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혹성 탈출>과 주관적인 수학 공식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혹성 탈출>과 주관적인 수학 공식

OneTiger 2019. 7. 18. 20:21

피에르 불이 쓴 <혹성 탈출>에서 소설 주인공 지구인은 외계인을 만납니다. 사실 이 외계인은 진짜 외계인이 아닙니다. 이 외계인은 전형적인 외계인보다 아주 똑똑한 유인원입니다. 똑똑한 유인원들은 언어를 사용하고, 이론들을 세우고, 과학 기술들을 연구하고, 뛰어난 문명을 이룩합니다. 반면, 소설 속에서 인간들은 야생 동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똑똑한 유인원들은 인간들이 야생 동물이라고 간주합니다. 소설 주인공 지구인은 그들과 다르나, 똑똑한 유인원들은 소설 주인공 지구인이 열등하고 미개한 다른 인간들과 똑같다고 간주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자신에게 이성이 있다고 증명해야 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유인원들과 대화하기 원합니다. 언어는 이성을 증명하기 위한 좋은 증거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소설 주인공이 똑똑한 유인원들과 대화할 수 있나요? 똑똑한 유인원들은 외계인입니다. 숱한 SF 소설들과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과 외계인이 마주친다면, 어떻게 양쪽이 소통할 수 있나요? 일상에서 종종 우리는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오빠는 오빠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해?" 연애 만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면, 이건 고정 관념일지 모릅니다. 이건 여자와 남자가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한다는 편견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상에서 우리는 불완전한 의사 소통들을 마주치곤 합니다. 언어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동원하고 해석하는 동안, 우리는 온갖 주관적인 경험들을 덧붙입니다. 대화 상대에게 이런 주관적인 경험들이 부족하거나, 대화 상대가 이런 주관적인 경험들을 언어에 연결하지 못한다면, 원활하게 대화하기는 힘들 겁니다. 동시 통역사들은 훨씬 곤란을 겪을 겁니다. 우리가 언어를 동원할 때, 우리는 언어를 문자 그대로 동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비유들과 미묘한 상징들을 함께 동원합니다. 표정, 몸짓, 목소리, 시선 역시 언어에 영향을 미칩니다.


동시 통역사가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통역은 엉망이 될 겁니다. 인간과 인간이 대화하는 동안, 이런 것들은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사피엔스가 원활하게 대화하고 싶다고 해도, 이건 쉽지 않습니다. 만약 인간이 외계인과 대화한다면, 이건 훨씬 쉽지 않을 겁니다. 소설 <혹성 탈출>에서 외계인은 똑똑한 유인원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외계인이 똑똑한 유인원들이라고 해도, 외계인은 외계인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외계인과 대화할 수 있나요? 여기에서 소설 주인공은 기발한 발상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소설 주인공은 수학 공식을 이용합니다. 똑똑한 유인원들에게도 수학 공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 공식은 보편적입니다. 인류 문명이 2+2=4라고 계산하는 것처럼, 똑똑한 유인원들(외계인들) 역시 2+2=4라고 계산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피타고라스 정리를 제시하고, 똑똑한 유인원 역시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해합니다. 이제 인간과 외계인 사이에는 보편적인 계산이 있습니다. 인간과 외계인은 이걸 이용해 소통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외계인은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성이 있다고 증명할 수 있고, 외계인은 이걸 인정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인간 위상을 한 번에 끌어올립니다. 더 이상 똑똑한 유인원은 인간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돌고래가 야생 동물이라고 간주하나, 어느 날 돌고래가 피타고라스 정리를 제시한다면, 더 이상 사람들은 돌고래를 야생 동물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겁니다. 돌고래들과 대화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난리법석을 부릴 겁니다. 하지만 소설 <혹성 탈출>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말 수학 공식이 보편적인가요? 인간과 외계인에게 수학 공식이 보편적인가요? 인간과 외계인이 똑같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계산할 수 있나요? 우리 인간에게, 적어도 이른바 20세기 문명인에게 피타고라스 정리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피타고라스 정리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기하학에서 직각 삼각형의 빗변 제곱은 두 직각변의 제곱 합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에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있고, 우리 인간은 수학 공식을 이용해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계인이 그럴 수 있나요? 외계인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할 수 있나요? 우리에게 수학 공식이 있다고 해도, 반드시 외계인에게 수학 공식이 있나요? 우주에서 모든 지적 존재에게 반드시 수학 공식이 있어야 하나요? 우주에 수학 공식이 있나요? 아니면 우리 인류가 임시적으로 수학 공식을 만들었나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피타고라스 정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타고라스 학파 역시 숫자가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라고 믿었습니다.


우주 속에서 숫자는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유클리드는 수학이 공식이고 우주가 이걸 나타낸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수학자들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수학 공식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우주 법칙 그 자체보다 논리적인 기호입니다. 레오폴트 크로네커는 신이 자연수를 만들었으나 인류가 나머지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앙리 푸앵카레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보편적인 원리보다 특정한 논리 규칙이라고 주장합니다. 정말 수학이 보편적인 진리인가요, 아니면 인위(인공)적인 논리 규칙인가요? 만약 수학이 인위(인공)적인 규칙이라면, 인간이 수학 공식을 이용해 외계인과 소통할 수 있나요?



어쩌면 소설 <혹성 탈출>은 엉터리일지 모릅니다. 인간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제시한다고 해도, 외계인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흔히 사람들은 지적 문명에게 수학이 있을 거라고 간주하나, 외계 문명에게 수학이 있다고 해도, 인류와 외계인들은 서로 다르게 특정한 논리 규칙들을 사용할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과 외계인은 수학 공식을 보편적으로 이용하지 못할 겁니다. 결국 수학 공식을 이용해 소통하기는 힘들 겁니다. 만약 수학이 보편적인 우주 진리이고, 인간과 외계인이 똑같이 수학 공식을 이용한다고 해도, 동시 통역사가 고생하는 것처럼, 인간과 외계인 통역사는 고생할지 모릅니다.


인간과 외계인이 대화한다면, 양쪽은 주관적인 경험들을 언어에 덧붙일 겁니다. 적어도 인간은 그럴 겁니다. 외계인에게 이런 주관적인 경험들이 없거나, 외계인이 주관적인 경험들을 언어에 덧붙이지 못한다면, 외계인은 뭐라고 인간이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인간은 쏘아붙일 겁니다. "외계인, 왜 당신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 어쩌면 이런 소통은 말싸움이 될지 모릅니다. 말싸움은 증오와 분노로 이어질 테고, 증오와 분노는 우주 전쟁을 부를 겁니다. 인간과 외계인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이건 무서운 우주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우리가 주관적인 경험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나요? 주관적인 경험들이 문제가 된다면, 주관적인 경험들을 버리기 위해 우리는 노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주관적인 경험들을 버릴 수 있나요? 이게 가능한가요? 심지어 주관적인 경험들은 자연 과학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자연 과학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나, 이건 엄청난 착각입니다. 만약 주관적인 경험들이 자연 과학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떻게 자연 과학이 가치 중립을 지킬 수 있나요?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객관적으로 과학을 연구할 수 있나요? 우리가 이성적으로 수학이 보편적인 진리거나 인위적인 규칙인지 증명할 수 있나요?


어떤 수학자가 수학이 보편적인 진리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이건 그저 주관적인 경험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수학자는 자신이 객관적으로 관찰한다고 생각하나, 이건 그저 착각에 불과하고, 주관적인 경험들은 수학자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모릅니다. 주관적인 경험들 속에서 수학자가 수학 공식을 관찰한다면, 수학자는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할 겁니다. 사회 생물학자가 "난자는 수동적이고, 정자는 적극적이다. 여자는 수동적이고, 남자는 적극적이다. 여자보다 남자는 훨씬 중요한 업무들을 맡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이게 객관적인 관찰인가요? 인류학자가 "여자의 둥근 젖가슴은 수유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남자의 쾌락을 위해 여자의 둥근 젖가슴은 존재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이게 객관적인 관찰인가요?



인류 문명에서 수많은 철학자들, 과학자들은 여러 이론들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온갖 인종 차별들과 성 차별들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근대화시켜야 한다." 이런 주장은 오직 서구 문명만 진정한 문명이고 원주민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서구 문명에게 이런 주장은 당연합니다. 서구 문명은 이게 객관적이라고 간주합니다. 이런 '객관적인' 사고 방식은 엄청난 학살들과 열대 밀림 파괴들을 불렀습니다. 여전히 서구 문명은 이런 주장이 진리라고 간주합니다. 이른바 종속 이론과 에코 페미니즘이 서구 자본주의가 제3세계 식민지들을 수탈한다고 주장한다면, 식민지 근대화 이론은 그게 아니라고 반박할 겁니다.


식민지 근대화 이론은 온갖 통계들을 들이대고 서구 자본주의가 제3세계 식민지들을 별로 수탈하지 않았다고 반박할 겁니다. 종속 이론과 에코 페미니즘은 식민지 근대화 이론이 통계 자료들을 왜곡했다고 주장할 테고, 식민지 근대화 이론은 다시 반박할 겁니다. 종속 이론 및 에코 페미니즘과 식민지 근대화 이론은 끝없이 싸울 겁니다. 여기에서 누가 옳은가요? 종속 이론 및 에코 페미니즘? 식민지 근대화 이론? 누가 객관적입니까? 우리가 에코 페미니즘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이게 정말 객관적인 판단입니까? 우리가 그걸 스스로 증명할 수 있나요?



노예 제도 사회에서 백인 농장 주인들은 깜둥이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노예 해방론자들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농장 주인들은 들어처먹지 않았습니다. 농장 주인들은 백인 남자가 흑인 여자를 성 폭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인종 차별은 당연하고 객관적인 진리였습니다. 관점이 달라진다면, 진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면, 누가 수학 공식이 인위적인 규칙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이런 물음들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객관적인지 스스로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들은 외계인들을 내세웁니다. 외계인들은 외부 시선이 되고, 외부 시선은 인류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현실에는 외부 시선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관적인 경험들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 블로그 <SF 생태주의>는 생태 사회주의가 옳다고 주장하나, 이것 역시 그저 주관적인 경험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생태 사회주의가 그저 주관적인 경험에 불과하다면, 이 블로그는 그저 헛소리 덩어리에 불과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완벽하게 객관적이라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저는 정말 미치광이 빨갱이 광신도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만약 생태 사회주의가 미치광이 빨갱이 광신이라면, 여기에 아무 가치가 없나요? 제가 이런 주장을 포기해야 하나요? 하지만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해도, 분명히 이 세상에는 밑바닥 계급이 있고, 밑바닥 계급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배 계급은 지배적인 관념을 퍼뜨립니다. 중산층은 넉넉하게 먹고 삽니다. 다들 서민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게 그저 빈말에 불과하다고 해도, 심지어 수구 꼴통 정치인들조차 서민 경제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밑바닥 계급을 말하지 않습니다. 밑바닥 계급은 병풍입니다. 밑바닥 계급은 투명 인간입니다. 밑바닥 계급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20세기 초반 서구 자본주의가 원주민들을 수탈하는 동안, 아무도 원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블라디미르 레닌이 제국주의 이론을 주장하기 전에, 식민지 수탈은 공식적인 논의가 아니었습니다. 백인 놈팽이가 인디언 소녀를 폭행하든 말든,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인디언 소녀가 그저 병풍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직 공산주의만 식민지 수탈에 관심을 기울였고, 20세기 동안 여러 굴곡들이 있었으나, 공산주의와 식민지 독립 운동은 긴밀한 관계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태 사회주의가 미치광이 빨갱이 광신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가치가 있을 겁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