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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도전! 웹소설 쓰기>가 저지르는 왜곡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도전! 웹소설 쓰기>가 저지르는 왜곡

OneTiger 2018. 11. 23. 19:51

창작 서적 <도전! 웹소설 쓰기>는 인터넷 소설(웹소설)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예전에 한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도전! 웹소설 쓰기>는 세 가지 로맨스 소설들, 미스터리 소설, SF 및 판타지 소설, 무협 소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은 어떻게 웹소설을 쓰는지 설명하고 장르 부분을 대충 넘어갑니다. 로맨스나 사이언스 픽션이나 무협을 설명하는 부분은 꽤나 부실해요. 작가들 역시 이런 점을 인정하고요. 어떻게 웹소설을 쓰는지 설명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어떤 작가는 자신이 무협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장르 설명보다 웹소설 창작을 더 원할 것 같습니다. 만약 SF 장르가 궁금하다면, 그런 사람들은 박상준님이나 듀나님이나 표도기님의 글들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그런 비평문이나 설명문을 참고한다면, 사람들은 무엇이 SF 장르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런 비평문들과 설명문들을 읽는다고 해도, 거기에는 웹소설을 쓰는 방법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SF 웹소설은 비단 SF 소설일 뿐만 아니라 웹소설입니다. 그래서 <도전! 웹소설 쓰기>는 웹소설에 초점을 맞췄겠죠.



<도전! 웹소설 쓰기>에는 웹소설 작가들의 생생한 경험담들이 들었습니다. 이건 웬소설 작가 지망생들에게 아주 귀중한 정보들일 겁니다. 웹소설을 쓰기 원하는 작가 지망생들은 이런 경험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겁니다. 별로 인기를 노리지 않거나 몇몇 소수 독자를 노리는 작가 지망생들은 이런 경험담에 연연하지 않겠으나, 이른바 순위권이나 대박을 노리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경험담들은 귀중한 금광일지 몰라요. <도전! 웹소설 쓰기>는 그런 점에 치중하고, 그래서 장르 구분은 꽤나 부실합니다. 그런 점은 아쉬우나, 그것 자체로서 부실한 장르 설명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진짜 문제는 설명이 틀리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한 번 이야기한 것처럼, <도전! 웹소설 쓰기>에서 어떤 작가는 장르 소설과 웹소설과 로맨스 소설을 등치시키고 장르 소설이 현실 도피적인 문학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런 발언은 수많은 SF 작가들, 독자들, 평론가들에게 실례가 되겠죠. 다른 장르 소설 작가들이 현실 도피적이라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적어도 SF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현실 도피적이라는 발언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상상력을 과함하게 발휘하기 때문에 SF 소설들은 현실 도피적이라는 조롱을 쉽게 듣습니다. 하지만 SF 소설들은 그 어떤 소설들보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유일무이하게 SF 소설들은 현실을 직시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고정적인 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류 문학은 이걸 별로 지적하지 않죠.



<도전! 웹소설 쓰기>에는 이것 이외에 다른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SF 및 판타지 소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어떤 작가는 몇몇 판타지 장르를 늘어놓습니다. 이건 다소 이상합니다. 분명히 'SF 및 판타지'를 함께 논하는 자리임에도, 그 작가는 SF 소설을 베재하고 오직 판타지 소설만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SF 소설과 판타지 소설이 가깝다고 해도, 두 장르는 많이 다릅니다. 아무리 로저 젤라즈니나 나오미 노빅이나 앤 맥카프리를 비롯해 여러 작가들이 SF 소설과 판타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해도, 두 장르는 다양한 차이점들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도전! 웹소설 쓰기>는 이런 차이점을 분석하지 않아요. 아무리 웹소설 창작에 비중을 할애한다고 해도, 이건 아쉬운 처사입니다. 아니, 이건 오류입니다. 그 덕분에 <도전! 웹소설 쓰기>에서 대체 역사는 판타지 장르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정말 대체 역사가 판타지 장르일까요? 글쎄요, 일반적으로 SF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대체 역사가 SF 장르에 속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체 역사는 판타지보다 SF 장르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대체 역사 소설들이 어떤 고립된 특정한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현실에서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건 판타지보다 SF 장르에 들어가야 할 겁니다.



일반적으로 판타지 소설들은 현실에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판타지 소설들은 그게 중세 유럽 판타지든 현대 도시 판타지든, 어떤 특정한 고립된 공간을 상상합니다. 아니면 판타지 소설들은 신화나 전설이나 미신에 기댑니다. 소설 <호비트>에서 배경 무대는 중간계라는 특정하게 고립된 공간입니다. 나중에 중간계가 현실(지구 행성)이 될지 모른다고 해도, 그 자체로서 중간계는 현실과 단절되었습니다. 소설 <해리 포터>에서 호그와트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입니다. <해리 포터>를 읽을 때, 우리는 노동자 운동이나 페미니즘 혁명이나 진화 이론이나 초끈 이론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호그와트와 공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어떻게든 사회 변화와 자연 과학 이론에 끼어드느라 애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들과 달리, <해리 포터>는 그렇게 노력하지 않죠. <트와일라잇>에서 흡혈귀들과 늑대 인간들은 신화와 전설에 속한 존재들입니다. 똑같이 흡혈귀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나는 전설이다>와 <블라인드 사이트> 같은 SF 소설은 최대한 흡혈귀를 과학적으로 묘사하느라 애씁니다. 그런 과학적인 고증이 틀리다고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고증이 틀리다고 해도, SF 작가들은 과학적인 고증을 들이대고 현실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느라 애씁니다. 대체 역사는 독립된 가상의 공간이나 신화를 상상하지 않습니다. 대체 역사는 현실 역사가 바뀌는 과정에서 비롯하고, 따라서 대체 역사는 SF 장르에 들어가야 할 겁니다.



물론 이런 의견은 완전히 옳지 않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다른 SF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은 이런 의견에 반박할지 모릅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다른 SF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은 SF 장르에 다른 고유한 특징이 있고 대체 역사가 판타지에 들어간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대체 역사 소설은 SF 장르에 들어갑니다. <도전! 웹소설 쓰기>는 이런 점을 간과했어요. 어쩌면 <도전! 웹소설 쓰기>는 장르 설명을 아예 제외했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장르 설명을 제외했다면, 불필요한 오류들은 줄어들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웹소설들이 장르 친화적이기 때문에 <도전! 웹소설 쓰기>는 장르 설명을 아예 외면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건 짧고 단순한 책이 드러내는 한계겠죠. 정말 문제는 심지어 이른바 인기 좋은 웹소설 작가들조차 장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장르 소설 작가가 엉터리 장르 설명을 늘어놓는다면, <도전! 웹소설 쓰기>를 읽은 이후,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과 독자들은 엉터리 장르 설명을 받아들이겠죠. 그렇게 웹소설 작가들은 엉터리 장르 설명을 퍼뜨릴 겁니다. 장르 소설 작가들이 장르를 올바르게 설명하기도 부족한 상황에서 장르 소설 작가들은 직접 장르를 부정하고 왜곡합니다. 이런 상황은 정말….



어떤 대상이 대중화한다면, 그것이 대중화하는 동안, 왜곡은 피하지 못할 현상이 됩니다. 비단 SF 장르만 아니라 무엇이 대중적으로 퍼지든, 그것은 왜곡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모든 사람이 빠삭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인류 문명이 완전한 학자 문명이 된다고 해도, <유리알 유희>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인류 문명이 완전한 카스탈리엔 문명이 된다고 해도, 자동 기계들이 모든 노동을 담당하고 인간들이 오직 지식만 연구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은 모든 분야를 통달하지 못할 겁니다.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인간이 허무와 권태 사이를 떠돈다고 말했으나, 그건 헛소리죠. 이동진 평론가는 넓은 대중성과 포용력을 보여주나, 안타깝게도 헛소리는 헛소리죠. 장르를 무시한다면, 아무리 포용력이 넓다고 해도, 평론가라는 인간은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주와 자연과 문명이 넓은 상황에서, 학문과 진리가 무한한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이 허무와 권태로 수렴할 수 있나요. 스티븐 백스터가 쓴 <타임십>은 이런 헛소리에 반박할 수 있는 사례일 겁니다.


그렇게 우주와 자연과 문명이 방대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모든 진리에 통달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널리 퍼질 때, 그것은 왜곡될 겁니다. 따라서 지식인은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왜곡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정신 노동자, 지식 노동자, 의자 노동자, 종이 노동자의 책임일지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지식 노동자들은 이런 책임을 간과합니다. 비단 예술가들만이 아닙니다. 자연 과학자들은 기후 회의론을 제대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언젠가 대중들이 사실을 깨달을 거라고 기다립니다. 게다가 자본 권력이 과학자들을 압박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쉽게 목소리들을 높이지 못합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런 것처럼, 평범한 과학자들은 전사들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싸울 용기가 없어요. 그들은 그저 진리를 연구하기 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기후 회의론이 심각한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전사들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아닐까요. 누가 좋아서 미친 놈 소리를 듣고 손가락질을 받고 눈총을 받겠습니까.



글을 쓰는 사람들, 정신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쓴 글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때문에 정신 노동자들은 견문을 넓힐 수 있습니다. 정신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 정신 노동자들이 왜곡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건 엄청난 기만이고 게으름이고 무능일지 모르죠. 심지어 그건 기생일지 모릅니다. 글이 마음의 양식이 된다고 해도, 예술이 인류 문명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해도, 우리는 예술과 글로 먹고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정신 노동으로 먹고 살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신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왜곡을 바로잡아야 할 겁니다. <도전! 웹소설 쓰기>는 그런 사례에서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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