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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소설들이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말하는가 본문

사회주의/우익 이데올로기 비판

SF 소설들이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말하는가

OneTiger 2018. 8. 21. 18:54

[이런 그림처럼, SF 세상에서 인간성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고정적인 인간 군상은 없습니다.]



'인간!' 소설 <솔라리스>에서 주인공 켈빈은 이런 쪽지(반창고)를 발견합니다. 그건 솔라리스 정거장에서 누군가가 휘갈겨쓴 쪽지입니다. 살아있는 플라즈마 바다가 일으키는 기이한 현상 때문에 그 사람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고찰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SF 소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고찰하기에 좋은 매체입니다. 왜? <솔라리스>처럼 SF 소설은 익숙한 환경을 떠나고 낯선 환경으로 들어갑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익숙한 존재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SF 소설의 가장 큰 특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때문에 수많은 독자들은 SF 소설을 읽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결국 SF 소설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SF 소설이 특이하다고 해도 결국 SF 소설이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틀리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SF 소설은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SF 소설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는 모든 SF 창작물이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SF 소설의 가장 큰 특징들 중 하나는 그겁니다. 그래서 <솔라리스>에서 누군가는 인간이라고 휘갈겨썼을 겁니다.



SF 소설들 속에서 인간은 다양한 측면들을 드러냅니다. SF 소설들 속에서 인간들은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거나, 새로운 지적 존재나 생명체를 만들거나, 새로운 환경으로 진입하거나, 새로운 종족과 만납니다. 그래서 SF 소설들은 인간들의 다양한 측면들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월종에게 지배를 당할지 모르고, 다른 지적 존재와 경쟁해야 할지 모르고, 착취 없는 평등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지 모르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할지 모릅니다. 그런 다양한 측면들을 만날 때마다, SF 독자들은 실망하거나 분노하거나 탄성을 지르거나 희망을 품을지 모르죠.


SF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단어는 오직 한 가지 측면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있고, 인류 문명은 수많은 모순들을 저질렀습니다. SF 소설들은 그런 것들에 주목합니다. SF 세상에서 보편적이고 절대적이고 상식적인 인간 군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측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나, <혹성 탈출>은 그런 생각을 비웃죠. 우리는 인간이 탐욕스럽다고 생각하나, <안드로메다 성운> 같은 소설은 거기에 반박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역사의 종언에서 산다고 생각하나, <타임십>은 시대가 자꾸 바뀐다고 말해요.



그래서 저는 '인간적'이라는 용어가 피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적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가령, 인간적인 자본주의나 인간의 얼굴을 한 페미니즘은 선량하고 온건하고 조화로운 자본주의나 페미니즘을 가리킬 겁니다. 하지만 여러 SF 소설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인간적'이 무슨 뜻일까요? 뭐가 인간적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착하고 좋은 것이 인간적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래요? 뭐가 착한가요? 뭐가 착하고 좋은 것이죠? 우리는 세종 대왕이 어질고 현명한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종 대왕은 인간적인 군주입니다.


하지만 정말 세종 대왕이 인간적인가요? 세종 대왕은 여자들을 차별했고, 노비들을 차별했고, 백성들을 차별했습니다. 세종 대왕은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거나 노비와 양반이 평등하거나 백성과 군주가 평등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21세기 문명의 관점에서 세종 대왕은 절대 인간적인 군주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종 대왕을 인간적인 군주라고 불러요. 인간적이라는 용어가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대충 아무 데나 갖다붙이죠. 지배 계급이 뭔가 떡고물을 던질 때, 우리는 그게 고맙다고 생각하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저 노예 근성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인간적이라는 단어는 막연하고 피상적이고 애매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적이라는 용어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적인 자본주의나 인간의 얼굴을 한 페미니즘이나 인간다운 사회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막연하고 피상적이고 애매한 이데올로기입니다. 저는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 미국 목화 농장에서 백인 남자들이 흑인 여자들을 강간한다고 해도, 그건 악행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아주 상식적인 행위였습니다. 심지어 그런 백인 남자들은 인간적인 선인들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백인들은 교회에 나가고 열심히 기도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적인 이데올로기 따위를 믿지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이데올로기 운운합니다. 게다가 SF 작가들이나 독자들 역시 그런 피상적인 용어를 주워섬깁니다. 숱한 SF 소설들이 인간의 고정적이지 않은 측면들을 강조함에도, SF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그걸 고려하지 못합니다. 그런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SF 소설에서 다른 것을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SF 소설들이 전달하는 아주 큰 가치를 놓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꽤나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물론 저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가 똑같은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들을 얻겠죠. 인간들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런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SF 소설들을 읽을 때 독자들이 고정적인 인간을 찾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 속에서도 그들이 고정적인 인간 군상을 찾지 않기 바랍니다. 저는 SF 독자들이 인간적인 이데올로기 운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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