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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소설이 현실보다 놀랍지 않다고 해도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SF 소설이 현실보다 놀랍지 않다고 해도

OneTiger 2018. 11. 8. 18:00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놀랍다." 종종 이렇게 사람들은 말합니다. 현실에서 아주 기이하거나 끔찍한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현실이 소설보다 놀랍다고 말하죠. 어쩌면 소설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문구는 다소 도전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들은 멋진 소설들을 써야 하나, 소설이 현실보다 뒤쳐진다면, 그건 소설이 재미없다는 뜻이 될지 모르죠. 하지만 현실과 소설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했습니다. 현실은 어떤 한 사람이 만드는 결과가 아닙니다. 현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 영향들을 미칩니다.


비록 영향력들이 서로 다르다고 해도, 현실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고 협력하고 연대하고 무시하고 간과할 때, 현실은 복잡한 양상을 구성합니다. 소설은 다르죠. 대부분 소설들은 작가 한 사람이 만드는 결과입니다. 어떤 소설은 집단 토론의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어떤 소설은 두 작가의 공저일 수 있습니다. 출판사 편집부 역시 소설에 끼어들 수 있습니다. 편집장이 어떤 부분을 축약하거나 삭제하라고 권유한다면, 작가는 그걸 받아들일 테고, 편집장 역시 창작에 참여할 수 있겠죠. 사실 대부분 소설들은 오롯히 작가의 전유물이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소설은 작가 한 사람의 결과물입니다. 현실에 비해 소설은 한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고, 따라서 소설은 현실보다 훨씬 덜 놀랍거나 덜 복잡할 겁니다. 아무리 작가가 머리를 굴린다고 해도, 어떻게 작가 혼자 수 십 억의 사고 방식들, 행동 양식들, 감성들을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작가가 완벽한 소설을 쓰고 싶다면, 작가는 정말 신이 되어야 할 겁니다. 적어도 작가는 강력한 인공 지능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와 마음 속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작가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소설은 한 인간의 결과물이고 절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설은 현실을 따라가느라 애쓰죠. 그래서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놀랍겠죠. 만약 기술적 특이점 이후, 아주 강력한 인공 지능이 나타난다면, 그 인공 지능은 정말 놀라운 소설을 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인공 지능이 수 십 억의 사고 방식들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면, 인공 지능은 훨씬 완벽하고 복잡하고 놀라운 소설을 쓸지 모르죠. 인간이 책을 쓸 때, 모든 책은 특별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한 인간의 주관과 경험을 담을 겁니다. 아무리 작가가 멋진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해도, 작가는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겠죠. 따라서 작가는 오직 현실의 아주 특정한 부분만 반영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소설은 중요할지 모릅니다. 소설은 복잡한 현실을 반영하는 간단한 거울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소설을 이용해 복잡한 현실을 훨씬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현실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을 겁니다. 그때 소설은 단순한 거울이 되고, 우리는 소설을 이용해 현실을 간편하게 파악할 수 있겠죠. 누군가는 이게 단순화 작업이라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화 작업보다 해체 작업인지 모르죠. 소설은 현실을 해체하고 복잡함 속에서 진짜 중요한 알맹이를 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SF 소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부터 이미 이런저런 SF 소설들이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거 SF 소설들과 현재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과거 SF 소설들이 현재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현실이 SF 소설보다 놀랍다고 말할 수 있겠죠. 사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SF 소설이 미래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고 현실이 SF 소설보다 놀랍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반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은 빠지지 못할 장비이나, SF 작가들은 스마트폰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1세기 사람들은 USB를 들고 다니나, 과거 SF 작가들은 USB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이 SF 소설보다 놀랍다고 말해요. 다른 문학들처럼, 결국 SF 소설들 역시 현실보다 놀랍지 않을지 모르죠.



하지만 SF 작가들이 현실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도, 여전히 SF 소설들은 놀랍습니다. SF 소설들이 스마트폰이나 USB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도, SF 소설들은 다른 것들을 상상했습니다. 해저 기지, 우주 탐사, 인간형 로봇들, 똑똑한 개조 동물들, 외계 생명체들. 어떤 사람들은 현실에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SF 소설들에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 SF 작가들이 소설을 쓸까요. 만약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 SF 작가들이 소설을 쓴다면, 사람들은 현실이 SF 소설보다 놀랍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미래를 예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SF 작가들이 최대한 자세히 미래를 묘사한다고 해도, 그건 SF 소설들이 미래를 예상하고 싶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SF 작가들은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점쟁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어떻게 세계가 바뀌는지 묘사하기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어떻게 세계가 바뀔지 아무도 알지 못하나, 분명히 세계는 바뀔 테고, 그런 세계는 다소 이질적일 겁니다. SF 작가는 거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SF 소설이 미래를 맞추지 못한다고 해도, SF 소설이 이질적이라면, 그건 소임을 충분히 다할 수 있겠죠.



사람들은 SF 소설보다 현실이 훨씬 놀랍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SF 작가들이 스마트폰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사실을 아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SF 소설들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SF 독자들이 예언자나 점쟁이를 보기 원하기 때문이 아닐 겁니다. SF 독자들은 SF 작가들이 무슨 가능성을 내놓을지 읽기 원합니다. 그게 틀리다고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가능성에 경탄할 때, 독자들은 현실이 고정적이지 않고 계속 바뀐다고 깨달을 수 있어요. SF 소설은 현실보다 놀랍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SF 소설은 어떻게 우리가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뭐, SF 작가들의 예상이 무조건 맞는다면, 이미 전면 핵 전쟁이나 치명적인 환경 오염은 인류 문명을 무너뜨렸을 겁니다. SF 소설이 미래를 예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행일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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