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4X 게임들과 사회 구조 묘사 본문
4X 전략 게임들에는 다양한 승리 방법들이 있습니다. 바둑이나 체스 같은 고전 전략 게임들, <워해머 40K>나 <배틀테크> 같은 테이블 보드 게임들, <커맨드 앤 퀀커>나 <홈월드> 같은 실시간 전략 게임들은 정복 승리로 귀결하곤 합니다. 이런 게임들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상대 진영을 침략하고 정복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오직 군사적인 측면만이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측면들이 있다고 해도, 다른 측면들보다 군사적인 측면들은 훨씬 큽니다. <워해머 40K> 같은 SF 전략 게임은 인간 이외에 다른 비인간 종족들을 보여줍니다.
엘다, 타우, 오크, 타이라니드는 인간과 다릅니다. 인간 제국에도 여러 세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인간 제국의 여러 세력들, 엘다, 타우, 오크, 타이라니드는 상대 진영을 침략하고 정복해야 합니다. <스타크래프트>는 가장 대중적인 실시간 전략 게임일 겁니다. 이게 가장 대중적이지 않다고 해도, <스타크래프트>는 아주 유명합니다. <스타크래프트>에는 오직 정복 승리만이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테란, 저그, 프로토스, 무엇을 고르든, 게임 플레이어는 군사 유닛들을 생산하고 상대 진영을 침략하고 싸우고 죽이고 정복해야 합니다.
반면, 4X 게임들은 다릅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 같은 4X 게임들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군사 이외에 경제와 문화와 외교에 치중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경제, 문화, 외교를 이용해 점수를 쌓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건 문화 승리와 외교 승리에 군사적인 측면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가 전쟁 없이 은하 의회에 진출하고 싶다고 해도, 호전적인 세력은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호전적인 세력은 게임 플레이어 진영을 공격하고, 게임 플레이어는 그걸 막아야 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구태여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해도, 호전적인 세력들을 막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군사 유닛들을 생산해야 합니다.
게임 플레이어에게 든든한 군사 유닛들이 있다면, 적어도 게임 플레이어는 영역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적대 군사 유닛들이 항성계들과 행성들을 빼앗는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경제 점수나 문화 점수나 외교 점수를 쌓기 위한 기반들을 잃을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문화 점수를 쌓고 싶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행성들을 개척해야 하고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게임 플레이어는 필수적으로 우주 함선들을 건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정복 이외에 다른 승리들을 노릴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오직 방어 전쟁만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4X 게임들에도 여러 종류들이 있습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은 외교를 중시하나,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은 외교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외교 점수, 문화 점수, 경제 점수를 쌓지 못합니다. 영웅들은 사방을 탐험하고, 자원들을 수집하고, 유닛들을 늘리고, 기지들을 짓고, 결국 전쟁에 돌입해야 합니다. 먹자 거리에 원조 맛집들이 있는 것처럼, 4X 장르에서 <마스터 오브 오리온>과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은 원조 게임이나,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이 외교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 게임은 <마스터 오브 오리온>과 다릅니다. 이 게임은 외교 게임이 되지 못하나, <마스터 오브 오리온>은 그럴 수 있습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을 비롯해 여러 스페이스 오페라 4X 게임들은 외교를 중시합니다. 반면,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는 계속 외교보다 탐험, 자원 수집, 기지 건설, 전투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엔들리스 레전드>가 중세 유럽 판타지라고 해도, <엔들리스 레전드>는 중세 판타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보다 스페이스 오페라 <마스터 오브 오리온>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이건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보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 반드시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가 방어 전쟁, 평화 정책, 외교 승리를 좋아한다면, <마스터 오브 오리온>은 훨씬 나은 선택일 겁니다.
4X 전략 게임들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평화주의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일부러 평화주의를 추구합니다. 4X 게임들은 평화주의 세력들을 선보이곤 합니다. <엔들리스 스페이스 2>에서 언폴른 세력은 (타락하지 않는다는 세력 이름처럼) 평화주의 세력에 가깝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무가 평화롭다고 생각하고, 나무 외계인 언폴른은 이런 대중적인 사고 방식에 알맞습니다. 식물 생체 우주선들 역시 별로 호전적인 것 같지 않습니다. 기계 우주선은 호전적일 수 있으나, 나무가 평화롭기 때문에, 식물 생체 우주선은 호전적인 성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반드시 평화롭다는 인식은 오해이나, 적어도 언폴른 세력은 평화주의에 가깝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평화주의를 좋아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만족스럽게 언폴른 세력을 진행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주의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왜 누군가가 평화를 좋아하고, 왜 누군가가 전쟁을 좋아하나요? 스페이스 오페라에는 온갖 외계인들이 있습니다. 전쟁 없이 어떤 외계인들은 살지 못합니다. <워해머 40K>에서 태생적으로 전쟁 없이 오크 세력은 살지 못합니다. 전쟁이 터진다면, 옼스들은 "WAAAAAAAAAAAAAAAAAAAAGH!!!!!!!!!!!!!!!"를 외치고 기력을 얻을 겁니다. 이건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진짜 에너지입니다.
<엔들리스 스페이스 2>에서 언폴른이 태생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워해머 40K>에서 오크는 태생적으로 전쟁을 추구합니다. 이런 스페이스 오페라는 외계인들을 극단적으로 대조할 수 있습니다. 외계인들이 극단적으로 부딪힐 때, 우주 전쟁은 쉽게 벌어집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의도적으로 전쟁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어떤 외계인 세력이 태생적으로 반드시 전쟁을 추구해야 한다면,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 고민하기 위한 이유는 없을 겁니다. <워해머 40K>에는 지옥에서 기어올라오는 악마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악마들입니다. 인간들은 그들과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언제나 타이라니드는 인간들이 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비판하기 위한 논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은 전쟁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아주 쉽게 전쟁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스페이스 오페라에 불과합니다. 현실은 훨씬 다릅니다. 왜 현실에서 전쟁이 터지나요?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은 20세기 최대의 비극입니다. 왜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이 터졌나요? 왜 사람들이 세계 대전을 (심지어 두 번이나) 막지 못했나요? 수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수구 보수 세력부터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까지, 모두 전쟁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수구 보수 세력과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똑같이 전쟁에 반대합니다. 수구 세력과 페미니즘에게 보편적으로 전쟁은 나쁩니다. 하루 종일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떠드나, 반전(反戰)은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20세기에는 세계 대전이 (심지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모두 보편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나, 심지어 세계 대전은 두 번 터졌습니다. 왜 사람들이 두 세계 대전을 막지 못했나요? 여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으나, 가장 커다란 이유는 계급 구조입니다. 인류 문명에는 수직적인 계급 구조가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은 모두 유럽에서 비롯했고, 유럽은 자본주의 문명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지배 계급은 자본가 계급입니다. 자본가 계급은 피지배 계급이 들고 일어나기 바라지 않습니다. 만약 노동자 계급이 힘을 얻고 크게 봉기한다면, 자본가 계급은 이런 상황을 막고 싶어할 겁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에, 유럽 노동자 계급들은 세계 대전을 막고 싶어했습니다. 적어도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 계급들은 전쟁을 막고 싶어했습니다. 심지어 노동자 계급들은 스스로 군대를 조직했고 파쇼주의와 싸웠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서 대기업들이 노동 조합들을 혐오하는 것처럼, 20세기 중반 자본가 계급은 자발적인 노동자 계급들을 싫어했습니다. 게다가 유럽 옆에는 빨갱이 국가 소비에트 연방이 있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났으나, 서구 세력이 소비에트 연방을 위협하기 전까지, 소비에트 연방은 물질적으로 노동자 계급들을 지원했습니다. 자발적인 노동자 계급들은 노동자 도시를 건설하기 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노동자 계급들이 힘을 얻는다면? 우리가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고민할 때,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는 과정입니다. 전쟁이 터진다면, 누가 죽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지배 계급들은 안전할 겁니다. 지배 계급들은 전장에 나가지 않습니다.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대기업 사장이 직접 전장에 나가겠습니까?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장에 나가야 합니다. 국가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징집하고 전장에 보낼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쟁을 논의할 때, 수직적인 계급 구조는 필수적인 논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런 수직적인 계급 구조가 약해진다면, 전쟁은 터지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게 터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들은 이런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4X 게임들은 이런 것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습니다. 수직적인 계급 구조는 중요한 논의 대상이나, 4X 게임들은 막연히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전쟁은 그저 몇몇 악당의 문제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이건 사회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4X 게임들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4X 게임들이 사회 구조를 묘사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피상적입니다. 4X 게임들은 수치 계산을 중시하고 사회학을 자세히 고증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4X 게임들이 평등한 사회 구조를 묘사하고 싶다고 해도, 이건 너무 어려울 겁니다. 사회 구조가 평등하다면, 사람들은 평등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여자 노동자와 대기업 아재 임원은 똑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4X 게임들이 이런 상황을 묘사할 수 있나요? 아무리 인공 지능이 발달한다고 해도, 아무리 천재적인 게임 제작자가 규칙을 설계한다고 해도, 이런 토론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4X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그저 몇몇 정책을 고르거나 정책 사다리를 탈 뿐입니다. 이건 게임이 드러내는 제약입니다. 4X 게임들은 수치 계산에 초점을 맞춥니다.
4X 게임들은 사람들의 대화와 토론과 논의와 사상을 직접 묘사하지 못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이런 대화, 토론, 논의, 사상을 보고 싶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보다 소설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소설은 글자들을 이용해 대화, 토론, 논의, 사상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사실 대화와 토론과 논의와 사상은 언어를 이용하고, 소설 역시 언어를 이용합니다. 이건 게임보다 소설이 반드시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게임에게는 소설에게 없는 여러 장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와 토론과 논의와 사상과 소설에게는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화와 토론과 논의와 사상을 보고 싶다면, 소설은 가장 좋은 매체가 됩니다.