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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의 전복적인 설정과 평범한 형식 본문

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의 전복적인 설정과 평범한 형식

OneTiger 2018. 9. 30. 17:20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과 20세기 SF 소설들이 드러내는 커다란 차이점들이 무엇일까요? 대답들은 여러 가지일 겁니다. 그런 대답들 중 하나는 파괴적인 형식일 겁니다. 유명한 19세기 SF 소설들, <프랑켄슈타인>부터 <최후의 인간>, <해저 2만리>, <지구 속 여행>, <지킬 박사와 하이드>, <미래의 이브>, <잃어버린 세계>, <마라코트 심해>, <우주 전쟁>, <타임 머신>에는 뭔가 특별한 형식이 없습니다. 분명히 이런 소설들은 인조인간과 개조 생명체와 인류 문명 멸망과 만능 잠수함과 지저 세계와 해저 문명과 외계 침략자들과 공룡 시대와 기타 수많은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것들은 정말 전복적인 설정들입니다. 19세기 이전에 누가 이런 것들을 상상했을까요? 본격적인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인조인간이나 외계인이나 거대 괴수나 인류 멸망은 존재했습니다. 성직자들, 철학자들, 작가들은 꾸준히 그런 것들을 이야기했죠. 하지만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이 나타나기 전에 성직자들, 철학자들, 작가들은 마법이나 전설이나 신화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이 이성적인 논리로 인조인간이나 만능 잠수함이나 보행 전차나 비행선을 만들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19세기 SF 작가들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SF 작가들은 인류 문명이 놀라운 것들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것들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도 해도, 인류 문명은 놀라운 것들을 만들 겁니다. 왜냐하면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그것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 사람들과 달리 SF 작가들은 인류 문명이 이성적으로 논리로 세상을 바꾼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류가 특별히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인류가 기다린다고 해도, 진화 역사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인류가 멈춘다고 해도, 우주는 끊임없이 바뀝니다. 어느 날 운석은 인류 문명을 멸망시킬지 모릅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 작가들은 이런 것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소설들은 전복적이고 도발적이고 파괴적입니다. 솔직히 21세기 초반 사람들조차 이런 것들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죠. 21세기 초반 사람들조차 세상이 고정적이라고 믿고 일상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소설들을 쓰죠. 꽤나 많은 21세기 소설들은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합니다.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이 아득히 머나먼 곳으로 달릴 때, 그런 21세기 소설들은 그저 멍하니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의 뒷모습을 쳐다볼 뿐입니다.



21세기 초반은 첨단 과학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왜 이런 첨단 과학의 시대가 왔음에도, 여전히 많은 소설들이 멍하니 일상을 쳐다볼까요? 왜 첨단 과학의 시대에서 소설들이 더 멀리 전망하지 못할까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21세기 사람들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질타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지배적인 관념일지 모르죠. 19세기 유럽에는 여러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상들은 자신들이 시대를 바꾼다고 주장했고,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그런 사상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자유주의일 겁니다. 다른 사상들이 봉기했을 때,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다른 사상들을 끔찍하게 짓밟았고, 20세기 후반에 신자유주의는 전세계를 장악합니다.


그래서 21세기 초반 소설들은 가능성을 꿈꾸지 않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이유는 전부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런 논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게시글이 살펴볼 주제는 SF 소설의 형식입니다.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은 놀라운 것들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설정들입니다. 설정들은 놀라우나,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은 놀라운 설정을 놀라운 형식에 접목하지 않았죠. 때때로 SF 소설들에서 형식은 설정을 강조하거나 설정 그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형식이 독특하기 때문에 설정 역시 독특해질 수 있죠. 독특한 형식은 진부한 설정을 새롭게 단장하거나, 설정은 형식을 벗어나지 못할지 모릅니다.



독자들이 이런 사례를 찾아보고 싶다면, <파괴된 사나이>와 <타이거! 타이거!>는 아주 좋은 사례가 될 겁니다. <파괴된 사나이>는 텔레파시를 다룹니다. 텔레파시는 사방을 떠돌고, 초능력자들은 허공으로 온갖 생각들을 퍼뜨립니다. 알프레드 베스터는 이걸 그저 평범한 문단으로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알프레드 베스터는 산문시들을 아무렇게 퍼뜨린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산문시들이 산만하게 있을 때, 그것들은 텔레파시가 됩니다. 독자들은 산만한 산문시들을 읽고, 그것들이 텔레파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알프레드 베스터가 이런 파격적인 형식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파괴된 사나이>는 훨씬 진부해지거나 심심해졌을지 모릅니다. <파괴된 사나이>는 그저 텔레파시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이런 소설을 만화나 영화나 비디오 게임으로 리메이크하기는 아주 어렵겠죠. 소설이라는 형식 때문에 텔레파시 설정은 빛날 수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라진다면, 텔레파시 설정은 빛을 잃겠죠. <타이거! 타이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은 텔레파시가 아니라 텔레포트를 다룹니다. 여기에서 생각이 아니라 사람들은 직접 사방으로 펑펑 날아다닙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파괴적인 형식이 필요합니다. 베스터는 그런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만약 그런 파괴적인 형식이 없었다면, <타이거! 타이거!>는 세상을 뒤집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타이거! 타이거!>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SF 독자들은 그런 파괴적인 형식을 떨치지 못할 겁니다. 여기에서 설정과 형식은 함께 붙어있습니다. 설정과 형식은 절대 떨어지지 못합니다. 소설 <해저 2만리>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SF 독자들은 (비교적) 쉽게 설정과 형식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해저 2만리>는 소설이고, SF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습니다. 그래서 네모 선장과 노틸러스 잠수함과 해저 풍경을 떠올릴 때, 텍스트에서 SF 독자들은 출발할 겁니다. 쥘 베른은 텍스트를 제시했고, 거기에서 SF 독자들은 네모 선장과 노틸러스 잠수함과 해저 풍경이라는 세계를 구상하겠죠.


출발점은 분명히 텍스트라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세계를 구상한 이후, 거기에서 SF 독자들은 훨씬 멀리 나갈 수 있겠죠. 텍스트는 그저 단서들을 제시할 뿐이고, SF 독자들은 텍스트를 이용해 세계를 구상하고, 거기에서 훨씬 멀리 나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노틸러스 잠수함을 묘사하기 위해 SF 독자들은 다른 그림이나 사진이나 책을 끌어들일지 모르죠. 어떤 독자는 비디오 게임 <딜루비온>을 이용해 스팀펑크 잠수함을 대입할지 모릅니다. 어떤 독자는 제이슨 스타뎀을 네드 랜드에게 대입할지 모르죠. (뭐, 제이슨 스타뎀이 네드 랜드에 어울릴까요.) 이렇게 SF 독자들은 세계를 구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타이거! 타이거!>에서 이건 훨씬 힘듭니다. <타이거! 타이거!>에서 걸리버 포일이 텔레포트(존트)하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알프레드 베스터가 사용한 형식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겁니다. 그런 형식 없이 SF 독자들은 존트 장면을 연상하지 못할 겁니다. <타이거! 타이거!>에서 형식은 설정과 내용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에서 설정과 형식은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끔 20세기 SF 작가들은 이런 파격적인 형식을 구사합니다. 하지만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 작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에서 설정과 내용은 전복적이나, 형식은 별로 그렇지 않았죠.


이건 19세기 작가들이 게을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19세기 유럽은 진화 이론과 교회 세력, 과학적인 사고 방식과 강령술, 유럽 중심주의와 세계화, 거대 자본가들과 노동 조합들이 부딪히는 시대였습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은 새로운 사상들을 열심히 묘사하느라 바빴고, 형식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설정과 내용이 전복적이기 때문에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에게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은 설정을 탐구하느라 바빴어요. 시간이 20세기를 넘었을 때, SF 작가들은 한결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형식을 탐구할 수 있었죠.



SF 소설에서 소설이라는 형식은 중요합니다. 때때로 형식은 설정 그 자체가 될 수 있겠죠. 분명히 텍스트는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출발점이고요. 하지만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이 형식보다 설정에 치중한 것처럼, SF 소설에서 설정은 형식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할지 모릅니다. 형식을 벗어나는 내용은 존재하지 못하겠으나, 내용은 형식을 뛰어넘고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지 모르죠. 분명히 출발점이 형식이라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들은 형식보다 내용에 훨씬 치중할지 모릅니다. 물론 소설의 형식과 설정은 어려운 문제이고, 이런 허술한 게시글은 쉽게 결론을 짓지 못하겠죠. 텍스트가 무엇인지, 어떻게 텍스트를 해체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은 정말 머리 터지는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허술한 게시글조차 계속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논의한다면, 그런 고민들은 어떤 대답을 찾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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