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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SF 소설에서 내용과 형식을 비평하기

OneTiger 2018. 9. 29. 17:43

SF 소설은 소설입니다. SF 소설은 비단 SF 장르일 뿐만 아니라 소설이라는 문학이죠.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내용과 함께 형식에 주목합니다. 대부분 다른 것들처럼, 소설은 그저 내용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내용과 형식이 합칠 때, 소설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설정이나 이야기나 줄거리나 등장인물이 내용이 된다면, 단어나 문단이나 글씨체나 문장 부호는 형식이 되겠죠. 소설 <둠스데이 북>을 읽은 이후, 독자들은 왜 작가가 성탄절에 전염병 아포칼립스를 집어넣었는지 논의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이 개성적이거나 얄밉거나 꿀밤을 때려주고 싶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릴 때, 독자들은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거나 그들을 동정할 수 있겠죠. 어떤 독자들은 시간 여행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할 수 있고, 어떤 독자들은 전염병 아포칼립스로서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침묵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전형적인 비평이나 감상 방법입니다. SF 소설들을 읽을 때, 여러 독자들은 이런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이 블로그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SF 소설들을 평가할 때, 이 블로그 역시 설정이나 이야기나 줄거리나 등장인물을 평가합니다. 이것들은 소설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만화와 영화와 비디오 게임에도 똑같이 설정이나 이야기나 줄거리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소설과 만화와 연극과 애니메이션과 영화와 비디오 게임에는 똑같이 이야기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이런 것들만 평가한다면, 독자는 소설을 완전히 평가하지 못하겠죠. 이건 소설을 읽을 때 독자가 무조건 내용과 형식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양한 목적들을 위해 독자들은 소설을 읽을 겁니다. 소설은 휴대폰 설명서가 아닙니다. 소설은 열린 대상이고 총체이고 모체입니다. 때때로 독자들은 작가가 완전히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런 해석이 틀렸다고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동시에 소설이 열린 대상이기 때문에 소설을 쓸 때 작가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타이거! 타이거!>가 악당 걸리버 포일을 묘사한다고 해도, 그건 알프레드 베스터가 악당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소설과 작가는 다르죠. 어떤 독자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꼴을 구경하기 위해 코니 윌리스가 <둠스데이 북>을 썼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런 해석은 맞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런 해석은 틀릴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해석은 틀릴 겁니다.) 설사 코니 윌리스에게 그런 목적이 있다고 해도, 독자들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고, 코니 윌리스를 비난하지 못합니다.



작가는 소설이 아닙니다. 종종 작가는 소설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습니다. 소설 <에코토피아 뉴스>에 나오는 시간 여행자는 분명히 윌리엄 모리스 본인일 겁니다. 하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성질머리가 급하고 약간 4차원적인 양반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시간 여행자는 그렇지 않죠. 시간 여행자는 다정하고 여신 같은 젊은 아가씨와 두근거리는 시간을 보냅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자신의 이상적인 부분을 <에코토피아 뉴스>에 집어넣었겠죠. 그렇다고 해도 독자는 시간 여행자가 윌리엄 모리스 본인이라고 간주할 겁니다.


하지만 <조이 이야기>를 썼다고 해도, 존 스칼지는 깔깔거리는 10대 소녀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에코토피아 뉴스>는 예외적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보다 사상 서적에 가깝죠. <조이 이야기>는 훨씬 일반적인 소설이고, 존 스칼지는 깔깔거리는 10대 소녀와 훨씬 거리를 벌릴 수 있습니다. <여름으로 가는 문>에 사랑스러운 꼬마 아가씨가 나온다고 해도, 그건 로버트 하인라인이 정말 꼬마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겠죠. 설사 하인라인이 그렇다고 해도, 그건 (은팔찌 철컹철컹이 아니라) 창작과 표현의 자유고요. 이렇게 소설이 열린 매체이기 때문에,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소설을 쓰고 싶어합니다. 무궁한 가능성들이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비평의 자유가 있고, 다양하게 소설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형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소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독자들은 형식을 파악해야 할 겁니다. 형식은 단어나 문단이나 글씨체나 문장 부호가 되겠죠. <로드>에는 따옴표가 없습니다. 다른 소설들에서도 코맥 매카시는 따옴표를 쓰지 않았으나, <로드>는 좀 더 특별합니다. 이건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모든 것은 죽었고, 그래서 따옴표 없는 대화는 침묵입니다. 이런 형식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잘 어울리죠.


영화는 이런 형식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대사를 말하기 위해 배우들은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죠. 일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아무도 '내가 따옴표를 써야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심사숙고한다고 해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따옴표를 쓸지 고민하지 않죠.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서 직조자가 마침표를 쓰지 않거나 소설 <기시감>에서 석아찬이 일기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장면 역시 형식에 들어갈 수 있겠죠. 소설과 일기는 똑같이 텍스트이고, 소설을 읽는 것처럼 독자는 석아찬의 일기를 읽습니다. 석아찬의 일기는 텍스트 속의 텍스트이고, 영화나 비디오 게임에 일기가 나온다고 해도, 그것들은 다른 느낌을 풍기겠죠.



<에일리언 브리드> 같은 사격 비디오 게임에는 여러 일기들이 있습니다. 우주선 내부를 떠도는 동안 게임 주인공은 여러 일기들을 수집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읽을 수 있죠. 하지만 일기들은 보조적입니다. 비디오 게임에서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보조적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을 읽지 않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에일리언 브리드>에서 중요한 행위는 읽기가 아니라 사격이죠. (하지만 레인저 버그는 정말 짜증나는 상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레인저 버그는 쏘고 튀죠.) 반면, 독자는 소설을 읽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 일기가 나올 때, 그건 텍스트 속의 텍스트이고, 독자는 소설과 함께 일기를 읽을 수 있죠.


게다가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마침표를 찍지 않는 직조자와 석아찬의 일기가 똑같은 형식인가? 일상에서 우리는 일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직조자 같은 외계 거미 괴수를 만나지 못합니다. 일기는 일상이나, 외계 거미 괴수는 비일상입니다. 따라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 '형식'은 외계 거미 괴수라는 '설정'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SF 소설에서 형식은 설정을 강조하거나 아예 설정 그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SF 소설의 형식을 평가할 때, 이렇게 SF 독자들은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SF 독자들은 어떤 단절이나 차이를 겪을 겁니다. SF 소설들은 일반적인 주류 문학과 많이 다릅니다. 분명히 SF 소설은 소설이나, SF 소설은 독특한 소설입니다. SF 소설이 비일상적인 영역과 충격적인 미래와 새로운 사회 및 생태계를 다루기 때문에 독자들은 형식보다 설정에 관심을 기울일지 모릅니다. 분명히 형식은 중요한 요소이나, 800m짜리 생체 우주선이 날아다닌다면, 독자들은 당장 형식(단어나 문단 부호)보다 설정(거대한 생체 우주선)에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거대한 생체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작가가 '마음에'를 '맘에'로 축약하거나 '우르릉 쾅' 같은 의성어를 집어넣는다고 해도, 그게 중요하겠어요. 솔직히 그게 중요할까요.


아니죠. SF 독자들은 어떻게 생체 우주선이 스스로 복원하거나 치유하거나 폐쇄 생태계를 순환시키는지 알기 원할 겁니다. 안중에도 의성어 따위는 없겠죠. 작가가 의성어를 집어넣지 않고 상황을 묘사하거나 일부러 수식어를 문장 앞으로 옮긴다고 해도, 그게 중요하겠어요. 물론 작가가 특별한 글씨체나 문단 부호로 생체 우주선의 생태계를 묘사한다면, 그건 형식이 설정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될 겁니다. 이때 설정처럼 형식은 중요해지겠죠. 소설이 텍스트 매체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설정보다 형식을 먼저 주목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결국 독자들의 인상 속에는 형식보다 설정이 오래 남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SF 소설을 평가할 때, 독자들이 주류 문학을 평가할 때, 비평은 서로 달라질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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