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상상력이 무조건 긍정적인가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들이 대단할까요. 여러 SF 우월주의자들은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들이 훨씬 위대하다고 말할 겁니다. 주류 문학의 시선이 너무 좁기 때문입니다. 주류 문학은 우주와 외계와 미래를 말하지 못합니다. SF 소설들이 장거리 세대 우주선을 띄우고, 외계 식생을 탐험하고, 미래 도시를 돌아다닐 때, 주류 문학은 그저 밤하늘을 바라보고, 뒷산을 오르고, 주변 풍경을 둘러볼 수 있을 뿐입니다.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들은 훨씬 넓고 머나먼 관점을 드러내고, SF 독자들은 이런 넓은 관점을 찬양할 겁니다.

SF 우월주의자들은 주류 문학이 한심하게 좁은 현실에 안주한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우주는 넓습니다. 세상은 다양합니다.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왜 우리가 오직 '지금 여기'에만 매달려야 합니까. 우리는 훨씬 넓게 보고 훨씬 멀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SF 소설들은 넓은 일상들과 머나먼 등장인물들을 제시하고, SF 독자들은 넓은 일상들에 동참하고 머나먼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SF 독자들은 우주 생태학자가 되고, 외계 식생을 탐험하고, 어떻게 인류 사회가 외계 식생을 개척할 수 있는지 떠들 수 있습니다. 주류 문학에게 이건 불가능합니다. 주류 문학이 이걸 이야기하고 싶다면, 주류 문학은 반드시 SF 영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SF 우월주의자들은 주류 문학이 백기를 들어야 한다고 선언할 겁니다. 적어도 주류 문학은 SF 소설들에게 함부로 까불지 못합니다. 필력이나 문체나 심리 묘사나 문학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SF 소설들보다 주류 문학은 나을지 모릅니다. 분명히 SF 소설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주류 문학은 존재했습니다. SF 소설들보다 주류 문학은 선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SF 소설들에는 주류 문학이 따라가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SF 우월주의자들은 그런 특징을 강조할 테고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들이 훨씬 낫다고 말하겠죠.

하지만 SF 소설들이 우주와 외계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해도, 무조건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들이 나을까요? SF 소설들이 우주와 외계와 미래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무조건 그게 넓은 시각, 머나먼 시각이 될까요? 좁은 현실에서 SF 소설들이 이야기하는 우주와 외계와 미래 역시 안주하지 않을까요? 소설 <세븐이브스>는 인류가 방주 우주선을 건조하고 지구 궤도 밖으로 탈출하는 내용을 다룹니다. 이 소설에서 인류 문명은 멸망하고, 우주 생존자들은 새로운 인류 문명을 세워야 합니다. 따라서 <세븐이브스>는 사회학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븐이브스>에서 사회학은 아주 얄팍합니다. 작가 닐 스티븐슨은 사회학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사회 구조를 제대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종종 <세븐이브스>는 어리석은 사회 생물학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세븐이브스>는 자유주의 헛소리를 떠드나, 왜 자유주의가 나타났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왜 <세븐이브스>가 우주와 외계와 미래를 아주 장대하게 묘사함에도, 자유주의 헛소리를 떠들어야 할까요? 이 소설이 좁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븐이브스>가 우주와 외계와 미래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자유주의라는 기반 위에서 <세븐이브스>는 그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자유주의가 헛소리를 떠들 수 있기 때문에 <세븐이브스> 역시 헛소리를 떠들 수 있죠.

그래서 우주와 외계와 미래를 이야기함에도,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 운운하고 여러 착각들과 왜곡들을 늘어놓습니다. <세븐이브스>는 좁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자유주의 현실에 안착합니다. 이런 사례처럼, SF 소설들이 우주와 외계와 미래를 떠든다고 해도, 그것들은 무조건 넓은 시각, 머나먼 시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설사 그렇게 보인다고 해도, 그건 1차원적으로 넓은 시각입니다. 아무리 <세븐이브스>가 방주 우주선과 새로운 문명을 묘사한다고 해도, 이건 자유주의 헛소리를 절대 공격하지 않죠. 그렇게 <세븐이브스>는 1차원적으로 넓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SF 소설들보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프로 문학들은 훨씬 넓을 겁니다. 비록 프로 문학들에는 우주와 외계와 미래가 나오지 않으나, 프로 문학들이 자유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에, SF 소설들보다 프로 문학들은 훨씬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관점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현실에 안착하는 SF 소설들은 절대 그걸 따라잡지 못하겠죠. 프로 문학들에 비해 SF 소설들은 좁습니다. SF 소설들은 무조건 넓지 않습니다. 가부장적인 관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SF 소설들은 가부장적인 관점을 별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회 생물학이 엉터리 진화 이론을 남발한다고 해도, SF 소설들과 SF 독자들은, SF 우월주의자들 역시 함께 엉터리 진화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죠. <세븐이브스>는 열심히 여자 등장인물들을 보여주느라 애씁니다. 하지만 엉터리 사회 생물학을 받아들인다면, 아무리 <세븐이브스>가 여러 여자 등장인물들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건 그저 헛수고에 불과할 겁니다. 그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고급스러운 취향 놀음이 되겠죠. 자유주의나 가부장 문화를 의심하지 않을 때, 프로 문학들과 페미니즘 문학들보다 <세븐이브스>는 훨씬 좁은 관점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주와 외계와 미래와 전복과 혁명을 함께 아우르고 싶을 때, 독자들은 훨씬 복합적인 소설들을 찾아야 할 겁니다.

자유주의적인 헛소리나 가부장적인 편견이 창의적인 상상력과 만날 때, 문제는 훨씬 커질지 모릅니다. SF 소설들은 '창의적인 상상력'을 강조합니다. 수많은 SF 작가들과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이런 특징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창의적인 상상력'은 SF 소설들이 내세우는 커다란 가치입니다. 어쩌면 이건 가장 커다란 가치일지 모르죠. 주류 문학 역시 창의적인 상상력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사실 창작물(픽션)은 허구입니다. 모든 창작물은 허구입니다. 허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허구는 허구가 될 수 있습니다. 창작물이 허구가 아니라면, 문학 작가들은 상황을 묘사하느라 골머리를 썩히지 않을 겁니다. 주류 문학 역시 '지금 여기'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을 이야기할 때, SF 소설들은 주류 문학을 훨씬 앞지를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상상력'을 이야기할 때, 주류 문학은 SF 소설들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창의적인 상상력'은 꽤나 긍정적인 용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게 긍정적인 용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정말 이게 긍정적인 용어일까요? 누구나 창의적인 상상력이 긍정적이라는 문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창의적인 상상력은 긍정적인 용어 같으나, 이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창의적인 상상력은 얼마든지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약자를 차별하기 위해 사람들은 온갖 상상력들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아주 진지하고 근엄하게) 태양 흑점 때문에 경제 공황이 터진다고 주장합니다. 태양 흑점 때문에 경제 공황이 터진다? 네, 이건 아주 창의적인 상상력입니다. 동시에 이건 아주 창의적인 헛소리죠. 태양 흑점이 경제 공황을 터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상상력은 창의적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절대 긍정적이지 않겠죠.

상상력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특징이 될 수 있으나, 동시에 그건 관념적인 망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서 상상력은 귀중한 특징이 되지 않습니다. 현대 전략 병기를 연구하고 개발했을 때, 과학자들은 뛰어난 창의력들을 발휘했을 겁니다. 전략 병기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엄청난 것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은 엄청나게 머리들을 굴려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전략 병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죠. 심지어 수구 세력들조차 전략 병기가 위험하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전략 병기는 창의적인 상상력에서 비롯했으나, 별로 긍정적이거나 귀중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서 상상력이 귀중하지 않다면, 그걸 활용하는 SF 소설들 역시 별로 우월하지 않을 겁니다.

분명히 대리 체험은 소중합니다. 문학은 대리 체험과 가상의 사회적인 관계들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연말에 이성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로맨스 소설들을 이용해 두근거리는 연말 데이트를 대리 체험할 수 있습니다. 로맨스 소설들이 없다면, 솔로들은 크리스마스 연말을 아주 외롭게 보내야 하겠죠. 로맨스 소설들 속에서 연인들이 알콩달콩 데이트할 때, 독자들은 거기에 감정을 이입하고 가상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대리 체험은 문학이 선보이는 가장 커다란 가치입니다.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들은 훨씬 아찔한 대리 체험을 선사합니다. 다른 어떤 문학들보다 SF 소설들은 아찔한 대리 체험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문학들 중에서 SF 소설들은 가장 중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찔한 대리 체험이 창의적인 상상력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인간은 창의적인 상상력을 이용해 얼마든지 학살을 일으키거나 약자들을 차별하거나 현실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SF 소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현실을 아득하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SF 소설들은 훨씬 심각하게 현실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존슨 같은 18세기 유럽 작가는 창의적인 상상력이 위험하고 나태하다고 경계했으나, 여러 사조들을 거치는 동안 문학은 창의적인 상상력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SF 소설들에서 창의적인 상상력은 가장 빛납니다. 하지만 SF 소설들이 번뜩이는 발상을 내놓는다고 해도, 독자들은 그걸 덥썩 집어먹어서는 안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