고민할 겁니다. SF 작가들은 간접적인 보여주기와 직접적인 설명하기를 선택할 겁니다. 어떤 작가는 액자 구성을 좋아할 테고, 어떤 작가는 소설 주인공과 소설 화자를 합칠 겁니다. SF 세상에서 로봇과 인공 지능은 소설 화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세대 우주선 소설에서 소설 초반부터 결말까지, 항법 인공 지능이 계속 소설 화자가 된다면? 이게 가능할까요? 이걸 쓰기 위해 SF 작가는 여러 시점들을 고민할 겁니다. SF 소설을 쓰는 순간, SF 작가는 문학 형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이 깊지 않다고 해도, 고민 그 자체는 존재합니다. SF 작가에게 아무 고민이 없다고 해도, SF 소설을 쓰는 순간, SF 작가는 문학 형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런 문학 형식 없이 사이언스 픽션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나 비디오 게임이라는 창작물 없이 사이언스 픽션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SF 소설은 문학과 과학을 함께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가장 근본적인 뿌리와 그릇은 문학, 창작물입니다. 따라서 SF 작가가 의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SF 소설은 문학에 기반해야 합니다. 문학이라는 뿌리 위에서 상상 과학은 자랄 수 있습니다.



SF 소설은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을 이용해 이 우주에서 어디에 인류가 서있는지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SF 소설은 얼마나 우주가 경외적인지 묘사하고 그런 우주에서 인류가 어디에 서있는지 고찰해야 할 겁니다. 이런 시각은 프란체스코 계보보다 갈릴레이 계보에 가깝겠으나, 이것 역시 문학 형식에서 출발할 겁니다. 그런 고찰이 과학적이고 엄중하다고 해도, 그건 갈릴레이 계보보다 프란체스코 계보로 흘러갈 겁니다. 설사 과학자가 SF 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건 과학 논문이 되지 않습니다. SF 세상에는 프란체스코 계보라는 색깔이 있습니다. 농도는 짙거나 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SF 소설들에는 프란체스코 계보라는 색깔이 있습니다.


SF 소설을 과학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각은 커다란 오해일 겁니다. 어쩌면 프란체스코 계보는 소프트 SF에 가깝고, 갈릴레오 계보는 하드 SF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드 SF 역시 문학이라는 형식을 떠나지 못하고, 문학 형식은 프란체스코 계보로 흘러가겠죠. 결국 프란체스코 계보 안에서 SF 작가는 프란체스코 성향을 강조하거나 갈릴레이 계보를 덧붙일 겁니다. 그렇게 소프트 SF부터 하드 SF까지, 사이언스 픽션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게 뻗겠죠.



물론 이건 SF 장르를 평가하는 옳은 방법이 아닐지 모릅니다. 수많은 SF 작가들, 독자들, 평론가들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장르 정의를 둘러싼 논의는 끝이 나지 않겠고, 절대적인 정답은 없겠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사람들은 하드 SF와 소프트 SF와 과학과 문학을 열심히 떠드는 중일 겁니다. 하지만 갈릴레이 계보와 프란체스코 계보는 좋은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독자들은 SF 소설들을 살필 수 있을 겁니다. 독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흐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겠죠. 자신의 취향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독자들은 SF 소설들을 훨씬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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